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즈니스에서의 침묵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의 저자 레리 A. 사모바(Larry A. Samovar)에 의하면 말을 중시하는 서양문화에서 침묵은 무시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여겨져 왔다. 반면 동양문화에서는 침묵이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됐다. 
 
동양에서 침묵은 서양의 침묵과 매우 다르다. 동양인들은 잡음과 대화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으며, 그래서 고의로 정적을 깨려 애쓰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침묵에 대해 교육을 받아왔으며, 사회생활에서도 침묵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때때로 이문화 간 소통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동양에서 출발한 불교와 유교는 침묵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교에서는 침묵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자는 침묵을 ‘배반하지 않을 친구’라고 가르쳤다. 
 
또한, 침묵의 길이가 가장 긴 일본인들은 종종 침묵이 신뢰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갈등과 난감한 상황에서 침묵을 사용하곤 한다. 일본 속담 ‘우는 오리가 총 맞는다’, ‘꽃은 말하지 않는다’ 등은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나 ‘침묵은 금’이라는 말로 침묵을 강요한다.
 
동서양, 국가별로 침묵의 의미 달라
 
오래 전 중남미에 출장 갔을 때 필자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서 말을 자르며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하거나, 필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답변하는 그들을 보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고, 습관이 되어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침묵이 우리에게는 참신하고 조신한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북미·유럽·중남미에서는 불편함, 부정 등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남미인들이나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침묵의 시간이 매우 짧다. 침묵의 시간이 긴 일본인들이나 그 중간에 있는 한국인들과는 매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침묵은 동의의 증거, 관심의 부족, 상처받는 느낌, 또는 경멸로 해석이 될 수가 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오퍼를 넣었는데 상대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특히 북미나 유럽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한데, 이는 일반적으로 부정이라고 볼 수가 있다. 
 
서양에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을 칭송하는 문화는 기본적으로 침묵에서 흥미를 찾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독자들도 알 것이다. 
 
▲협상에서 중남미인들은 침묵을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중남미 카리브 해안에서 바이어와 함께(2015). [사진=필자 제공]
아프리카·중남미에서 침묵은 부정을 의미
 
때로는 침묵으로 협상할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는 미덕이 아니다. 
 
침묵은 곧 부정을 의미하여, 또는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거래를 영원히 종결하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북미나 유럽,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침묵이 곧 교양이 될 수 있고, 권위를 상징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일본인들의 침묵은 때때로 상대하기에 많은 부담과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자녀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한국 문화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사회생활 초심자들에게 경청을 미덕이라며 강요하고, 상사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젊은 직원들을 최악으로 인식하는 직장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 종종 회의는 침묵의 장이 되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이 미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직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나 필요한 개선방안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다 보면 핵심역량이 모이지 않는다. 
 
특히 스피드가 생명인 글로벌 시장에서 자기 생각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자기가 발언한 내용을 지키지 못하거나 틀린 경우가 무서워 주저하다 보니,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윈 같은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가 없다. 이들은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한 인물들인데, 만일 이들이 침묵하는 부류였다면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좋은 거래처가 있으면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어야 하며, 상대가 방문을 거절한다고 바로 포기하지 말고 과감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침묵은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업에서 침묵이 필요한 시기는 협상할 때뿐이다. 이외에는 필요하지 않다.
 
바이어의 질문에는 바로 대응을 해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자기 회사의 상품을 설명할 때는 최대한 열정으로 하여야 하며, 바이어의 질문에는 바로 대응을 해야 한다. 바이어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천천히 대화하는 방식은 맞지 않는다. 
 
바이어들은 종종 필자에게 “당신은 다른 아시아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바이어와 대화할 때 바로 응답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그런 것이다. 
 
다른 아시아 업체 관계자들과 미팅을 할 때 매우 답답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침묵을 곧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아시아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그들과 장시간 대화를 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가 힘들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Edward T. Hall)은 이런 차이를 ‘고맥락(High Context)’과 ‘저맥락(Low Contex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맥락이란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될 때의 대인관계도 포함된 모든 상황을 의미한다. 
 
홀은 맥락이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대화에서 표현되는 말보다 그 배경을 중시해서 의미를 받아들이려 하는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간의 차이를 밝혀냈다. 
 
고맥락 문화일수록 배경에 의한 메시지 전달 의존도가 높다. 중남미 국가, 아시아 국가, 남유럽 국가들이 고맥락 문화에 속한다. 
 
이들 문화에서는 동료의식이 높고, 깊게 사귀기 때문에 언어 그 자체보다 맥락에 따라서 깊은 메시지를 이해한다. 
 
이에 반해 북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은 저맥락 문화에 속한다. 이들 문화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해서 집단 귀속 의존도 낮다. 때문에 정보를 맥락에서 얻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맥락에 의지하는 것보다도 표현된 말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경향이 높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고맥락 사회에서 침묵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인 중에는 일본인들이 가장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한국인들도 침묵의 시간이 긴 편이다. 
 
이에 반해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에서는 침묵의 시간이 짧다. 
 
특히 브라질인들은 매우 짧다. 
 
비즈니스 상대방이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라면 침묵을 길게 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중남미 지역 사람들과 대화 중 침묵이 길어지면 부정적인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비즈니스에서 침묵의 사용은 맥락에 의존하여 현명하게 사용해야 함을 필히 기억을 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 때로는 긴 침묵으로 협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주 긴 침묵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긴 침묵은 바이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이므로 대화를 바로바로 이어가는 것이 좋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거래를 망치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수들은 협상에서 침묵을 적절히 활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테이블에서 비즈니스 고수들은 종종 침묵을 적절히 활용한다.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할 때 즉각적으로 응하지 않고 한동안 침묵하여 있으면 상대방은 자중하며 자신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특히 중동이나 아프리카, 인도, 중남미 지역 바이어들은 자주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요구하는데, 이럴 경우 잠시 응하지 않고 있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된다. 
 
그러면 그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들은 제안을 철회하거나 양보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되받아치게 되면 의미 없는 시간만 보내거나 지레 겁을 먹고 바닥 가격을 상대방에게 주게 될 수 있다. 
 
필요 시 침묵의 효과를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전략적 침묵(Strategic Silence)을 하게 되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 침묵에 당황하게 된다. 
경험이 많지 않고 노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말이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 자신의 정보를 많이 노출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많이 양보하는 경향이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침묵을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전략적 침묵으로 그 협상에서 성공하겠지만 자주 거래하는 거래처라면 부정적인 시그널이 될 수 있다. 
 
침묵을 협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국한해야 한다. 침묵을 자주 사용하는 협상자는 거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것이다.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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