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 한국 기업 K사는 아프리카 베냉의 S사로부터 거래 제의를 받았다. S사는 자사를 의약품 수입 대행업체라고 소개하며 K사가 생산하고 있는 의약품 리스트를 요청했다. K사는 생산 중인 보건용 마스크 리스트를 S사에 전달했다.
S사는 긍정적이었다. 곧바로 K사가 제조한 마스크를 컨테이너 단위로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MOQ(최소 주문 수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거래는 베냉 정부기관 MINISTRY OF HEALTH BENIN의 후원을 받아 주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곧바로 프로포마인보이스(P/I)를 요청, 80만 달러에 가까운 오퍼를 제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냉의 수입대행기관 BOARD OF DIRECTOR에서 수입이 승인됐다는 연락이 왔다.
S사는 “이제 주문이 정식 수락됐으니 관련 계약서 및 필요한 공식 절차를 안내하겠다”며 몇몇 사항을 안내했다. 첫 번째, 마스크와 같은 의약품은 FDCA 등록이 필요한데, 이는 현지 변호사가 대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S사는 K사에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변호사는 K사에 비용 지급이 우선돼야 함을 주장하며 돈을 요구했다. K사는 S사가 보내온 문서를 확인한 후 변호사를 통해 등록비용을 보냈다.
1주일쯤 지났을까. S사는 K사에 스탬프와 공인증 실(Seal)이 찍힌 FDCA 인증서를 보내왔다. 그리고는 “베냉상공회의소에 계약 추가등록을 해야 한다”며 추가 등록비 지급을 요청했다. K사는 요청받은 금액을 추가 송금했고, S사는 바로 해당 상공회의소가 발행한 영수증을 보내왔다. 반복되는 비용송금 요구에 K사는 찜찜한 느낌을 영 지울 수 없었다. 한국무역협회 trade SOS에 지금까지 주고받은 서류의 진위여부를 확인한 이유다.
“K사의 사건은 현재 조사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무역사기를 당했을 경우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매우 작다. K사도 송금한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무역사기를 당한 모든 기업이 피해 금액을 고스란히 잃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초 한 국내 기업도 무역사기 사건에 휘말렸으나, 사기꾼이 제3자를 통해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려는 찰나 은행 창구 직원의 기지로 범인을 검거해 큰 피해 없이 사건이 종료됐다.”
- K사가 S사로부터 받은 서류가 허위서류라는 사실을 더 빨리 알아챘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이 서류, 스템프 등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어느 국가든 KOTRA에 확인 요청을 하면 된다. KOTRA는 해외 각지에 무역관을 두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준정부기관이기 때문에 현지 기관들도 협조를 잘 해준다.”
- 이밖에 무역사기 예방을 위해 우리 기업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이 있다면.
“첫째, 절대 우리 수출기업의 돈이 먼저 나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바이어가 돈을 주고 우리 수출기업 제품을 사는 입장인데 우리 기업이 바이어에게 돈을 보내도록 유도한다면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 무역사기 예방이나 대응을 위한 무역협회 서비스가 있나.
“협회 홈페이지(www.kita.net)에 접속해 무역사기를 검색하면 그동안의 상담 사례와 예방법 등을 다룬 좋은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업 담당자들이 바쁘다보니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 것 같다. 한 번 읽어보고 긴장감을 가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는 다르다. 평소 무역사기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의 경우 큰 오더를 받게 되면 들떠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도 모르게 진성바이어로 믿고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다.”
다양한 무역사기 유형을 알고 있으면 ‘가짜 바이어’가 접근한다 해도 대응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의심만으로 상대방의 사기의도를 꿰뚫기 어렵고 유사한 행동을 한다고 명백한 증거나 법적 판단 없이 100% 사기바이어로 특정 지을 순 없겠으나, 실제 무역사기 발생 후에는 손실을 만회할 가능성이 매우 적으므로 신중한 자세로 비즈니스에 임해야 한다.
(유형 1) 거액의 구매계약을 제시하거나 계약서가 우리 기업에 과도히 유리하게 작성된 경우.
