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의료계에 규모의 경제, 가격 혁명을 도입한 데비 셰티 = 나라야나헬스(Narayana Health)는 2001년 인도 남부 방갈로르에서 시작해 뭄바이, 뉴델리, 캘커타 등 인도 7대 대도시 지역에 21개의 병원과 4300명의 의사, 2만 명의 의료 인력을 구축한 세계 최대의 심장 진료 및 수술전문 병원이다. 
 
2021년 인도 내 극심한 코로나19 창궐 과정에서 노출된 낙후된 인도 의료체계와 참혹한 결과와는 대비되는 나라야나헬스의 대중 친화 의료 철학과 디지털 의료 시스템은 미국 등 서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인도 사례다. 
 
이 나라야나헬스 시스템의 창업자인 데비 셰티(Devi Shetty)는 1953년 인도 IT 산업과 창업의 본산, 벵갈루루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세계 최초로 심장이식을 성공시킨 남아공의 Christian Barnard 이야기를 접하고 평생 심장전문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인도 남부의 또 다른 대도시 망갈로르(Mangalore) 소재 카르투르바 의대(Kasturba Medical College), 영국의 왕립외과대(Royal College of Surgeons)에서 심장전문의 과정을 거쳤다. 
 
▲인도 정부는 2012년 심장 수술의 대중화에 대한 공로로 민간인에게 주는 국민 최고 훈장인 파드마 부샨(Padma Bhushan)을 데비 셰티에게 수여했다. 현재 그의 일대기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서전스 컷(The Surgeon’s Cut)’으로 인기리에 시청되고 있다. 사진은 서전스 컷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홈페이지]
●테레사 수녀와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나라야나헬스 = 평범한 심장의의 길을 걷던 데비에게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 것은 1989년 영국에서 돌아와 정착한 북동부 캘커타에서 테레사(Teresa) 수녀와 연결되면서다. 마침 수술 중 걸려온 이상한 전화에 응대하면서 당시 캘커타에서 빈민운동을 주도하던 마더 테레사를 급히 치료하게 되었고, 이후 그녀의 주치의가 되었다. 테레사 수녀로부터 지식보다 따뜻하게 건네는 눈빛과 전해지는 손길이 환자에게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데비가 인도 및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고향 벵갈루루로 귀환하면서다. 마침 3년여 계속된 인도의 가뭄으로 주변 농촌 인구 대부분에게 절실한 의료 혜택이 단절돼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고심 끝에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정부와 협의해, 한 달에 우리 돈 140원만 지속적으로 내면 필요할 때 심장, 뇌수술 등 수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수출특화 보험을 개발해 150만 명을 가입시킬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시장의 힘, 개인이 집단으로 뭉쳤을 때, 그리고 규모의 경제 위력을 확인한 데비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심장병 분야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통한 대규모 일관 수술과 저렴한 수술체계를 도입했다. 그가 인도에 돌아와 처음 심장병 수술을 시작한 1992년 심장병 수술비는 2000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500달러 수준의 인도 평균소득 기준 4년 소득을 수술비로 투자할 인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데비는 제조업에 도입된 미국 포드자동차의 일관생산 방식을 의료 시스템에 도입하면 수술비를 절반 이하로 크게 떨어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주변과 주정부의 지원으로 심장, 뇌 수술 등 수술에 특화된 병원 모델로 나라야나헬스를 출범시켰다. 
 
현재 나라야나헬스는 6200여 병상을 운영 중이고 심장병 수술에서만 1000여 병상에서 매년 2만 건의 심장병 일관 수술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카르나타카, 구자라트 주정부와 각 5000개 이상의 수술 전문병원 설치 양해각서를 체결, 조만간 총 3만여 병상 병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나라야나헬스 병원 내에서는 에어컨 대신 저렴하고 건강에도 좋은 자연통풍 시스템을 운용한다. 수술복 등 병원운용과 관련된 여타 분야에서 사치나 여분을 없앴다. 그러나 상담, 진료나 수술의 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10만 건이 넘는 심장병 수술경험을 가진 자신의 경험에서 보듯이 나라야나헬스 병원 내 의사들 수준도 수술이 반복되면서 생산성이나 수술의 질, 이후의 회복력도 크게 향상됐다. 
 
현재 NH 산하 심장병에 특화된 병상만 1000여 개로 하루 40여 건의 심장병 수술을 하고 연 1만7000건의 심장 수술을 하고 있어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심장수술자도 통상 평균 2시간 만에 수술을 끝내고 있고, 통상 일주일여 조리 후 퇴원한다. 
 
