펀(FUN)하지만 뻔하지 않을 무역 스토리
국제기계공구_김민정 차장
조선기자재
2017년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3박 4일의 기간 동안 부산 벡스코에서는 국내 최대 조선·해양 전문 전시회인 ‘코마린 2017’이 개최되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코마린 2015’를 마치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코마린 2017’을 실적 있는 전시회로 치르기 위해 전시회 관련 마케팅 교육을 수강하는 등 여느 때와 다른 각오로 성공적 전시회를 꿈꾸며 노력해 왔습니다. 국·내외 전시회 관련 담당자인 저는 다른 직원 누구보다 훨씬 더 절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코마린 2017’은 우리 회사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참여하게 되는 전시회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눈물의 전시회
세계 경제의 전체적 불황과 국내 조선업계의 심각한 위기로 조선사별 구조조정이 이뤄져 90% 이상을 국내 대형 조선사에 대한 공급에 의존하던 우리 회사는 수년째 매출 급감의 사태를 더는 저는 버티지 못했습니다. 결국 2018년 6월 ‘회사 폐업’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예고해 놓고 있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2017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제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코마린 2017’에 불참을 통보하고 그동안 납부했던 전시회대금 중 일부라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시회 규정상 전시회 불참에 따른 대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전시회 참가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래한 것입니다.
자금 지출을 한 푼이라도 줄이고자 2017년 새해 쏟아지는 중소기업 관련 지원사업을 면밀히 검토하여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전시회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여 신청을 하였고, 선정 후 조금이나마 자금 압박을 덜 받는 상황에서 마지막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저에게는 눈물의 마지막 전시회 준비였습니다.
우리 회사는 1985년 영국, 일본 등에서 수입되고 있던 강판용 클램프를 국산화로 대체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오랜 연구개발의 시간이 지나가고, 거듭되는 실패와 수많은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후 삼성중공업(주), 현대중공업(주), 대우조선해양(주) 등 국내 대형 조선사들에게 강판용 클램프를 독점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형 조선사들이 진출해 있는 해외 현지 조선사에까지 우리 회사 클램프를 공급해 간접 수출의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왔습니다.
조선 호황에 잘나가던 기업에 복직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경리담당 직원으로 수입품의 국산화 대체 작업을 열심히 이루어 나가고 있던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12월 결혼과 함께 그만뒀다가 7년 후인 2001년 복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너무나 필요했고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2001년, 회사는 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한 ‘놀이터’였습니다. 시도해 보고 싶은 업무 분야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저는 솟아나는 열정으로 회사와 제가 함께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입사를 하고 보니 90% 이상 내수시장에 의존하던 회사 사정은 제가 회사를 그만둘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출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사장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직수출을 하자 말씀을 드렸지만, 말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무역 전공자 한 명도 없는 소규모 회사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수출을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사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과 2002년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일손이 부족해 내수시장에 공급해야 할 수주 물량만으로도 잔업과 휴일 특근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내수 호황 속 외면당한 수출 제안
당연히 저의 의견과 안건들은 다음으로 미뤄지거나 소리 없이 묵살되곤 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 중소기업청 수출지원센터로부터 내수 기업만을 대상으로 수출 업무에 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출기업화사업 1년차’를
시작으로 2011년 ‘수출역량강화사업’까지 참여하게 되면서 직수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마케팅 업무에 관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회사에서 제품을 수출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까막눈이에서 실눈을 뜨는 정도로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회사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수출? 지금 납기도 못 맞추는데 수출은 무슨 수출이야. 우리 실력으로...” 사장님의 행복한 비명은 연일 계속되었지만 저의 생각은 사뭇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의 조선업이 언제까지 상승 곡선을 이어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고, 무섭게 성장하여 유지한다 싶어지는 순간이 가파르게 내려가는 순간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그런 순간들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유럽의 조선업이 영국에서 스웨덴으로 옮겨졌으나, 스웨덴의 그 유명한 ‘말뫼의 눈물’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답할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성장세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중국과 뛰어난 기술력으로 대한민국보다 한발 앞서 있는 일본의 조선업 기술력을 제치고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조선업 강국으로서의 우위를 계속 지켜야 우리 회사 또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 이어질 것인데 그것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일이므로 다양한 고객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수출이 아니고선 정답이 없었습니다.
