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서가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이 밥을 잘 안 해먹기 때문
봉제산업은 한계… 향후 전자·기계·IT분야 투자 늘어날 것
환한 웃음·에두른 표현·만장일치 등 현지인 문화 이해해야
“C사가 만들어 판매하는 전기밥솥은 약 15만 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손가락에 꼽히는 브랜드였지만, 이 회사가 베트남에 진출했을 때 현지 반응은 차가웠다. 이런 경우 우리 기업들은 크게 두 가지 착각을 한다. 첫째는 베트남 사람들은 가지고 싶어도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구매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는 베트남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판매에 나서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5월 8일 한국무역협회가 개최한 ‘중국·베트남 비즈니스 문화 및 진출전략 설명회’에서 발표를 맡은 김범구 변호사가 한 말이다. 그는 “베트남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베트남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변호사는 베트남에서의 기업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특성과 비즈니스를 할 때 우리 기업이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전했다. 노동법, 부동산투자, 조세제도, 송금제도와 같은 각종 법령과 제도는 급격한 변동이 많아 진출하려는 그 시점에, 기업의 상황을 중심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베트남은 이제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든 국가가 아니다. 최근 8년 동안 약 7.5~8%의 경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C사의 밥솥이 팔리지 않은 이유는 그저 베트남 사람들이 대체로 밥을 자주 해 먹지 않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면 우리 돈 100원 정도에 아침을 사 먹을 수 있는데, 굳이 15만 원씩이나 주고 잘 쓰지 않을 밥솥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C사의 입장에 처했을 때 대부분의 우리 기업은 구매력이 없는 소비자가 원인이라고 짐작하고, 기다렸다가 판매해야겠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기다린다 한들 베트남 소비자들은 우리 물건을 구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중국, 대만과 같은 나라의 기업들이 가격을 내세우며 품질을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베트남 바이어들에게 한국 제품은 이미지가 좋지 않다. 베트남에는 수많은 외국기업이 들어와 경쟁하고 있는데, 한국 제품은 유난히 A/S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품질은 독일 등 선진국 제품의 70%밖에 따라오지 못하면서 가격은 똑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중국 제품은 한국 제품 70% 수준의 품질이지만 가격은 60% 정도라고 여겨진다. 중국에게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베트남에서 사업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의 대답은 ‘아니’다. 110달러에서 시작한 호찌민 여직원들의 초봉은 몇 년 새 350~400달러 선으로 올랐다. 이렇게 임금이 올라가면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바로 봉제산업이고, 베트남에서 사업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봉제업체들이다. 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전자나 기계, IT 분야는 아직 진출을 시작도 안 했다. 특히 IT 분야는 앞으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베트남이 우리나라보다 발전 단계가 낮다는 점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이제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수출하려는 기업들도 종종 눈에 띈다. 재고를 해치우듯 그런 제품을 싸게 파는 것보다는, 베트남인들에게 맞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이다. 김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싼 가격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그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 사람을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만드는 방법은 = 그렇다면 사업을 할 때, 베트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김 변호사는 한 일화를 소개하며 베트남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젠가 김 변호사는 베트남 바이어를 2시간 40분 동안 기다렸지만, 늦게 도착한 바이어는 미안하다는 말도 한 마디 없이 이가 다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늦은 이유를 댔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한 시간 지각은 기본이다. 교통체증도 매우 심하다. 그렇다고 지각 자체를 미안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안해’가 아닌 ‘왜냐하면’으로 첫 마디를 시작할 뿐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굉장히 미안하지만 표현하지 못할 때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또 다른 특성은 허례허식이 심하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 받은 명함이 화려하고 고급스럽더라도 실제 회사는 직원도 몇 명 안 되는 영세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혹해 섣불리 일을 진행하지 말고, 실제로 업체를 방문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미팅을 잡을 때 중재자를 거치면 조심스럽다는 느낌을 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실제 하는 말의 뜻과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달라 우리 기업이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베트남 담당자가 미팅 중 갑자기 하는 “yes”라는 말은 긍정의 의미가 아니다. ‘got it’, 즉 그냥 ‘이해했다’는 말이다. 또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인들이 ‘생각해보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면, ‘다음에 할 얘기가 남았다’고 생각하거나 ‘더 설득해야겠다’고 판단해 다시 만나려고 한다. 하지만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저 표현이 ‘다신 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주제에 대해 말하기를 싫어하고, 입장 표현이 명백하지 않다. 내일 선약이 있는데도 만나자고 하면 “안 돼”라고 말하지 않고 에두른다. 이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의사결정 시에는 만장일치를 추구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주의의 잔재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 결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김 변호사의 경험에 의하면 8명이 일하는 기업의 결재가 2달 정도 걸렸다고 한다. 다만, 일부는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어 가격을 낮추는 등 유리하게 계약을 변경하려는 기업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또한 바로 드러날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바꾸는 경우도 빈번하다. 계약이 거의 성사됐을 때쯤 거래 조건을 변경하자고 말을 바꾼다면 “일리 있는 말이지만, 상부에 보고해봐야 한다”며 상담을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의가 길어져 다음 협상에 이어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계약서의 작성 및 교환을 우리처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긴 상담 끝에 계약을 체결했는데, 대뜸 전화해서 “계약서를 잘못 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애초에 “번거롭다”며 계약서를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 변호사는 “계약서는 맑은 날이 아닌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쓰는 것인 만큼, 적어도 분쟁해결조항 정도는 적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계약을 추진할 때는 담당자뿐만 아니라 상급자에게도 해당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상담을 진행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먼 산만 보거나 필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존중하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대든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력을 거론하며 자신의 귀책에 대한 한국기업의 책임 요청이 잦다. 한두 번은 책임져줄 수 있지만 그 횟수가 너무 많아지면 안 된다. 현지 직원이 실수한 경우에도 용서는 해주되,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책임을 문서화해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로 애사심이 없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쉽게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가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센티브제도 통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한국말을 잘하는 베트남인을 인사관리자로 둬 중간다리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베트남어를 잘하는 한국인을 노무관리자로 두는 것을 추천한다.
김 변호사는 “조언을 얻고자 한다면 교민회에 가지 말고 현지 전문가(변호사, 교수 등)를 찾아가라”며 “가장 쉬운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 적당한 베트남 커뮤니티를 찾은 후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