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조건과 중재조항에 대한 소고(小考)
 
 
지난 호에 실었던 ‘뒤집어 생각해 본 수출대금 결제 방법’에서 필자는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이론으로만 배웠던 결제조건들이 현실 세계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번 호에서는 운송조건과 중재조항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던 무역상식이 현실에서 배치되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수출자에게 CIF보다 FOB가 유리하다?
 
수출계약에서 무역거래조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송조건은 CIF와 FOB일 것이다.
 
CIF(Cost, Insurance and Freight)는 ‘수출업자가 화물을 선적하고 운임과 보험료를 부담하는 무역거래조건’이고, FOB(Free On Board)는 ‘계약상품의 인도가 수출항의 본선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무역거래조건’으로 바이어가 운임과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보통 우리는 CIF보다 FOB 조건이 수출자에게 유리하다고 알고 있다. 수출품을 배에 싣기만 하면, 운임과 보험료는 물론 예기치 못한 위험도 모두 바이어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지역이나 바이어에 따라 두 가지 운송조건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운송비를 지불 여부 때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CIF 조건에서는 수출자가 운송업자 지정 등 운송에 대한 옵션을 가지고 있고 FOB 조건에서는 수입자가 이 옵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아래 사항을 살펴보고 조건을 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수출자에게 CIF 조건이 유리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적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다. 
 
그 이유는 예정된 날짜에 생산을 맞추지 못해 선적일을 연기해야 할 때 일일이 바이어에게 딜레이 된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적합한 날짜를 잡아 선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을 바이어가 모두 알게 되면 수출자에 대한 바이어의 신뢰가 허물어질 수 있다. 
 
만약 CIF로 진행을 한다면, 수출자 입장에서 그런 불편을 줄일 수 있고, 다양한 기술(?)로 날짜를 맞출 수 있어 신용도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신용장 조건으로 거래할 때, 선적서류를 빠른 시일 내에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금 경색이 발생할 때 은행 네고(NEGO) 시점이 중요한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CIF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FOB 조건일 때에는 바이어가 선사를 지정하는데, 이 경우 선사가 모든 면에서 까다롭게 업무를 하므로 서류를 빨리 받기도 힘들고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셋째, 운송요금이 저렴한 지역일 때에는 CIF를 제시하여 바이어에게 좋은 가격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수출자에게는 FOB 조건이 유리하지만, 특히 유리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운송요금이 과다하게 높은 지역으로 수출할 때다. 이 경우 FOB 조건으로 수출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수출품 가격이 낮을 때다. 이때도 FOB를 이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만약 20ft 컨테이너 수출 총금액이 미화 7000달러로 낮은데, 머나먼 중남미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수출한다면 운송비가 3000~7000달러에 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경우 필히 FOB 조건을 사용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유리하다. 
 
셋째, 운송비가 불안정한 지역으로 수출하는 경우다. 
 
운송비 변화가 심해 계약 당시에는 운송비가 저렴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두 배 상승하는 지역으로 수출하고자 할 때에는 가능한 한 FOB 조건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이렇게 운송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코로나19와 글로벌 물류대란 이후에 과도한 운송비로 인해 모든 수출입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남미로 수출할 때 운송비는 과거 3500달러에서 최고 1만3000달러까지 올랐고, 미국 서안으로 가는 해상운임은 2500달러에서 1만2000달러까지 인상됐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과다한 운송료로 인해 수출을 포기한 사례도 여럿 생긴 만큼 운송료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필자의 경우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 이상 해외 출장을 통해 상대 바이어를 점검한 후 거래한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바이어 사무실에서 미팅 후 포즈를 취했다.(2016년) 사진=필자 제공
중재조항을 넣는 것이 안전하다? 
 
아마 대부분의 무역인들은 수출계약서에 중재조항(Arbitration)을 넣는 것이 필수라고 배웠을 것이다. 매우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거래에서는 한 번 더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경우도 있다. 
 
30여 년 동안 수출입을 해온 필자는 수입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수출자가 중재조항을 계약서에 넣으면 거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무역거래의 기본 요소일지라도 상대방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됐다. 
 
특히 신용장 거래에서 상대 수출자가 중재조항을 계약서에 넣자고 하면 수입할 상품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된다. 아마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 이상 해외 출장을 통해 상대 바이어를 점검한 후 거래한다. 
 
그러면 이런 중재 조항이 필요 없다. 바이어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고 믿을 수 있다면, 단지 계약서만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중재조항을 넣는다고 해도, 그 조항 덕분에 계약은 안전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조항은 항상 차선책에 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재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할 때와 삽입하지 않아야 할 때는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수출자로서 중재조항을 계약서에 넣고 싶다면 수입자의 동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좋다. 
 
이때 첫 거래라면 중재조항을 넣자는 제안이 상대방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새겨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황을 잘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수출자 입장에서 일부러 중재조항을 넣을 필요가 없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기타 사유가 생길 수 있는데 굳이 불리한 중재조항을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역관련 서적이나 강의실에서는 중재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수출하는 상품이 대형 금액이 아니라면 넣지 않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어가 중재조항을 요구하면 당연히 넣어야 한다. 
 
셋째, 국제기준의 국제물품매매계약 약관을 보면, 만약 수출자와 수입자가 중재조항이 없이 계약을 체결했는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중재는 계약 당사자의 국가에서 행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수출계약이나 수입계약을 할 때 중재조항이 자동으로 성립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넷째, 바이어가 계약 수량을 보내오면, 수출자는 견적송장(PROFORMA INVOICE) 또는 판매계약서(SALES CONTRACT)를 작성해 바이어에게 보내고 서명을 받으면 자동으로 중재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다섯째, 중재를 과신하면 안 된다. 
 
전 세계에서 행해지는 중재의 현실을 보면 일부 선진국들을 제외하고 부당한 판결이 많이 난다.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려는 배심원들이 많고, 또 전문적인 배심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재까지 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무역분쟁 예방법은
 
국제무역에서 모든 상황이 교과서대로 전개되면 좋지만, 무역분쟁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바이어로부터 받는 클레임의 대부분은 제품불량이다. 아무리 열심이 제품을 생산하고 철저히 관리를 해도 불량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로 많은 클레임은 납기지연일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원부자재 수급이 어려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납기를 잘 맞추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결국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품질 수준을 유지하고 납기를 잘 지켜 클레임 소지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고의로 여러 핑계를 만들어 클레임을 제기하고 대금지급을 미루는 바이어도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이런 악덕 바이어는 코로나19 시기에 더욱 증가한다. 
 
수출자 입장에서 일일이 그들과 중재재판을 통해 대금을 회수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만약 한국에서 중재재판을 한다고 하면 그런 수고를 덜 수 있지만 타국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진행해야 한다면 시간과 비용 낭비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10만 달러 이하 거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중재를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차라리 바이어와 직접 협상해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어떤 바이어라도 직접 만나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면 해결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중재조항에 얽매이기보다는 의심이 가는 바이어나 수출대금 회수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지역으로의 거래는 수출보험을 부보하여 위험을 줄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중재조항을 계약서에 넣어 무역에서 위험을 헤지(Hedge)하는 것은 차선이다. 믿지 못할 바이어라면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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