스웨덴 조선 선례 보며 수출 모색
무역에 관한 전문 인력 하나 없는 소규모 개인기업에서 무턱대고 수출을 하겠다고 선포한다고 해서 코트라, 한국무역협회 같은 곳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수출 업무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정규직 한 명을 추가로 고용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인건비를 생각해야 하는데 당장 필요치도 않은 인력에 대한 추가 고용을 회사에서 흔쾌히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눈을 돌린 건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사업들이었습니다. 2009년부터 2011년 3년 동안 수출기업화사업을 진행해 본 얄팍한 경험 하나만을 믿고서 수출과 관련한 각종 지원사업을 두루 섭렵하였고, 2017년 올해까지 직접, 간접 수출이 가능한 여러 업무에 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2013년부터 매출관련 그래프의 움직임이 둔화되기 시작하였고, 2014년, 2015년 심각함을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회사는 수출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시기적으로 이미 많이 늦은 때였습니다. 무역 관련 전문 인력이 없는 어려움을 회사는 가족 기업답게 가족을 투입하여 충원하였습니다. 저는 기존하던 업무 그대로 지원 사업을 통하여 수출 업무에 필요한 보조 업무를 맡아보게 되었습니다.
지원 사업을 통하여 국문영문중문 홈페이지를 만들고, 해외전시회 참가, 시장개척단 참가, 수출상담회 참가, 2015년 FTA시장개척 수출컨설팅사업 참가, 2016 퇴직무역 전문인력 수출자문 프로그램 등 수출에 필요한 업무, 수출하기에 좋은 프로그램이라고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던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부 사업 신청을 했습니다. 떨어지면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선정되면 초심을 발휘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매진하였습니다.
절박해진 해외시장 개척
수출을 해야지만 우리 회사가 살아남고, 회사가 건재해주어야지만 저의 일터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 회사 직원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저와 저의 가족까지 수십 명의 생계를 걱정 없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출이고 그 외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될 줄 알고 밀어붙이기만 한 것이 무모한 도전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출 업무라는 것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비전공자인 우리가 정부지원 사업을 통해 배운 무역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과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외국어 실력만 가지고는 자유자재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였습니다.
수출하고자 하는 나라의 문화를 모르고, 능수능란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면서 인코텀즈 11가지 정형화된 규정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열정만을 가지고 클램프를 세계 각국에다 팔아보겠다고 하는 건 세 살짜리 어린아이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시도였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학 4년을 그냥 공짜로만 다니는 것이 아니구나.” 대학에서 무역업을 전공하여 FTA를 말하고 HS CODE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무역 인재들을 보면 저절로 부끄러워지곤 하였습니다. 나의 수출 활동은 그저 무식한 용기에 불과했습니다. 내수 경기가 침체될 대로 침체되어버린 상황에서 뒤늦게 수출의 길을 뚫어보고자 동분서주했지만 어려운 상황이 너무나 많이 발생했습니다. 회사는 우리를 마냥 기다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입술을 앙다물고 수출업무 도전
해외 전시회를 수차례 나가보고, 수출 상담회와 시장개척단을 다녀오면서 잠재 바이어의 명함은 수북이 쌓였습니다. 하지만 그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그 다음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항상 똑같은 지점에서 멈춰지곤 하였습니다.
