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제공] |
수천 개 부분품 원산지 ‘세번결정기준’에 맞춰라
2017년 기준 한국 전체 제조업에서 기계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업체수 14.0%, 종사자 수 11.3%, 생산액 8.0%, 수출액 8.5%, 수입액 6.3%이다(한국기계산업진흥회 통계). 제조업 위기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기계 산업은 한국 산업을 받치는 큰 기둥으로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기계류의 자유무역협정(FTA) 활용률은 84.2%로 광산물(88.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관세청, 2018년 기준). 품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출되는 기계류의 상당 부분은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고 대체 가능성이 커 중국 저가제품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가격경쟁력 확보가 수출의 성사 여부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면서 FTA는 훌륭한 해결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FTA 활용을 통한 성공사례가 전파되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중소기업들도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설립 2년 만에 수출… 흡수냉동기 명가
W사는 2004년에 에너지 절약기기인 폐열회수용 흡수식 히트펌프와 지역냉방용 저온수2단 흡수냉동기, 열병합발전용 저온수 흡수냉동기 등과 같은 흡수냉동기제품의 개발과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다. 흡수냉동기와 냉동장비의 개발, 설계, 제조에 있어서 국제적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개발, 생산, 보급하고 있다.
흡수냉동기의 정식 명칭은 ‘흡수식 냉온수기’다. 도시가스, 경유, 지역난방, 전기 등의 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에 필요한 냉수, 온수를 생산하는 설비다. 냉동 냉온 사이클 속에 압축기가 없고, 증발기·흡수기·재생기·압축기·열교환기 및 펌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폐열이 이용될 수 있는 대형 공장 등에 보급되고 있다. W사는 독자 개발한 열교환기 설계기술을 기반으로 지역난방용 네트워크를 활용한 ‘지역냉방용’, 엔진의 폐열(Jacket water, Exhaust gas)을 이용한 ‘열병합발전용’ 등 각종 산업폐열 이용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W사는 설립 2년째인 2006년 미국에 저온수흡수냉동기(130usRT)를 첫 수출하는 등 초반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결과, 현재 미국과 유럽, 멕시코와 대만 등 전 세계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회사 전체 매출에 절반 이상을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W사는 2007년 저온흡수냉동기에 대해 미국의 제품안전인증기관인 ‘UL’ 인증을 받았으며, 2015년에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시행하고 있는 품질경영시스템 국제규격인 ‘ISO 9001’과 환경경영에 대한 국제규격인 ‘ISO 14001’ 인증을 받았다.
2016년 이후 W사는 수출시장 확대를 위해 선박용 기자재 등 틈새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렸다. 그 결과 글로벌 3대 조선사인 삼성중공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등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국제선급의 압력용기 적합성 인증인 ‘PED’와 유럽방폭인증인 ‘ATEX’, 선박을 위한 ‘GL’ 인증도 획득했다, 또한 그동안 신제품 라인업 확대에 집중해왔던 전략을 수정해 시장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제품가격 인하를 위한 원가절감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가격경쟁력 강화 위해 FTA 도입
흡수냉동기는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정밀 부분품을 적용한 고가 제품이다. 또한 고객의 발주가 있어야 생산하고, 개별 제품의 세부항목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현지 사정에 따라 완제품이나 2분할 또는 3분할 등으로 나눠서 납품할 수도 있는 등 기술과 가격 변동성이 크다.
같은 모델을 많이 생산할수록 동일한 규격의 부분품을 다수 발주할 수 있어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데, W사의 사업 특성상 이 같은 방법으로 누릴 수 있는 효과는 한계가 있다. FTA 활용을 통해 특혜관세를 받는 것이 그나마 단기간 내에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다. 1%의 수입관세만 낮아도 상당한 수준의 제품 가격 하락효과를 볼 수 있다.
W사는 FTA 활용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유럽연합(EU) 지역에 지사를 설립,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현지 지사가 수입해 바이어에게 판매하는 유통체계를 구축했다. FTA 특혜관세를 받으면 EU 지사가 수혜를 입고, 이러한 수혜분으로 판매가격을 낮추는 일거양득 효과를 겨냥했다.
W사는 2012년 경력직으로 입사한 K차장에게 FTA 활용 업무를 맡겼다. 이전에 통신기기 제조업체와 대기업에서 수출업무를 담당해왔던 K차장은 FTA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누구보다도 도입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경쟁사들보다 다소 늦었지만, W사는 본격적으로 FTA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W사는 지역 FTA활용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FTA에 대한 기본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는 한편 FTA 특혜관세를 받기 위한 원산지 판정 작업도 추진했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기계 산업은 부분품·원재료의 원산지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흡수 냉동기를 구성하는 부분품인 증발기·흡수기·재생기·압축기·열교환기 및 펌프 등은 그 자체로도 완제품이며, 각각의 부분품은 또 다른 부분품과 원재료로 구성된다. 이를 하나하나씩 나누면 수천 개가 된다. 다시 말해, 흡수냉동기의 원산지를 판정하려면 수천 개에 달하는 부분품과 원재료의 원산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천 개 부분품과 원재료의 원산지를 일일이 확인
흡수냉동기(HS코드 8418.29)의 EU 기본세율은 2.2%이며 FTA 협정관세는 0%이다. 태국의 경우 한-아세안(ASEAN) FTA 협정을 적용받되, 회원국이 자국 상황에 맞춰 지정한 민간품목(SL, Sensitive List)에 포함되어 기본세율은 30%, 협정세율은 5%이다. 협정별 원산지결정기준은 한-EU FTA의 경우 ‘모든 호(그 제품의 호는 제외한다)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 또는 ‘해당 물품의 생산에 사용된 모든 비원산지재료의 가격이 해당 물품의 공장도가격의 50%를 초과하지 않은 것’에 해당해야 한다. 한-아세안 FTA는 ‘다른 호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이나 ‘40% 이상의 역내부가가치가 발생한 것’ 중 하나를 충족시켜야 한다.
