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여자의필수(goodjgw님의글)

kimswed 2007.03.26 11:46 조회 수 : 2084 추천:324

성공한 여자의 필수 낙서장  
2007/03/05 12:37

http://blog.naver.com/goodjgw/60035064271

성공하는 여자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 남자를 알자, 세상을 알자. 남자가 얘기하는 여자들만의  이야기 모르면 여자만 손해다. 여자들이여, 똑똑하게 살아라!




이 책을 읽기 전에 21세기를 불과 몇  년 앞두고 이제 세상에는 여자가 사라지는  대신 그 자리에 과거 남자의 여자와  생김새는 똑같은 주권을 회복한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호주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기정 사실화되어 어떤 서술에서도 여자가~라거나 여자는~이라는 말을 앞에 단서로 달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 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TV 드라마를  봐도 목소리가 높은 쪽은  여자가 되었으며 CF에서는 남자들이 이제 쥐어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자, 이런 마당에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 인격체로서 제대로 사는 것인가? 그리고 신이 입혀준 여자의 몸을 어떻게 지혜롭게 꾸려나갈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 많은 남자들은 이 새로운 인간(여성)들에 대한  억압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자 자신들조차도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인 여성이란  지혜로운 여자를 뜻한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주권 회복에 조급해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한 인간으로서 만족스럽게 구가할 줄 아는 여자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른바 남자들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여자도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한 주체로서 자기를 확고하게  다지라는 것이다.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자의대로 한다면 당신은 남자들의 편견과 오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다.





1. 여권운동이 여자를 망친다?

여자가 사람으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는다. 선거에서 투표권이 없었음은 물론 사회활동까지 금기시되었고 여성들조차 이러한 제약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아들을 선호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했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떠받들려지고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는 동안 모든 여자들은 가정에서부터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삶을 강요받았으며 남자를 위한 리모컨 대상자 이상의 역할은 용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자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아준 것은 바로 남자들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물질 문명의 발달이 완력을 통한 노동의 주인공으로서 남자를 필요로 하는 일을 현저하게 줄여 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종 주방기기의  현대화는 여자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런 여유를 통해  여성들은 그간 객체로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편 산업 현장의 사무자동화로 인한 여성 인력의 단순노동에 대한 소외는 반대로 이들의 전문직에  대한 노동 집중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여자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방법에 있다. 이른바 여권운동이 그것이다. 정확하게 말해 여권 회복 운동이라는 이 모토는 아직 정확한 개념 설정조차 내부적으로  혼선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 용어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천부인권에 어찌 여권이 따로 있고 남권이 따로 있다는 것인가? 지금 여자들이 찾고자 하는 권리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인권)이지 여자만의 권리는 아니다. 다만, 그 동안 없었던 여자들의  권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의 여권운동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여권운동이 여자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일부 선구자들이 이 운동을 남성에 대한 투쟁으로 생각하는데 있다. 왜 남자는 하면서 여자는 못하게 하는가~ 왜 남자는 가고 여자는 못 가는가~라는 식의 공격은 남자들에게는 투정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몇 년 전에 모 일간지가 기자를 공채하면서 여자를 제외하자 그 신문사 앞에서 여성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경우는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반발한 것이므로 얼마든지 사회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술, 담배 마음대로 하면서 왜 여자가 그러면 눈총을 받아야 하는가라든가, 남편이 바람  피우는데 나라고 못 피우겠는냐는 식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것은 마치 남자가 죽으러 가는데 왜 여자라고 못 죽으러 가느냐는 식의 궤변일 뿐이다. 본질은 여자 자신 안에 있다. 어떤 여권운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여권운동은 여자 자신에 대한 투쟁이지 남자에 대한 여자의 투쟁은 아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이 말은 진정한 여권운동은 남자도 하는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 내게도 기회를 달라! 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 남자를 의식해야 하는가. 남자나 여자나 성만 다를 뿐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그간의 억압을 복수하기 위한 남자 흉내내기가 판을 치고 있다. 남자가 혼전 섹스를 즐긴다고 해서 여자들도 거리낌없이 따라 하고, 왜 남자만 전투부대에  배속시키느냐, 우리 여군도 전투를 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혼을 무슨 현대여성의 권리쯤으로 아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남자가 문란한 섹스를 하는 것과 당신의 정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그것을 앉아서 당하는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해다. 마찬가지로 여자를 전투군으로 배치하고 안하고는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능률의 문제이며, 이혼을 쉽게 아는 풍조는 결국 자기 스스로 불행을 쌓아가는 것임을 알자. 여권운동에 남자를 개입시킬 필요는 없다. 사사건건 남자와 충돌하고 대결하는 식의 여권운동은 오히려 여자를 망치고, 남자를 덤으로 망치며, 모든 인간들에게 해만 줄 뿐이다. 사회.문화적 관습과 싸우자. 그것이 여권운동이다.



2. 쓸만한 직장, 어떻게 고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대학교를 졸업하든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한 사람들은 일단 백수의 반열에 오른다. 백수가 되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데, 처음에는 늦잠을 실컷 자서 좋고 빈둥빈둥 책도 보며 친구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어 천국 같다고 펄펄 뛰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게 장난이 아니네 싶을 것이다. 백수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일자리를 얻어 이제 더 이상 (대낮에) 만날 사람마저 없어지면  하루 종일 혼자서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 고통은 백수 노릇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죽어도 모른다. 거기에다 부모의 눈초리도 슬슬 달라진다. 뺀뺀히 노는 주체에 돈이나 뜯어가고 (백수가 되면 돈을 많이 쓴다. 시간을 죽이려면 돈이 필요하므로) 할 일 없이 집에 앉아서 먹어대기나 하니 아무리 자식이라도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이 정도가 되면 대부분의 백수들은 신문이 오기가 무섭게 구인 광고란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원 모집 직원 채용 이런 문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챙기고 이력서를 쓴다, 자기소개서를 쓴다, 증명사진을 찍는다 호들갑을 떠는데 결과는 보통 신통치 않게 마련이다. 열에 일고여덟은 소식이 캄캄일 것이고 기껏 서류전형을 통과했답시고 연락이 와서 가 보면 광고를 보고 기대했던 회사와는 생판 다른 황당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TV에서 보았던 근사한 사무실 풍경은 한낱 꿈이었으며 준다는 봉급도 상상을 초월하고 하라는 일도 도무지 아니올시다인 것이다. 요즘처럼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는 세상에서 쓸만한 직장을 잡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졸업하기 전에 이른바 대기업에 취직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거나 전공 과목이 취직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면 일반 회사를 직장으로 삼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도 한번 직장을 잡아보겠다면 이렇게 하라. 괜찮은 회사는 신문에 광고를 낼 때 반드시 회사 이름을 분명하게 밝힌다. 비싼 돈 주고 광고를  내는데 왜 자기 PR할 기회를 놓치겠는가? 또 뽑아야 할 부서와 내용을 아주 구체적이고도 자세하게 명시한다. 백수들은 이 나라에 모두 대기업만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생판 처음 들어보는 중소기업이 훨씬  더 많고, 규모는 작지만 대기업보다 짭짤한 회사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원치 않은 회사일수록 무슨 그룹이네 인력관리본부네 해서 좀처럼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길바닥의 전신주나 담벼락에 붙인 여직원 급구. 월수 200 보장 선불됨. 숙식 가능을 큼지막하게 써놓은 광고지처럼,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어디에도 밝히지 않고 그저 좋은 회사에서 월급 많이 줄 테니까 한 번 와 보라는 투이다. 이런 회사의 경우 합격 통보를 받고 찾아가 보면 십중팔구는 물건을 팔아오라는 주문을 한다. 3개월의 영업 실습 후 관리부서에 배치된다는 좀 점잖은 사기도 있고 피라미드 판매조직처럼 말도 안되는 논리로 허황된 꿈을 주는 곳도 허다하다. 이들의 감언이설은 상상을 불허한다.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몇 분만 듣고 있어도 정말 그들 말대로 될 것 같고 잘 하면 때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TV에  더러 보도되는 취업 사기의 상당수가 이런 수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고의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회사 이름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곳은 일단 무시하는 것이 좋다. 특히  광고료가 싸서 유령회사들이 애용하는 스포츠 신문의 광고는 아예 안 보는 것이 이롭고 조선이나 동아 같은 신문의 광고도 유심히 살펴 뜯어보고 잘 판단해서 이력서를 보내는 것이 요령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깔끔하게 써서 보내는 것이 기본인데(요즘에는 워드프로세서로 많이들 한다. 가능하다면 남의 것 빌려서라도 출력해 보낼 것) 증명사진은 반드시 사진관에 가서 찍는다. 지하철역 매표소 근처에 있는 자동 사진현상기로는 절대 찍지 말 것. 당신의 얼굴이 시체가 되어서 나온다. 참고로 덧붙이면, 이 나라 대부분의 회사가 펄펄 끓는 여름이나 엄동설한에는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백수 노릇을 면하겠다고 돈 몇 푼에 죽기보다도 하기 싫은 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까짓 것 잠깐인데 어때 하면서 서비스업(?)에 종사할 생각은 절대 삼갈 것. 잘못하다가는 일찌감치 사회에 대한 좌절감만 맛보고 증오심만 키우거나 심하면 인생 막 내리는 수가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취직한 선배 쫓아다니면서 어떻게 좀 해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3. 말 없는 여자가 아름답다

