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탈탄소 움직임 속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제조업 공급과잉이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신산업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EU 등 주요국의 수입규제 강화 조치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8월 21일 발간한 ‘중국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 대응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신에너지 연관 산업인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을 3대 신산업으로 지정하고, OECD 국가 평균의 3~9배에 달하는 막대한 산업보조금 지원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과 규모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최근 자국 내수시장 침체로 인해 공급초과 현상이 발생하자 저가로 제품을 수출하며 글로벌 공급과잉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향후 중국 공급과잉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과잉이 세계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이미 넘어섰음에도 철강‧화학 등 탄소가 많이 발생하는 전통산업뿐만 아니라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탈탄소 신산업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최대 생산역량을 유지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1. 세계의 공장’ 중국, 전통산업 이어 신산업도 공급과잉
철강, 화학 등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의 중국발 공급과잉은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으로서 전 세계 생산량의 과반(2022년 기준 54%)을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중국의 철강 순수출은 약 341억 달러에 달해 10년 전의 고점 수준(2014년 343억 달러)에 근접했으며, 자국 부동산 경기 침체에 의한 철강 수요 위축으로 잉여 생산분을 수출 확대를 통해 밀어내고 있다.
화학제품 중간재의 기초유분인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부터 공급과잉인 상황이지만, 중국 기업의 설비가동률이 80%를 상회해 공급과잉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이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신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적인 육성을 천명한 가운데 전기차·태양광·배터리 등의 산업이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는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했다.
2023년 중국은 954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했으나, 판매량은 841만 대에 그치며 113만 대의 초과공급이 발생했다. 2020년 22만 대에 불과했던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2023년엔 120만 대로 급증했다.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2022년에 종료됨에 따라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보조금 혜택이 남아있는 국가에 공장 건설을 착수하는 한편 수출을 통해 자국 전기차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제조업체의 배터리 생산 규모는 이미 시장 수요를 초과했으며,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만으로 전 세계 수요를 충족하고도 중형 전기차 156만대의 배터리가 남는 상황이다.
태양광 시장에서의 과잉 공급도 지속되고 있다. 2024년 중국의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은 1405GW지만, 중국과 글로벌 태양광 패널 설치량은 각각 255GW와 511GW에 불과해 공급과잉이 계속될 전망이다.
2. 값싼 중국산 막아라… 관세 올리고 보조금 조사 늘려
이에 주요국은 중국의 공급과잉에 대응하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등 전통적 무역구제조치와 더불어 무역확장법 232조 및 통상법 301조 조치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EU는 그간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특정 기업 대상 반덤핑조치를 주로 활용해 왔으나, 최근에는 보조금 조사를 강화하는 추세이다. EU는 공급과잉의 원인으로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목하며, 전기차‧태양광‧풍력터빈에 대한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신흥국들도 수입규제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며 중국산 공급과잉 대응에 나섰다. 특히 인도‧칠레‧브라질‧멕시코 등 중남미에서의 대응은 철강 덤핑 규제에 집중돼 있는데, 실제 라틴아메리카 철강협회(Alacero·알라세로) 홈페이지 보고서 자료를 보면 역내 철강 시장에서의 중국산 점유율은 2000년 15%대에서 지난해 54%로 급증했다.
멕시코 경제부는 2025년 7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수입 철강에 대해 5∼25%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지난해 기습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브라질 역시 올해 철강 부문 관세율을 인상했다. 브라질의 경우 지난해 중국산 철강 수입은 전년 대비 50% 급증한 반면 국내 생산이 6.5% 감소하는 등 업계 타격이 현실화한 바 있다.
콜롬비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철강협회(Camarero·카마레로)가 국내 철강생산 감소 원인을 저가 철강 수입으로 판단해 관세를 5%에서 20∼25%로 높일 것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칠레도 지난 4월 중국산 철강의 덤핑 방지 목적으로 최대 33.5%의 잠정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했다.
태국은 저가 중국산 제품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 1500바트(약 5만5000원) 이하 수입품에 면제되는 부가가치세를 부활시켰다. 또 직구 제품의 연간 수량과 금액을 제한할 계획이며, 온·오프라인 수입품에 대한 반덤핑 대응조치도 확대할 방침이다.
차이 와차롱 정부 대변인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수입품이 밀려들어 국내 업체들, 특히 중소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5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태국 공장 약 2000곳이 문을 닫았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수치다. 매체는 값싼 중국산 제조품 범람으로 태국 내 경쟁 공장이 문을 닫은 여파로 풀이했다.
태국 정부 국가경제사회발전위원회(NESDC)의 수빠붓 사이체우아 위원장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조업 중심 경제 모델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값싼 수입품이 정말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중국이 수출하지 않는 품목 생산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3. 반사이익 혹은 이중고… 국내 산업 영향 주시해야
한편, 보고서는 중국의 공급과잉과 함께 이러한 주요국의 대응조치가 우리 수출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과 EU의 대중국 관세정책으로 인해 일부 산업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의 경우 배터리‧태양광‧석유화학 분야의 시장확대 기회가 예상되며, EU 내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중국 전기차 업체가 위축될 경우 국내기업이 수혜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저가 상품 공급과잉 지속과 주요국의 무역장벽 대응은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를 가중해 우리 기업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조치에 대해 주요국이 글로벌 무역구제조치 형태로 맞대응하면서 무역장벽이 확산해 우리 수출도 영향을 받은 바 있다. 값싼 중국산 철강이 한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국내산 철강은 내수시장에서도 중국산 철강에 밀려나고, 수출시장에서도 중국산과 함께 높은 관세가 부과되는 등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정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과거 미국이 국가안보 및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산 철강에 232조와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한 사례가 있어 중국발 공급과잉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신산업을 대상으로 해당 조치를 발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미국이 추가적인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고 타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자국산업 보호조치를 취할 경우 글로벌 무역환경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우리 기업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