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생활

kimswed 2009.05.03 03:15 조회 수 : 2915 추천:656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건지,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건지 아리송하다. 돈 버는 일 자체가 삶인 것처럼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돈 버는 일에 종사한다. 아마도 성직자나 그와 비슷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상, 돈 버는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성직자들도 자신들의 소명을 실천하고, 스스로의 안위를 영위하기 위해서라면 돈이 필요하긴 마찬가질 것이다. 다만 그에 필요한 돈 버는 일을 스스로 하지 않는다 뿐,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누구나가 돈이 필요하고 누구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는 일이 돈을 버는 일이고 돈을 버는 일이 사는 일이 되다 보니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고 훌륭한 삶인가 하는 것을 따지는 것도 어렵지가 않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의 삶이 성공한 인생이고 훌륭한 삶이다. 따질 것도 없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조차도, 그들이 남긴 업적을 요즘에 통용되는 재화 가치로 환산할 수 있다면 역시나 얼마던지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의 반열에 올려 놓는데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알렉산더 대왕이나 징기스칸은 자신이 소유한 땅을 넓혔으니 부동산 획득에 열을 올려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이고, 베토벤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은 요즘이라면 지적소유권을 통해 엄청난 거부가 되었을 사람들이다. 박애주의 정신으로 인권운동에 헌신했다던 사람들 조차도 자신들 이름의 유명세로 따지자면 역시나 상표권 같은 저작권, 지적 재산권으로 한 몫을 단단히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세상이 이럴진대 그대, 부끄러워 말고 돈을 벌라!”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실상은 모두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 버는 일에 관련된 일이라면 양심을 저버리는 일도,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일도 용인이 되고 있으니 그렇다. 더욱이 도덕성과 청렴이 중시 되는 사회지도층에 있어서는 더욱더 상황이 심각한 것이 요즘이다. 이제는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 하며, 부패가 무능 보다 낫다 하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정말 그런 사람들이 다스리는 세상에선 돈이 넘쳐나고 누구나가 쉽게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인지는 따져볼 문제기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내가 첫 직장생활을 했던 회사의 오너는 정말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현금 자산만 수천억원, 부동산 자산은 이 나라 상위 1%라는 강부자-땅부자의 반열에서도 최 상단에 이르며, 주식이다 뭐다 하는, 회사를 운영하며 생기는 이윤은 년간 매출액이 조 (兆) 단위를 넘고 있었으므로 이 역시 결코 만만히 볼 수준은 아니었을 정도로 거부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항상 백화점에서 파는 기성복을 사서 바지 밑단을 줄여 입었고, 심지어는 도장갑이 낡아 비서에게 빨아오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베었던 분이라고 한다.

나 같으면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인생을 적당히 좀 즐기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텐데 그 분은 결코 그렇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야 말로 사는 것은 돈 버는 일이란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던 모범케이스 같은 경우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러던 분도 운명의 굴레에선 벗어날 순 없었는지, 어느 날 새벽에 아침운동으로 매일 하던 수영을 하던 도중 뇌혈관계통 장애가 발생해 풀장 안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인은 익사. 아마도 이른 새벽에 수영장에서 혼자 운동을 하다가 당한 변이었을 것이다. 만일 수행원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그런 불행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쩌면 바로 그 근검절약 정신 때문에 자초한 불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 분은 그 동안 모아두었던 어마어마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가 있었으니 어쩌면 나름대로 고생한 보람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씩 신문에 나는 김밥 할머니 이야기, 돌아가시자 유언을 살펴보니 당신의 김밥을 사먹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전 재산을 기부토록 했다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을 숙연케 한다. 그런데 평생을 김밥을 말아 돈을 모았다는 할머니들의 공통점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분들 역시 사는 것은 바로 돈 버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에 다름이 아니다. 규모 면에서 앞서 대기업 회장님과 다를 뿐 본질적으론 같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삼국지 같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들이 돈을 버느라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돈 버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거나 하는 언급은 하나도 안나온다. 그런 묘사가 되어 있는 인물은 영락없는 탐관오리로서 징벌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제 아무리 영웅호걸이라 한들, 정복사업에 밑천이 안들 리가 없다. 책에서는 멋있게만 나오는 영웅호걸들이지만 실제로는 군사를 유지하고 전쟁을 치루기 위한 자금확충에 항상 골몰해 있었다고 한다.
요즘 같아서는 정치자금이었을 당시의 영웅호걸들의 자금확충 방법에는 정복지 주민들로부터 징세를 하는 상투적인 수단 외에도, 선대제국 황실의 묘자리를 파헤쳐서 금은보화 같은 부장품을 수입으로 삼는 도굴사업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위 (魏)나라를 일으켜 세운 조조 (曹操) 같은 경우에는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묘를 화려하게 짓지 말도록 박장령 (薄葬令)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영웅들에게도 돈은 필요했다는 무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다.