여기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이 둘이 서로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상관은 없다. 하여간 있는데, 만약에 이 둘 사아에 언쟁이 벌어지면 누가 이길까? 여자가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언쟁은 그야말로 말싸움이므로, 상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언어 능력에서 남자보다 뛰어나다고 입증된 여자가 이긴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기긴 이기는데 그녀의 눈자위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맞았을 테니까. 여자는 정말 남자보다 선천적으로 말이 많은가? 내 짐작으로는 여자가 애초에 남자보다 말이 많은 족속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자들이야 해지기 전에는 담배를 피고 해 진 후에는 술집에서 들입다 퍼마시는 걸로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디 나가는 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러지는 못하고, 그저 돈 안 드는 수다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남자들 눈에는 여자가 말이 많은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그러나 말이 많기로는 남자들도 뒤지지 않는다. 술집에 가보면 안다. 술 마시며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남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뭐가 그렇게 사연이 구구한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그도 모자라면 싸움까지 하고 집에 가 다시 죄 없는 마누라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보면 여자들의 수다는 오히려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말이 많다는 것은 곧 생각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말수가 적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실존에 충실하다는 것과 같다. 쓸데없는 생각은 망상을 낳지만 유익한 사색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보고가 된다. 수다를 떠는 여자들 옆에 앉아 가만이 들어보면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얘기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 아무개가 중앙병원에서 낙태수술 받았다는 거 너 아니? 산부인과에서 수술받고 소문날까봐 외과 병동에 누워 있었대. 어머나! 그게  정말이야? 야, 그 뚱땡이를 누가 건드렸냐. 애비가 누군지는 모르고? 낸들 아니. 아, 그나저나 누가 저녁이나  근사하게 사줬으면 좋겠다. 그럼 이쁘다고 뽀뽀 한 번 해줄 텐테 말이야. 얘는. 누가 너한테 저녁을 사! 물론 우리가 맨날 심각한 대화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날마다 이런 노가리를 풀어서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노가리를 풀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나는 바보야!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지! 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고 다름 없다. 사람들이 수다쟁이를 싫어하는 까닭은 그 말이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공허한 대화는 말이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4. 신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신문을 어떻게 보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냥 주르르 훑어보면 될 것 아니야? 맞는 말이다. 신문 보는데 무슨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대문간에 떨어져있으면 가져다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요즘 신문들을 보자. 이게 신문인지 주간지인지 아니면 큼직한 잡지인지 모를 정도로 두껍다. 보통 32면에 일주일에 한두번쯤은 간지가 껴서 들어온다. 대충 제목만 읽는다고 해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기사보다 광고가 더 많아서 좀 짜증이 나기는 하지만 남는 게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두툼한 신문이 킬링 타임용으로는 쓸만하다. 그러나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신문을 통째로 보지 않는다. 신문도 백과사전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처럼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된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는 (한겨레신문)을 비롯해 대부분 비슷한 편집 체제를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니 (동아일보)니 하는 그 신문의 이름이 박힌 면이 1면이고 차례로 넘기면 2면, 3면이 이어진다. 1면은 종합면이다. 신문이 나오기 직전까지의 기사  중 아주 중요한 것은 대게 이 1면에 실리므로 시간이 없는 사람은 거리 가판대에서 돈 안 내고 훤히 보이는 1면만 슬쩍 훑어도 중요한 뉴스는 다 본 셈이다. 예를 들면, 김일성 주석 서거라거나 LA 대지진 또는 성수대교 폭싹~ 뭐 이런 것들이다. 이런 톱 뉴스 몇 건만 챙겨도 어디 가서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는 안 하게 된다. 1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정치,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사회면 등으로 갈라져 순서에 따라 배치되는데 (중앙일보)가 신문을 섹션화시키면서 이런 룰도 깨지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야 필요한 부분을 찾아보기 편하다는 점에서 섹션신문의 등장이 반갑기는 하나 이의 부작용으로 흥미 없는 기사는 아예 보지 않게 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독자들은 골치 아픈 정치나, 경제, 국제 뉴스는 펴볼 생각도 않고 바로 연예 오락 섹션만 골라 펴든다는 얘기다. 그 나머지래야 금주의 TV 하이라이트 정도가 고작이고. 여자들이 아직도 남자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취약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사 상식이다. 모든 여자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여자들은 차인표 군대 간 날짜는 알아도, 혹은 무슨 드라마가 어느 채널에서 몇 시에 하고 누가 나오는지 줄줄이 꿰면서도 보스니아 내전이 왜 그렇게 오래 가는지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며 김영삼 대통령이 왜 정책 부재로 헤매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한 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제대로 모르고 산다는 얘기인데 그러고서야 어찌 남들과 꿇리지 않고 대화를 할 것인가. 옆길로 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외국에서 몇 년을 공부하고 돌아와도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한다. 왜 그려냐니까, 아 이게 강의만 끝나면 한국 유학생들이 우루루 저희들기리 몰려다니며 한국말로 낄낄거리니 언제 말을 배우겠느냐는 것이다. 언어라는 게 처음에는 그 나라 사람들하고 손짓 발짓 해가며 몸으로 부딪혀야 가장 빨리 배우는 법인데 틈만 나면 한국 사람들만 찾아서 한국말로 지껄이니 될 턱이 없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보면 여자들은 대기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점심 먹고 볼링 치고 커피 마시고 그러는데 남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썩 보기 좋은 풍경이 못된다. 이런 행동은 여자 자신을 스스로 한정시킬 뿐만 아니라 화제의 빈곤에 빠지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직원이 아닌 다만 여직원으로 축소시킬 뿐이다. 회식 자리에 가서도 그렇다. 여자 직원들은 끼리끼리 몰려 앉아 안주에 밥만 먹고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남자 직원들의 입만 멀뚱멀뚱 다보다가 아, 지겨워! 어서 끝나고 집에 갔으면~ 하는 게 보통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남자들의 화제는 보통 정치나 경제 문제가 주를 이룬다. 좀 고상한 사람들은 문화를 화제로 삼기도 하지만 그런 인간의 10%미만이고 대체로 시사 문제가 주가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전문가인 양한다.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가 내놓은 분석이 맞는다고 난리를 친다. 여자들은 보통 그 거품과 난리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시사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렇게 보자. 정치, 경제, 국제, 사회면은 최소한 제목이라도 훑어라. 칼럼과 사설은 꼭 읽고 문화면은 꼼꼼히 보자. 여자들이 시사에 어둡다면 남자들은 문화에 어둡다. 점심 시간에, 회식 자리에서 괜히  빙빙 돌지 말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해 한 마디 거든다면 직원들은 당신을 다시 볼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사회다. 쓸만한 정보를 챙기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신문을 잘 보는 것, 그것은  세상 속에 내가 있고 내가 그 안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작업이다.




5. 시간 도둑을 아십니까?



