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북크럽

kimswed 2009.01.09 09:15 조회 수 : 3221 추천:778



다시 또 새 출발

글 : 호치민 북클럽
  
 
날 새 출발만 하고 앉았으니 진전이 없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래도 꿈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다. 하루를 살아도 호랑이처럼 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란 게 생각처럼만 되어주는 것은 아니라서 가기 싫은 길이라도 가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이고, 하기 싫은 것이라도 억지로 참아내며 견뎌야 하는 것이 인생살이라고 한다.
 
내 형은 처음 들어간 회사에 아직도 있다. 부장은 진작에 달았고 조금 더 있으면 이사가 된다는데, 그런 형이 한 동안은 날 볼 때 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안 좋은 일에 감정 드러내면서 반발하지 말라고 했다. 직장생활은 참는 게 제일감이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기술직이라서 가끔씩 논문도 써내고 하는데, 그걸 상사가 가로채서 자기 이름으로 발표해도 그냥 참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몰라도…
 
내가 느낀 바, 직장생활에도 세 가지 복이 있다. 사업가에게만 복이 있고 운이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들도 직장생활을 넉넉하게 덜 수고스럽게 하자면 역시나 마찬가지로 복이 있어야 하고 운도 좀 따라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첫 번째가 맡은 일이 비교적 수월한 반면에 급여가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도 힘들고 어려운데 월급도 쥐꼬리만큼 밖에 안 된다면 그 일은 그냥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란 이야기다.

두 번째는 직속 상관이 유능하면서도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주라면 자수성가한 사람이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편이고, 같은 회사원이라면 자기 실력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 그렇게 할 줄 안다. 단지 운이 좋았다거나, 물려받은 자리라거나, 낙하산 타고 내려 앉은 자리에 있는 상관들은 대개가 그렇질 못하다.

세 번째는 엇비슷한 지위에 있는 동료들끼리 불화가 없어야 한다. 인사고과 신경 쓰느라 서로 견제하면서 직원들끼리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인다면 그러는 당사자들에게도 스트레스지만 회사에서도 생산성 저하의 요인이 된다. 실제로 겉으로 번듯해 보이는 큰 회사들, 대기업들의 속내가 이렇다.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다녀봤던 회사들을 돌이켜 보면 한 번 정도는 위의 세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직장생활도 해본 것 같다. 그 때는 사회경험이 너무 없어서 유능한 사람 밑에서 보호 받으며 그 회사에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을만한 실력을 쌓을 기회였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그 나머지 고만 고만한 회사들을 다닐 때에는 한 가지, 또는 두 가지가 만족스러우면 어느 한가지는 충족이 안되었다. 업무와 급여가 만족스러우면 직장상사가 거의 정신질환자 수준으로 사람을 괴롭힌다거나, 직장 상사가 괜찮으면 급여가 작다거나, 심지어는 세 가지가 모두 안 되는 터무니 없는 회사도 있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할 줄 아는 것은 쥐뿔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월급이 작다는 타령만 하는 직장인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중에 가장 막중한 최대의 업무인 사람들도 있다. 길거리에서 찬 바람 맞으며 여기 저기에 기웃거려야 하는 구직행렬에 동참시키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제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자면 한국인 회사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전세계 경제가 불황이라지만 우리나라는 걸출한 지도자들 덕분에 유독 더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는데 그 불똥이 베트남에 있는 교민사회에 까지 튀었다는 것이다.

어떤 한인 사업가는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는지 살림살이, 세간 가재도구를 그대로 놔둔 채 일가족을 데리고 몸만 달랑 비행기를 타버렸다고 한다. 또, 구직란은 이 곳도 만만치 않은데 베트남 현지에서는 더욱 심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돌아와 두 다리 뻗을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일런지 몰라도 그런 곳 조차 한국에 남겨두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을 것인지 안타까운 지경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고, 한 달 벌어 한 달 살 것이라면 한국이 그래도 베트남 보다는 나아 보이는데 왜 그 먼 곳에서 그 고생들인지 본인들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몇 일 전에 한국 사람인데 하루에 10만동 벌이하는 로컬 PC방을 운영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웹서핑 하다가 알게 되었다. 그 10만동 가운데 4만동은 처자식 포함한 식구들 하루 식비라고 한다. 10만동이면 한국 돈으로 엊그제 까지만 해도 7000원, 지금은 5~6000원 정도 할 것이다. 그러니 하루 4만동 짜리 밥을 혼자도 아니고 식구들끼리 세끼를 나눠 먹으려면 뭘 먹고 있을 건지 짐작도 안된다.

그 양반뿐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는 번듯한 회사 사장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관련된 크고 작은 잔일거리를 맡아 하면서 그 달을 벌어 그 달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도 지금 같은 경우라면 그 일도 이전 같지 않을 것이 뻔한데 걱정이 다 된다. 내 일은 아니지만 남 보란 듯이 삐까뻔쩍 잘살던 모습들이 아니었기에 하는 소리다.
 

모두가 그렇게도 염려했던 제2의 금융대란이 예전 ‘97년과는 다르게 서서히 진행되는 중이라고 한다. 끝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요즘의 불황이 기업을 하나 둘 문닫게 하고, 그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거리로 쏟아내는 중이다. 좋은 회사던 나쁜 회사던 일단 산 목숨부터 유지하는 것이 제일이므로 내 형처럼 무조건 참고 보는 것이 최고의 처세술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사업을 새로 벌이는 사람은 벌일 것이며, 어쩔 수는 없어도 직장을 새로 찾아야 하는 사람은 찾아야 한다.  모두의 앞날에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한다.
 
<호치민 북클럽 : yiin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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