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특별입국절차 확대 등 무역·투자 원활화에 초점
지속가능 FTA·제도 개선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변동하는 세계질서 아래 우리 무역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통상전략의 틀을 꾸렸다. 국가 간 디지털 협력을 추진하고 기업인 이동을 원활화하는 한편 보호무역에는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21일 삼성동 인터콘티넨털 서울 코엑스 호텔에서 ‘2020 통상산업포럼’을 개최하고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K-통상전략’을 논의했다. 포럼에서는 주요 수출기업과 경제단체장, 통상전문가 등 22명이 참석해 최근 한국을 둘러싼 통상환경과 대응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포럼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통상질서 변화 전망을 ‘3D’로 요약했다. 이는 ▷자국 우선(Deglobalization) ▷디지털 전환(Digitalization) ▷공급망 재편(Decoupling)의 첫 문자를 나타낸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각국이 각자도생에 나서면서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다자체제가 무력화되는 점,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디지털 통상 주도권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점, 또 코로나19 사태로 취약해진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일어나는 점을 특징으로 꼽은 것이다.
아울러 K-통상전략 주요 추진과제로 ▷기업인 특별입국 등 필수 인력·물류이동 원활화 ▷글로벌 디지털 파트너십 협정 체결 본격화 ▷공급망 국제협력 강화 ▷민관합동 신보호무역 대응반 설치 등을 꼽았다.
●인력·물류 이동 차질 없게 ‘무역 원활화’ 추진 = 우선 정부는 필수 기업인에 입국 특례를 부여하는 패스트트랙(기업인 입국 신속통로) 제도를 현재 중국에서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필수 기업인의 해외 출국과 국내 입국과 관련된 고충을 일괄 지원하는 단일 창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역유관기관인 한국무역협회에 ‘기업인 이동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한다. 종합지원센터는 산업부,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KOTRA 직원으로 꾸려지며 관련 애로 접수, 건강 상태확인서 및 격리면제서 발급 지원, 전세기 운항 협조 등의 업무를 맡는다.
아울러 한중일 3개국이 참여하는 아세안+3, 아태지역 16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다자기구 차원에서 ‘팬데믹 프리 패스포트(Pandemic Free Passport)’ 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도 추진한다.
팬데믹 프리 패스포트는 필수 기업인 이동과 물류·통관 원활화, 무역투자제한조치 최소화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팬데믹 발생 시 교역원활화를 도모하기 위해 의약품·의료기기 교역에서 인증·통관 등 비관세장벽을 개선하고, 정부가 비축하는 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게 협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통상규범 주도권 쟁탈전 참전 = 미·일, 유럽연합(EU) 등이 디지털경제권 형성을 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입장이 비슷한 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견국들과 디지털 협정 체결을 확대할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양자 간 통상규범과 협력 사업을 포괄하는 디지털 파트너십 협정(DPA) 체결을 추진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디지털 협력 사업을 메뉴화하고 협력 대상국의 수요와 발전 수준에 맞춘 사업 협력을 추진하는 식이다. 특히, 디지털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와는 전문 인력 양성, 기술 지도 등 디지털 공적개발원조(ODA)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디지털 관련 국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 '디지털통상 대응반'도 꾸려진다. 물류·의료·교육·생활 등 4대 서비스 분야 국제표준화를 위한 '비대면 경제표준화 협의체'도 가동할 예정이다.
●공급망 확보 위해 지속 가능한 FTA 추구 = K-통상의 무역협정은 ‘K-FTA’ 상생 모델을 추구한다. 상품 관세양허 중심의 FTA에서 나아가 상대국이 필요로 하는 개발협력과 우리 관심 분야 시장개방을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개발도상국에 맞춤형 산업발전 경험을 전수하고, 산업인프라 구축과 협력 사업 패키지를 지원하면서 이와 연계된 시장접근 개선과 비관세장벽 철폐를 유도하는 ‘윈윈(Win-Win)’ 전략이다.
또 이를 위해서는 ‘통상협력촉진법’을 제정해 ▷통상협력조정위원회 설치·통상협력종합계획 수립 등 범부처 협력체계 구축 ▷상대국 협력수요에 적시 대응하기 위한 통상협력촉진 추진재원 마련 ▷지원 전담기구 지정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또 신흥전략국인 신남방·신북방 시장에 대한 차별화된 통상 협력도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대아세안 3대 협력플랫폼인 산업혁신기구, 표준화연구센터, 신남방 비즈니스협력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필리핀·캄보디아 FTA 협상 진전, 우즈베키스탄 무역협정 협상 개시 등을 통해 신남방·신북방 FTA를 확대한다.
FTA 협상의 누적원산지규정, 비관세장벽 철폐를 위한 별도 부속서, 기업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한 모범규제관행 챕터 도입 등 공급망 다변화에 따른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의료·위생용품 등 K-방역 품목, 건강식품, 홈뷰티, 청정가전 등 유망품목에 대한 상대국 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해소에 집중할 계획이다.
기술 강국이자 글로벌 공급망 거점국인 미국·중국·EU와는 의료·바이오, 디지털, 소재·부품·장비· 수소경제·미래차 등 4대 유망 신산업을 중심으로 공동 연구개발(R&D), 주정부 협력 채널 개설, 투자 유치, 표준 협력 등 공급망 고도화에 나선다.
●자국우선주의 시대 생존전략도 모색 = 민관합동으로 개시될 ‘신보호무역 대응반’은 각국 정책과 업종·국가별 수출 동향 등을 모니터링하고 조기에 경보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또한, 보조금 등 국내 제도가 타국의 무역규제에 걸리지 않을지를 사전에 검토하는 한편, 민관합동 아웃리치 활동 등에도 나선다.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통상추진위원회를 통해 범정부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4차산업도 통상대응에 접목해 인공지능(AI) 기반 통상 분석·대응 포털인 ‘코트라스(KOTRAS)’를 개설하기로 했다. AI를 적용하는 만큼 단순 정보 제공뿐만이 아니라 각국 보호무역조치에 대한 최적의 대응 솔루션을 민간기업에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통상압박에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의 수입규제 대응을 돕기 위한 법률·회계 컨설팅 지원도 확대한다. 개별기업 덤핑 조사 이외에 다수 기업과 연관도 산업 피해 조사도 병행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가 안보와 핵심기술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전 세계적 무역·투자제한 조치 확대 추세에 대응해 관련 국내 법·제도도 개선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수출허가 절차·요건을 정비하는 등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를 개선하고, 외국 자본의 투자가 국가 안보를 해칠 여지가 있는지 더 면밀히 살피며, 국가 핵심기술 범위를 확대하는 등 기술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전이자 기회” = 이처럼 4가지 추진과제가 발표된 가운데 이날 포럼을 주재한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코로나 이후 통상질서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K-방역으로 높아진 국제위상을 활용해 연대와 협력의 신통상질서를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크게 네 가지 정책 방향을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이날 포럼의 논의를 반영해 포스트 코로나 신통상전략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시행해 나갈 예정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하반기에도 코로나19의 여파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은 전통적인 보호무역 조치에 대응하는 한편 디지털 영역의 규범화에도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등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며 “특히 최근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기조가 기존의 무역구제 조치를 넘어 환경과 노동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어 민·관이 협력과 소통을 통해 우리 산업에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언택트 활동이 일상화되는 지금 글로벌 디지털 통상규범 확립 과정에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Rule-setter)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과거 제조업 중심의 통상전략에서 앞으로는 성장 잠재력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과 통상의 연계 방안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채 기자 wtrade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