여보세요! 아, 명희니? 응. 순자구나? 웬일이니? 아니, 뭐 그냥 했어. 너 저녁에 시간 있니? 시간? 시간이야 있지. 아직 별 약속은 없어. 그럼 말이야, 우리 만나서 저녁이나 먹자. 니가 사는 거야? 엊그제두 내가 샀는데 또 내가 사? 야! 일 없이 만나서 저녁 먹어주고 니 얘기 들어주는데, 그럼 내가 사니? 엊그제 난 또 니가 무슨중요한 얘기라도 하는줄 알고 야근 있는 것도 핑계대고 빠져나갔었던 거야. 그랬다가 어제 부장한테 깨진 거 너 알기나 알아? 오늘은 또 무슨 얘기니? 어머, 얘 봐! 사람이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나니? 친구라는 게 뭐야. 심심하면 만나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거지, 니가 무슨 내 거래처냐, 일이 있어야 만나게? 어떻게 보면 별 시덥지 않은 대화처럼 들리지만 이런 경우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그냥 만나자고 하면 자신에게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면, 혹 일이 있더라도 덩달아 그냥 만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일 없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퇴근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아니면 퇴근은 했는데 터덜터덜 집에 가기는 싫고 어디 껀수도 잡히지 않으면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야, 뭐 하나? 뭐 하긴 뭐 하냐? 전화 받지. 마음이 약한 사람은 일이 있는데도 심심한 친구의 시간을 같이 죽여 주기 위해 약속 장소로 나간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고, 여자들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아이 쇼핑만 잔뜩 하고 저녁 먹으며 실컷 수다나 떨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나도 심심하던 참에 심심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면야 얼마든지 어울려 줄 수 있다. 하지만 한참 일하는 중인데 괜히 전화를 걸어서 주절주절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늘어놓거나 얼굴이나 보자고 졸라대면 듣는 사람은 리듬이 깨져서 일하는데 김이 새고 만다. 게다가 만나자는 말에 차마 거절을 못해 내키지도 않는 약속을 해야 한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시간 도둑이 많다. 선배나 후배 그리고 동창, 하다못해 사촌동생까지가 그 범인이다. 쓸데없이 찾아와서 술 사라, 밥 사라, 레옹이 죽인다는데 영화보러 가자~ 하며 시간 뺏고 돈 뺏고 스트레스 쌓이게 만드는 것이다. 성질이 모진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시간 도둑들은 아주 교묘하게 상대방을 뜯어먹는다. 물론 당사자 모두 자신이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는지 또는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이제까지 몰랐다면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라.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시간 도둑을 퇴치하자. 야! 바쁘면 뭐 너만 바쁘냐? 거 그렇게 피곤하게 살지  말고 좀 헐렁하게 살아. 나 지금 그리루 간다 잉. 이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시간 도둑들 중에 당신도 끼어 있을지 모른다.




6. 일기는 뭐 하러 쓰나~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 아직 20대의 나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서른만 넘어도 이게 실감이 날 것이다. 10대 시절에는 어서 나이 좀 먹었으면 하고 바라다가 20대가 되고 어~ 하다 보면 금방 나이 30을 코앞에 두는 것이다. 노처녀가 되는 것도 직장 생활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겪는 불상사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이래저래 후회가 늘어난다. 지난  시절은 모두 어영부영 까먹고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앞으로 닥쳐올 미래도 역시 그런 식으로 지나가게 될 것 같은 불안에 빠지기 십상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록에 소홀하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쳐 자기 기록에 소홀하다 보니 자신은  물론이고 후세 사람들도 지난 흔적을 찾아보려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사실과 현상을 재음미한다는 뜻에서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기를 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일기요? 학교 다닐 때는 잠깐 써 봤지만 지금이야 뭐, 쓸 게 있나요.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그날이 그날인데다 사실은 귀찮기도 하고요. 일기를 쓰느냐고 물으면 건너오는 대답이 다 이렇다. 특별히 남길 이야기가 없어서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가시니까 안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도리가 없기는 한데 이런 사람들도 지난 세월의 반추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딱하다. 일단 쓰자. 시작이 반이다. 우선 노트를 하나 사서 매일매일 꾸준히 써나가되 정 쓸 말이 없거든 하다못해 오늘 영숙이에게 3만원을 꿔줬음이 한 줄이라도 써라. 일기에 들어가는 내용에 대해서 누가 시비거는 일은 없다. 일기를 장부처럼 쓴다고 해서 이게 법에 걸릴 것도 아니니까 다음 날 영숙이에게 3만원 받았음이라고 써도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버르장머리를 길러 놓으면 귀찮아서 안 쓰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쓸 게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당신은 허구한 날 만족하며 사는가?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은 아니요다. 아무리 의식이 없는 사람도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며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런 얘기들, 즉 남에게 할  수 없는 얘기,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 꼭 남겨뒀으면 하는 생각,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좋아서 환장하고 싶을 때, 이런 모든 것들을 주절주절 노트에 늘어놓으라. 그것이 일기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이것들을 읽어보면 당신 스스로도 놀랄 것이다. 아니, 내가 이런 생각들 다 했던가? 정말 기가 막히는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 제목처럼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라도 일기를 쓰자. 오늘 일을 생각하면 어제가 부끄럽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 삶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이고 이런 나날이 자꾸 쌓이다 보면 적어도 지난 세월 내가 정말 헛살았구나 하는 기분은 안 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일기를 쓰다 보면 덤으로 사고에 논리가  서게 되고 문장력이 늘어난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일기를 쓴 덕분이다.




7. 말버릇을 고쳐라

이른바 신세대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말버릇이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개판이니까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성세대의 귀로 듣자면 실로 가관이다. 저는요, 화양리에 살구요. 직업은 출판사 직원이에요. 취미는 볼링인 거 같구요. 술은 뭐, 레몬소주 조금 마셔요. 아빠요? 사업하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언뜻 듣기에는 이 말에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늘 이렇게 쓰니까. 위 예문을 보면 말끝마다 요가 들어간다. 이 요라는 조사는 서울 사투리다. 사전에서 보면 설명어의 어미에 붙어 존칭이나 주의를 끌게 하는 특수조사로 나와  있다. 그러나 존칭 또는 주의를 끌려고 요자를 말끝마다 붙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습관적으로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는 것이다. 양식있는 사람이 듣기에 이 요요 소리는 짜증나는 말투다. 위의 예문을 바꿔 써 보자. 저는 화양리에 삽니다. 직업은 출판사 직원이지요. 취미는 볼링이고 술은 적당히 마시는 편이에요. 아버님은 소규모 자영업을 하십니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쓴 문장을 좀 어렵게 설명하면 문어체와 구어체를 섞어 썼다고 말한다. 쓸 때도 그렇고 말할 때도 이렇게 해야 제대로 말하는 것이다. 했습니다와 했어요을 적당히 섞어 쓰면 한결 듣기 좋고 예의 바른 말투가 된다.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이랬어요 저랬어요라고 하지 않는다. 또 하나. 뭐뭐 같아요라는 표현의 남용이다. 취미는 볼링인 것 같아요. 볼링이면 볼링이지 같아요는 무슨 소리인가? 볼링이 취미는 취미인데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말인가. 이 같다라는 말은 무엇을 닮았다거나 좋아한다, 또는 불확실하지만 그럴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이다. 이 ~같다라는 표현이 처음 나타난 것은 3공화국 말기로서, 언론 통제가 심해 무슨 사안이든 직설적인 전달을 피하던 시절에 일종의 변칙적인 표현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라 한다. 박정희는 죽일 놈이다라고 말하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불구자가 되도록 맞겠지만 박정희는 죽일 놈인 것 같다라고 말하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언론 자유가 풀린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이런 표현 습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첨단 문명 속에 살면서도 무엇 하나 확실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현상 역시 우리들에게 내 취미는 볼링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한 이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말을 지껄이고 돌아다닐 이유는 없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밥 먹은 것 같아요~ 이따위 소리는 집어치우자. 이외에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쌔고쌨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 두 가지만 얘기하자면, 수고하세요~ 식사하세요~다. 수고하라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힘든 일이지만 애쓰라는 말이므로 절대로 나이 드신 어른에게 써서는 안될 말이고, 제깐에는 좀 고상하게 한답시고 쓰는지도 몰라도 식사하세요는 적당한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침 드세요나 점심 드세요가 훨씬 다정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밥 먹는 게 무슨 일인가?



8. 친구냐, 그저 아는 사람이냐

미안하지만 이건 내 얘기다. 여러분들도 이런 뼈아픈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고 나서 TV를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좀 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처 조문 한 마디도 못하고 그래, 알았다. 내 갈게~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짜식의 고향은 충청북도 증평이었고, 솔직히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 거기까지 내려갈려니 좀 귀찮았다. 나는 결국 미적거리다가 에이, 내일 가지 뭐! 하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짜식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친구 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멀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우리는 대학 신문사 후배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짜식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도 입을  열지 못했고 그도 나와는 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 자리가 2차였던가, 3차였던가 하여간 어지간히 퍼마신 후에 나는 술이 취했다는 것을 빌미로 그에게 다가가 그 때 내가 가지 않았던 것을 사과했다. 짜식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밤새도록 너를 기다렸다고. 그런데 오마던 너는 오지를 않았다고. 나는 얼마나 미안했던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내 죄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그는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골짜기가 생긴 후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이무영과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친구였으며 언제나 겸손하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같잖은 재주를 인정해 주던 친구를. 지금도 그 친구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들이 흔히 얘기하는 친구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그저 가끔 만나서 시간이나 죽이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무슨 얘기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당신은 혹시 진정한 친구를 그저 아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만나고 아쉬운 소리나 해대는 대상자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한 부분을 망치는 것과 같다. 친구는 부모나 형제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며 때로는 나 대신 피박을 맞아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친구를 제대로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심심하면 돈이나 꾸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인격을 모독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만나서 자기 얘기만 떠들어댈 때 당신의 친구는 당신을 그저 아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살벌해지면서 사람다운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친구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여자들 사이에는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우정이 꼭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해결은 당신 몫이다.