정상적인 무역거래라면 제품, 거래조건 검토 전 거액의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없다. 특히 지불조건이 선적 전 30%, B/L 발급 후 30%, 선적 후 40% 등의 중립적인 조건이 아닌, 100% 선수금 지급과 같은 수출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형 2) 납기일 등을 이유로 급박한 물품 오더를 요청하는 경우.
계약금 수령 전 제조공장에 오더부터 넣을 경우 추후 바이어의 사기와 공장의 대금 지불 요청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반드시 계약금 혹은 신용장 수령 후 오더를 진행할 것을 권장한다.
(유형 3) 계약서 작성을 위해 현지 방문을 요청하는 경우.
상담 초기 단계에 바로 계약을 체결하자며 우리 기업의 현지 방문을 요청한다면 주의해야 한다. 이 때 방문하더라도 바이어 측에서 제공하는 차량 및 숙박시설은 피하고, 거주하고 있는 호텔로비 등 개방된 곳에서 계약 협의 등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형 4) 무상샘플 요구 및 비자발급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
수출기업의 기대심리를 이용해 샘플 수취 후 잠적하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통해 해외 업체를 접촉, 거래를 위한 비자발급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유형 5) 초청장 발급 요청 및 전시회 참가를 통한 불법 체류 시도.
신용장을 개설할 것처럼 거래를 진행하고 국내 기업에 초청장 발급을 요청하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형 전시회에 부스로 참가한다며 실제로 부스 선급금을 대신 지불한 후, 이를 수입국의 한국대사관 비자 신청 서류로 제출해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유형 6) 이메일 해킹을 통한 송금 사기.
수출대금을 파트너사에 보내려고 하는데 ‘사전에 고지했던 은행계좌는 감사로 인해 당분간 수취 불가하다’며 변경된 계좌로 송금을 요청할 경우 유선 등으로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유형7) 소액 거래로 신뢰를 쌓은 후 거액거래 결제 회피.
바이어가 거래 초반부터 작은 규모의 거래를 성실히 결제하며 신뢰를 쌓은 후, 거래 규모를 점차 늘려 거래액이 억대로 커지자 상품을 선 수취하고 결제를 회피하는 유형이다.
(유형 8) 계약서에 없던 중도금 요구에 불응하자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경우.
해외 수출업체가 선지급금을 요구해 국내 수입업체가 이를 송금했는데, 해외 수출사가 계약서상에 없던 중도금을 추가 입금하라고 요구한 사례다. 국내 업체가 중도금을 지급하지 않자 해외 수출업체는 변호사를 통해 계약을 파기하겠단 공문만을 보내고 연락이 두절됐다.
(유형 9)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에 유령회사로 등록해 무역대금 수취.
알리바바에 등록된 품목 정보를 보고 한국 수입기업이 인콰이어리를 보냈다. 해외 수출기업은 이에 답하며 우리 기업의 송금을 요청했고, 입금을 확인한 후 연락을 끊었다.
(유형 10) 바이어의 고의적 부도처리.
미국 소재 식료품 업체라고 소개한 G사는 한국 기업 P사에 약 5억 원가량의 제품을 납품받은 후 고의로 법인을 부도처리해 대금을 미지급했다. 이후 자녀의 이름으로 다른 법인 M사를 설립, 이러한 사기 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이밖에도 ▷현지 실존기업의 직원을 사칭해 위조주문서를 발주, 제품을 편취하는 유형 ▷거액의 수출대금 T/T 송금을 제시하며 은행수수료 명목 하에 소액을 갈취하는 유형 ▷해외법인 설립 등을 미끼로 투자비를 받은 후 잠적하는 유형 ▷온라인상에서 바이어를 사칭해 국내 기업에 접근하는 유형 ▷대출을 해주겠다며 관련 세금 및 수수료 등을 요구하는 유형 등이 있다.
강동우 한국무역협회 무역애로컨설팅센터 상담위원은 “해외 기업과 온라인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는 제공받은 기업등록번호, 등록일자, 대표자명, 회사 주소 등이 사이트 등록 정보와 일치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확인되지 않은 비용을 요청해올 경우에는 실제 존재하는 비용인지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비용을 바이어 측에 직접 지불하기보다는 수입 대금 지불 시 공제하는 방향으로 협의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수입자 신용조사 서비스나 수출단체보험 등을 활용해 손실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유정 07yj28@kit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