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서부, 상인의 본고장이자 경제중심지
●인도의 경제·금융수도 ‘뭄바이’와 제조업 중심지 ‘푸네’ = 우리나라 33배 면적에 인종, 종교, 언어가 얽히고설킨 복잡하고도 다기한 14억 인도에서도 서부지역은 경제, 금융, 무역, 상인(기업인)의 비중과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일반적으로 구자라트(Gujarat), 마하라쉬트라(Maharashtra), 고아(Goa)가 이에 해당한다.
뭄바이(Mumbai)를 빼고는 인도 경제와 금융을 말할 수 없다. 인도의 정치, 행정수도는 북부 델리이지만, 경제·금융 수도는 서부 뭄바이다. 뭄바이는 영국의 식민지배가 무르익은 19세기 중반 해상에 위치한 7개의 섬을 매립해 만든 인공 도시다. 뉴욕 맨해튼처럼 남북이 길쭉한 배의 노 형상을 하고 있다. 서울과 비슷한 600㎢ 면적에 2300만 명이 거주하는 인도 최대의 밀집도시로 최대의 슬럼가와 초호화 주택가가 공존하고 있다.
인도 해상물동량의 70%가 뭄바이를 거쳐 간다. 인도 중앙은행(RBI : Reserve Bank of India)과 인도 증권거래소가 있고 은행, 증권, 보험 등 인도 및 다국적 금융사 대부분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뭄바이에는 신한은행, 미래에셋 등 금융과 물류를 위주로 120여 우리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총영사관도 운영하고 있다.
주도 뭄바이를 품고 있는 마하라쉬트라주는 인도의 대표적인 부자 주다. 인도 인구의 9%인 1억20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인도 전체 GDP의 20% 가까이를 기여하고 있다.
뭄바이 시내를 벗어나 인도 서해안을 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Western Ghat(산맥) 고갯길에 접어들면 자동차로 2시간 남짓 굽이굽이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그 끝에서 해발 800m의 드넓은 데칸고원이 시작되는데, 그 초입에 뭄바이의 배후 휴양지로 발전해 인도 제조업의 중심지가 된 푸네(Pune)가 있다.
영국 지배기간 중 가장 치열하고 강렬한 독립운동을 한 마라타(Maratha)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곳은 기계, 자동차, ITeS 산업을 품은 인도 서부 최대의 제조도시로 성장했다. 인구는 800만이다. 연구개발 기능도 활발해 인도 4대 IT 소프트웨어 개발 지역이자 세계 최대의 백신생산기업 SII(Serum Institute of India)가 위치한 세계적인 백신 및 제약 허브이기도 하다. 연산 200만 톤의 냉연도금 공장과 가공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포스코를 비롯해 80여 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다. 데칸 고원의 서늘한 날씨와 발달된 인프라로 뱅갈로르와 함께 인도 내 우리기업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재 지역이다.
●인도 상인사관학교 ‘암다바드’와 인도 섬유·다이아몬드의 도시 ‘수랏’ = 뭄바이 건설 이전 인도 서부지역의 교역, 경제중심지는 구자라트주의 암다바드(Ahmedabad)와 수랏(Surat)이었다. 두 도시가 속해 있는 구자라트주는 고대로부터 건조, 고온의 준 사막성 기후로 최상급 면화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구자라트주 중앙에 위치한 암다바드는 영국 맨체스터를 가로지르는 어웰(Irwell)강과 비슷한 사바르마티(Sabarmati) 강을 통해 면직물 생산 및 이동에 필수적인 풍부한 물을 갖추고 있었다. 암다바드 남쪽 300km에 위치한 수랏은 뭄바이 건설이전 인도 서부를 관통하는 타피강(Tapi River)과 항구를 겸비, 서부 최적의 물류여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 상인과 인도 토종기업이 합세하면서 인도 최초의 근대식 방적, 방직 공장이 이들 두 도시를 중심으로 들어섰다. 인도 독립 이후에도 이 위상은 이어져 암다바드는 인구 700만, 수랏은 인구 600만의 인도 8대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 암다바드는 스즈키(Suzuki), 혼다(Honda), 타타(Tata) 등 자동차산업과 자이더스(Zydus)로 대표되는 제약산업, 인도 제일의 인프라 및 신재생 기업이 된 아다니(Adani) 등을 통해 인도 제조업의 본산지가 되었고, 모디 총리의 ‘Make in India’ 정책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수랏도 인도 섬유 산업 생산의 80%를 담당하고 있고, 세계 다이아몬드 가공의 90%가 이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아는 고래로부터 해상교역의 중심역할을 했던 인도 서부지역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뭄바이 남쪽 약 500km 해안가에 자리 잡은 인구 150만 명의 인도에서 가장 작은 주이다. 1510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동부해안을 돌다 편서풍을 타고 최초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후 500여 년 간 포르투갈의 대동남아 교역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61년 인도정부가 무력으로 강제 접수한 이후에도 관광, 교역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해 1인당 GDP 6200 달러로 인도에서 가장 개인소득이 높은 지역이 됐다.