9. 똑똑한 여자 대 현명한 여자

당신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남 칭찬에 인색하기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남 똑똑한 꼴도 못 본다. 지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꼴을 떨어요 꼴을. 그래 그래. 너 잘 났다 잘 났어! 누가 좀 나서서 한 마디 아는 얘기 좀 했다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막고 이렇게 씹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아유, 고놈 참 똑똑하기도 하지! 라는 립 서비스성 칭찬뿐, 아이들이 암만 방방 떠봐야 바보 어른에게라도 적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똑똑하다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생긴 모양이 똘똘하다거나 보기에 영리하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clever, wise, bright 등의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똑똑하다는 말에는 아는 것은 많지만 깊이가 없다거나 교활하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고, 우리가 실제 쓰는 경우에도 진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내뱉기보다는 비아냥거리거나  웃기지 말라는 뉘앙스로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말의 어의가 이렇게 바뀐 배경에는 공자님의  영향이 크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은 결례이고 현명한 자는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이유이다. 이런 해석 말고도, 똑똑하다는 말은 똑똑한 척 한다는 질책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똑똑하지도  않은 자식이 똑똑한 척 나설 때 그 인간을 만장하신 가운데 똑똑하다고 선언해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화법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간에  (자신이 정말로 똑똑하더라도)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거나 똑똑한 척해서는 별로 득될 게 없다. 역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이른바 똑똑한 여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얼마나 칼 같은지 기가 막힐 정도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직 똑똑한 여자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여자가 나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가 여전히 판치는 마당에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다가 좌절에 빠진 여자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똑똑한 여자가 되기보다는 현명한 여자가 되도록 하라. 똑똑한 여자보다는 현명한 여자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 현명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뜻한다. 경망스럽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알되 때가 오면 놓치지 않는 사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과시하지 않아도 남들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듯이 사회생활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똑바로 가기 어렵거든 돌아서 가라. 아직은 돌아서 가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다.




10. 프로가 되려면 혼자 살아라

글을 써서 밥을 먹다보니 내 주변에는 출판이나 잡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이너도 있고 사진장이들도 있는데 여자들의 경우 아직도 많은 수가 시집을 가게 되면 기껏 해왔던 일들이 말짱 꽝이 된 채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이다. 요즘 신세대 남자들이야 제 여편네 직장 못 내보내서 안달이라지만 30쯤 넘은 남자만 돼도 대부분 여자란 시집 오면 집에서 살림하고 애나 기르며 밤에는 창녀처럼 남편을 죽여주는 일만 해야 함이라고 못을 박아 아내를 기절시킨다. 이런 남자를 만나면 일찌감치 인생 포기하고 신사임당 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왜? 투쟁한다고 맞서봐야 터지고 깨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찢어지는(이혼) 불상사도 감내해야 하니까. 애 뺏기고 이혼 당한 채 제 인생 제 갈 길로 가겠다고 나서봐야 이미 때를 놓친 뒤다. 그러므로 한 사회인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인생을 찾아가려면 혼자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낫다. 괜히 짱구를  굴린다고 나중에도 사회활동을 보장하마는 남자의 약속만 믿고 결혼했다가는 이게 아닌데 하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남자란 하나같이 똑같아서 아내가 돈 벌어오는 맛에 직장에 내보내지만 그러면서도 저녁에는 제 시간에 칼같이 들어와 맛있는 찌개 끓여놓고 다소곳이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내가 야근한다, 회식이다 해서 좀 늦게 들어오면 짜증을 내고 트집을 잡아 난리를 치는 것이다. 아무리 성인군자하고 살아도 사람이 어디 맨날 봄날일 수야 있겠는가. 더러는 괜히 마누라가 밉살스러워서 이유 없이 시비를 걸기도 한다. 고로 피해자는 여성일 수밖에 없다. 심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부인이 간호사인 한 남자는 아내가 밤근무가 걸린 날엔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처음에는 술을 퍼마시고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포커에 손을 대 월급 날리고 빚까지 걸머지게 되었다나. 좀 잘 살아보겠다고 한 맞벌이가 도로아미타불이 된 경우이다. 상상해 보라. 당신은 밖에서 성취감에 희열을 느끼며 일에 미쳐 있을 때 서방이라는 작자가 술 퍼마시고 다니며 노름이나 한다면 한편으로는 돌아버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재삼 말하는데 결혼보다 일이 좋고 자기 분야에서 끝장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예 결혼할 꿈도 꾸지 말 일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간 모두 놓친다. 한 마리만 확실히 잡아라. 아이 낳고 서방님과 오손도손 사는 게 좋다면 꿈이고 뭐고 다 버린 채 살림에만 매달리고, 내가 미쳤냐. 내가 애 낳고 살림하려고 세상에 나왔냐. 그러느니 차라리 자살을 하고 말지 하는 사람이라면 남자 보기를 돌처럼 하고 일에 미쳐라.



11. 남자가 친구로 남을 수 없는 이유

적지 않은 여자들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는 친구가 되는데 남자와 여자 이 둘은 왜 친구가 안된다는 걸까? 하는 의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성끼리는 친구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가? 미안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 남과 여라는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이 유명한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빨리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빌려 봐라.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견될 만한 명작이다. 이 영화에는 과부와 홀아비가 나온다. 아이들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도 과거 즉 자살한 아내와 영화 촬영 도중 폭사한 남편에 대한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갈등하다가 나중에는 이를 극복하고 결합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의 갈등(저 인간이 좋기는 하지만 과거의 아내 또는 남편에 대한 기억이 그것을 방해한다)의 실체가 성이 다르다는 데 있다고 봤다. 만약 두 과부가 영화의 주인공이었다거나 두 홀아비가 나왔다면 얘기는 아주 쉽게 풀어진다. 사랑할 필요 없이 그저 꾸역꾸역 만나 아이들 얘기나 하면서 친구가 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둘은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생식기가 다르다. 물론 두 과부나 홀아비가 동성연애자라면  얘기가 왕창 달라지고 복잡해 지지만 이런  경우는 아직 반사회적이니 그만두고  하여간 남과 여니까 영화스토리가 재미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의 우정과 사랑은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 한쪽이 성철 스님처럼 도를 통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정에는 섹스가 없다. 하지만 사랑에는 섹스가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다. 나를 좋아했던 여자와 만났는데 어딜 갔다 오다가 헤어질 무렵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는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던 참이었다. 그 때 그녀가 내게 뭐라고 했는 줄 아는가? 당신이 남자만 아니었으면 같이 자면서 밤새 얘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헤어지기가 아쉬워 내게 한 이 한 마디는 정말 명언이었다. 동성이었다면 섹스에 대한 부담 없이 같이  밤을 보내고 싶다는 그녀의 이 말에 모든 답이 들어있다. 내가 만약 그녀의 여자 친구였다면 이런 말은 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친구와 밤을 새며 얘기를 나눈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한 이불 속에서 미주알고주알 속삭이며 낄낄거리다가 새벽녘에야 잠에 빠져든 기억은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갖고 있다. 하지만 남자 친구와  밤새 이랬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쳤냐, 남자랑 한 이불 덮고 밤을 새게! 이럴 사람이 더 많지. 그러니까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물론 이 말에도 반박의 여지는 있다. 왜 우정에 섹스를 개입시키는가. 우정과 섹스는 별개의 문제이다. 당신, 섹스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야?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둘 다 섹스에 초연해질 수 있다면  이성간에도 우정은 있다. 또 우정을 가진 친구면서 섹스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럴 자신이 있다는 건가? 나는 저 남자와 친구야. 우린 가끔 여관에도 가지. 누구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그 남자와 곧 결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말만 잘하면 한 번 할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이런 오해와 편견을 극복해내야만 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섹스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비극이다. 정말 괜찮은 남자, 아는 것도 많고 남의 말도 잘 들어주며 아버지 같은 남자라서 한 번쯤 같이 밤새워 얘기라도 나눴으면 좋겠는데, 제기랄 그러다가  별안간 내 끝내주는 몸매에 이성을 잃고 날  덮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  때도 저 남자가 괜찮아 보일까? 나는 그만큼 진보주의자인가? 아직도 세상은 순결 타령인데, 남자가 친구로 삼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가 설사 팬티를 내려도 상관없을까? 그러다가 그가 결혼을 하자고 하면 마음은 없지만 그냥 해버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12. 라면이나마 확실하게 끓이자