데비에 따르면 나라야나헬스와 비슷한 수술을 미국의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클리닉(Ohio’s Cleveland Clinic)에서 받는 수술비용은 10만 달러를 넘고 통상 미국 대형병원에서의 심장병 수술은 하루 한두 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극빈층에 대한 구호 재단도 같이 운영 중이다. 자선 단계를 떠나 비즈니스 모델로도 성공해 나라야나헬스는 증시에 상장되어 있고 이에 대한 데비의 지분도 70% 정도로 유지, 병원 운영 철학을 고수하려 한다. 
 
●디지털 진료 모델로 중미 케이맨 제도에도 진출 = 데비가 시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의료혁명은 의료 디지털화를 통한 원격 진료·상담 시스템 구축이다. 이를 위해 그가 시범적으로 택한 곳이 중앙아메리카 도서 국가 케이맨 제도다. 중미 약 30여 개 도서국에 5000만 인구가 7000여 섬에 흩어져 산다. 
 
따라서 한 섬의 인구가 대개 3~5만, 많아야 10만 규모로 구조적으로 섬 거주민 대다수가 의료나 수술 혜택에서 격리되어 생활하고 있었다. 섬 주민들이 NH 자체 통합 정보시스템에 자신의 핸드폰이나 PC를 통해 병력 관련 기록을 원격 입력, 등록하고 연결된 의사들은 원격 화상 시스템으로 환자 진료기록을 보면서 즉시 상담·진료하는 24시간 상시 상담·진료 시스템을 2012년 이후 구축해 놓고 있다. 현재의 110병상 통합 의료센터를 조만간 2000여 병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나라야나헬스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디지털화를 통해 심장별 수술비용 건당 800달러를 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인도 현지어로 왈라(Wala)는 무엇인가를 해 주는 사람, 바바(Baba)는 아빠를 뜻한다. 해서 인도 현지인이 애칭으로 부르는 그의 별명은 ‘바이패스왈라 바바(Bypasswala Baba)’인데, ‘수술을 우회 보증해 주는 아빠’라는 뜻이다. 2009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데비를 “심장 수술 분야의 헨리 포드”라 소개하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2012년 심장 수술의 대중화에 대한 공로로 민간인에게 주는 국민 최고 훈장인 파드마 부샨(Padma Bhushan)을 데비 셰티에게 수여했다. 현재 그의 일대기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서전스 컷(The Surgeon’s Cut)’으로 인기리에 시청되고 있다.
 
●제2의 IT 수출을 꿈꾸는 인도 의료서비스 수출 = 데비에 따르면 현재 인도 심장병 환자의 20% 미만이 공공 및 민간 병원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심장병 수술체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근무시간에 심장병 전문의가 병원에 대기하지만, 이후의 18시간의 대응체계는 일반의나 간호사의 응급조치에 의존하는 단절된 시스템이다. 
 
그에 따르면 의료 디지털 기술과 시스템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퇴근 후 집에서, 또는 이동 중에도 핸드폰을 통해 환자 정보에 접근하고, 원격으로 수술 장면을 시술 의사와 공유, 협의하는 24시간 상담·진료·수술 시기가 곧 도래한다. 자신의 나라야나헬스 모델이 보여 주었듯이 디지털 혁명이 조만간 인도 의료계에 밀어닥칠 것이고 수술 전공의에 대한 수요도 폭발할 것이므로 디지털 교육과 혈관 조영술에 대한 대비가 시급함을 후배들에 늘 강조한다.
 
부진한 제조업 수출 대비 IT서비스 분야의 인도 연간 수출액은 약 2000억 달러다. 중국이 세계의 제조공장이라면, 인도는 서비스 수출 세계강국이다. 인도 정부 당국자 및 엘리트층이 반성하고 있는 분야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도의 서비스 산업 육성 및 수출정책에서 IT서비스만 포함되고 의료 서비스 부문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인도계 의료 인력은 IT서비스 분야와 함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인도 본토 의료서비스 산업이 각종 규제의 덫에 갇혀있는 동안 언어, 전통, 산업기반 면에서 인도에 비할 바가 안 되었던 태국,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의료 관광, 서비스 수출 대국으로 성장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나라야나헬스, 그리고 창업자 데비 셰티가 보여 준 철학과 비전, 그리고 성공 서사는 세계 3대 의료 전통을 배출한 인도 의료 철학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상징이 아닐까 한다. 
 
▲김문영은 1998~2002년, 2018~2021년 인도에서만 8년 동안 근무한 인도 전문가다. KOTRA 서남아지역본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우송대학교 SolBridge 국제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3,000년 카르마가 낳은 인도상인 이야기(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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