●상인집단 ‘파르시’, ‘구자라티’의 본향이자 주무대인 인도 서부 = 19세기 중반 뭄바이의 건설과 함께 인도 산업계의 중심으로 부상한 그룹이 파르시(Parsi), 구자라티(Gujarati) 상인 그룹이다. 뭄바이 건설 이전 인도 서부의 경제중심지는 인도의 맨체스터라 불리던 구자라트주의 암다바드와 서부 해안도시 수랏이었다.
인도 제일의 기업집단은 타타그룹(Tata Group)인데, 창업주 Jamsetji Tata는 1868년 창업 이후 천혜의 항구 뭄바이를 기반으로 섬유, 무역, 발전, 철강 분야의 인도 산업화를 선도해 인도 산업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세계 최초의 종업원 의료 고용보험 도입 등 사내 복지를 시작했고, 직접 또는 자선재단을 통해 교육, 연구 분야에 10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세계 최대의 기부 기업가이기도 하다. 그가 파르시다.
이외 Godrej, Wadya 등 8세기 이란으로부터의 이주 이후 북서부 구자라트주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던 파르시 상인집단은 영국 통치라는 격변기에 뭄바이 개발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교역, 산업, 금융, 인프라 핵심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현재 6만 전후로 추정되는 인도 내 파르시 집단 중 5만 이상이 뭄바이에 거주하고 있다.
구자라트주는 400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끼고 있어 고대로부터 인도아대륙의 내륙운송과 해양교역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이곳에서 모험과 위험을 즐기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고수익을 체화시킨 상인집단이 구자라티다. 구자라티는 가만히 있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이동이 체화되어 있고 인도 내는 물론 해외 진출도 가장 적극적이어서 미국 내 모텔, 호텔업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인도계 중 대부분이 구자라티다.
이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벌거나 자신의 사업을 시도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밥상머리 교육이 체화되어 현재 인도 주식시장 대금의 70% 전후가 구자라티(또는 뭄바이 인근으로 이주한 구자라티계) 손에서 처리된다고 한다. 암다바드 직장인 중 주식 구좌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이러한 상업전통이 카스트 직업세습제와 연결되고 발전해 구자라티 상인집단은 마르와리(Marwari)와 함께 인도 상인계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성장, 현재 인도 10대 부자 중 5명이 이 구자라티계다.
필자가 우리 기업, 기업인을 만나서 듣는 가장 곤혹스러운 이야기가 인도상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다. 대체로 무례하다, 말을 너무 자주 바꾼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한 경우 다시는 거래를 안 하겠다거나 상종을 안 하겠다고 한다. 많은 부분 이해되고 공감도 했다. 그러나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게 만든다는 인도 파르시 상인집단, 불살생의 종교 가르침에 따라 수천 년 상업에 전념해 불과 600만 인구로 인도 소득세의 3분의 1을 내고 있는 자인 상인집단 등 신뢰와 믿음의 상인계층도 인도에는 많다.
특히 부정적인 예의 많은 부분이 인도 북부지역 기업인, 상인과의 거래 경험이나 들은 전언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도 서부의 많은 기업인들도 행정이나 정치 전통이 뿌리 깊은 북부 상인들과의 거래에서 매우 조심한다. 그쪽 사람들 표현을 빌자면 “델리 중심의 북부는 오로지 주는 것만 있지만, 이쪽 서부에서는 가면 오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인도 상인이라고 일괄해서 매도하기에는 인도는 너무나 크고 복잡·다양하다. 해서 인도 상인을 대할 때 마음에 준비는 하되, 여백을 두는 것이 좋다. 이것이 세계 3대 상인집단이자 ‘G3’ 인도경제 주역에 대한 바른 접근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인도 서부는 인도 경제발전의 엔진이자, 인도 상인의 본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