내가 학교 다닐 때 일이다 모임에서 등산을 갔는데 현지에 가서 조를 짜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조에 낀 여자들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외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찌개를 해 먹으라고 준 고기를 한동안 내려보더니 코펠에다 물을 한사발을 떠와서는 거기에다 덥석 고추장을 풀고 버너앞에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속수무책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조에서는 벌써 얼큰한 냄새를 풍기며 식욕을 자극하고 있는데 우리 조는 멀뚱멀뚱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지금이라면 내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맛있는  찌개를 끓여냈겠지만 그때만 해도 난 그들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었다. 나는 결국 숟가락을 들고 다른 조로 끼여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하자. 나와 모 출판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한 여자 동료는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시집을 갔다. 아와는 참 친해서 둘이 술을 마실 때면 별별 소리를 다 했는데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남편은 아침에 출근할 때 밥을 차려주면 먹지도 않고 그냥 가요. 왜 그냥 가냐고 물었더니 맛이 없어 그런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웃었다. 세상에, 얼마나 맛대가리가 없으면 애써 차려준 밥상도 마다하고 공복으로 출근을 할까. 그 후 회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서로 소식이 끊겨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아침은 굶고 저녁은 사 먹고 집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얘기는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시집을 가든 혼자 살든 사람은 먹어야 산다. 물론 누가 평생 옆에서 삼시 세 끼 꼬박꼬박 차려주는 사람이 있다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적어도 제가 먹을 밥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허구한 날 사 먹는 게 좋은 사람은 돈을 그만큼 더 벌어야 하겠지만, 위암으로 죽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밥을 사 먹은 사람이 많대나 어쨌대나.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도 그 중의 하나였지. 음식 만들기를 가르쳐줄 사람은 누가 뭐래도 엄마 이상 가는 사람이 없다. 이 책을 볼 만한 자식을 가진 엄마라면 소주를 두 병정도 마셔도 저녁 밥상을 근사하게 차려낼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조리법의 노하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나도 얼마 전까지 우리 노인네의 음식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던 사람이다. 지금이야 연로하셔서 반찬이 자꾸 짜지는 경향이 있어 마누라가 해주는 것만 먹지만, 잠깐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가득한 밥상을 들여오는 엄마의 솜씨는 거의 입신의 경지였다면 과장일까? 시집 가기 전에, 아니 독립해서 가출(?)하기 전까지 당신 엄마의 음식 솜씨를 10%만이라도 배워라. 음식 솜씨가 좋은 여자는 누구에게도 어디엘 가더라도 환영받는다.



13. 남자는 왜 바람을 피나

끔찍하게 더웠던 지난 여름, 나시 배꼽티에 마이크로 미니 스커트를 입고 지나가는 여자를 쳐다보며 운전하다 차가 인도로 올라가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는 남자가 있었단다. 소나기가 내리던 날, 비를 쫄딱 맞고 언덕길을 올라오는 여자를 쳐다보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가 고개를 돌리지 않는 바람에(여자가 노브라였다지?) 전봇대에 부딪혀 잠시 기절했다는 놈도 있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워가 볼 게 있다고 남자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까. 하지만 남자들은 다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든 남자들은 더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싶어한다. 남자들은 내 떡이 있어도 남의 떡을 먹고 싶어하고 내 떡이 없으면 모든 떡을 다 내 떡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거 자꾸 떡, 떡해서 미안하다. 내가 여자를 무슨 음식으로 여기는 건 아니니 오해없기 바란다. 좌우지간,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이렇게 타고 났으니 비극이다. 애인과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지나가면 침을 질질 흘리며 모가지가 비뚤어지도록 돌아보는 것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는 까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  만나는 여자에게서, 아니면 데리고 사는 마누라에게서 전혀 신선함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거고 또 다른 경우는 본의 아니게 여자가 생겼고 정이 드는 바람에 한눈을 파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여자들을 임신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도 섹스가 가능하다. 함께 사는 마누라야 뭐 말할 것도 없지만 결혼 전에도 여자를 오래 만나다 보면 좀 지겨워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숭도 떨고 옷도 신경써서 입고 나오던 여자가 시간이 지나 서로에 대해  좀 알게 되었다 싶고 더러 키스도 하는 사이가 되면 슬슬 야쟈를 튼다.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중간에 입 한번 안 닦고 전에는 못 먹는다던 곱창이며 간천엽을 척척 먹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트림을 해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림 얘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난 조크가 있어 잠깐 옆길로 빠진다. 남자들에게 3대 재수 없는 여자가 있다. 뭐냐하면 첫째가  키스하다 트림하는 여자고 둘째는 젖꼭지가 짭짭한 여자, 셋째는 남자가 한참 운동을 하는데 밑에서 방귀 뀌는 여자다. 웃자고 누가 지어낸 얘기지만 실제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넘하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남자들은 순진하게도 여자가 항상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마누라  행세를 하려고 들면서 패션이나 자세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만큼  친한 사이가 됐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겠지만 남자는 이때즘 아, 내가 얘하고 너무 오래 놀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연애는 오래 하면 깨진다는 것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는 이유가 여자에게 있다고 하면 악을 쓸 여성분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차도 관리를 잘 해야 오래 타는 법이고  남자도 관리를 잘 해야 딴청을 못 부리는 법이다.



14. 연애, 오래하면 깨진다

연애를 오래 하면 깨질 확률이 많다고 하면 여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는 고사하고 도리어 오래 교제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서로를 파악할 시간이 많은게 좋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만난 지 얼마 안되어 너 아니면 난 못산다고 방방 뜨다가 이내 찢어지는 것보다야 신중하게 서로를 살펴보고 아, 저 인간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건 해롭지 않다. 하지만 그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처음에는 서로 믿음이 생긴다. 둘이 연인  사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기정 사실이 되어 아무도 그 틈에 끼여들지 않는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새로운 유혹은 사라지고 쌍방은 묵시적으로 결혼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이 때, 문제는 남자에게서 비롯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남자라는 인간은 조금만 한눈을 팔면 다른 데 정신을 쏟는다. 열 여자마다 하는 사내 없다고 조금만 틈이 생기면 껀수를 찾아 다니는데 이를 여자가 눈치채면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슬슬 보채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키스를 허락하는 것만으로 넘어가더니 점점 더 진한 걸 요구하고 마침내는 여관 앞에서 개기는 것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야. 이 장면에서 남자들은 특유의 늑대 근성을 발휘한다. 여자가 거절하면 일부러 삐진 척하며 잽싸게  집으로 가버린다. 그럼 십중팔구의 여자들은 전전긍긍하게 마련이다. 이러다가 찢어지는 거 아니야? 하면서 말이다. 이 고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두 가지 대응방법을 상정할 수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든 결과는 비슷하다. 하나는 여자가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결혼할 사인데 미리 연습좀 해두지 뭐! 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안 돼! 도저히 그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어~ 하는 두 경우다. 먼저 에라 모르겠다의 경우를 보자. 섹스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 남자나 여자나 서로 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결혼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들어 이제는 어떤 기대감도 들지 않고 남는 것은 오직 피임과 혼인 날짜 분이다. 남자가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되는 단계가 여기다. 말하자면 볼장 다 봐서 이제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흔히 말하는 신비감도 사라지고 다만 남은 것은 얘가 열 받으면 엄청나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아니면 얘가 너무 밝히는 거 아니야? 하는 뭐 그런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못된 녀석들은 새로운 여자를  찾기 마련이다. 다른 여자와 이것저것 비교를 하면서. 두 번째, 신혼여행 가기 전에 거기까지는 죽어도 안돼~ 하는 경우, 괜찮은 남자는 웃으며 포기하지만 나쁜 놈은 그걸 빌미로 우물쭈물 뒷걸음질을 친다. 더블 데이트를 하며 여자를 열 받게 만들어서 기어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다가 그것도 수포로 돌아가면 이젠 만나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여자도 너만 자존심 있냐. 안봐도 그만이야~ 하고 같이 튕기면 장난이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도 여자들은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니, 남자 그거밖에 모르나요? 미안하지만 그렇다. 남자들은 모든 여자들을 홀랑 벗겨놓고 본다(할머니만 빼놓고).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고 남자들은 거의 하루종일 섹스를 생각한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므로 애인이 생기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것이다. 따라서 연애를 오래 한다는 것은 남자에게 육체적 욕구를 증폭시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물론 남자의 자제력이나 인간성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이 늦어진다면 때때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져 남자의 성적 욕구나 지루함을 예방하라. 아니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결혼을 앞당기자. 그것만이 당신의 연인을 놓치지 않는 길이다. 괜히 남자가 원한다고 하자는 대로 다 하다가 재수 없으면 미혼모가 될지도 모르잖나.



