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克日) 넘어 세계로 가는 ‘K-반도체 소재’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한국에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관련 핵심 소재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한국 최대 산업인 반도체 산업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다분했고, 실제로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행위는 한국 기업의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 도화선이 됐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기회를 엿보던 기업들이 힘을 낸 덕분에 불과 1년 만에 소재·장비·부품산업 분야에서 극일(克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반도체 소재 기업 K사는 일본을 넘어서려는 한국의 강소기업 가운데 하나다. 1980년 설립된 K사는 공업용 화학물질을 제조해오다가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목표로 특수가스 사업 분야에 진출, 2010년 고순도 염화수소(HCl, Hydrogen Chloride) 제조방법 및 제조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K사는 이 공로로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K사가 개발한 완전밀폐형 건식 공법은 원료인 염소(Cl2)와 수소(H2)를 99.9999%까지 정제한 후 반응시켜 순도 99.9%~99.9999%의 HCl를 생성시키고 곧바로 압축, 냉각 및 액화하는 것이다. 기존 7~8단계의 공정을 3단계로 압축해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절약형 기술이자 제조원가 또한 획기적으로 낮춘 기술이다.
생산한 고순도 염화수소는 반도체 웨이퍼의 세정과 식각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반도체 소재 중 국산화 추진이 필요한 품목이다. 2018년부터 품질이 향상된 UHP(ULTRAL HIGH PURITY) 염화수소 색상 및 공급을 시작했으며, 현재 ○○공장에서 연간 3000t의 고순도 염화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2019년에는 금융권으로부터 175억 원의 투자를 유치해 생산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이어의 원산지 요청에 대응 못 해
K사는 고순도 염화수소 등의 제품을 국내 반도체 업계에 공급한 데 이어 해외에도 수출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은 고순도 염화수소와 CI2 5N(고순도 염소)이며, 수출 시장은 영국, 이탈리아 등 EU(유럽연합) 및 인도다.
2020년 11월에는 세계 최대 산업용 가스 생산업체인 독일의 L사와 유럽 및 아시아 시장을 위한 고순도 염화수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L사가 해당 지역에 공급할 고순도 염화수소는 K사의 제품을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직수출에 이어 간접 수출까지 더해 해외 매출을 증가시킬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K사는 FTA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주요 수출국 대부분이 한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면 바이어에게 관세 혜택을 제공할 수 있지만, 기술개발과 국내 고객 위주의 사업에 집중하느라 무역 부문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당장 고순도 염화수소의 유럽 수출 대부분은 건별 수출액이 6000유로를 초과하고 있어 원산지인증수출자 인증 획득이 시급했지만, 방법을 몰라 인증은커녕 원산지증명서 발급을 시도조차 못 했다. 수출 대행사인 L사에서 원산지가 ‘역내산’이라는 것을 입증할 증빙서류를 요청해도 대응하지 못했다.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수출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에 몰렸다. K사 담당자는 한국무역협회에 ‘OK FTA 컨설팅’을 신청했다.
무관세 혜택 확인, ‘역내산’ 판정 이끌어
담당 컨설턴트는 K사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는, 관련 증빙서류를 확보·분석해 수출 품목이 ‘역내산’임을 판정받고, 원산지인증 수출자를 취득해 자력으로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중점 컨설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K사 담당 직원의 FTA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 FTA 활용 기초교육부터 사후검증까지 업무프로세스의 모든 과정에 대한 교육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컨설턴트는 먼저, 고순도 염화수소와 고순도 염소에 대한 한-EU FTA와 한-인도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의 원산지 기준(PSR)과 FTA 협정세율을 확인했다.
고순도 염화수소(제2806.10호)의 경우 EU의 기본관세율이 5.5%, 한-EU FTA 협정세율은 무관세다. 원산지 기준은 ▷모든 호(그 제품의 호는 제외한다)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 다만, 그 제품과 동일한 호의 비원산지재료 가격이 제품의 공장도 가격의 20%를 초과하지 않을 때는 그 재료도 사용될 수 있다. ▷해당 물품의 생산에 사용된 모든 비원산지재료 가격이 해당물품의 공장도 가격의 50%를 초과하지 않은 것 중 하나에 해당하면 된다.
