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내 한식산업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 문화콘텐츠를 소비하거나 한국을 여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식을 접하는 대만인들이 늘면서 음식의 맛과 서비스 품질에 대한 기대와 기준도 높아지고 있다.
대만 내 한식 시장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회복되는 대만 한식 시장=대만 한식 시장의 연간 영업액은 약 90억 대만달러로 추정되며 계속 성장 중이다. 대만의 외식업 플랫폼 기업 아이셰프의 외식산업 백서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한식 시장 영업액은 2019년 대비 21.3% 증가했으며 방문자 수 또한 23.6%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2021년은 지역 감염 급증에 따른 3단계 방역경보 발령으로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되면서 한식 시장 영업액은 전년 대비 16% 감소했으나 2021년 말 이후 확진 추세가 점차 완화되면서 영업액도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일상 식사로 대접받는 한식=대만의 식품 전문 매체 푸드넥스트가 지난해 4월 약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한달에 최소 1번 이상 한식을 먹는다’고 답했다. 이 중 ‘일주일에 최소 1번 이상’이라는 비중은 20%를 넘었다. 대만에서 한식이 이색적이고 특별한 요리가 아닌 일상 식사를 위한 선택지 중 하나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식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시원한 맛, 얼큰한 맛, 단맛, 짠맛 등 ‘다양한 입맛 취향을 만족시켜줌’이 75.2%의 응답률로 가장 높았다. 이어 ‘메뉴가 다채로움’(50.9%), ‘다양한 무료 반찬 제공’(50.7%)이 뒤를 이었다. 대부분의 대만 식당이 반찬을 별도로 판매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식당은 김치, 콩나물무침, 미역무침 등 반찬이 무료로 제공되는데 이 때문에 ‘가성비’를 중시하는 현지인들의 선호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조사 참가자들이 꼽은 좋아하는 한식은 △한식 바비큐(삼겹살구이, 불고기 등) △한국식 치킨(양념치킨) △비빔밥 △전류 △떡볶이 순이었다. 찌개류의 경우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삼계탕, 감자탕이 인기 메뉴로 꼽혔다. 전통한식 메뉴 이외에도 짜장면, 짬뽕 등 한국식 중식당 메뉴도 대만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대만 음식과 유사한 전류(대만의 파전병), 부대찌개(훠궈) 등이 상위권에 오른 것도 특징이다.
◆‘정통 한식’의 꾸준한 인기=현재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 영화, K-팝이 인기를 끌고 한국을 찾는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직·간접적으로 한식을 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일단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넷플릭스의 작년 상반기 대만 시청률 순위 상위 10위 프로그램에 한국 콘텐츠가 7개 올랐다. 또한 한국을 방문하는 대만 여행객도 꾸준히 늘어 2018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19년에는 약 121만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에 따라 현지화된 한식이 아닌 문화콘텐츠나 여행을 통해 접한 한식을 찾는 대만인이 증가하고 있다. 대만에서 한국 현지식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만에 진출한 한식 프랜차이즈를 찾는 것이다. 대만에는 순두부찌개 브랜드 ‘북창동순두부’, 떡볶이 뷔페 ‘두끼’, ‘얌샘김밥’ 등의 한식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있다. 한국과 동일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만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배달에 적합한 한식’의 선호=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매장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대만 외식산업은 매장 중심에서 매장과 배달·테이크아웃 혼합형 또는 배달·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운영방식의 전환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대만 경제부에 따르면 배달·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식업체 및 음료매장의 비중은 2018년 40.1%에서 2021년 59%로 코로나19 발생 기간 동안 18.9%p가 증가했다. 외식이 줄어든 상황에서 한식 메뉴 역시 고기구이와 2인용 이상 모임용 요리에서 1인용 식사류(덮밥, 비빔밥), 찌개, 김밥 등 배달이 쉬운 요리의 판매가 증가했다.
음식배달 플랫폼 우버이츠가 2020년 1월부터 작년 3월까지 플랫폼에 등록된 한식업체의 주문배달 수를 정리한 결과 상위 10개 중 한국식 치킨점(4곳)과 일반 한식당(2곳) 이외에 순두부찌개 전문점(3곳), 김밥 전문점(1곳)이 순위에 올랐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한국 분식점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지난해 매장을 열면서 배달과 테이크아웃 손님을 우선 타깃으로 설정하고 음식 제공 속도가 빠른 분식으로 메뉴를 정했다”며 “주 메뉴는 김밥인데 최근 한국 드라마에 김밥이 중요한 소재로 나오면서 김밥을 찾는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활발해진 ‘한식 관련 브랜드 제품’ 구매=대만 외식시장에서 한식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현지 유통업체와 식품업체들은 한식 관련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대만 패밀리마트는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유튜버와 합작해 한국 삼각김밥 브랜드를 선보였다. ‘김치제육볶음’, ‘김치오징어볶음’, ‘간장게장’ 세 가지 맛으로 구성된 삼각김밥은 출시 후 한 달 만에 120만 개가 판매됐으며 패밀리마트의 김밥류 제품 영업액이 40% 증가했다. 현재는 비빔밥, 찐빵, 슬러시를 추가해 제품 구성을 총 9개로 늘려 판매하고 있다.