15. TV 드라마를 죽여라

단칸방에서 집사람과 아이 둘 그리고 나까지 복닥거리며 살다보니 싫어도 TV를 자주 보게 된다. 이 서울 바닥에서 어디 갈 곳도 없는 내 불쌍한 자식들이 브라운관에 매달려 있는 걸 탓하지도 못하고, 만화영화에서부터<열려라 웃음천국>이니 <슈퍼 선데이>니 하는 프로도, 마누라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억지로 볼 수 밖에 없다. TV 시청을 즐겨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당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오디오 세대다. 어려서 줄곧 라디오를 듣고 자라던 내가 TV를 처음 본 것은 예닐곱 살 때쯤인데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집에 저녁마다 놀러가 빅 모로와 릭 제이슨이 나오는 <전투>도 보고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명랑백화점>도 본 기억이 난다. 특히 <전투>는 어린 나를 사로잡은 프로그램이어서 일주일 내내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손더스 중사가 쏘는 자동소총에 독일군들이 맞아 죽는 걸 보고서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TV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지금 애들이야 태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보니까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겠지만, 라디오나 듣던  게 고작이던 대가 사람들이 움직이고 소리가 나오는  조그만 박스를 보았을 때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우리집에 처음 TV가 들어오던 날은  내인생에 있어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될 정도다. 그런 내가 TV 드라마를 죽이라는 썰렁한 소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게 궁금할 것이다.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TV를 부숴라 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드라마만 죽이자는 것이다. TV중독자들에게 그걸 부수라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일 것 같고 또 뉴스도 봐야 하니까 내가 평소에 원한이 많앗던 드라마만 두들겨 패보자 이거다. 얼마전에 신문을 보니 TV 방송 3사에서 내보내고 있는 드라마가 60여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송국 한 군데서 평균 20종류의 드라마를 일주일 동안 쏟아내고 있다는 얘기다. 아침 드라마를 필두로 해서 일일연속극,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미니시리즈, 특집 드라마, 베스트극장, 테마 게임 등 갖가지 이름의 드라마가 주로 여성 시청자들을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드라마에 대해 유감이 많은 까닭은 그 내용이 올바른 여성상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시청률 점유에 급급한 나머지 정신병자나 다름없는 인물 설정에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는 좀 어렵게 말하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황당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이 시대의 여성들은 열 받는다고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와이셔츠를 발기발기 찢고, 살림을 부수고, 친구의 남편과 연애를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괴롭히며 그걸 즐기는 새디스트로 그려진다. 남자들은 몽땅 밖에서 바람이나 피는 한심한 인간이거나 여자가 소리를 지르면 시장에 가 장을 봐오는 코미디언밖에 안된다.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도 그렇다. 이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완고한 대발이 아버지가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고 했는데 그건 내가 보기에 작가 김수현의 트릭이었다. 대발이 아버지가 방방 뜰수록 아들은 바보가 되었고 부인은  불쌍한, 그래서 모든 여성들이 구원해 주어야 할 여자로 비쳐졌던 것이다. 지금 세상에 대발이 아버지 같이 집에서 권위를 찾아 먹을 수 있는 구세대는 남아있지 않다. 여자들이 그걸 용납하지도 않거니와 그만한 용기를 가진 남자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시대 최고의 방송작가 김수현은 이미 죽은 남자들을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걸 진정으로 원하는 여자들은 없다고 본다. 당신은 정녕 아버지가 또는 남편이 당신 엄마나 당신 말 한 마디에 꼼짝도 못하는 바보가 되기를 바란단 말인가? 당신은 조형기 같은 남자가 (물론 TV에서의 조형기를 말함이다) 당신의 아버지 또는 남편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여성상은 정상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의해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지 바보나 코미디언을 통해 얻는 그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TV는 자구 그걸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세외시키고 있다. 남자를 바보로 만들어라. 남자는 당신이 정복해야 할 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TV프로도 골라서 보자. 거 참, 보던 거 안 볼 수도 없고. 이렇게 중얼거리며 짜증나는 드라마만 볼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다큐멘터리도 좀 보고 뉴스도  꼼꼼하게 봐서 TV를 TV답게  만들자. 그러면 쓸데없는 드라마는 저절로 죽는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드라마는 죽게 마련이다.



16. 맞벌이, 누구를 위하여

딩크(DINK)족이라는 게 있다. 애 없이 수입은 두 배로를 외치는 족속이다. 영어로 하자면 Double Income No  Kids가 된다. 결혼은 하되 애가 생기면 맞벌이가 힘들고 맞벌이를 안하면 수입도 줄어드니 그냥 둘이서 신나게 벌고 쓰자는 얘기다. 사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우선 만들어야지, 배불러야지, 배부른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지, 낳으면 먹이고 입혀야지, 울면 달래야지, 학교 보내야지, 뼈골 빠지게 길러서 시집 장가 보내야지, 보내 놓고도 잘사나 걱정해야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건 둘이서 재미 좀 보며 살 만하면 애가 생겨서 거기에 매달리다가 볼장 다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애를 안 낳겠다고 악을 쓰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애가 아니고 맞벌이다. 맞벌이. 요즘 웬만한 사람들은 다 한다. 혼자 벌어선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둘이 벌어서 좀 넉넉하게 쓰고 얼른 집도 사야  하니 놀면 뭘 해,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다 한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이 맞벌이라는 게 사회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노동력 착취가 아닌가 싶다. 말이 좋아서 결혼한  유부녀의 사회 참여지 곰곰 따지고 보면 살림하는 여자에게 너 나가서 돈도 좀 벌어와라~ 한 꼴이다. 여자들은 아니, 이게 뭔 소리여~하겠지만 정말이다. 무슨 설문 조사 결과를 대지 않더라도 지금  남자들은 마누라가 돈 벌어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결혼 첫째 조건으로 삼고 있다. 남자 쪽에서야 수입이 두 배가 되니 얼마나 좋아? 거기다가 살림도 어영부영 여자가 다하지(아니 하라고 시키지). 부부싸움 할 때마다 할 말 있지(트집 잡을 게 얼마든지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가. 아니라구? 내가 번 돈 따로 통장 만들어서 보관하고 살림도 칼같이 나눠서 하면 문제 없다구? 웃기기 마쇼. 그게 잘 될거 같지. 열에 하나 정도는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아홉은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남편 좋은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다 똑같다. 좋은 건 일단 다 자기가 챙기면서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면 권위와 힘을 내세워서 여자를 윽박지른다. 슬그머니 마누라의 돈을 쓰게 만들고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당신이 짱박아 놓은 돈까지 홀랑 털어내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다. 세상에 돈 싫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것도 말만 잘 하면 얼마든지 내 돈이 될 수 있는 마누라의 돈인 것을. 그러므로 이 시대에 맞벌이를 원하거나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여자들은 이 새로운 노동력 착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노릇이다. 하기야,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고 어차피 누가 쓰던지간에 그 돈은 결국 집안을 위해 쓰는 것이니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라는 사고 방식을 가진 남자들에게 당신은 어쩌면 밤낮으로 봉사하는 새로운 정신대일 수도 있다(말이 좀 심한가?). 따라서 맞벌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할지라도 말이다.



