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지사장

kimswed 2009.01.04 10:39 조회 수 : 3050 추천:823

치밀한 준비`본사와 연계 발판으로 성공
정승용 지사장과의 일문일답
 
 
 
-베트남 진출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100% 만족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안착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러나 사전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쳤고 한국 본사와의 긴밀한 연계체제를 구축한 게 발판이 됐다. 기존 동종 업계와는 차별화된 유통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입했다. 봉제 관련 제품이 값 싼 중국산 일색이라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한국산 비중을 높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고 자부심도 느낀다. 숙달되지 않은 현지 직원들을 조련하기 위해 많은 투자도 있었고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며 인간적인 정을 나눈 것도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적 불황 여파로 봉제업계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되는데 극복 방안은.

△세계 봉제 수요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미국이 가라앉는 바람에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봉제업체와 우리 같은 유통업체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철저한 공생관계에 놓여져 있는데 봉제업체의 불황을 감안할 때 당장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시도한 봉제기 임대업이 효과를 보이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시장이 살아날 때 까지 우선 철저한 자금 관리를 포함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시대별, 지역별 아오자이(Ao Dai) 변천사

베트남을 상징하는 ‘영원’한 문화코드 아오자이

베트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코드 ‘아오자이’(Áo dài)는 ‘웃옷’이라는 의미의 ‘ao’ 와 ‘길다’는 뜻의 ‘dai’가 합성된 단어로, 글자 그대로 상의가 긴 베트남 전통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베트남 역사 속에서 시대적 변천과정에 따라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며 진화, 발전해 온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형태의 아름다움과 디자인의 가변성에 힘입어 보편적인 복장으로 자리잡아 재료와 색상에 따라 예복, 근무복, 일상복, 여학생 교복 등으로 지금도 폭넓은 사랑받고 있다.

참고로 이전에는 남, 여 구분 없이 아오자이를 착용 했었다. 하지만 남자들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일상 활동에 불편함을 느껴 점차 입는 횟수가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혼례나 제사 같은 특별한 행사나 광고에서만 어쩌다가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최초의 아오자이

가장 오래된 흔적은 응옥루(Ngọc Lũ), 호아빈(Hòa Bình), 호앙 하(Hòang Hà) 지역에서 출토된 북에 그려진 아오 트떤(Áo Tứ Thân), 이는 3천년 전의 그림들 속에 나타난 아오자이의 원형으로 오늘날도 아오자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즉, 베트남의 전설적인 영웅인 쯩 자매가 코끼리를 타고 중국 한나라 침략자들과 싸울 때 아오자이를 입었던 쯩 자매의 영웅적 행위를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네폭의 아오자이, ‘Áo tứ thân’을 입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아오자이가 여성을 위한 국가의 전통 복식으로 자리잡긴 했지만 오랜 세월을 거친 베트남 역사에 비해 아오자이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은 편이다. 남쪽에서는 ‘아오야이’, 북쪽에서는 ‘아오자이’로 발음되는 이 옷은 색깔이나 형태에 따라 착용자의 나이 및 상태를 표시하기도 한다. 어린 여학생들은 그들의 순결성을 상징하는 순수한 백색을, 이후 결혼하기 전인 24-5세까지는 연약한 파스텔 색조, 그리고 결혼한 여자는 자주빛, 초록 등 강하고 부유한 색깔을 선호한다.

아오자이의 원형은 ?

현대 아오자이의 원형은 18세기에 이르러 중남부 지방을 장악한 윙푹코앗(Nguyễn Phúc Khóat) 영주가 찐 영주가 지배하는 북쪽지방 사람들과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여성의 치마 착용을 금지하고 대신 바지를 입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대 아오자이 스타일의 시작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인 1930년대부터다. 당시 화가 깍뚜옹(Cát Tường) 옹이 서양식 스타일의 아오자이 ‘레무’(Le Mur)를 내놓으면서 현대식 아오자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 이 옷은 완전히 서구식으로 재단, 봉제되어 폭넓은 소매와 연 잎 모양의 깃이 특징이었다. 특히 이 옷은 당시 최고 패션 잡지인 퐁호아(Phong Hoa)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어 새로운 개념의 아오자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서구 편향적이라 베트남 전통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60년대 말, 주문 형 등장

이후 4 년후인 1934년에 이르러 유명화가인 레포(Le Pho) 옹이 ‘레무’의 개선에 나서 서구 편향적인 면을 줄이고 전통성과의 조화를 이루어 새롭고도 전통미가 있는 아오자이를 다낭 지역에서 선보여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전통과 서구문화를 조화하여 갖추어낸 이 아오자이야 말로 현재까지 이르는 베트남의 현대식 아오자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30년 동안 새로운 스타일의 아오자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1960년에 이르러 유럽과 미국 패션의 영향을 받아 소매가 길고 바지 가랭이가 넓은 새로운 스타일의 아오자이가 선 보여졌고, 60년대 말에 이르러는 개개인의 개성에 맞춘 개별 주문 스타일의 아오자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다양하게 디자인이 변화되어 갔다. 게다가 옷감도 다양해지고 색상 역시 다양한 변화가 가미되면서 각 부위에 다른 색을 넣어 다양하고 호화로운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가슴과 소매부분은 가벼운 레이스 종류를 활용하여 감각적인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꽃잎무늬가 자수된 원단을 선보여 더욱 고급스런 아오자이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값비싼 실크가 아오자이 원단으로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물결타고 세계로

보통 아오자이는 북부지방에서 보다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에는 이 옷이 일하는데 적절치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한동안 전통의상인 ‘아오자이’ 착용을 금지시킬 때도 있었다. ‘선정적이며 비생산적인 자본주의식 퇴폐복장’이란 이유가 그 중의 하나였다. 그 결과 전후 10년동안 아오자이는 베트남에서 아예 자취가 사라졌다. 한편 아오자이가 본토에서 홍역을 치르는 동안 해외에서 아오자이는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었다. 좁은 소매, 달라붙는 듯한 겉옷, 높은 깃, 바지의 화려한 꽃문양 등과 같은 아오자이의 독특한 요소들은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는 등 해외에서 오히려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영원불멸, 아오자이 부활

이후 베트남이 개방개혁의 물결을 타던 시절인 1989년 후에 페스티발에서 아오자이 패션쇼가 다시 열리면서부터 아오자이가 명예를 회복하고 베트남 사회전면에 재등장하게 되었으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직장여성들이나 호텔 종업원들이 아오자이를 즐겨 입으면서 다시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아오자이는 단순한 베트남의 고착된 전통의상이 아니라 각 시대의 역사적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며 변천해 왔으며, 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스타일의 아오자이로 진화를 거듭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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