[FTA를 이용했을 때 H사의 관세 인하 폭]
인도의 기본관세율은 10%이며, 한-인도 CEPA의 양허유형은 ‘E-8’이다. 협정문에 따르면 당사국 양허표상의 단계별 양허유형 E-8으로 규정된 원산지 상품에 대한 관세는 이 협정의 발효일을 시작으로 8단계에 걸쳐 매년 균등하게 철폐되어, 이행 7년 차 1월 1일부터 그 상품에 대하여 무관세가 적용된다. 한-인도 CEPA는 2010년 1월 발효되었으므로 2017년 1월 1일부터 무관세 혜택을 받는다.
원산지 기준은 ‘다른 호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 다만, 35% 이상의 역내부가가치가 발생한 것에 한정한다’는 것이다.
고순도 염소(제2801.10호)의 EU의 기본관세율과 한-EU FTA 협정세율, 원산지 기준은 고순도 염화수소와 같다. 인도의 기본관세율은 5%, 한-인도 CEPA상 협정관세율은 무관세다. 원산지 기준은 염화수소와 같다. 원산지 기준만 충족한다면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컨설턴트는 K사 직원과 함께 두 품목의 원산지소명서와 소요부품 자재명세서(BOM, Bill of Material), 제조공정도 등 증빙서류를 토대로 품목분류 작업을 검토한 결과 고순도 염화수소와 고순도 염소 모두 최종적으로 ‘역내산’으로 판정했다. 이어 원산지증빙서류의 정합성을 검토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세관에 품목별 원산지인증 수출자 신청 방법과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 방법을 교육했다.
한편, K사는 컨설턴트의 제안에 따라 회사 원산지관리시스템으로 ‘FTA Korea’를 도입했다. FTA Korea는 한국무역협회의 자회사인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이 운영하는 국가전자무역 인프라 서비스인 유트레이드허브(uTradehub)에서 제공하고 있는 FTA 원산지관리서비스(FTA 원산지판정·유통·보관)다. 웹 기반으로 별도의 설치과정 없이 원산지판정 및 입증서류 관리를 할 수 있다. 여러 수출회사와 거래 관계가 있는 중견·중소기업의 원산지관리시스템으로 사용이 적합하다. 전자문서에 의한 원산지판정자료 교환도 가능하다.
컨설턴트는 K사 원산지 담당자에게 FTA Korea 시스템의 교육 및 시뮬레이션을 하고, 원산지관리체계 구축의 마무리 작업도 지원했다. 또, 원산지 사후검증 대비를 위한 모의 사후검증 평가를 수행하고, 사후검증 체크리스트 작성 및 제공을 통해 업체 자체적으로 사후검증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FTA 기업특화 매뉴얼도 제공해 컨설팅 종료 후에도 K사 담당자가 자체적으로 FTA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FTA 갖추고 EU 수출확대, 인도 진출 눈앞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순도 염화수소의 경우 FTA를 활용하면, EU 수출 시 5.5%, 인도는 10%, 고순도 염소는 EU 수출 시 5.5%. 인도 수출 시에는 5%의 관세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K사는 컨설팅 기간 고순도 염화수소에 대하여 한-EU FTA를 적용하여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했다. 이에 따른 관세 절감액은 원화로 약 62만8897원이었다.
한편, K사는 이번에 품목별 인증수출자 인증을 획득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출금액이 6000유로를 초과하는 건에 대해 자체적으로 FTA 원산지신고서를 바이어에게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다. FTA 업무 능력을 갖춤에 따라 그동안 수출을 준비중이었던 인도 바이어와의 협의도 빠르게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신규 사장 진출 성과도 가시화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