17. 사랑은 환상이다

우리가 살면서 제일 가슴 아픈 일중의 하나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앓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않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찾아와 사람을 죽여 준다. 세상에서 가장 잇속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이 빌어먹을 사랑인데 이건 냄새도 안 나고 보이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어서 언제 어디서 중독될지 모르는 불가사의한 추상명사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사랑을 정의하기를 성욕의 고상한 표현이라고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하여간 UFO같이 봤다는 사람은 약간 맛이 간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못 본 사람은 좀 보고 싶어 애를 태우는 이 사랑이 과연 있기는 있는 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랑은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빙빙 돌리느냐구? 다 이유가 있다. 자고로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그리워서 손톱을 깨무는 날이 많다. 보고 싶어서 자꾸 전화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집 앞에 가 볼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그리워하는 상대방에 대해 당신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미지와 그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데 있다. 당신은 누가 뭐래도 그 남자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뭘 먹을 때 후루룩 쩝쩝대지도 않으며 성격도 마냥 좋기만 한 그런 사람으로 믿고 있겠지만 실제의 그 사람은 더러는 콧구멍도 후비고 발가락에 무좀약을 바르며 잇새에 고춧가루를 끼고 다니는 그런 남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연인을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그런 인물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비약시키면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빠졌을 때 현실적으로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듣기에는 좀 황당한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당신이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고 치자.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이제는 만났다 헤어지는 일 없이 한이불 덮고 살게 되어 좋기만 했는데 남편이라는 사내가 알고보니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엄청나게 좋아해 끼니 때마다 생선가시를 젓가락으로 파고 있고 잠자리에서는 또 코를 얼마나 고는지 돌아버릴 지경이라면, 어디 가서  당신이 그리워하던 그 남자를  찾을 것인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역설이 성립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아라. 만났다가 헤어져야만 우리는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며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할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의 숭배 대상이 된다. 눈에 보이는 신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며 맞아 죽어야 할 가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만나면 시들하고~ 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가슴속에 있을 뿐 불행하게도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모든 예술 속에서 사랑이 비극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사랑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들여다보며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영화 속에서는 가끔 멋진 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도 하는데 그들이 결혼해서 원수처럼 사는 꼴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까지 보여주면 영화는 개판이 되고 우리가  사는 꼴이나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18. 성희롱 즉효약

서울대 조교 우모양 사건으로 불거져나온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성희롱은 매우 심각하다. 이 사건이 법정 소송으로 표면화되기 전까지, 아니 지금도 여자들은 남자가 있는  어느 장소에서건 알게 모르게 성적으로 시달려온 게 사실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또는 전철, 버스 아니면 택시 안에서조차 여자들은 오감을 통해 갖가지 성적 희롱은 당하며 사는데 하도 당하다 보니 이게 어느 정도 생활화되다시피 한 지경이다. 예쁘고 몸매가 좋은 팔자를 타고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는 데마다 야, 죽인다 죽여! 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니면 그 반대의 체격을 가진 죄 아닌 죄 때문에 거, 만두속 많이 나오겠다~라는 살벌한 말도 들어야 하는 게 여자다. 만두속 많이 나오겠다는 소리는 살이 쪘으니 달리 쓸데는 없고 잡아서 만두속에 넣을 고기로나 써야겠다는 중국식 농담이다. 옛날 중국 오지에서는 가축이 귀하므로 지나가는 여행자 중 살찐 사람을꼬셔서 술을 잔뜩 먹인 다음 그를 만두 재료로 삼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자기 자신이 여자를 얼마나 희롱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고 있다. 인격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도 어쩌다 재미있는 얘기를 한답시고 시작하는 얘기가 음담패설인 경우가 허다하다. 또 술을 한 잔 먹으면 대부분은 취했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나이트클럽에 가서는 싫다는 데도 강제로 블루스를 땡기는 족속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여자를 희롱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성희롱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나는 싫어서 죽겠는데 상대방은 그걸 모르고 있으니 뚜껑 열릴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희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게 여자 입장에서는 잘 안된다고 한다. 내 아내도 대기업에서 9년이나 직장 생활을 했지만 결정적인 게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일일이 그걸 따지겠느냐고 말한다. 상대방이 고의로 그랬느냐 아니냐도 구별하기 어렵고 괜히 잘못 따지고 들었다가 짱구가 되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어디든 유난히 밝히거나 집적거리는 인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을 성희롱 상대자로 보아서는 세상이 피곤해서 살 수 없다. 따라서 대상을 축소해 놓은 다음 이 인간들을 멋있게 한 방 먹여 준다면 남자들은 질겁을 하고 당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자고로 더러운 것은 피해 가라고 했다. 무엇보다 남자들의 음담패설에는 끼지 말라. 피치 못할 자리라면 화제를 바꾸고 정 안 되면 대놓고 면박을 줘라. 그런 소리 집에 가서도 하느냐고. 손버릇이 더러운 인간은 본인이 아닌 상사에게 항의하자. 이때 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차분히 설명하고 시정을 요구한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빈 틈을 보이는 여자를 넘겨다본다. 괜히 저녁 먹자. 술 한 잔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말고 밤 늦게까지 동료 직원들과 헤메고 다니지 말라. 누가 불쌍해 보인다고 쓸데없이 관심을 보여서도 안된다. 대인 관계는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남자란 조금만 호의를 베풀어도 저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19. 한자는 왜 배워?

작가 김주영의 소설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목과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무식한 사람을 표현한 듯한데 그는 패배를 패북으로 읽고 요산요수를 낙산낙수로 읽고 있었다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도 패배는 그런 대로 읽겠지만 요산요수를 낙산낙수를 읽을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세계화 시대 어쩌구 하는 바람에 요즘 우리나라는 외국어 열풍이 더 심하게 불고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이제 제2외국어 하나 더 구사할 줄 모르면 남보다 뒤쳐지는 형국이 됐다. 대기업에서는 외국어로 회의하는 시간이 따로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독일어나 불어 등 다른 외국어보다 한자를 더 착실하게 익힐 것을 권한다. 아니, 지금 세상에 웬 한자냐고 묻겠지만 머지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한자는 배워둘 만한 외국어(?)다. 좀 거창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지금 유럽은 문명사의 흐름으로 볼 때 노년기다. 늙어 죽어가는 문명. 더는 나올 것이 없는~  그래서 새롭게 동양 문명에 기대려는 곳이다. 미국은 어떤가. 독설가가 말했듯이 미국은 유럽 문명의 쓰레기통이다.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자본주의의 꽃은 이제 시들어 빠졌고 남은 것은 발악적인 향락과 마약뿐인 나라. 아무런 대안도 없이 일본에 대한 두려움으로 세월을 보내는 나라. 그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앞으로 문명의 주도권은 동아시아로 넘어온다. 일본이 이미 그 빛을 발하고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주무르고 있지만 너무 일찍 피어버렸고 뚜렷한 철학이 없는 나라여서 장차 문명의 주도자가 될 나라는 우리와 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는 한자 문화권이다. 아시아가 세계사를 이끌어나갈 때, 한자는 지금의 일본어처럼 세계 각국에서 통용어로 쓰이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화사상에 빠진 사대주의자는 아니다. 우리 이름이 김지현이고 차인표로 쓰인다면 한자는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다. 영어나 불어는 죽자고 하면서 한자는 몰라도 그만이라는 통념은 깨야 한다. 신문에서 한자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한자 배우기를 마다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문명의 흐름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라도 한자는 배워둘 만한 가치가 있다. 당신은 서울이 한자 이름으로 무엇인지 아는가? 셔블 발기 다래 밤들이 노니다가~ 처용가에 나오는 가사다. 처용이 밤새  놀다 집으로 오니 어떤 후레자식이 자기 마누라와 뱃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처용은 두 연놈의 목을 치는 대신에 이 노래를 불렀다. 여기에 나오는 이두 셔블이 지금 발음으로는 서울 즉, 한자로는 동경이다. 우리의 수도 이름이 서울이고 일본의 수도가 동경이라는 벌써 1천여 년 전의 얘기가 흥미롭다. 이처럼 한자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알게 해주는 즐거움을 준다.



20. 남자가 여자를 패는 이유

세상에서 가장 더티한 인간 중의 하나가 여자를 패는 놈이다. 물론 맞고 사는 남자도 더러 있다지만 그거야 논외로 치고, 좌우간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건 인류 역사가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용서하지 못할 죄악이다. 여자는 생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남자에게 열세에 놓여 있고 이걸 떠나서도 누가 누굴 힘으로 제압한다는 건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이 아니고서는 인정받지 못할 행위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를 팰 때는 독수리 5형제나 황금박쥐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이제껏 그런 모습으로 여자를 때리는 사내를 본 적이 없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여자를 패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여자쪽에서 너무 조리있게 따지고 나와 말로는 더 이상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이때 성질이 급한 사람이거나 무식한 놈은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뺨을 때리고 주먹을 날린다. 이게 어디서 바락바락 말대꾸야. 말대꾸가! 이런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따라서 남자와 언쟁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상대를 보아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것이 현명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쪽팔리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자에게 괜히 통쾌한 승리를 거두려다가는 매를 벌기 십상이다. 남자가 여자를 두둘겨 패는 또 다른 경우는 여자가 화를 돋울 때이다. 사실 이 경우는 그 책임이 여자에게도 일부 있다. 무슨 홍두깨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쌍방이 이성을 잃었을 경우 남자가 한 대 올려 붙이면 여자는 열이면 열 하나같이 죽여라, 죽여! 소리치면서 영겨 붙는다. 이런 말과 행동은 남자들의 야만성을 부추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냥 한 대만 치고 말려던 남자들은 열을 받아 라이트, 레프트에 이어 어퍼컷을 날리게 되고 여자는 곤죽이 되는 것이다. 특히 평소 말이 없던 남자가 한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이 되어 여자는 죽음도 불사하는 꼴이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나도 딱 한 번 여자를 패 본 적이 있다. 피해자는 밝힐 것 없고. 하여간 이 여자가 눈이 뒤집어져서 대드는데(상대는 내가 아님) 도대체 수습할 방도가 없어 눈 딱 감고 한 방 먹였던 것이다. 외상은 없었지만 난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나중에 다른 몽둥이로 여자를 위로해 주었다. 그게 뭐냐고? 결혼하면 알게 된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폭력은 죄악이다. 그러나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다. 남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야만을 감추고 산다. 그 야만성을 당신들이 무당처럼 불러내는 일은 없도록 하라. 남자들은 즉흥적이고 직설적이다. 성질이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인간이므로 항상 조심하는 게 좋다. 남자는 모두 늑대라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된다.