7-11은 작년 7월부터 ‘아시아 식도락’을 주제로 김밥, 비빔밥 외에 잡채, 치즈떡볶이 즉석식품을 판매 중이다. 특히 한국 식품업체가 생산해 직배송한 ‘붉은대게딱지장’은 지난해 기간한정 판매 당시 대만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7-11은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해당 제품을 9만 개로 한정 개수를 늘렸다.
레이스타이완, 카디나, 포테이토칩스 등 감자칩 브랜드들은 김치찌개와 양념치킨 맛이 가미된 제품을 선보인 바 있으며 식품기업 리안화푸드는 대만의 인기스낵 ‘코로코피크랙커’와 ‘파타타’ 제품 중 한국 치킨 브랜드 ‘처갓집양념통닭’의 양념치킨 소스 맛을 곁들인 콜라보 제품을 출시했다.
◆대만 외식업계의 한식당 도전=대만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현지 요식업체들이 자본력과 브랜드 운영 경험을 활용해 한식 프랜차이즈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2016년 설립된 대만 요식업체 레도도는 훠궈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설립 2년 만에 영업액이 10억 대만달러를 돌파했다. 이 회사가 2021년 대만 남부 도시 가오슝에 한식 브랜드 ‘신한도’를 정식 개업한 것. 감성적인 인테리어와 함께 반찬과 음료 무료 셀프바를 제공해 분위기와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현지 2030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찌개, 튀김, 구이 등 다양한 요리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삼계탕이다.
업체 관계자는 “신한도는 대만 기업 브랜드이긴 하지만 한국 음식의 맛을 대만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함께 한식 메뉴를 개발할 한국인 셰프를 계속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대표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왕품그룹 또한 지난해 7월 한식 프랜차이즈 ‘좋아’를 타이베이에 열었다. 대만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셰프와 협력해 메뉴를 개발했으며 60여 개의 한국 음식을 판매 중이다. 이 프랜차이즈는 메뉴 평균 가격이 500~600대만달러(약 2만~2만4000원)로 비교적 비싼 편임에도 20~30대 직장인 사이에서 특히 인기다. ‘좋아’의 매장 운영방식이 일반 한식 요리점과 한국식 술집을 혼합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9시 이후가 되면 모든 식사 메뉴는 술안주로 바뀐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한국 술과 술안주뿐만 아니라 한국식 술 게임까지 즐길 수 있다. 한국에 가지 않고도 정통 한식과 한국에서 유행하는 문화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왕품그룹은 “프랜차이즈 정식 오픈을 앞두고 가오픈을 하자마자 하루 영업액이 약 10만 대만달러에 달했으며 한달 영업액은 500만~600만 대만달러로 예상하고 있다”며 “3~4년 안에 지점을 12개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정보와 교류의 장 전시회=대만 외식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우리 외식업체들은 대만프랜차이즈협회(ACFPT)가 주최하는 ‘대만 국제 프랜차이즈 박람회’를 활용할 수 있다. 매년 5회 개최되는 이 박람회는 대만 외식산업과 프랜차이즈 산업 동향을 파악할 수 있으며 창업과 프랜차이즈 운영과 관련해 회계 및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부스를 신청하면 운영도 가능하다.
대만 프랜차이즈협회 담당자는 KOTRA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 전 박람회에 참가한 외식기업 Y사가 실제로 대만 진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며 “팬데믹 상황이 완화됨에 따라 다시금 한국을 포함한 해외 유수 외식업체들이 참가해 대만 외식시장에 소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올해 첫 전시회는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 타이베이에서 개최된다.
◆우리 기업 시사점=현지 업계 일각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만 소비자들의 입맛에 적합한 한식 메뉴들이 정형화되면서 한식이 종류의 다양성을 잃고 소비자가 느끼는 신선함 또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만 내 한식사업 종사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우버이츠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플랫폼에 가입한 한식업체는 3년 연속 증가했으며 작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70%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대만 외식업 플랫폼 아이셰프의 마케팅 매니저는 한 인터뷰에서 “대만에서 한식업체 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향후 한식 시장은 장기적으로 브랜드 구축이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류를 통한 한식 체험 수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개별 한식업체 고유의 브랜드와 차별화된 메뉴로 재방문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만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업체들은 대만에서 한식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음식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한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메뉴 개발부터 홍보, 한국산 식재료 접근성 향상 등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OTRA 타이베이 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