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움직이는 두 개의 지렛대가 있다. 하나는 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이익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한 말이다. 사업을 하면서 이 말에 공감할 때가 많았다. 
 
무역은 속성상 원거리에 있는 낯선 사람들과 거래다. 바이어 입장에선 아직 신뢰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과 거래를 해야 하니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그래도 거래를 하는 이유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셀러 입장에서는 낯선 사람에 대한 바이어의 공포를 없애는 일이 중요하다. 
 
그 방법의 하나가 대화다. 대화의 기법은 매우 다양하겠으나, 여기서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비교적 쉽게 상대에게 다가가고 빠르게 신용을 얻는 방법이다.
 
바이어에게 ‘말조심’해야 하는 이유
 
비즈니스 대화에서 상대국가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필자가 도미니카공화국에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바이어와 만찬을 즐기던 중 뜻밖의 대화 전개에 놀랐다. 
 
필자가 조만간 아이티에 출장 가서 새 시장을 개척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 바이어는 가지 말라고 난리다. 그는 그 나라(아이티) 사람들이 모두 도둑놈들이고 사람 같지도 않다며 얼굴색이 벌게지도록 흥분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는 앙숙 관계였다. 이웃이지만 오랜 전쟁으로 두 나라는 원수가 되었다. 현재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제 규모는 아이티공화국의 10배 이상이고 많은 아이티 불법노동자들이 산토도밍고(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어쨌든 도미니카공화국에 가면 아이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이를 모르고 도미니카공화국 바이어에게 아이티를 응원하거나 칭찬하는 말을 한다면, 거래가 매끄럽게 이뤄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들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다. 공통점은 이웃 나라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대개 이웃 나라와 하게 마련이다. 
 
멀리 떨어진 나라와는 전쟁할 이유도 크지 않고 그럴 비용도 엄청 들기 때문이다.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이웃이요 한때 형제의 나라였다. 하지만 이미 원수가 됐다.
 
미국과 멕시코도 사이가 안 좋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멕시코 장벽을 설치한 배경에도 구원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는 19세기 중반에 전쟁을 치렀고 멕시코는 당시 자국 영토였던 지금의 미국 남부지역 대부분을 잃었다. 
 
San이나 Los로 시작하는 지명은 과거 대부분 멕시코 땅이었다. 멕시코가 미국에 대해 가지는 반감은 여기서 비롯됐다. 현재는 경제력의 차이로 미국으로의 불법이민 문제가 생겼고 두 나라는 항상 다투고 있다.
 
적대적 이웃이 많은 중남미 국가들
 
필자가 중남미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놀라운 점은 이웃 나라 사이에 앙숙 관계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아르헨티나와 칠레다. 
 
두 나라는 모두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안데스 산맥과 파타고니아 남부지역의 영토, 국경 문제로 수없이 갈등과 분쟁을 빚어왔다. 외국 사람인 필자도 현지에 가면 두 나라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각각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인종 구성에서 주로 백인으로 이뤄져 있지만, 브라질은 백인, 인디오, 흑인 노예 후손, 아시아계 등의 여러 혼혈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나라는 축구만 하면 서로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만, 예전처럼 반목은 없는 듯하다. 
 
브라질과 우루과이는 매우 적대적이다. 우루과이는 과거 브라질에 속해 있었지만,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이후 브라질은 우루과이를 병합할 기회를 노려 왔고 우루과이는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다 보니 관계가 좋지 않게 됐다. 두 나라 사이는 한일관계처럼 매우 좋지 않다. 브라질 바이어가 필자에게 우루과이와 거래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늘 거래 관계가 없다고 답한다. 
 
콜롬비아도 브라질과 사이가 안 좋다. 과거 브라질에 의해 콜롬비아가 차지했던 남부 아마존 밀림 지역 일대를 대거 강탈당한 적이 있어서다. 두 나라 사이는 거의 ‘견원지간’이다. 
 