기계류 제품의 원산지결정기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세번변경기준(CTC, Change in Tariff Classification)’이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원재료의 원가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가가치기준보다 세번변경기준을 더 선호한다.
세번변경기준은 FTA 체결 회원국의 역내 가공단계 원산지 판정에 있어 비원산지재료에서 수출제품으로의 실질적인 변형 여부를 세번(HS코드) 변경으로 판정하는 방식이다. 국제적인 통일 상품분류방식인 류(품목번호 맨 앞 두 자리), 호(품목번호 맨 앞 네 자리), 소호(품목번호 맨 앞 여섯 자리) 체계 내에서 변경이 이뤄졌는지 검토한다. 완성품 세번이 FTA 특혜관세 적용품목에 완성품 세번과 동일하면 역내산 판정을 받을 수 없다. 흡수냉동기의 원산지결정기준은 ‘4단위 세 번변경기준(CTH)’이다.
원산지 관리 프로세스 구축 기초서류 ‘BOM’
K차장은 부분품과 원재료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에게 ‘원산지(포괄)확인서’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이 서류는 국내 공급자(협력사)가 국내 구매자(완제품 생산자)에게 공급하는 물품이 한국산 또는 역내산, 즉 원산지 물품(재료)이라는 것을 구매자에게 입증하는 서류다.
수취한 원산지(포괄)확인서를 근거로 제품 생산에 투입된 원재료 등의 종합적인 목록인 ‘원재료명세서(BOM)를 작성했다. BOM은 기계업종 업체들이 원·부자재 관리 네트워크를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서류다. 워낙 많고 다양한 부분품으로 구성되는 기계제품이기 때문에 완성품 세번이 FTA 특혜관세 적용품목에 포함되더라도 부분품의 HS 코드와 원산지에 따라 완성품의 FTA 적용 가능여부가 달라지므로, 부분품의 정확한 품목분류 및 원산지 판정이 필요하다.
자력으로 어렵다면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서라도 해야 한다. 만약 수출신고 때 HS코드를 임의로 판정해 품목오류를 범할 경우 ‘역내산’ 판정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운 좋게 넘어가더라도 사후검증에서 적발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원산지 관리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관세평가분류원의 ‘품목분류 사전심사 신청’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수출 26% 증가, 수입관세 연 2% 절감
이와 함께 W사가 생산하는 제품들은 수주를 받아야 하는 제품으로 매번 BOM이 달라진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반이 되는 최초 BOM을 확실히 작성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W사 제품군은 핵심 부분품에 주변기기를 넣거나 빼는 등 응용하기 때문에 BOM을 구성하는 주요 핵심구성 원자재와 주변기기를 분류한 뒤 핵심 구성품 FTA BOM과 주변기기 FTA BOM을 구분 관리하는 업무 체계를 구축하면 다양한 형태의 업무를 쉽게 관리할 수 있고, 바이어들의 요구에 보다 빨리 대응할 수 있다.
원산지 문제를 해결한 W사는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 되었고, 2017년부터 한-EU, 한-아세안 FTA를 중심으로 FTA 시스템을 업무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2017년 약 570만 달러였던 W사 수출이 2018년 약 720만 달러로 26% 증가했다. 수출 증가세는 2019년에도 계속 이어져 750만 달러 이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FTA 원산지인증수출자 인증을 획득해 EU 지사에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수출가격의 2.2%에 달하는 수입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됐다. 이는 연간 약 2억 원의 관세절감 효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관세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지자 기존 바이어의 구매량 증가와 신규 바이어 추가 확보라는 성과도 얻었다.
W사는 이어 미국과 호주, 중국 등 한국이 체결한 FTA 국가에서도 FTA를 활용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 및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각국 정부들이 에너지 독립 정책을 실시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 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흡수냉동기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한-EU 원산지증명서
한-EU FTA원산지증명서는 기관에서 발급해 주는 것이 아닌 ‘자율발급’ 제도이며, 특정한 서식을 사용하지 않고 상업송장(INVOICE) 등 무역서류에 지정된 “The exporter of……”로 시작하는 ‘원산지 증명문구’를 기재하면 된다.
그러나 건당 6000유로를 초과하는 물품 수출시에는 ‘원산지인증수출자’만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 인증수출자 번호가 기재되었다면 수기 서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6000유로 이하 수출인 경우 원산지인증수출자가 아니라면 INVOICE 등 무역서류에 ‘원산지 문구’를 기재하고, 수기로 서명하면 된다.
•한-EU FTA 원산지증명서 문구
“The exporter of the products coverde by this document (customs authorization No..........) declares that, except where otherwise cleary indicated, these products are of.................. preferential origin”
이 신고서류(세관인증번호.......................)에 기재된 제품의 수출자는 명시적으로 달리 표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제품이...............(국가)의 특혜원산지물품임을 신고합니다.
한국무역협회 FTA정책지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