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펫드라이룸

kimswed 2024.06.26 06:34 조회 수 : 1482

클린룸 vs 펫드라이룸.’ 
 
반도체 시설과 같이 절대 청정이 요구되는 공간인 클린룸과 강아지·고양이 등 애완동물의 젖은 털을 말리는 펫드라이룸. 두 단어는 ‘룸’이라는 키워드 빼고는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시각은 달랐다. 클린룸 업계에서 10여 년간 경력을 쌓은 페페의 공동 창업자 신건호 대표와 소완일 연구소장은 클린룸의 핵심기술을 응용, 펫드라이룸을 개발해 호평을 받고 있다. 
 
2018년 창업한 회사는 미국·일본·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지에 상품을 수출 중이다.
 
 
●본업에 충실했던 직장인 = 신 대표는 창업 직전까지 13년간 클린룸 설비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경영기획 파트에서 회사 운영을 지원했다. 
 
클린룸 설비를 깊이 있게 알게 된 것은 2010년대 중반. 필리핀 현지 법인장으로 발령됐을 때였다. 공장이 딸린 법인의 수장이다 보니 기술을 이해해야 했다. 
 
회사는 클린룸의 핵심 설비인 ‘에어샤워(Air shower)’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을 보유했다. 에어샤워는 청정실(클린룸)에 들어가기 전에 옷 등에 붙어 있는 미세먼지를 공기로 떼어내는 좁은 공간이다. 
 
신 대표는 “현장을 수시로 오갔는데 그때마다 에어샤워를 거쳐야 했다”고 전했다.
 
●예상치 못한 창업 도전 = 신 대표의 창업 동기는 싱거웠다. 직장에 열심히 다녔는데 2017년 갑작스럽게 회사가 어려워져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살 궁리를 찾아야 했다. 그때 펫드라이룸이 번뜩 떠오른 것이다. 
 
애견인인 신 대표는 “2015년쯤 인터넷에서 펫드라이룸을 처음 봤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아이템이 있구나’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펫드라이룸이 있었다. 기술 전문가였던 전 직장 동료인 소완일 소장과 대화 중 창업을 결심했다. 
 
신 대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펫 시장이 커질 것으로 봤다”며 “매번 반려동물의 털을 드라이기로 말릴 때, 아이(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펫 드라이의 혁신을 이끌다 = 신 대표가 창업을 결심했을 당시만 해도 펫드라이룸 시장이 크지 않았다. 애완동물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펫그루밍샵 정도만 존재했다. B2B 상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이 딱딱하고 거칠었다. 게다가 가격도 높았다. 
 
신 대표는 “판매량이 많지 않다 보니 가격대가 130만~200만 원으로 비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대중화를 통해 가격대를 60만~70만 원으로 낮췄다.
 
성능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문제였다. 빠르게 말려야 하니 바람의 강도는 셌고, 특히 동물의 얼굴로 바람이 향했다. 반려동물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떠오른 것이 클린룸에서 활용된 ‘공기조화 기술’이다. 클린룸의 먼지를 제거하는 이 기술을 활용, 바람의 방향이 동물의 얼굴로 가지 않도록 했다. 얼굴을 제외한 몸통 등 털이 많은 부분에 집중적으로 바람을 순환시켰다. 공기조화 기술은 특히 적은 강도에도 높은 효과를 발휘한다. 
 
신 대표는 “공기를 잘 순환시키면 강력한 세기의 드라이 성능을 발휘한다”며 유사한 사례로 ‘무풍 에어컨’을 들었다. 페페의 펫드라이룸은 내부 바람의 강도가 세지 않지만, 털을 말리는 성능은 떨어지지 않았다. 페페는 관련 특허를 보유했다.
 
페페는 경기도 하남의 고골이라는 한적한 곳에서 시작했다. 패널로 된 창고 겸 사무실이었다. 신 대표는 “워낙 외진 곳이어서 사람 뽑기가 정말 힘들었다. 면접에 참석만 하면 합격할 정도였다”고 웃음을 지었다.
 
첫 제품은 7개월 만에 나왔다. 클린룸 분야에서 이미 1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둘이 만난 덕분이다. 신 대표는 “소완일 연구소장은 이미 금형을 셀 수 없이 많이 해봤다”며 제품력에 대해 자신했다.
 
●첫 판매의 실망… 하지만 좌절은 없다 = 첫 판로는 소규모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이뤄졌다. 아무리 소규모라도 1억 원 정도 모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3500만 원 정도 유치했다. 가정용 펫드라이룸 시장이 크지 않았던 것. 
 
신 대표는 “생소한 아이템이어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앞으로 어떻게 시장을 열어나갈지 걱정이 컸다”고 소회를 밝혔다. 
 
실망은 신 대표를 자극했다. 더욱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그렇게 해서 출시 첫 달인 2018년 11월에 60개가량 판매됐다. 마케팅을 이어가자, 판매량은 늘었다. 
 
신 대표는 “2019년에는 월평균 150대 정도 판매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2020년에는 기능을 강화한 제품을 추가로 내놓았다.
 
●외국서 먼저 관심 보여 = 우수한 아이디어는 외국 바이어를 자극했다. 미국·일본·인도네시아·싱가포르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신 대표는 “해외 클라우드 플랫폼에 상품을 등록했는데 플랫폼을 지켜보던 외국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소개했다.
 
수출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20년이다. 미국 가전박람회인 CES 2020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태국 바이어를 만난 것. 초도 물량은 2파레트인 12개였다. 
 
현지 반응이 좋았다. 주문량은 24개, 48개로 늘었고, 나중에는 한 회 100개씩 주문이 들어왔다.
 
▲페페는 미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등지에 수출했다. 사진은 지난 4월 부스 참가한 홍콩 가전소비재전시회에서 신건호 대표(오른쪽 첫 번째)와 소완일 연구소장(왼쪽 첫 번째)이 현지 바이어와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페페]
●펫 드라이 분야 글로벌 넘버1 도전 = 페페는 지난해 3-in-1 펫케어 디바이스를 출시했다. 
 
펫 드라이 기능 이외에 애완동물의 털을 빨아들이는 포집기 그리고 공기청정기 3가지 기능을 갖췄다. 해외를 겨냥한 상품이다. 
 
신 대표는 “서양에서는 애완동물을 좁은 공간에 집어넣으려 하지 않는다”고 개발 배경을 소개했다. 
 
최근 독일 전시회에 출품해 이탈리아 바이어를 만났고, 유럽 샘플 테스트에 들어갔다. 기존 해외 바이어들도 관심을 보인다.
 
신 대표는 다양한 펫 제품을 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펫 프렌차이즈 사업을 펼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 대표는 “펫 분야에서 아이템 다변화와 함께 기존 출시 제품에 대해서도 계속 성능 개선 모델을 내놓겠다”며 “5년 이내에 펫 드라이 분야에서 글로벌 1위 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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