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유대상인, 자인(Jain) 상인
 
 
●‘불살생’의 교리가 낳은 세계 1000만 자인 네트워크 = 인도 4대 상인 집단으로 마르와리(Marwari), 구자라티(Gujarati), 파르시(Parsi) 그리고 자인(jain)을 든다. 이중 마르와리와 구자라티가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Rajastan)주와 구자라트(Gujarat)주를 배경으로 한다면, 파르시는 인류 최초의 일신교로 이야기되는 배화교(조르아스터교), 자인은 자이나교란 종교가 낳은 상인 집단이다. 
 
신만 1억이 넘는다는 종교의 땅 인도에서도 자이나교는 아주 특이한 위상을 가진다. 2011년 인도 인구 센서스 기준 인도 자이나교는 450만 명으로 인도 인구의 약 0.3%를 차지한다. 해외의 자이나교 500만을 합치면 전 세계에 약 1000만 정도의 자이나교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르시 탄생의 배경이 인접 이란과 조로아스터교라면, 자인 상인집단은 불교와 비슷한 2500년 전통을 가진 인도아대륙의 수행, 고행전통의 산물이다. 
 
신성을 품은 히말라야와 갠지즈 강물이 드리운 인생과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인도의 고행, 수행 전통의 뿌리가 됐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인도의 수많은 고행 수도 전통 중에서도 인도 북동부 갠지즈 중하류 지역에서 발원했다. 그리고 불교는 세계 종교로, 자이나교는 인도의 6대 종교로 발전했다. 
 
자이나교는 이 고행 수행계열에서도 가장 극단의 수행과 구도 전통을 지닌 종교다. 세상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고 돌과 물, 풀, 식물, 인간에 깃든 영혼과 생명의 정도가 다르다고 믿는다. 자이나교의 출발은 이 생명을 죽이는 일을 가장 큰 죄를 짓는 일로 여기는 물활론과 불살생의 교리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나 불교의 불살생 관념도 깊지만, 특히 자이나교는 해충을 포함한 동물은 물론 식물의 뿌리까지도 살생의 범주로 간주한다. 해서 많은 자인교도, 자인상인 식단은 양파, 마늘, 당근 등 일체의 뿌리식물을 제외한 극단의 채식으로만 꾸려진다. 
 
채식만 하면 모두 홀쭉할 것이란 선입견도 틀렸다. 채식에서 오는 부족한 단백질과 기운 없음을 보충하기 위해 많은 음식을 기름에 튀기다 보니, 배가 불룩한 자인교도나 자인상인을 북서인도 현지에서 자주 접한다.
 
▲2021년 4월 항공기에서 내려다 본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Ladak)주 지역. 필자 직접 촬영.
●개미 한 마리 못 죽이는 0.3% 인구가 인도 세금의 3분의 1을 낸다 = 인도 북서부, 파키스탄과 접경하고 있는 구자라트주는 인도 경제수도인 중서부 항구도시 뭄바이와 함께 자인교도 및 자인 상인집단이 집중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다. 
 
2018년 구자라트주 경제수도인 암다바드에 인도 내 6번째 KOTRA 무역관을 개설할 때의 일이다. 필자는 무역관 예정지와 가까운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별도의 입주면접을 거쳐야 했다. 내 돈 내고 들어가는데 입주자 대표회의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면접장에 가보니 회장님을 포함한 임원진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특히 음식관련 질문이 많았다. 인터뷰 결과는 보류였다. 황당해서 알아보니, 약 80여 가구인 이 아파트 소유·입주자 대다수가 자인교 및 자인상인 집단으로 자기들끼리 허용하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채식을 하는 임차인이어야 한다는 묵계 내지 전통이 있는데, 동양의 육식동물이 들어온다니 그리 된 같다.
 
결국 두 번째 면접 때 필자가 채식을 즐겨한다는 점과 KOTRA가 정부 공공기관이며 필자가 한국과 구자라트주간 교역증진에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후에야 입주할 수 있었다. KOTRA가 인도에서는 대사관 부속기관이고 그에 따른 신분지원도 입주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수천만 원에서 억 원대의 외제차가 한 집 당 2~3대씩 되는 주차장에서 인도 국산차(정확히는 1,400cc 인도산 현대차)는 내 집 한 곳뿐이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내내 음식에 신경을 써야 했다. 아파트 안뿐만 아니라 밖 어느 곳을 가도 온통 풀뿌리 계열일 뿐 고기가 섞인 식당은 가물에 콩 나듯 찾기 어렵고, 가 보아도 맛이 없었다. 
 
여기에 구자라트주의 공식 금주가 더해졌다. 구자라트 주 자체가 간디와 모디 총리를 배출한 힌두 원리주의의 뿌리지역이고 자인교 영향력도 매우 커 더해진 결과였다. 
 
