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출업체 A사는 남미 소재 업체에 휴대전화 부품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대로 물품을 공급하였으나, 상대 업체에서는 물품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A사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협의를 통해 해결해보려 하였으나, 상대 업체는 뒤늦게 물품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A사 담당자 박무역 과장은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 어렵다고 결론 내리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만 지리적으로도 멀고 법과 제도도 생소하기만 한 남미의 상대 업체 소재국까지 가서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민만 하면서 상대 업체와의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던 박무역 과장은 계약체결 시 분쟁이 생기면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해결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던 점을 기억해 내었다. 과연 중재는 무엇이고, A사가 이번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소송과 마찬가지의 분쟁해결 효력
중재라는 말은 일상적인 용례에서는 서로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킨다는 정도의 의미를 갖지만, 위 사례에서 언급되었던 분쟁해결 제도로서의 중재는 이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분쟁해결 제도로서의 중재(arbitration)는 분쟁 당사자 간의 합의로 분쟁을 법원의 재판이 아닌 중재인의 판정에 의하여 최종 해결하는 제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분쟁을 법원의 소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라고 하며, 이에는 중재, 조정, 알선 등이 포함된다.
중재라는 말의 일상적인 용례의 연장선 상에서, 분쟁해결제도로서의 중재도 법원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원만한 합의를 강구해 보는 절차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중재는 법원 소송에 의하지는 않지만 소송과 마찬가지로 최종적인 분쟁해결의 효력을 가지며, 이러한 점에서 중재와 소송은 ‘선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택일’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원 소송보다 유연하고 우의적 해결
이러한 중재제도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요소로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중재는 당사자의 자율성에 기초한 분쟁해결제도이다. 중재는, 당사자들이 이를 이용하고, 중재인이 내린 판정에 승복하여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하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다. 당사자의 의사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절차인 만큼, 국가별 사법기관의 엄격한 소송절차 등에 구애됨이 없이 절차의 다양한 요소에 관하여 당사자들이 효율성, 편의 등을 고려하여 합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반적인 절차 진행도 법원 소송절차에 비해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서, 충분한 진술 기회가 보장되며, 이 과정에서 우의적인 해결 가능성도 있다.
둘째, 중재는 신속하고 경제적이다. 중재는 단심(單審)의 절차로 진행되어 일반적인 법원 소송절차에서와 같은 2심, 3심의 불복이 허용되지 않으며, 중재인의 판정이 최종적인 효력을 가지게 된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신속한 분쟁 해결이 가능하며, 장기간의 분쟁이 초래하는 경제적인 손실, 사업 상의 각종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중재는 비공개이다. 중재절차는 분쟁의 당사자, 중재인 등 절차 관계자 외의 제3자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분쟁해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영업비밀의 유출이나 대외 신용도 하락 등을 방지할 수 있다.
넷째 중재는 전문적이다. 중재절차에서는 중재인(arbitrator)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분쟁에 있어 양 당사자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에 대해 최종적인 판정을 내리게 되며, 이러한 중재인은 원칙적으로 당사자 사이의 합의를 통해 선정된다. 국제상거래, 건설, 금융 등 개별 분쟁의 유형에 따라, 해당 분야에 실무경험이 풍부한 중재인들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전문가 중재인을 선정함으로써 분야별 특성, 거래실무, 상관행 등에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분쟁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국제상거래 분쟁 해결에 특히 적합
다섯째, 중재는 국제상거래 분쟁의 해결에 특히 적합하다. 서로 다른 국가에 소재한 사업자 간에 발생하는 국제상거래 분쟁의 경우, 이를 한 국가의 법원에서 해결하는데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서류송달, 외국 사법제도에 대한 예측가능성의 부족, 집행 절차의 어려움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국제중재의 경우 송달을 포함하여 제반 절차를 당사자들이 합의한 방식에 따라 간편하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널리 통용되는 국제 관행이 존재하고 절차를 합의하여 정할 수 있으므로 전반적인 절차 진행에 대한 당사자들의 예측가능성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협약(뉴욕협약)에 의거하여, 외국에서 내려진 중재판정이라도, 몇 가지 중대한 예외사유에 해당되지만 않으면, 협약 체약국 간에 손쉬운 집행이 보장된다. 즉, 한국 중재기관에서 중재판정을 받은 후, 해외의 상대방이 자진 이행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 소재국에서 손쉽게 해당 중재판정을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뉴욕협약에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교역국 대대수를 포함하여 총 169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계약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중재조항
중재는 법원의 소송과는 달리 당사자들의 합의가 있어야만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합의를 중재합의(arbitration agreement)라고 한다. 중재합의에는 기본적으로 중재회부 의사가 명확하게 표시되어야 하고, 당사자 간에 서명‧작성된 문서 또는 교환된 문서‧자료 등 서면으로 작성되어야 하며, 중재기관 등 중재절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야 한다. 중재합의는 계약서 상 중재조항의 형식으로 작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한상사중재원의 표준중재조항은 아래와 같다.
(국제거래)
Any disputes arising out of or in connection with this contract shall be finally settled by arbitration in accordance with the International Arbitration Rules of the Korean Commercial Arbitration Board.
The number of arbitrators shall be [one/three]
The seat, or legal place, of arbitral proceedings shall be [Seoul/Republic of Korea]
The language to be used in the arbitral proceedings shall be [language]
(국내거래)
이 계약으로부터 발생되는 모든 분쟁은 대한상사중재원에서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중재로 해결한다.
중재합의는 문서의 명칭에 상관없이 주요 거래조건에 관하여 당사자 간 작성‧교환되는 문서에 중재조항으로 포함될 수 있고, 분쟁 발생 후에 별도의 합의서 형식으로 작성될 수도 있다. 다만, 부정확하고 불완전하게 중재합의가 작성되는 경우(존재하지 않는 중재기관 등) 중재절차 진행 등 분쟁해결 과정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중재합의가 작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당사자 상호 간에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 분쟁이 생길 경우, 분쟁 당사자는 대한상사중재원 등 중재합의에 기재된 중재기관에 중재비용 예납과 함께 중재신청을 함으로써 중재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합의된 절차(중재기관 규칙 등)에 따라 중재를 제기하는 신청인과 그 상대방인 피신청인은 각각 신청의 취지, 답변, 관련 이유 및 근거 등을 기재한 신청서, 답변서 등을 제출하게 되고,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중재인을 선정하게 되며, 중재심리를 개최하여 중재인이 당사자의 주장을 청취하게 된다. 이후 중재인이 해당 사건에 대하여 최종적인 효력을 갖는 중재판정을 내림으로써 중재절차는 종결된다.
국내의 상설법정 중재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에서는 중재제도와 관계된 각종 상세 정보, 절차규칙, 서식자료, 분야별 표준계약서 양식 등을 홈페이지(www.kcab.or.kr)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한상사중재원에서는 중재뿐만 아니라, 당사자 간 분쟁의 원만한 해결을 주선하는 알선, 각종 상거래 분쟁에 대한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문의 02-551-2000).
감상기
대한상사중재원 홍보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