김밥을 말아 대학교에 기부하는데 쓰인 돈은 한 2억원 ~ 5억원 정도라고 한다. 신문기사에 그렇게 났으니까. 그런데 조 (兆)  단위 연간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체 하나를 꾸리는데 들어가는 돈은? 광대한 영토를 지닌 제국을 하나 건설하고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일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감히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큰 돈일 텐데, 그런 일을 할 사람은 하늘이 낸다니까 나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돈을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벌지 않아도 부자로 만족하면서 사는 방법은 얼마던지 있는 것 같다. 목축업이 주 산업인 몽골에서는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이 100마리가 넘게 있으면 부자 축에 속한다고 한다. 양과 염소에서 나오는 가죽으로 집을 짓고, 양과 염소에서 나오는 털로 실을 짠 옷을 입고, 양과 염소에서 나온 젖과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양이 100마리 정도가 있으면 그 삶에서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100마리의 양과 염소를 먹여줄 들판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넓기만 하고, 몽골 초원의 거주민 자신들은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유유자적한 삶을 산다. 톨스토이 단편집에 나오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의 주인공 ‘빠홈’이 만났던 땅 주인들이 바로 그런 몽골 유목민들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끝 없이 광대한 땅 가운데 불과 몇 핵타르, 불과 몇 에이커에 자신의 이름을 세긴 푯말을 박고자 그렇게 기를 쓰고 죽을 둥 말 둥 달려야 하는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그에 대한 해답 역시도 ‘빠홈’이 만났던 초원의 거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을 듯… . 

 

신토불이

예전에 ‘허준’이라는 TV 드라마를 통해 ‘신토불이’란 용어가 대대적인 유행을 한적이 있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즉 ‘몸과 땅은 다르지 않다’ 하는 말인데, 그렇게 많은 나라에 가보지는 못했어도 그 곳에서 목격한 바,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환경이 척박해서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못해 야채와 과일 값이 굉장히 비싼 편이다. 식당에서 음식 주문할 때, 메인 메뉴에 야채 샐러드는 별도라서 따로 주문해야 하는데 가져다 주는 꼴이 그 야말로 조막만큼이다. 어린아이 한 주먹 정도의 분량인데 이 샐러드 값이 전체 음식값의 1/3쯤 된다. 우리가 보기엔 비싸도 너무 비싸다.


또 식사량은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 과일 쟁반 같은 큰 쟁반에 노랗게 지은(볶은) 밥을 수북하게 담아 구운 닭고기나 양고기를 얹어주는데(이곳 말로 ‘캅싸’라고 한다) 그 분량이 평일에 내 하루치 식사량을 넘어 보인다. 그걸 이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해치운다. 엄청난 대식가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 곳 원주민들, 현지인들 중에 날씬한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한창 성장기의 청소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99.99%가 배불뚝이들인데, 입는 옷들이 남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원피스 차림이라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임산부들이다. 그것도 산달이 코앞인 낼 모레 당장 아기라도 낳을 것 같은 그런 모습들로 산다. 먹는 것들 때문에 그렇고, 환경 때문에 그렇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예전에 보았던 몽골의 초원은 농사짓기에 적합하지는 않았어도 땅이 드넓고 봄부터 가을 까지는 초록으로 뒤덮여 마치 온 산하에 초록빛 카페트를 깔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그런데 이곳은 그나마도 돌밭 아니면 모래밭이다. 공사할 때에는 좋다. 모래나 석재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전부터 길러왔다는 양들 역시 그다지 통통해 보이지가 않는다. 목양시장이란 곳에 가봐도 양이 몇 마리 없어 보인다.

