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회주의의 뿌리, 네루 = 네루와 모디. 독립 인도의 70여년 정치 이념과 경제시스템을 대표하면서도 극명히 대비되는 두 총리다.
네루는 우리나라의 구한말인 1899년 북인도의 대지주이자 최상층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법학을 전공, 변호사가 된 이후 1920년대부터 인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30~1940년대 인도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했으며, 역저 <세계사 편력>과 매력적인 외모 등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인물이다.
초대 총리를 포함, 1964년 사망할 때까지 17년 동안 총리를 연임했고 외동딸 인디라 간디, 외손자 라지브 간디도 80년대 말까지 총리직을 이어갔다. 인도 독립운동의 본산이자 현 야당인 인도 국민의회당(India National Congress)에서 네루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930년대 이런 배경의 네루를 매료시켰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의 계획경제 시스템이었다. 1930년대는 미국과 유럽이 대공황의 깊은 늪에 허덕일 때인데, 신생 소비에트 연방은 계획경제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력을 증대시켜 1917년 혁명 후 불과 25여 년 만에 독일을 패망시키고 동서냉전의 한축으로 급성장했다.
1947년 독립 후 신생 인도는 총리 네루의 주도 아래 급속한 사회주의화의 길을 택했다. 기업이나 시장의 역할은 어느 정도 용인하되 계획경제, 소련식 회계시스템을 도입해 가능한 많은 분야를 정부나 공공부문으로 귀속시켰다. 전력, 통신, 인프라, 중화학 부문은 물론 항공, 호텔, 은행, 보험, 일반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생산의 60% 이상을 정부가 직접 담당했다.
수입 장벽을 높게 치고 소련을 모델로 5개년 경제개발과 수입대체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동인도 회사로 대변되는 외국자본과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신생 대국 인도에 대한 자신감이 더해진 결과다.
그러나 혁명이 아닌 선거로 출범된 네루 정권의 기반은 취약했고 토지개혁 등 많은 개혁과제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인도아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신생 인도의 건설과제는 산적해 있었고, 인도는 너무나도 복잡다기한 국가였다.
시간이 갈수록 자원배분과 허가권을 틀어 쥔 계획위원회와 산업담당 정부부처, 정치권의 힘과 규제는 커지고 높아져 갔다. 민간의 시장진퇴는 물론 개별기업의 연간 생산계획도 이들과의 관계나 로비로 결정되었다.
당시는 라이선스(License)가 왕(Raj)인 ‘License Raj’, 산업(Industry) 담당부서가 왕인 ‘Industry Raj’의 시대로 불린다. 야심찬 목표와 달리 이 40여 년 인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5%, 인구증가를 뺀 개인소득 증가율은 연 2%였다. 서방세계에는 ‘힌두성장률(Hindu Growth Rate)’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롤모델이자 버팀목이었던 소련은 1980년대 말 해체되었고, 이 소련의 지원과 교류가 끊기면서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인도는 1991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개방화, 개혁화의 길로 전환했다. 우리보다 7년 여 먼저 외환위기를 맞았고 이후 30여 년이 지났다.
●국가 시장주의 개혁가, 모디 = 현 인도 총리 모디는 한국전쟁 해인 1950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72세다. 존경하는 독립영웅 간디의 간청에 따라 초대총리 자리를 네루에게 양보한 것으로 알려진 초대 부총리 파텔과 같은 구자라트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힌두민족주의 운동에 매진했고, 이를 배경으로 2001년부터 13년 구자라트 주총리를 역임했다. 연평균 13% 성장이란 성적표를 배경으로 2014년 총리에 취임해 올해로 7년차를 맞고 있다. 네루와 달리 상인카스트 출신이다. 20여 년 간 최고자리를 이어 오면서도 어머니와 형제들이 고향 구자라트에서 허름한 그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렴과 힌두사제식 절제생활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핵 보유국 파키스탄에 항공기 폭격을 하고, 군사 강국 중국과의 유혈 국경충돌도 불사한다. 인도 내 절대적 영향력 집단인 고위공무원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더해져 수많은 인도 젊은이들과 기업가들을 ‘모사모’로 만들었다. 2024년 74세로 2기가 종료되지만 현 인도 정치권에서 모디를 대체할 인물은 아직 없다.
모디의 비전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두되 국가주도를 통한 G3, G2 인도제국의 재현이다. 구자라트 13년 주총리 재임기간 중 추진한 개발전략과 성과의 인도 중앙판 버전이다. 인프라 최우선 투자, 제조업 부흥과 인도의 세계 공장화, 경제사회시스템의 디지털화, 클린화가 그 핵심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향후 5년간 1조5000억 달러를 인도 경제의 발목인 인프라 쪽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전자, 자동차, 특수강, 배터리, 제약, 태양광 등 13개 핵심 전략산업을 선정해 300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신청을 받아 선정된 기업에게는 향후 5년 간 인도 내 추가생산액의 4~6%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생산연계인센티브(Production Linked Incentive)란 파격적인 유인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상인전통의 실용주의가 체화되어 있고, 시장과 외국기업에 대해 어느 때보다 친화적이다.
●네루와 모디의 접점 : 인도제국의 영화 = 네루로부터 시작된 사회주의화의 영향력은 인도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교육과 보건, 전략 분야에 대한 산업 및 투자우선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 보건, 교육 접근성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제도적 배려, 지원은 탄탄해 보인다. 인도가 1인당 2000달러 개도국임에도 코로나19 위기를 흡수, 극복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국제경제 무역 환경이 최고조였다는 2차 대전 이후 40년의 황금기를 놓쳐버렸다는 비판은 뼈아픈 지적이다.
지난 7년간 모디 총리를 정점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도경제의 G2화, 세계 공장화는 어느 쪽이 집권해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 7년 여의 성과로 보여주고 있는 총리 모디와 인도가 각별한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다.
반면, 일벌레, 카리스마 총리실로의 권한 집중이 도를 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큰 혼란과 후유증을 수반했던 2016년 화폐개혁과 코로나19 직후의 전격 통금 이후 이어진 수백만 일용인력의 대도시 탈출 행렬이 그 예다. 힌두이즘에 기반을 둔 총리 모디와 모디 정부를 바라보는 무슬림계의 시선은 더 어긋나는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은 인도 총리란 농반진반 이야기가 있다. 인도를 떠나 국가냐 시장이냐의 우선순위와 정도에 대한 포지셔닝은 어느 국가든, 그 구성원이든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지난 경험은 정치적 수사와 달리 그 간극은 좁혀지고 있고, 그 사이가 그리 멀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도도 마찬가지다. 60여 년 시차를 두고 등장한 대조되는 총리 네루와 총리 모디 모두 인도제국의 부활이란 면에서 100% 그 방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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