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재택을 권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촉발했지만, 전혀 다른 이유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 등 아시아계 직원들은 뉴지지에 거주하면서 맨해튼으로 출근하는데, 그때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폭력은 아니더라도 욕설, 거리에서 밀치기, 갖가지 차별 등은 뉴욕에서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닌 상황에 도달했다. 그래서 회자 되는 용어가 ‘출근수당’과 ‘안전수당’이다. 얼마 전만 해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출근이 선택사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추가 비용이 들어가니 수당을 달라고 하고, 안전에 문제가 있으니 보험료를 달라고 하는 형국이다. 출근을 출장으로 본다니 격세지감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회사는 오래전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오전에 2시간 정도 일찍 나오고 그만큼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당시에는 상당히 혁신적인 방안으로 여겨졌다. 매일 출근카드를 리더기에 찍거나 사인을 해야 했던 시절을 경험한 필자는 교통체증을 피하고 자기 계발에 나머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대단한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출퇴근 시간을 직원 자율에 맡겨 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이제는 재택을 상시화해달라는 것이 사회적인 대세이고 일부는 집에만 계속 있으면 힘드니 나오거나 집에서 일하는 것을 직원의 자율선택에 맡겨 달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 한 공기업 직원의 징계 논의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재택을 하라고 했는데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것이다. 휴가도 아닌데 제주에 가는 것은 근무지 이탈이라는 논리와 어디서든 컴퓨터를 갖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시대인데 제주도든 해외든 무슨 소용이냐는 주장이 맞섰다.
실제로 해외에서 재택근무도 허용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시차가 크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지만. 이제는 휴가도 하루에서 반나절로, 최근에는 다시 시간 단위로 쓰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회사가 무슨 자원봉사단체냐는 관리자들의 푸념도 나온다.
재택근무라는 말도 이제 식상하게 들린다. 탈사무실화를 전제하는 다양한 근무형태가 나오면서 원격근무라는 말로 바뀌고 있다. 근무 장소로 집이나 원격(거점) 오피스는 물론이고 카페나 휴가지를 불문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직은 아주 일부지만 오프라인 오피스 자체를 없앤 기업도 있다. 사무실에 나오는 형태도 유연한 근무 시간제에서 더욱 진화하며 시간 외 근무를 다른 날로 모으고 특정요일을 하루 더 쉬는 주4일 근무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게임업계는 대부분 온라인 작업이 가능하다는 업무 특성에도 불구하고 상시 출퇴근을 의무화하고 있다. 게임개발을 위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하는데 원격근무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택에 따른 부작용도 거론된다. 남편 재택 후에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편이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삼식이’가 되자 뒷바라지가 힘든 아내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재택 초기에는 좋았는데 상시화되니 자기관리, 특히 시간 관리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긴장감도 크게 하락하여 생산성이 낮아지고 주어진 일만 소극적으로 처리하는 업무태도를 양산하고 있다. 더불어 집에서 오래 머물면서 여름철에는 냉방 비용이 급증한 데다 장시간 사무기기를 사용하면서 전기소모도 더 든다고 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 간 접촉을 통해 협업하거나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데 이런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는 점이다. 사실 협업을 위해 사무적인 태도보다 술 한잔하고 밥 한번 같이 먹으며 쌓는 스킨십이 중요한데, 최근 3년 내 입사한 직원 간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서 업무협력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결국 AI(인공지능)를 통해 업무 몰입도를 감시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민영채 | W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