양이야 사람들이 길러주니까 그렇다고 치고, 이곳에 개는 아예 들짐승 취급을 받는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데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쓰레기통을 뒤진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남겨 주는 음식 쓰레기가 아니면 살아가지 못하는 동물에 개와 고양이, 그리고 특이하게 원숭이가 있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만일 실제 어떤 곳을 배경으로 해서 지어낸 캐릭터라면 그 배경에 아마도 이곳만큼 적합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이곳은 중동지방 가운데에서도 지대가 높은 고원지역이라서 모래사막은 없는데 돌덩어리가 온 천지에 널려 있다. 이곳 시외를 벗어나는 외곽지역 돌무더기 산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데도 원숭이들이 무리를 지어 수십 마리가 산다. 도대체 이 원숭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말 그대로 화과산 수렴동 돌산이 ‘쩍~’하고 갈라지면서 나타나지 않은 이상 어떻게 된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유래가 아리송하다.
 이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가져다 주는 음식 찌꺼기에서 생계를 이어간다. 식당에서 남은 밥, 사람들이 집에서 남긴 음식 찌꺼기들이 이런 곳에서 마지막으로 소비된다. 이곳은 절대적인 존재, 유일신을 믿는 신앙을 가진 곳임에도 사람들 마음씀씀이에서 불교적인 색채가 조금은 엿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모든 종교는 자애심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듯, 크리스천에게도 ‘이웃을 사랑하라’하는 예수님의 분부가 있고 불교에도 석가모니가 설파했다는 ‘대자대비심’이란 게 있지 않는가.

오래는 머물지 못했지만 한 때 잠시 아프리카에 근무하고 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전을 30년도 넘게 치루었다는 그 곳 앙골라는 내가 방문을 했을 2006년도 당시에도 전쟁이 완전하게 끝나지 않아 변경 지역에서는 전투가 벌어진다고 했었다. 지뢰가 너무 많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모든 것이 수입이라던 그 나라에서는 빈부의 차가 너무도 심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깡말라 있었고, 길거리에서는 동물을 볼 수가 없었다. 땅이 사람을 먹여 살려주지 못하니 사람들 살아가는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라가 가난하더라도 최소한의 식량만큼은 자기네 땅에서 난 것을 먹을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게 되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이라면 그 누구던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는 정도가 되어, 내 근무하던 곳에 경비원들 조차도 내게 푼돈 몇 푼 요구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길가다 맞닥뜨리는 모르는 사람 조차도 담배를 달라기에 몇 번 주었던 적도 있다.
치안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어서, 종전에 즈음해서 석유가 개발되어 이곳 사우디 못지 않은 건설 붐이 그곳에도 일고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향한 내국인들의 범죄가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우리가 묵던 숙소와 일하던 사무동에는 경비원들이 실탄을 장착한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야근이라도 하는 차례엔 혼자서 다닐 수가 없었고 가끔씩은 멀리서 자동소총 갈겨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럴 때엔 경비원들이 우리를 향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총소리가 들리자 경비원들이 갑자기 전방경계 자세로 ‘삭~’ 엎드리자 우리도 얼떨결에 놀라서 같이 포복자세로 엎드렸다고 한다. 전날 밤에 야근을 하고 돌아온 어떤 동료가 해주었던 이야기다, 경비원들의 장난에 속았다면서.
우리에게 있어서 신토불이란 건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우리 땅에서 자란 것, 우리 품 안에서 기른 것, 이런 것들이 정말 맛도 있고 몸에도 좋다는 이야기일 테고, FTA를 비롯한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개방에 직면한 지금, 우리 식탁을 지키고 우리 농촌을 지키자는 이야기와도 일맥이 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이곳 저곳을 가 보니 먹는 것이 모두 우리 같지는 않더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먹고, 남들은 못 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닌,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모자라게 먹지는 말아야 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비록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닌 것인지 100% 확신은 할 수 없어도 세상에 어느 한쪽은 차고 넘치고, 또 다른 어느 쪽은 비고 모자라고 한다는 것에 약간은 못마땅한 느낌도 있다는 것이다.

음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현지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본 베트남 말이 콩 득이다. 그 다음이 콩 파이로 모두가 부정적인 의미로서 불허와 부인을 뜻하는 말이다. 베트남에 온 직후였으므로 분위기 파악하기에도 바쁜데 거절 당할 일이 뭐가 있었겠으며 부인 당할 일은 또 뭐가 있었겠나 싶다. 하지만 숙소에서건 어디에서건 자가 들어간 말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우리나라 말 과 베트남 말 이 머리 속에서 빙빙 돌며 서로가 가진 이미지를 조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콩 득은 콩을 득得하다가 아닐까? 혹시 그럼 그 콩이 한자어로 우리말 공空이 아닐까? 공을 얻었으면 아무것도 얻지를 못한 거니까, 뭔가를 부탁했을 때 그게 안 된다는 말인가? 하는 식이다. 물론 이건 엉터리 추론이다. 학술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았고 논리적으로도 허점이 많은 내 공상의 산물이다. 그래도 얼마나 그럴싸한가? 세상에 존재하는 개똥철학은 아마도 모두 이런 식으로 탄생되었을 것이다.

