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영민의망각의강

kimswed 2008.06.09 14:16 조회 수 : 3191 추천:671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원래 인간은 이전에 완전한 세계, 유토피아에서 살아가던 불멸의 순수한 영혼들이었다고 한다. 이 영혼들 가운데 일부가 뭔가 모를 죄를 짓고 벌을 받게 되는데 영혼세계에서의 벌이란 바로 인간이라는 육신의 감옥에 갇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불멸의 영혼들이 지상으로 유배되어 육체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영혼들이 인간의 육체로 들어가는 벌을 받기 전에 거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그 강을 건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 그 영혼은 이전에 있었던 유토피아의 모든 기억을 깡그리 다 잊어 버리게 된다고 한다. 소크라데스는 그래서 인간의 생애는 영혼을 속죄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죄악을 씻는 벌을 받고 있는 만큼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속죄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불교에서 말하듯이 다음 생에는 또 다시 레테의 강을 건너 인간보다 못한 들짐승이나 벌레의 몸에 갇히는 더욱 엄중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것은 속죄의 기회일 뿐이다 라는 얘기다. 그런데 신은 인간에게 속죄의 기회를 가지라고 육체에 갇히는 벌을 주고서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뭔지 모르게 망각의 강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인가? 과거의 죄악을 알고 있어야 죄를 씻을 수 있지 않는가? 왜 신은 인간에게 죄악을 씻으라고 벌을 내리면서 그 저지른 죄악을 망각하게 하는지 이유를 찾아보자. 아마도 인간이 된 영혼이 저지른 죄악이란 바로 부족할 것이 없는 유토피아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죄목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행복을 위해 노력을 게을리한 태만이나 게으름일 수 있겠다. 따라서 그 죄를 씻는 속죄의 형태는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 그 부족했던 행복을 벌충하라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추론이든 가설이든 간에 어째든 우리에게 내린 신의 벌칙은 행복한 삶을 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니라면 인간의 존재가 너무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생이 단지 과거의 죄악을 씻는 것이라는 기억이 남아있다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구할 길은 없다. 그래서 신은 우리 인간에게 망각의 강을 건너게 하여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역시 망각의 능력을 부여하여 행복의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면 현재의 삶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망각은 바로 행복을 이루기 위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이다. 행복이라는 벌칙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생물에게 주어진 기본적 능력이 망각이라면 신이 우리에게 행복을 누리기 위해 선택적으로 주어진 또 다른 능력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이, 아니 모든 생물이 가장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가 아닌가? 그러나 사랑 받고 사랑하는 일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망각과는 다르다.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성찰 그리고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랑은 선택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을 구할 수 있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연인을 사랑하는 것, 가족을 사랑하는 것,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이 된다. 그러나 한시적이지 않고 항상 행복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사랑의 무기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과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마음을 나누며, 그 삶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결정체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그 삶이란 현재 살고 있는 삶을 말한다. 즉, 과거의 아픈 기억이나 불투명한 미래의 삶이 아니라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의 삶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것으로 행복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벌칙이다. 쉬운 예로, 과거의 연인에 사로잡히거나 미래에 나타날 백마 탄 왕자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연인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행복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모든 신화적 얘기들을 일소에 부치고 “신은 죽었다” 라고 외쳤지만 그가 지향하는 바도 결코 다르지 않다. 그는 신이 인간에게 물었다는 과거의 죄악이나, 신이 약속했다는 달콤한 미래의 유혹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현재의 삶을 사랑하라고 주문했다. 결국, 신이 인간에게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게 하여 육신의 감옥에 가두었건 말건, 그리고 또 다시 짐승이나 벌레가 되어 태어나건 말건 일단 우리에게 기억이 없고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라는 말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새로운 행복을 찾아 베트남으로 길고 긴 행로를 시작한다. 일단 베트남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삶, 새로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자의적으로 베트남을 선택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류 회사에서, 혹은 각급기관에서 잘 준비된 자리에 몸만 들어와 정해진 업무만 아까운 듯이 수행하다 베트남어 한 자 안 배우고 자랑스럽게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진출의 형태에 관계없이 이들이 베트남에서 한가지 공유하는 사실이 있다면, 너 나 없이 이미 베트남 진출 선배들이 땀 흘려 이룩한 교민사회의 인프라를 무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교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한국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거나, 교회나 성당 그리고 절을 찾아 종교생활을 영위한다. 그리고 각종 생활 정보지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무료로 입수하며 생활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에는 이런 기초 인프라에 대한 사의는 담고 있지 않아 보인다. 당연히 있어야 하고 당연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이들의 의식은 그들이 보여주는 교민사회에 대한 냉랭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래도 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은 교민사회에 나름대로 애착과 관심을 보이지만, 일류회사나 각 기관에 파견된 엘리트 인사일수록 교민사회에 대한 관심도는 하향세를 그린다. 단지 회사나 기관의 명성으로 안겨진 자리가 있다면 그저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시늉만 낼 뿐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곳 베트남이란 그저 잠시 머물다 갈 곳이라는 인식이 깊어 아무리 사회가 시끄러워도 강 건너 불구경하 듯 냉정한 자세로 초점 없이 바라볼 뿐이다. 그들에게는 이곳에 오기 전에 누렸던 과거의 영화가 너무나 생생하고 다시 돌아갈 예정된 행로가 있기에, 이곳의 생활은 벌써 스치듯 지나간 과거사로 이미 규정되어있는 것이다. 교민사회의 발전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은 애초부터 그들의 몫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 달리 아무런 기반 없이 들어온 이들은 나름대로 교민사회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낯선 이국의 땅에서의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떨쳐내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현재의 삶에 애착을 보일 여유가 없다. 오직 미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두 경우 다 행복을 구하는 절대 조건인 현재의 삶을, 과거나 미래의 그것에 밀려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한 것만이 금송아지 끌어안고 살던 허망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신기루 같은 미래의 유혹을 이겨낼 방안이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삶의 터전, 이 교민사회에 눈길을 돌렸으면 좋겠다. 교민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폭넓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자신의 사업이나 이곳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저 망각해도 좋을 과거의 흔적처럼 너무 가볍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빤한 부조리가 판치며 우리 삶의 터전을 더럽혀도 나만은 열외인양 남의 일 구경하듯 하는 방관의 자세는 버렸으면 좋겠다. 우리마을을 가꾸듯이,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주고 넘치는 것을 나누며 현재 나의 삶의 터전인 이곳 교민사회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생활에 집중하라는 니체의 말에 부합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안이 안될까? 신의 숨결을 느끼던 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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