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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I

한국펄프

kimswed 2023.05.15 06:13 조회 수 : 84

해외에서 전해온 딸의 ‘감동’… 엄마는 수출로 보답했다
 

• 회사 설립 : 1978년(2005년 이경희 대표 취임 및 법인 전환)
• 분야 : 화장지 제조업
• 회사 이름(한국펄프)에 담긴 뜻 : 한국을 대표하는 펄프회사
• 사업 목표 : 사회적 약자가 오랫동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 만들기

 
▲화장지 생산업체 한국펄프는 꾸준히 해외시장 진출을 타진했고 서서히 실적을 내고 있다. 사진은 2022년 6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몽골 바이어 대상 설명회’에서 이경희 대표(가운데)가 한국펄프 화장지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한국펄프 제공]
‘두루마리 화장지도 수출할 수 있을까?’
 
무역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수출단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우선 부피가 너무 크다. 사이즈가 크다는 것은 그대로 물류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화장지의 단가는 정해져 있다. 아무리 기능성이라고 하지만 화장지로 피부 효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없다.
 
올해로 45년 차인 한국펄프. 회사를 이끄는 이경희 대표는 ‘수출 비중이 작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는 힘든 여건 속에서도 수출을 성사시킨 당당한 무역인이다.
 
딸의 전화 그리고 수출
 
첫 수출 과정이 흥미롭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힘든 호주 유학 생활 중 엄마 회사인 한국펄프에서 만든 화장지를 우연히 발견한 것.
 
이경희 대표는 “어느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교회 화장실에 엄마 회사 화장지가 놓여 있었다. 놀랍고 반가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는 말을 들었다”며 “당시 ‘수출은 생각도 못 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화장지는 한국펄프가 수출한 상품은 아니었다. 이 대표는 대리점 가운데 한 곳을 통해 현지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딸의 전화에 자신감을 얻은 이 대표는 수출 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출이 ‘뚝딱’ 이뤄지지는 않았다.
 
우선 호주 시장을 알아봤는데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두루마리 화장지 한 팩의 포장 형태가 국내와 달랐다. 당시 국내는 화장지를 위로 켜켜이 쌓는 세로형 형태였는데 호주의 경우 이전 모델인 단층 가로형이었다. 한국펄프는 이미 모든 생산라인을 세로 포장 형태로 바꾼 상태여서 협상 자체가 되질 않았다. 
 
이 대표는 “호주 바이어를 어렵게 만났는데 세로형 포장 형태로는 유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충북도와 수출지원기관을 통해 해외시장에 지속해서 관심을 보였다. 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에도 나가고 해외 무역사절단에도 참가했다. 그러던 중 해외 지사화 사업을 통해 뉴질랜드 바이어와 연결됐고, 수출에도 성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뉴질랜드에서 세로형 패키지 모델이 유통됐던 것이었다. 
 
뉴질랜드로 수출이 진행되자 얼마 후 호주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호주에서도 세로형 화장지 패키지가 유통되면서 오퍼가 들어온 것이다. 특히 호주 수출 과정에서는 현지에 유학 중이었던 딸의 도움이 컸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이경희 한국펄프 대표는 여러 난관을 뚫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다. 장애인표준사업장 지정회사이자 ESG 경영도 펼치고 있다. 이경희 대표는 “사회적 약자들이 오랫동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준배 기자]
 
▲올해로 설립 45년차인 한국펄프는 정년이 없는 회사로, 현재 정년을 지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경희 한국펄프 대표는 정년이 지나서도 일하는 직원들에 대해 “우리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근무해주신 분들”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사진은 한국펄프 직원이 화장지 배송을 위해 트럭에 싣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펄프 제공]
남다른 이경희 대표의 기업가정신
 
한국펄프는 충북에서 혁신적인 회사로 명성이 높다. 덕분에 이 대표는 충청북도지사 표창, 청주시장 표창, 충청북도중소기업청장 표창, 모범여성기업인 표창, 법무부장관상, 여성가족부 장관상 등 우수 기업인으로 여러 수상 실적을 자랑한다.
 
회사의 대표적인 특징이 ‘정년이 없는 회사’다. 이 대표는 “우리 회사가 올해로 창립 45주년이다 보니 이미 60세가 넘는 분들이 많다”며 “이분들은 숙련공으로 충분히 더 일할 수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우리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근무해주신 감사한 분들이다. 정년을 없애니 이분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져 더욱 열심히 일하신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장애인표준사업장 지정회사로 지난해에만 8명의 장애인을 신규 채용했다. 전체 직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장애인이다. 이 대표는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영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 일환으로 채용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장애인 직원은 대부분 성실하고 퇴사율이 낮아 경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회사는 저소득 장애인 가정을 찾아가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화장지 등 생필품을 전달하는 ‘보듬고 껴안기’ 사업도 펼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는 쉽지 않은 ESG 경영도 전개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의지가 아니면 중소기업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대표는 글로벌 추세인 ESG 경영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필수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회사는 우선 저탄소 시설로 전환했다. 압축기는 탄소배출을 대폭 낮춘 시설로 교체했다. 오래 사용한 조명시설도 고효율 친환경 투광기로 바꿨다. 이러한 노력은 회사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매월 60만 원에 이르는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었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탁월해 에너지 비용을 연간 약 700만 원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거버넌스 체계도 정비했다. 공장장이 이사진에 참여하고 있고, 장애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위해 사회복지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약자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주는 회사가 되고 싶다”며 “열려 있는 회사, 수평적인 관계로 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혁신적인 마케팅으로도 유명하다. 가족 중에 디자이너가 있어 함께 두루마리 화장지를 이용해 드레스를 제작했다. 40년이 넘는 회사의 차별적 기술 경쟁력을 당당히 밝히기 위한 것으로 이 제품은 농협충북유통과 함께 하나로마트에 전시되기도 했다. 또한, 딸이 드레스를 입고 실제로 첼로를 연주하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몇 번의 난관… ‘필사’로 마음 다스려
 
한국펄프는 1978년에 설립됐다. 당시 사명은 ‘잉꼬화장지’였다. 1982년 엠보싱 시스템을 도입하며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하지만 2005년 공장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때부터 2세 경영인으로 이경희 대표가 회사를 맡았다.
 
이 대표는 현재의 한국펄프로 사명을 바꾸고 조직을 정비했다. 우선 공장이 돌아가기 위해 생산설비를 도입했다. 도입한 설비는 당시로는 최첨단인 3겹 데코시스템이다. 과정이 쉬울 리 없었다. 
 
이 대표는 “화재 복구를 위해 은행 대출로 건물을 짓고 생산시설을 마련했다. 그렇지 않아도 화재로 피해가 컸는데 새롭게 투자했으니 정말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화재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2겹 화장지를 생산할 수도 있었다”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밝혔다.
 
여성 기업인으로 레드오션이나 다름없는 제지 분야에서 사업하는 게 만만할 리 없다.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법화경 필사다. 스님의 추천으로 시작한 게 무려 13번을 필사했다.
 
이 대표는 “날마다 법화경을 썼다. 좋은 날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쓰고, 힘든 날은 지혜로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때론 밤을 새워 쓸 때도 있다”라며 “언제부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법화경 13번 필사한 책은 사찰에 봉합해 놓았다. 이 대표는 2년 전부터 법화경에 이어 금강삼매경을 쓰고 있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소박한 계획을 전했다. 이 대표는 “곧 첨단 시설 장비가 들어오는데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사회적 약자들이 오랫동안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사회적 약자도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준배  kjb31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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