무역과 관련된 다수의 책과 국제무역사 1급, 2급의 전문 강사들은 무역은 어렵지 않으며, 국내 거래를 국가 간의 거래로 옮겨간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는 ‘무역의 신’, ‘실전에 강한 무역실무’, ‘무역실무자를 위한 해외마케팅’ 등 무역관련 실무 도서를 섭렵해야 했습니다. 저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입술을 앙다물고 덤벼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무역을 공부하고 싶고, 우리 회사 제품을 수출하고 싶었습니다. 성과에 대한 뿌듯함으로 저의 자존감을 높여 더 신나게 일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무역 하나에 매달려 지난 십년을 달려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내년이면 폐업을 해야 한다는 절망에 빠져있고 저는 마지막 눈물의 전시회 참가를 준비했습니다. 4일간의 전시회 기간 동안 부스 위치가 바이어들이 방문하기 좋은 위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300명이 넘는 손님들이 다녀가셨습니다. 스페인, 미국, 일본의 바이어들이 방문했고, 그중에는 각종 자료들에 대해 요청한 바이어와 전시회가 끝난 다음 추후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준 바이어도 있었습니다.
30명 잠재 바이어에 큰 기대
무엇보다 국내 대형 조선사 중 한 곳에서는 1년에 두 번 조선사 현장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우리 회사를 초대해주셨습니다. 기본 부스를 제공하겠으니 우리 회사에서 출시되는 신제품과 기존 제품들에 대한 사용 방법,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 및 시연을 보여줄 것을 요청해 주셨습니다. 종전 전시회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4일간의 전시회 중 3일째 되던 날, 저는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2017 수출성공패키지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사업 페이지 내 사이버 교육 코너에서 봐두었던 ‘국제무역실무과정’ 17강 온라인 강의 신청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10월 26일 한국무역협회 부산지역본부에서 개최되었던 ‘한중 FTA 원산지 관리 교육’에도 착실하게 참석하여 교육을 잘 듣고 왔습니다. ‘코마린 2017’을 준비하면서 제가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잘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6월 회사가 문을 닫으면 난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면서 가족을 건사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2018년 6월이면 아직 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겐 이번 전시회 때 우리 부스를 다녀간 300명에 대한 정보가 있고 그 중 30명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제품 상담을 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끝나도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굳이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출의 생초보티를 벗지 못했으며 수출에 열과 성을 다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컨설팅 해주시는 전문위원님들이 바뀔 때마다 배우기만 하느라 열심히 필기만 하였을 뿐 배운 내용을 토대로 회사 소개장 제대로 한번 만들어 발송을 해 본 적이 없고, 인콰이어리가 접수되면 허둥대느라 혼비백산 하였을 뿐 두 번, 세 번 바이어에게 연락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카탈로그와 견적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발송하면 바이어와 연락은 끝이었습니다.
남은 8개월…희망은 있다
수출상담회에서 우리 제품에 호감을 표시했던 인도네시아 여러 개의 중·소형 조선소를 보유한 바이어와 상담회에서 상담 이후로 그저 수주가 저절로 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입 벌려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감이 떨어지지 않자 벌리고 있는 입만 아프다며 투덜거리며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꼴이었습니다. 수출을 하겠다면서, 무역을 성사시켜서 자존감을 높여보겠다 뜨거운 열망만 가득 안고서 이제는 아무리해도 안 되니 그만 하겠다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 회사의 상황이란 생각입니다. 실상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생짜배기 초보 그대로이면서 말입니다.
복직하고 얼마 후부터 사장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수출을 해야 한다, 수출만이 살길이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매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그럴 수 있는 기운까지 모두 모아 앞으로 남은 8개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배운 대로 착실하게 제대로 한번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8개월의 시간은 결코 짧지도 결코 길지도 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신 아주 치열하고 숨 가쁘게 긴장되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2018년 6월 회사 폐업’를 마음속에 새기고, 절박한 심정으로 남은 8개월 동안 여한 없이 뛰어보고 싶습니다. 지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의 제품을 눈여겨 본 바이어의 명함 30장이 있습니다. 수출의 첫걸음은 시장개척과 바이어 발굴이라고 했습니다.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회사의 폐업 계획도 다소 늦출 수 있게 되거나 잠정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지만 저와 우리 회사의 기적을 기대해 봅니다. 펀(FUN)하지만 뻔하지 않을 무역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무역은 쉽다. 수출 비전문가, 초보자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을 찰떡처럼 믿고 따라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