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화장지’ FTA 타고 미국으로
2020년 초 ○○FTA활용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화장지 생산업체 X사 담당자였다.
X사는 주문자의 의뢰를 받아 상표와 광고를 부착해 생산·판매하는 공장직영 업체로, 그동안 국내기업과 업소들을 상대로 일반 영업 및 자체 쇼핑몰을 마련해 온라인 판매를 하며 착실하게 사세를 키워왔다.
그러던 중 한국 상품을 거래해 본 경험이 있던 미국 바이어와 연결이 되었다.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협의한 끝에 바이어는 거래를 하자고 제안했다.
계약의 첫 거래 규모도 적지 않았지만, 한 번 거래를 시작하면 지속적인 공급도 가능했다. 더군다나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시되면서 국내 매출이 크게 줄어들던 때여서 사업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회사로서는 반드시 잡아 야 할 만큼 중요한 거래였다.
문제는 회사 내에 무역에 대한 지식을 갖춘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직원이라야 대표이사를 포함해 5명뿐이고, 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정상 여러 업무를 서로 나눠서 하다 보니 무역에 관심을 둘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무역 초보… FTA활용지원센터 노크
고민하던 대표와 직원은 논의 끝에 지역 FTA활용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FTA활용지원센터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잘 모르거나 수출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을 위해 지역별로 선정한 관세사와 원산지관리사 등의 전문가가 중소기업을 직접 찾아가는 ‘중소기업 FTA현장 방문 컨설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가 대상 기업의 현황을 파악해 ▷기업이 관심을 두고 있는 FTA 지역의 관세 혜택 및 수출입통관절차를 안내하고 ▷HS 품목분류 적합성 검토 및 원산지 결정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해주며 ▷FTA 원산지증명서 및 원산지확인서 발행 및 활용 절차를 소개하고 ▷원산지소명서 및 BOM(소요부품자재명세서, Bill of Material) 등 기타 원산지 증빙자료 작성 지원 등을 해 준다. 컨설팅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로 중소기업이 수출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밀착 지원한다.
X사의 사연을 접한 FTA활용지원센터는 경기 불황으로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얻은 기회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적인 수출로 연결해야 한다고 보고, 곧바로 전문가를 파견해 컨설팅하기로 했다.
미국 바이어와 수출 계약을 체결한 품목은 ‘화장지(toilet paper)’였다. 화장지의 HS코드는 제4818.10호다. 미국 세관의 기본관세율은 ‘Free’ 즉, 무관세다. 원산지 결정기준(PSR)은 ‘다른 호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이다. 관세 면에서 크게 신경 써야 할 것은 없었다.
X사에 시급한 사안은 무역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는 것이었다.
X사는 직접 생산하지 않고, 국내기업인 S펄프로부터 원단을 구매해 이를 고객의 요청에 따라 가공해 고객이 주문한 광고와 로고 등을 인쇄한 박스에 포장한 뒤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제품의 원산지가 ‘역내산’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S펄프에 관련 서류를 요청했더니 조건에 부합한 증빙서류를 발급해 주었다.
미중 통상분쟁이 만들어준 기회
2018년 3월 22일 미국 통상법 301조 조사 결과 발표에 따라 미중 통상분쟁이 시작됐고, 화장지도 보복 관세율 품목에 포함되어 미국에선 그해 9월 24일부터 중국산 화장지에 25%의 관세를 물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산’ 화장지의 대미 수출이 사실상 중단되어 결과적으로는 이 덕분에 X사에게 기회가 온 것일 수 있었다. 다행히 X사의 화장지는 ‘역내산’으로 인정되어 수출을 위한 첫 단계는 무사히 넘겼다.
다음으로 수출 계약을 진행했다. 만약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이어나 셀러 양측이 법적 갈등까지 이어지면 계약서 조항 문구 하나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계약서 조항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또한, X사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대금결제 방식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전문가는 참고인 자격으로 계약 과정에 참여해 X사와 바이어 양측이 만족할 수 있는 계약서 작성을 도왔다. 특히, 수출대금을 먼저 받고 물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요청해 이를 관철함으로써 자금 여력이 부족한 X사의 부담을 크게 줄여줬다.
계약 이어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까지
한-미 FTA 상으로는 무관세이지만 바이어의 요청에 따라, 즉 혹시 모를 원산지 검증에 대비하기 위해 ‘역내산’임을 인정하는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기로 했다. 관세 혜택도 중요하지만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 하는 기업은 그만큼 바이어와 수입국 세관으로부터 신뢰감을 높일 수 있으므로 수출기업은 바이어에게 선제적으로 발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한-미 FTA에서 원산지증명서는 ‘자율발급’ 방식을 따른다. 자율발급이란 협정에서 정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수출자 등이 당해 물품에 대하여 원산지를 확인해 작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자율발급도 발급 전 미리 수출 물품이 각 협정에서 정한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하는지 검토해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 한-미 FTA는 협정문에 HS코드 6단위별로 원산지결정기준이 기재되어 있다. 특히, 자율발급의 경우 FTA 특례법에 따라 서명권자를 지정하고 서명 카드, 원산지증명서 작성 대장 등을 비치하여 기재하고 관리해야 한다.
한-미 FTA 원산지증명서는 별도로 정형화된 양식은 없으며, 수출자, 생산자, 수입자가 협정문에서 정하고 있는 필수기재 항목 8가지를 포함해 자율적으로 작성한다.
필수기재 항목은 ▷증명인의 성명(연락처 또는 그 밖의 신원확인 정보 포함) ▷상품의 수입자(아는 경우에 한한다) ▷상품의 수출자(생산자와 다른 경우에 한한다) ▷상품의 생산자(아는 경우에 한한다) ▷물품의 HS품목번호 및 품명 ▷상품이 원산지상품임을 증명하는 정보 ▷증명일자 ▷증명서 유효기간(포괄증명의 경우) 등이다.
한국과 미국 세관은 이러한 8가지 필수기재항목이 포함된 권고 서식을 제공하고 있으니, 작성에 어려움 을겪고 있는 기업은 권고 서식을 이용하면 된다. X사는 S펄프 등 원재료 공급사로부터 받은 원산지(포괄)확인서 등을 토대로 FTA 원산지증명서를 성공적으로 발급했다.
수출로 매출 10배 성장한 기적 이뤄
X사는 2000년 4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수출물품을 선적한 뒤 5월까지 약 1억 원어치를 수출했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했고, 품질도 좋아 현지 고객사가 만족해하자, 바이어는 X사와 거래를 확대하자고 제안해 연간 수출 규모를 약 81억 원까지 늘렸다. 이전까지 회사의 연간 매출이 약 7억5000만 원이었는데, 10배가 넘는 매출 확대를 이뤄낸 셈이다.
내수기업이었던 X사는 이 한 건의 수출로 수출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향후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것에 대비해 고용을 늘리고 설비도 확충하는 등 사세를 키워나간다는 방침이다.
전문가의 컨설팅 덕분에 계약서 체결부터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까지 미국 수출을 위한 당장 급한 불은 껐다. 전문가는 이번 경험을 토대로 X사에 FTA 업무 프로세스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와 유관기관이 제공하고 있는 인프라 구축 지원 사업을 활용하면, 인력 부족을 이유로 주저하고 있는 중소기업도 손쉽게 수출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에 X사는 효율적인 원산지관리를 위해 업무를 전담하는 원산지관리자를 지정해 FTA 활용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에 참여하고 원산지관리 시스템도 도입하는 등 수출 업무의 고도화를 지속해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미국을 넘어 신규 수출선 발굴에도 점진적으로 나서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다른 국가의 F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