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세계에 알리고 싶던 여성, 꿈을 이루다
큰 행사에 참여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이 행사를 기획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은 생각을 잠시 하다가 접는다.
이봉순 리컨벤션 대표는 달랐다. 그의 마이스(MICE) 도전은 ‘내가 기획했다면’을 실천한 경우다.
마이스 분야의 황무지와 같았던 부산에서 2000년에 창업한 이 대표는 20여 년간 부단한 노력으로 리컨벤션을 지역 대표 마이스 기업으로 당당히 올려놨다.
●부산을 세계에 알리고 싶던 여성 = 이봉순 대표는 1990년대에 부산항 컨테이너 터미널 홍보·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며 해외 ‘세계항만협회총회’에 수차례 참가했다. 1주일간 열리는 행사에서 이 대표는 컨벤션 비즈니스의 미래를 봤다. 특히 그의 자랑인 부산을 해외에 알릴 기회라고 느꼈다.
“1주일간 열리는 세계항만협회총회는 낮에는 회의하고 저녁에는 지역 대표 명소를 찾아 그 나라 음식을 즐기며 문화를 접했습니다. 저로서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지만, 달리 보면 큰돈을 내고 현지 문화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게 바로 컨벤션 비즈니스’라고 깨달았습니다.”
이 대표가 마이스 비즈니스 매력에 빠진 순간이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부산의 멋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100여 개국의 수많은 항만인들을 부산으로 불러, 우리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1990년대에도 부산 항만산업은 크게 발달해 외국 항만인들도 부산이란 도시를 알고 있었지만, 어떤 곳인지는 몰랐습니다. 부산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해 우리 전통문화와 음식을 알린다면 외국인들이 분명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산은 대도시면서도 바다를 낀 관광지가 있고, 1시간 이내에 해양·조선·자동차 산업단지가 위치하죠. 해외 어느 곳을 가도 부산만큼 컨벤션을 하기에 좋은 곳은 없습니다.”
●창업… 하지만 난관의 연속 = 이 대표는 도전의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은 소식을 봤다. 부산에 전시장 ‘벡스코’가 2001년 오픈한다는 뉴스였다.
1999년 퇴직한 그는 이듬해인 2000년 리컨벤션을 창업했다. 벡스코 오픈으로 비즈니스 기회가 많을 것으로 기대한 것.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1년 넘게 정부 행사 입찰에 참여했는데 줄줄이 고배를 마신 것.
“쟁쟁한 서울 업체들과 경쟁을 펼쳤는데 레퍼런스(실적)가 없는 데다가 발표에서 사투리를 쓰다 보니 좋게 보지를 않더라고요. 부산 신생업체가 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눈초리였습니다. 자존심에 크게 손상을 입었죠.”
직원을 뽑은 상태에서 놀 수는 없는 상황. 이 대표는 행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2001년 ‘세계음식박람회’를 기획했다. 이 대표는 “당시만 해도 음식 전시회는 없었다”며 “사람들 모두 음식에 관심이 많은데 전시회가 왜 없는지 의아해서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람회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 300개 이상의 부스를 채웠다. 이 대표는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이 ‘와~’하고 놀랄 정도로 성황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실적은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행사 진행 경험이 없다보니 비용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회사 재무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 대표는 “수업료를 엄청 냈다. 창업할 때 모아놓은 돈은 물론 집과 땅도 팔았다”며 “그런데도 돈이 부족해 협력사에 입금을 제때 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놓였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사업하다가 망해서 목숨을 끊는 경우를 그때 처음 이해했다”고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벼랑 끝에서 잡은 글로벌 기업 = 추락하던 회사는 2002년 희망을 찾았다. 2001년부터 줄기차게 메일을 보낸 당시 글로벌 1위 국제회의 기획사인 영국 리드익스비션(Reed Exhibitions) 측에서 연락이 온 것.
이 대표는 “정부 입찰에서 계속 떨어지자 글로벌 기업과 손을 잡는다면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답장이 안 와도 계속 기획서를 메일로 보냈는데, 어느 날 싱가포르에서 리드익스비션 부회장과의 미팅이 잡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싱가포르로 넘어가 리드익스비션 부회장에게 부산의 매력과 컨벤션 도시로의 경쟁력을 소개했다. 이 대표는 “회사가 망하기 직전의 상황이어서 정말 집요하게 설득했다”며 “미팅 말미에는 부회장이 저에게 ‘반했다’는 말을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대표는 그 자리에서 리드익스비션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리드측이 개최하는 행사에 한국관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덕분에 리컨벤션은 리드익스비션의 국제 컨벤션 운영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고, 이 대표는 해외 마이스 업계 관계자들과 인맥을 쌓게 됐다.
●세계항만총회 유치, 꿈을 이루다 = 창업의 계기가 됐던 ‘세계항만협회총회’의 한국 유치 기회는 2007년에 찾아왔다. 차차기 회의인 2011년 행사의 개최지 결정을 위한 자리가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것.
마이스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꾸준히 해외 항만업계와 관계를 유지해온 그는 해양수산부·부산시·부산항만공사와 함께 도전했고, 당당히 유치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 ‘제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순간’이라고 당시 소감을 표현했다.
2011년 부산 벡스코에서 1주일간 열린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부대행사로 펼쳐진 한복 패션쇼에는 세계항만협회총회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진들이 우리 전통 한복을 입고 등장,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 대표는 “총회에 참석하는 많은 분들이 행사에 대해 극찬을 해줬다”며 “마지막 날 야외 행사장에서 폐막 기념 불꽃놀이를 했는데,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 대표는 2021년 수도권 이외 기업인으로는 처음 한국PCO협회장에 선출돼 2년간 활동했다. 이 기간 정부 ‘국제회의 용역 표준계약서’ 도입에 크게 기여했다. 표준계약서는 지난해 도입됐다. 또한 연구개발(R&D)형 행사 개발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업계를 위한 디지털 일자리 양성 예산도 마련했다.
●독자 기획행사로 글로벌 기업 도약 = 리컨벤션은 부산 대표 마이스 기업이다. 특히 해양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현재는 환경·기후변화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지역 마이스 기업으로 부산 이외에 전남 광양과 제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행사를 개최하며 역량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독자 기획행사로 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미 글로벌여성리더포럼, 글로벌해양여성포럼, 행복인사이트 등을 기획해 개최 중이다. 이들 행사를 세계항만협회총회처럼 전 세계를 순회하며 개최하도록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수많은 어려움에도 함께한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우리 직원들이 리컨벤션에서 일의 가치와 즐거움을 찾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설립일 : 2000년 2월3일
• 사명 의미 : 리(Lee·아버지의 성)+컨벤션-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정함
• 대표 행사 : 세계해양포럼, 2030 세계박람회 국제콘퍼런스, 기후산업 국제박람회
• 모토: ‘리컨벤션이라면 가능합니다’-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도 해내는 문제 해결 능력의 중요성 강조
• MICE산업 발전을 위한 한마디 : 마이스산업은 집단지성을 높여 발전시키는 핵심축으로 증명해왔다. 꺼지지 않는 미래산업이다. 믿고 발전시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