암다바드 1년, 그리고 이어진 뉴델리 2년을 통해 90% 채식주의자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사람과 집단을 분류할 때 채식주의자(Vegetarian)와 비채식주의자(Non-Vegetarian)란 구분도 괜찮은 구분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극단의 불살생 자인 교리가 낳은 것이 현재의 자인상인 집단이다. 자인교도는 인도 내 500만, 해외 500만 도합 1000만에 달한다. 이들에게 교리상 살생이 수반되는 농업, 사체와 연결된 수공업, 사람을 죽이는 군대는 논외의 대상이었다. 
 
오직 열려 있는 길은 상업과 금융업, 그리고 가르치는 직업뿐이었고 수천 년 상업, 금융업 전통을 대를 이어 쌓아 왔다. 자인교도, 자인집단의 약 95% 전후가 문해율 그룹이고, 최하층 천민계열의 자인교도는 매우 드물다. 
 
이들이 인도 세금의 3분의 1을 낸다고 회자된다. 500만 인도 자인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지난 11월 <포브스(Fobes)>가 발표한 1200억 달러 자산의 세계 4위 부호 가우탐 아다니(Gautam Adani)다. 1988년 창업 이후 Adani Adani Ports, Adani Power, Adani Green Energy 등을 통해 인도 인프라와 그린산업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외 세계 제일의 영자신문 의 Sahu Jain, 1980년대 인도의 IT아웃소싱을 최초로 정립한 Patny, 그리고 인도 정계의 2인자 Amit Shah 내무장관도 자인교도다. 
 
2500년을 넘는 전통으로 자인교 내에서도 극단 내지 전통을 추구하는 나체파, 백의파 등 많은 지파로 갈리고 내부 규율과 위계도 엄격하다. 주로 인도 북서부, 중서부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자이나교 사원 내에 안치된 창시자 Maha Vir 상을 보면, 통상 우리가 아는 부처님 상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또 전체적인 자인사원의 구도나 모양도 힌두교 사원과 구분이 모호하다. 
 
여름 몬순 기간 ‘Muni’라 불리는 벌거벗은 자인 수도자(Jain Monk)들이 이 마을 저 마을 도보로 움직이는 모습을 인도 북서부에서 접할 수 있다. 이들은 나체로 이동하면서 복을 마을사람들에 나누어 주고 수행도 겸하는데, 살생을 피하기 위한 이동과정과 지극정성으로 수발하는 자인 여신도들의 지난한 과정을 보면, 인도가 종교의 나라, 그리고 종교가 개인적 신앙을 넘어 사회적 현상임을 실감하곤 한다.
 
●Jain, Shah, Metha 등이 대부분 자인상인집단 = 인도 500만 자인교도를 포함한 전 세계 1000만 자인 네트워크도 매우 공고하고 탄탄하다. 
 
JITO(Jain 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본부가 인도 경제수도 뭄바이에서 설치돼 국내외 주요 지부를 엮어 각종 학술대회나 체육대회, 2세들을 연결하는 교육, 친목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해외 구매사절단도 수시로 파견한다. 
 
2020년 상반기 아다니 회장의 부인을 단장으로 하는 50여 명의 대한국 여성 구매사절단이 추진된 바 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된 바 있다. 
 
JITO 총회가 열릴 때 인도 총리의 참석은 거의 필수고, 이때가 되면 를 포함한 인도 주요 신문에 자인교 관련 기사가 줄을 잇는다.
 
자인상인 집단 대부분은 금융, 무역, 도소매 업종에 집중 종사한다. 급여생활자보다 못해도 자기사업을 선호한다. 물론 인도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제조, 인프라 쪽 자인 기업도 많다. 
 
구자라트의 공업도시 수랏(Surat)은 세계 다이아몬드의 약 90%가 가공되고 있는 세계 다이아몬드 가공 수도인데, 이곳 주류 다이아몬드 업계가 자인 계통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일반 대중에게도 자인은 부자집단이란 인식이 일반적이다.
 
자인교의 불살생 교리로 자인 상인집단의 상도덕 내지 상관행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인도 주식시장 사기 및 외화반출 사고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사람들 또한 자인상인이다.
 
자인상인과 교류할 때 여러 가지가 까다롭고, 또 신뢰관계 형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오래간다. 맺기가 어렵지 일단 맺으면 사업관계 여부를 떠나 10년 이상 관계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어떤 사람이 인도 자인상인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오로지 채식으로만 마련한 식사를 했는데, 그 자인상인은 대화 도중 오간 어느 소스 성분을 듣고는 귀국 후 일주일간 자인사원에 들어가 그 죄를 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인 상인 대부분이 해외 출장 시 음식을 직접 마련해 싸간다. 
 
디아스포라(Diaspora) 측면에서 이란계 이주 집단인 6만여 인도 파르시를 유대계와 비슷하게 본다. 하지만 정치, 경제적 영향력, 인구, 습성상 500만 인도 자인상인은 유대상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명함을 받았을 때 마지막 성에 ‘Jain’이 있으면 거의 자인상인이라고 보면 된다. 그밖에 샤(Shah), 사라바이(Sarabhai), 도쉬(Doshi), 메타(Methta)도 자인상인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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