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일본에서 ‘집콕’ 소비 수요가 커졌다. 특히 가정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이 인기를 끌면서 세컨드 냉장고, 냉동식품 자판기 등 관련 분야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
◆인기몰이 중인 세컨드 냉장고=일본인들 사이에서 세컨드 냉장고가 인기다. 세컨드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한 주요 계기는 코로나19 사태다.
일본 가전업계 단체 일본전기공업회(JEMA)에 따르면 일본 내 냉장고 출하 대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22만6000대, 2019년 25만3000대 등 20만 대를 유지했으나 2021년에는 44만2000대로 2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코로나19로 자택 식사 빈도 증가와 외출 감소로 한 번 외출할 때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커진 것이 냉장고 수요 증가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제품 트렌드 측면에서는 슬림한 디자인의 소형 냉장고가 호평받고 있다. 인테리어 회사와 연계해 짙은 녹색에서 벽돌 문양까지 다양한 표면 디자인 중에서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제품도 인기다.
본체 하부에서 열을 발산하는 구조를 채택해 일반 가구처럼 벽에 붙여 설치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2대를 나란히 배치하거나 위아래로 배치하는 타입의 제품도 등장했다.
◆새로운 트렌드 프리미엄 냉동식품=세컨드 냉장고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듯 냉동식품 시장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냉동식품협회에 따르면 2021년 가정용 냉동식품의 국내 생산량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79만8667톤으로 7년 연속 상승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5.2%의 증가율을 바탕으로 3919억1800만 엔으로 2년 연속 증가했다.
수입 역시 확대되고 있는데 2021년 가정용 냉동식품 수입량은 5.4% 늘어난 5만6406톤으로 6년 연속 증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12.2% 늘어난 416억9600만 엔으로 7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물량, 금액 모두 국내를 앞서는 상승세다.
코로나19가 일본 냉동식품 수요 확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지만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 냉동식품 시장은 감염병 사태 이전부터 꾸준하게 성장해왔다. 이는 핵가족화, 맞벌이의 정착 및 확대, 1인 인구 증가 등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적 변화를 바탕으로 경제성과 편리성이 뛰어난 냉동식품 수요도 꾸준히 커졌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가정 간편식 수요가 급증해 냉동식품 시장 확대가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신제품의 잇단 등장=최근 일본 냉동식품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작년 봄 니치레이푸즈가 새로 내놓은 ‘냉동 중화냉면’이다. 이 제품은 판매액만 10억 엔이 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중화냉면은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대중적인 여름철 계절음식으로 한국의 비빔면과 냉면의 중간 정도 되는 면 요리다. 별도의 조리과정 없이 제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바로 차가운 면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편리성과 기존 냉동식품 라인업에는 없던 중화냉면 메뉴가 등장했다는 점이 화제가 되며 인기몰이 중이다.
기존 냉동식품의 편견을 깨는 고급 냉동식품도 새로운 트렌드로 정착 중이다. 날로 고급화되는 일본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고품질 냉동식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일본 대형 소매 유통기업 이온이 2021년 선보인 냉동식품 자체 브랜드(PB) ‘톱 밸류–스슥 간단하게 만드는 생선요리’ 시리즈는 발매 이후 당초 계획의 1.5배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다.
이 제품은 재료 손질이 어렵고 고령자나 아동에게 생선 가시가 위험한 점 등 생선요리의 문제점을 해소한다는 콘셉트에서 출발했다. 미리 뼈를 제거한 냉동 생선살을 가로×세로 3cm, 높이 1.5cm의 한입에 들어가는 큐브 형태로 가공해 먹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재료 손질이나 해동 작업 없이도 즉시 조리가 가능하고 가시를 바를 필요 없이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유명 음식점 프랜차이즈들이 직접 제품을 감수한 높은 가격의 프리미엄 냉동식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 백화점 체인 마쓰야긴자는 지난 8월 냉동식품 전용 매장 ‘긴자 프로즌 고메’를 열었다. 제품 가격은 2000엔대 전후로 냉동식품으로서는 비교적 비싼 편이 특징이다. 유명한 중화 프랜차이즈 식당의 칠리새우 요리(1944엔) 등 브랜드 파워가 있는 제품을 비롯해 싱가포르 명물 칠리 크랩(5800엔) 등 고급 식당과 유사한 가격대의 최고급 제품도 판매 중이다.
유통기업 이온도 8월 냉동식품 전문 매장 ‘@프로즌’을 오픈해 유명 음식점 셰프가 직접 감수한 소고기 볼살 와인 찜(1980엔)을 비롯해 프랑스의 냉동식품 전문 브랜드 ‘피카르드’의 마카롱 4종(1387엔) 등 고가격대 제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냉동식품 자판기와 무인 매장도 등장=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냉동식품 자판기와 무인 매장도 등장하고 있다. 유통기한이 길어 폐기 손실이 적은 냉동식품의 특성과 24시간 365일 무인으로 제품 판매가 가능한 자판기의 특성을 합친 냉동식품 자판기가 최근 일본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비대면 비접촉 소비를 선호하는 소비자 니즈에 대응함과 동시에 인건비 절감 효과를 누리기 위해 일본 식품업계와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냉동식품 자판기 비즈니스에 진출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냉동식품 붐의 숨은 주역 급속 냉동=고급 식당 요리의 맛을 냉동식품으로 재현해낸 핵심 비결은 다름 아닌 액체 냉동 기술이다. 액체 냉동 기술은 영하 30도의 액체 알코올에 식품 패키지를 담그는 독자적인 방식을 채택한다. 냉기를 통해 식품을 얼리는 일반 냉동방식에 비해 20배나 빠른 속도로 냉동되기 때문에 해동 시 맛의 재현성이 훨씬 뛰어나다.
급속 냉동기 ‘동면’을 개발한 냉동기기 메이커 테크니칸의 창업자 야마다 요시오 대표는 “90도 사우나에서는 화상을 입지 않지만 같은 온도의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화상을 입는다. 같은 온도라 해도 액체가 기체보다 열 전도력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급속 냉동이 가능해지면 생선이나 고기 세포 내의 수분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세포가 파괴되지 않는다. 선도, 맛, 외견 등 모든 측면에서 냉동식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질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크니칸의 동면은 액체에 담그기만 해도 급속 냉동이 가능하며 해동 후에도 방금 만든 요리의 맛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식품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테크니칸 제품을 도입한 기업은 2000개에 이른다. 테크니칸 관계자에 따르면 생선이나 고기는 물론 회, 튀김, 유명 음식점의 요리, 신선한 과일 그리고 일본 전통주 ‘닷사이’까지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가 테크니칸의 냉동기를 거쳐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 기업 시사점=그간 일본 식품업계의 화두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얼마나 잘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였다. 냉동식품은 소비자에게 신선한 상태의 음식을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 선택하는 차선책으로 여겨졌다.
또한 기존의 냉동식품은 짧은 조리시간과 장기 보존 등의 편리성에 치중해 맛은 부차적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급속 냉동 기술의 등장으로 음식의 신선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프리미엄 냉동식품이 속속 등장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밖에서 먹는 요리의 맛을 냉동식품으로도 즐길 수 있게 되면 머지않아 ‘식품의 기본 상태는 냉동’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물론 갓 수확한 신선한 식자재나 전문 셰프가 방금 만든 요리 수요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 최고 수준의 활황을 보이는 냉동식품 시장 역시 아직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 식품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이라면 냉동식품과 관련해 협업이 가능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볼 만하다.
KOTRA 도쿄 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