21. 누구를 위하여 순결을 지키나

나는 이른바 정조를 버렸는지 빼앗겼는지 잘 모르겠다. 그날 나는 뭐에 홀렸는지 괜히  거길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가 용기를 내서 여보세요. 얼마예요? 그리고 그녀의 뒤를 졸졸졸 따라간 다음 어둠침침한 골방에 흔히 남자들끼리 말하는 딱지를 혼자 뗐다. 내가 거기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솔직히 말해, 기억  나는 건 휴지와 이상한 냄새와 어두움. 그리고 빨랑 해! 뭐 이게 다였다. 나는 기분이 아주 찜찜해서 어디 가서 술이라도 진탕 퍼마신 다음 늘어지고 싶었고 아니면 좀 울고 싶기도 했고, 뭐, 이래~하는 느낌이 들어 자고 싶기도 했다. 그 후 한참이 지나 나는 후배의 딱지를 떼주는데 기여했다. 내가 맘 먹고 한 건 아니고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됐다는 얘기다. 그날은 우리 큰애 돌이어서 죄다 우리집에 모여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고 고돌이를 치며 놀았는데 파장 무렵 한 놈이 룸살롱에 가자는 바람에 다 가게 되었다. 아마 일고여덟은 되었었지. 한참 마시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파트너가 월남에서 전화가 왔다고 나가자는 거야. 엥? 월남? 나는 얘가 뭔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좌우간에 따라 나갔더니 빈 룸으로 들어가서 하고 나왔다. 절반은 개가 되어서 룸살롱을 나와 3차를 가자는 둥 하고 있는데 한 놈이 깽판을 놓았다. 나는 얘가 왜 이러나 하고 봤더니 이게 여기서 딱지를 어영부영 떼임을 당한 것이었다. 놈은 충격에 못이겨 우는지 웃는지 개판을 쳤다. 나는 좀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옛날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서론이 길었나. 정조가 뭔지 난 잘 모른다. 시전에 보니 성적 순결을 보존하는 일이라고 나왔는데 순결의 하한선은 어디까지인지. 뭘 보존하라는 건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결혼 전까지는 그 누구와 손도 잡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에게나 팬티를 벗어 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정신적으로는 순결하다면) 순결을 지킨 것이라는 얘기인지 아무도 판단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보니 그 정조라는 게 참 허무하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아무에게나 줘버리니 더럽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지금에 와서야 갖는 생각은 정조는 최소한 아무에게나 줘버릴 것은 아니라는 거다. 양말 벗는 것도 아닌데 왜 개나 소에게 주나? 기왕이면 줘도 평생 아깝지 않을 사람에게 바친다면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다. 고로, 정조는 일단 지키고 보자. 비상금처럼 마지막까지 개겨보다가 이 인간이다 싶은 확신이 들 때 그에게 줘버리던지. 다들 바라듯 첫날밤에 내동댕이치자.



22. 자살하는 방법

사람이 살다보면 때로는 도무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날도 있다. 이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러고 왜 사나 하는 푸념이 저절로 나오는 때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 삶에 전혀 가치를 둘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죽음은 보다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사춘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다. 세상이 괜히 시시해지고 사는 게 뻔해 보여서, 혹은 첫사랑에 실패해 좌절에 빠지면 죽는다고 방방 뜨다가 결국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마감하기는 하지만. 나도 한 때는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방법론에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안  되고. 하여간 마음에 드는 나 죽이는 법이 없어서 끙끙거리다가 지금가지 꿋꿋하게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겨울에 한강에 빠져 죽자니 물이 너무 차가울 것 같고 목을 매자니 죽고 난 후의 꼴이 영 아니올시다일 것 같다는 핑계가 여러 사람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옛날 우리 담임 선생이 그랬던가.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고. 자살할 용기로 다시 시작하면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그러나 이런 소리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다. 진정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진지하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가 살면서의 재출발 욕구보다 강할 때 그 죽음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자살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일본 작가 기와바다 야스나리가 가스 호스를 입에 물고 자살했다거나 헤밍웨이가 엽총 자살했다고 해서 그걸 전혀 멋있게 보지 않는다. 멋있기는커녕 소름이 끼친다. 기왕에는 죽는 거 조금 고상하게 소리 없이 가는 게 낫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면 금상첨화(이런 고사성어를 여기다 써도 되나?)가 아닌가.



고통없이 가는 법
1. 여름이라면 골방에서 문 닫고 선풍기를 누운 얼굴에 고정시킨 채 잔다.
2. 겨울이라면 연탄 한장 사다 피우고 수면제 몇 알 먹은 다음 자빠져 잔다. 이 방법의 흠은 누가 일찍 발견해서 병원 고압산소탱크에 넣어 살렸을 때 머리가 뻐개지게 아프거나 아니면 맹구가 된다는 점이다.
3. 아주 추운 겨울이라면 위스키 큰 거 한 병 사가지고 산에 가서 다 비워 인사불성이 된 채 그대로 잔다. 말하자면 얼어 죽는 것인데 술이 센 사람은 살아날 확률이 있다는 게 단점.
4. 커다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목 부분을 빈틈없이 조인 뒤 가만히 기다린다. 이때 비닐봉지가 너무 크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주의한다. 이 방법의 단점은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군이 돈 안들이고 사람잡던 방법이라서 유명해졌다. 이상의 방법 중 하나로 인생을 종칠 사람은 그 전에 반드시 나하고 소주 한잔 합시다.



23. 최악의 결혼 상대자

기자와 예술가와는 결혼하지 마라. 그들은 최악의 결혼 상대자이다. 이 권고를 마침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모 기자에게 보여줬더니 펄펄 뛰었다. 아직 결혼 전인데 기자, 예술가와는 결혼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농담도 석이지 않은 목소리로 항의하는 것이다. 나는 대꾸없이 웃고 말았다. 내 아내라면 분명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양쪽 일을 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선 기자와 결혼하면 왜 골때리는지 설명하겠다. 기자라는 직업은 취재와 마감을 먹고 산다. 취재란 대부분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마감 때가 되면 기사를 써 신문이나 잡지를 완성시킨다. 기자는 늘 바쁘다. 취재하느라고 바쁘고, 마감하느라고 바쁘고, 마감 끝나면 끝났다고 술 마시느라 바쁘다. 기자는 술을 입에 달고 산다. 특별한 경우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열에 아홉은 주당이고 하루 거르기가 힘들다. 취재원과 마시지 않으면 동료 기자들과 마시는데 이게 한 잔 들어가면 뚜껑이 열려야 집에 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이런 걸 서방이라고 데리고 살아봐야 아침에 해장국 끓여 대기 바쁠 게 뻔하지 않겠는가. 기자는 명도 짧다. 온갖 스트레스에 술까지 퍼제끼니 제 명에 못 죽는 것 당연하다. 특히 일간지 기자는 마누라가 서방 얼굴 보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다음은 예술가. 요즘 젊은 사람들 중 예술가라면 아무래도 시인이나 소설가가 제일 많을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이쪽 동네에서는 통칭 글쟁이라고 부르는데 이 글쟁이들 역시 술이라면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른바 순수문학을 한다는 치들은 생활 능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말하자면 아내가 벌어서 살림하고 술값까지 대야 한다는 얘기다. 글쟁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내상은 약사나 교사다. 서부전선(생활비)에 이상이 없으니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은가. 나도 한때는 약사시험이나 볼까 했었다. 약방 열어 집사람에게 소화제나 드링크 팔라고 맡겨 놓으면 처자식 끼니는 해결될 것 같아서. 글쟁이들은 대부분 괴벽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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