 

호치민을 떠나 온지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든다. 필명을 호치민 북클럽이라고 해놓고도 호치민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함부로 못하는 이유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 보다 오래 남기 때문이다.

어제 그제 베트남에서 알고 지내던 형 동생 몇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전하는데 몇 호 전에 냈던 글의 내용이 화제로 올랐다. 글에서 내 안 좋은 기억을 구성하고 있던 당사자 중에 하나가 그 글을 읽고 노발대발을 하더란다. 아마도 그 때,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에 내게 틈만 나면 하던 협박 그대로 베트남 현지인에게 100불을 주고 내 다리 한 쪽을 잘라오게 하지 못한 것을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은 참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글을 쓰는 나도 익명, 글에서 나타난 본인도 익명이라면 그냥 모르는 척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걸 왜 동네방네 떠버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과거에 어땠었다 하는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할 일이 뭐가 있냐는 것이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어차피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므로 나를 비롯한 당사자와 사건에 얽혀 있던 사람들 몇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도록 배려한 것인데, 그 코딱지만큼의 호의마저도 거절당한 기분이다.

어쨌던 이런 이유 때문에 일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함부로 활자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좋지 않았던 일을 글의 소재로 삼을 때에는 언제나 내 관점에서나 내가 피해자일 뿐이지, 그 사람들 관점에서는 얼마던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물론 동물도 생각이란 걸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처럼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인 사유체계를 갖춘 동물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람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니 만물의 척도니 했을 거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모두가 같지가 않다. 겉 모습이 다른 만큼 속 모습도 다르다. 겉 모습으로 사람을 구분하자면 사람들은 예쁜 순서로 따지기를 좋아하지만 속 모습으로 사람을 따져보라 하면 사람들은 갈팡질팡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에 내적인 모습은 거의 배제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것, 계량화 될 수 있는 것, 가치 기준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 등만 중시되고 있는 세상이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돈 10억 원에 친구는 물론이요 부모 형제도 버릴 수 있다는 사람이 설문 응답자 가운데 무려 7~8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배금주의가 횡횡하는 사회에서는 올곧게 양심 바른 사람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돈 10억 원에 양심을 팔던 뭘 팔던 그 10억 원을 다스릴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10억 원 아니라 100억 원 1000억 원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다 해도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게 얻은 횡재는 땀 흘리고 노력한 가치가 베어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얻은 만큼 쉽게 잃게 된다는 이야기다.

90년대 후반에 벤처 붐이 한창일 때,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사 놓은 주식이 하룻밤 사이에 값이 두세 배가 되는 것을 보며 거의 날이면 날마다 술잔치를 벌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식이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데에는 불과 2~3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때 우리 중에 한 사람이 하던 말이 돈 벌기 참 쉽네 였는데 그 말을 했던 당사자는 지금 열심히 자판 두들기며 출고할 옷 포장하고 있다. 그 형도 땀 흘려 일하는 온라인 의류사업자가 된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왜 나처럼 도착한지도 얼마 안되어 베트남 물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안 된다아니다라는 말을 남발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 이전에 다른 한국 사람들을 닳고 닳도록 만났을 것이다.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숙박업소였으니까. 그 사람들이 만났던 한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고매한 인격을 지닌 훌륭한 분들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이 돈 한푼 이라도 더 벌어 가려고 샘플 보따리, 자재 보따리, 이런 저런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나 같은 장사치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만(장사치 치고는 나는 미숙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 더 이득 보는 것이 자신의 인격 같은 내적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져 보이냐 하는 것 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장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다 보니 그만큼 현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업이 목적이건 관광이 목적이건 낯선 외국을 찾은 사람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안 되는 것은 외국에 나가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라면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둘려 쌓여 있으니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 해방감이 정도를 넘게 되면 방종이 되고 일탈로 흐르기 십상이다.

원래 목적한 바가 그렇지 않은 이상, 언제나 처음의 마음 가짐으로 돌아가 지금 자신이 어떠한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는가를 자문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제 아무리 얼짱 몸짱에 돈이 철철 흘러 넘치는,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마음까지 열어주는 온전한 환대를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 외국에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부모형제 친지자매 이웃사촌에게도 모두 그렇게 때와 장소에 걸 맞는 행동을 한다면 서로들 얼굴 붉히고 언성 높일 일이 하나도 없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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