에콰도르와 페루는 영토문제로 전쟁을 세 번 치렀다. 특히 에콰도르 사람들의 페루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한 편이다. 축구에서 두 나라 국가 대표가 붙으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못지않게 열광적으로 된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는 한때 하나의 나라였지만 나뉘었다.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 반군을 지원하면서 감정이 좋지 않게 됐다. 대통령도 중남미에서는 보통 보수적인 대통령이 나오지만, 베네수엘라는 반미주의자와 좌파로 구성되어 물과 기름 같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경제 파탄으로 콜롬비아와의 사이가 더욱 나빠졌다.
 
볼리비아와 칠레도 전쟁을 치렀다.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해안 지대를 칠레에게 빼앗겼는데, 이로 인해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 전락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칠레에게 빼앗긴 안토파가스타 지역만큼은 반드시 되찾아 해양국가가 되겠다는 복토의 꿈은 볼리비아로 하여금 칠레와 국교조차 맺지 않게 했다. 바다가 없지만, 해군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관계는 삼국동맹 전쟁에서 패한 파라과이가 자국의 영토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빼앗긴 역사로 인해 앙금이 남아 있다.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도 비슷하게 영토전쟁을 치렀던 적이 있어 사이가 좋지 않다.
 
▲가나의 아크라에서 바이어와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사진 왼쪽이 필자. [사진=필자 제공]
아프리카도 이웃나라와 갈등 많아
 
아프리카에서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 국가는 남수단과 수단이다. 종교와 역사, 언어 등이 모두 다른 이 두 나라는 1956년에 하나의 수단으로 통합되었지만, 2011년 분리되었다. 수단은 이슬람 국가이며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남수단은 기독교 국가이며 영어를 사용한다. 본질적으로 다른 두 나라가 영국에 의해 식민지 정략으로 합병되었다가 다시 갈라선 것이다. 
 
특히 아비에이(Abyei)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내전까지 발생했고 2013년 10월에는 아비에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단과 남수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수단을 지지하는 아랍계 미세리야족이 불참하고 딩카족만 참여한 투표에서 99% 이상이 남수단으로 귀속되는 것에 찬성했으나, 수단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분쟁의 소지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미비아도 사이가 안 좋다.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일이 1,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남아공의 식민지가 되었다.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를 적용하여 나미비아 흑인들을 강압적으로 억눌렀다. 이에 나미비아 국민은 저항했고 1990년 독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국경하천인 오렌지강을 두고 분쟁 중이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2018년 전격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사관 개설 및 항공노선 개통 등 우호적인 관계로 변했지만, 에리트레아인들은 에티오피아의 지배를 받은 경험과 오랜 전쟁으로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단시간에 그런 감정이 해소될 수는 없는 법이다.
 
우간다와 케냐도 빅토리아 호 안에 있는 작은 섬들과 호수 수역을 두고 영유권 분쟁을 하고 있다. 케냐와 남수단은 케냐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일레미 삼각지구(Ilemi Triangle) 영토문제로 갈등이 깊다. 케냐가 남수단의 독립을 지지하지만, 두 나라는 영토문제로 오랜 기간 분쟁이 있었다. 또한, 케냐인들의 남수단 난민들에 대한 억압으로 인한 앙금이 이어져 오고 있다. 
 
리비아와 이집트, 말라위와 탄자니아, 모로코와 알제리 등도 영토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모잠비크와 말라위 관계에서처럼 아프리카의 국가 간 분쟁과 내전은 아프리카의 복잡한 탄생에서 기인한 점도 있다.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아시아 및 중동에서도 이웃 나라와 분쟁은 피할 수가 없다. 출장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사사로이 이웃 나라에 대한 언행을 표출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안 된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여행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에 대한 공공연한 칭송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유의해야 할 사항이나 문화의 차이점에 대해 알고 간다면, 그게 비즈니스이든 여행이든 별 문제점이 없을 것이다.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공교롭게도 세계 어디에도 옆 나라와 사이가 좋은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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