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상공회의소 지원으로 ‘코로나19 클레임’ 해결
코로나19 2차 확산으로 시끄러웠던 2010년 초가을, ○○FTA활용지원센터에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신청인은 지역 공단에 입주한 공작기계 전문 생산업체 R사였다. 1984년 설립 이후 특수목적의 대형공작기계 생산에 특화해 40여 종의 중·절삭 가공 기계를 국내외에 공급하는 강소기업이다.
R사는 2019년 러시아와 스웨덴 바이어로부터 CNC(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수주했다.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전 임직원들이 매달려 가까스로 이뤄낸 유럽 지역으로의 첫 수출계약이었다.
계약과정에서 FTA(자유무역협정)가 큰 도움이 됐다. EU(유럽연합) 회원국인 스웨덴은 한-EU FTA를 적용하면 품목별로 1.7% 또는 2.7%인 수입관세가 무관세가 되어 바이어에게 관세 혜택만큼의 가격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고, 러시아는 현재 한국과 러시아 정부가 FTA 협상을 진행 중인 점에 착안해 중장기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득해 얻은 결과였다.
계약 체결 후 R사는 바이어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CNC 공작기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납기 기한을 앞둔 시점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됐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상반기에는 각 국가의 국경폐쇄 조치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막혔다. 거래 상대국으로부터 원재료와 부품을 공급받아 완성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은 가공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납기 지연
R사도 원자재 수급이 어려운 가운데 부분품을 납품하던 협력업체들이 조업을 중단해 제작이 지연됐고, 결국 애초 약속한 2020년 6월 납기를 지키지 못했다.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바이어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공급사에 페널티를 물고 손해 배상을 요구한다. R사의 바이어 측은 계약 내용을 근거로 납품금액의 7~10%에 달하는 위약금을 요구해왔다. 한화로 1억3000만 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위약금 요청을 받아들이면 납기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회사 신인도 하락에 큰 타격이 불가피했다.
무역거래 협정에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이라는 조항을 두고 있어 공급사의 면책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불가항력 조항은 인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우발적인 사고, 예를 들면 전쟁 발발, 스트라이크, 천재지변, 수출입금지 등의 사고로 인해 상품 인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매도인이 면책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즉, 공급사가 불가항력에 의해 계약서에 약정된 기간 내에 물품의 인도를 이행하지 못할 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불가항력 인정 않고 거액 위약금 요구
R사는 회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에 따른 것이라고 바이어 측에 양해를 구했지만, 바이어는 인정하지 않았다. 비대면 거래인 무역의 특성상, 바이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기업의 사업장에서 진행하는 제조과정을 일일이 점검하기 어려우므로 정말로 코로나19 영향 때문인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았던 점이 작용했다. 특히 당시만 해도 코로나19가 불가항력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유권해석 사례도 없었다.
여기에 제품을 발주했던 타 기업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납기를 맞추지 못했다는 과거의 경험까지 더해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을 피하고자 납기 지연을 핑계로 위약금을 챙기고 발주를 취소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R사는 여러 기관을 돌아다니며 불가항력 면책을 받기 위한 관련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을지 문의했지만, 해당 기관마다 서류 발급의 법적 규정이 미비하고 서류를 발급했다가 발생할 만일의 사태에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이라며 거절당했다.
많은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 좌절한 R사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FTA 업무 때 도움을 받았던 지역 FTA활용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FTA센터와 상의 도움으로 해결
사연을 접한 센터 직원들은 지역의 ○○상공회의소에 사연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R사가 접촉했던 다른 기관과 달리 ○○상공회의소는 대한상공회의소의 회원기관이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전 세계 133여 개국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된 민간 국제경제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에 가입해 있다. 국제간 상업 거래의 정상화와 민간기업의 이익을 국제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상공회의소는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상공회의소 명의의 불가항력 면책 서류를 발급한다면 바이어도 수긍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에 FTA활용지원센터와 ○○상공회의소 기획조사본부가 협업해 R사의 납기지연의 이유를 소상히 밝힌 문서를 작성했고, 변호사와 관세사 등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여 이 문서가 유발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도검토했다. 그 결과 문서 자체는 어떤 문제도 유발하지 않으리라고 판정됐다.
FTA활용지원센터는 ‘R사에 납기지연의 귀책사유가 있지 아니하고,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 때문이었다’라는 문구가 기재된 공문을 R사에 제공했다.
R사가 문서를 바이어에게 제공하자 바이어는 태도를 바꿔 위약금 지급 요구를 철회하고 제품을 보내 달라고 했다. 이에 R사는 2020년 11월 제품 선적을 완료해 첫 거래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회원사이자 지역 기업을 위해 ‘가능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해결책을 도출해 낸 FTA활용지원센터와 지역 상공회의소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5개월여의 납기지연에 법적 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릴 수 있었던 R사는 애로사항을 해결해준 지역 상공회의소와 FTA활용지원센터에 감사장을 전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박스) 무역거래협정에서의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이란
무역거래협정에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이라는 조항을 두고 있어 공급사의 면책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불가항력 조항은 인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우발적인 사고, 예를 들면 전쟁 발발, 스트라이크, 천재지변, 수출입금지 등의 사고로 인해 상품 인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매도인이 면책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즉, 공급사가 불가항력에 의해 계약서에 약정된 기간 내에 물품의 인도를 이행하지 못할 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지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