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골프는 한때 ‘골프 황제’라 불리던 타이거 우즈의 등장과 더불어 인기가 급상승했다가 그의 몰락과 함께 하락세를 겪었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저널에 따르면 2003년부터 15년간 미국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680만 명 감소했고 1200개 이상의 골프장이 문을 닫았다. 이러다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소모임이 장려되면서 골프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되살아난 인기 속 달라진 한 가지=미 골프재단(NGF)에 따르면 2021년 만 6세 이상의 미국인 중 골프를 친 사람은 3750만 명으로 전년보다 60만 명이 증가했다. 눈 여겨봐야 할 것은 골프 연습장, 실내 골프 시뮬레이터, 탑 골프와 드라이브 섁 같은 오프코스에서 골프를 경험한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코스를 통해 골프에 입문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골프재단은 이들을 온코스와 오프코스 두 가지로 나눠 추적했다. 두 그룹의 숫자 차이는 점점 줄어 2021년 온코스만 즐기는 골퍼는 1260만 명, 오프코스 이용자는 1240만 명이었다. 두 그룹의 숫자는 비슷해졌지만 오프코스만 즐기는 골퍼의 평균 연령이 30세로 온코스 골퍼(45세)보다 15세 낮았다. 젊은 MZ세대 및 여성 골퍼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많이 오프코스를 통해 골프에 입문하고 즐기는 것으로 분석된다.
◆오프코스 성장의 동인 골프 시뮬레이터=골프 시뮬레이터는 가상 환경에서 골프를 연습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다. 실제 경기를 모방해 설계된 세팅으로, 골프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게임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윙을 분석하고 약점을 파악하며 경기력을 높여준다. 골프 시뮬레이터는 실제 골프 경기와 유사한 시각과 청각 자극을 위해 큰 스크린과 스피커를 동반하는데 한국에서는 ‘스크린 골프’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골프 전문지 골프스티드에 따르면 골프 시뮬레이터가 처음 시장에 소개된 시점은 놀랍게도 1970년대이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카메라, 적외선, 센서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실제 온코스 골프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골프 시뮬레이터의 인기도 꾸준히 높아졌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센서는 스윙을 정밀하게 분석해 구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프로 선수들이 훈련도구로 채택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지의 유명 골프장을 가상현실로 체험해볼 수 있고 지형에 맞춰 움직이면서 실제 골프를 치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다양한 시뮬레이터가 등장하면서 골프 애호가들 사이에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계 극복 이상의 잠재력=골프 시뮬레이터 수요가 커지면서 겨울은 골프와 관련 산업의 비수기라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조사, 분석 및 자문 서비스 기관 스트레이츠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골프 시뮬레이터 시장 가치는 2021년의 13억1550만 달러에서 2030년 33억8000만 달러로 연평균 10.1%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초기 실내 골프 시뮬레이터는 연중 꾸준히 스윙 연습을 해야 하는 프로 선수들과 계절의 한계를 넘어 매일 골프를 즐기고 싶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했다. 그러나 세계 골프 코스의 절반이 위치한 미국에서도 오프코스로만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계속 늘면서 전통 골프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더 기반의 골프 스윙 분석기 판매기업 트랙맨의 북미지역 영업부장 코디 밀러는 “초기 시뮬레이터의 최대 시장은 1년 내내 골프를 칠 수 없는 미 북동부, 중서부 및 캐나다였지만 최근에는 애리조나, 플로리다, 캘리포니아처럼 연중 골프를 칠 수 있다고 알려진 지역에서도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존 아메리카의 최고경영자(CEO) 토미 림도 골프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는 것을 관찰했는데 디지털 의존도가 높고 실력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골프 소비자의 행동 변화와 기술 발전이 결합하면서 골프 시뮬레이터 시장의 성장 속도가 늦춰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골프보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운동 이상의 즐길 거리로서 골프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미 골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선두 주자는 탑골프다. 2000년 설립된 탑골프는 반 실내 드라이빙 레인지 형태에 볼링장의 특징을 결합한 ‘골프 볼링장’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색상의 골프공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으로 목표물에 도달하는 정도를 자동으로 추적해 점수를 매기는 게임으로, 골프에 관심이 없던 젊은 세대가 쉽고 즐겁게 골프를 시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탑골프의 2019년 수익은 10억6000만 달러로 6억3000만 달러였던 2017년부터 연평균 29.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0년 전통 골프 브랜드 캘러웨이가 탑골프를 인수했는데 캘러웨이의 CEO 올리버 브루어는 “탑골프는 골프 입문자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시장의 새로운 강자=이터테인먼트는 ‘먹다’(Eat)와 ‘즐기다’(Entertainment)라는 단어가 합성된 용어로, ‘먹으면서 즐기는 문화’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이터테인먼트는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는 아니다. 1970년대 후반 처키치즈와 데이브앤버스터즈 같은 오락실에서 식·음료까지 판매하는 개념으로 처음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 체험경제가 성장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최근 몇 년 동안 음식과 음료가 제공되는 볼링장, 영화관, 드라이빙 레인지와 같은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이터테인먼트 시장을 새로운 버전으로 끌어올렸다. 이어 시뮬레이터를 장착한 골프가 이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조사기관 IBIS월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미 골프 연습장 및 가족 엔터테인먼트센터 산업 시장은 2022년 175억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 3년간 연평균 11.6%의 성장세를 보였다.
KOTRA 무역관이 미시간주에 골프 시뮬레이터를 갖춘 실내 골프시설 티타임스를 오픈한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이미 두 개의 전통 스포츠 바를 운영하던 중 소셜라이팅, 다이닝과 골프를 결합해 골프 애호가뿐만 아니라 비골퍼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실내 골프시설을 시작했다. 그는 “소셜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요즘 미국의 이터테인먼트는 그만큼 핫한 트렌드로, 셰프가 만든 식사 메뉴, 칵테일, 생맥주 등이 특징인 활기찬 스포츠 바 분위기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 프로골프(PGA) 전문가들에게 지도와 레슨까지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했다.
◆우리 기업 시사점=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는 최근 TMRW스포츠라는 벤처기업을 출범시키고 PGA 투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가상현실 골프 리그 ‘TGL’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미국 매체 CBS에 따르면 2024년 1월 처음 시작하는 정규 TGL 시즌은 골프 시뮬레이터를 사용한 18홀의 가상 코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다. 3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뤄 총 18명의 선수가 6개 팀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방식이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로리 매킬로이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골프 시뮬레이터를 도입한 새로운 가상 골프 경기는 어떤 모습일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골프 역사의 시작일 것이라는 분위기 속에 골프 시뮬레이터 시장 역시 골프 드라이빙 레인지 외에 호텔, 리조트 및 일반 가정에까지 다양하게 보급되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예고되고 있다.
2021년 골프채 및 공을 제외한 미국의 골프용품 수입액은 전년 대비 95.8% 증가한 7억9789만 달러를 기록했다. 주요 수입국은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등으로 최근 3년간 수입액이 계속 증가해 미 골프 시장의 성장을 입증했다. 같은 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005만 달러, 111.6%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높은 기술력과 경험으로 골프 시뮬레이터 시장의 강자로 성장한 한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 중인 미 골프 시뮬레이터 시장에서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포지셔닝과 차별화 전략을 통해 시장 진출 기회를 넓힐 만하다는 말이다.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