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업용 로봇 산업이 ‘트리플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2022년 연간 수주액과 생산액, 출하액이 모두 1조 엔을 돌파하며 명실상부 일본의 수출 주력 산업의 반열에 올랐다.
1. ‘3개의 탑’을 쌓다 HYUNDAI 로보틱스
일본로봇공업회(JARA)의 ‘2022년 연간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연간 수주액, 생산액, 내수와 수출을 합한 총출하액이 모두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연간 수주액은 전년 대비 3.1% 증가한 1조1188억 엔, 생산액은 8.7% 증가한 1조210억 엔, 출하액은 9.2% 늘어난 1조509억 엔을 각각 기록했다.
일본 언론도 3가지 지표가 동시에 1조 엔을 돌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3가지 지표에 모두 ‘최초’, ‘역대 최고치’ 등의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점에 주목했다.
이 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출하액이다. 일본로봇공업회가 발표한 출하실적 중 수출의 비중은 전년 대비 10.6% 증가한 77.8%였다.
이는 약 8000억 엔에 달하는 금액으로, 현재 일본 산업용 로봇 산업의 상당한 실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재무성 통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용 로봇’(HS 8479.50) 수출은 2022년까지 최근 4년간 연평균 23.6%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멕시코, 싱가포르, 중국, 미국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일본의 최대 시장은 중국이었으며 미국, 룩셈부르크, 한국이 뒤를 이었다.
2. 구인난, 인플레이션 그리고 산업 전환 수요
일본 산업용 로봇 업계의 호황의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주요국 제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극심한 구인난과 생산성, 수익성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팬데믹 이후 미국, 중국 등 주요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억눌렸던 소비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제조, 물류, 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인력 수요가 커졌지만 경제활동 참여율 회복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일명 ‘퇴사 열풍’까지 확산하면서 기업의 구인난이 가중됐다.
또한 통화 긴축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가파른 생산물가 상승을 야기했다. 결국 인력 부족과 이에 다른 수익성 저하가 글로벌 제조기업의 공장자동화(FA) 수요로 나타나면서 일본 업체들이 호황을 맞게 된 것이다.
다른 배경으로는 전기자동차로의 산업 전환에 따른 수요 증가를 들 수 있다. 전기차 제조는 기존 내연자동차와 달리 차체, 구동장치 그리고 차체와 구동 플랫폼 조립에 이르기까지 자동화 로봇과 협동 로봇의 역할이 필수다.
또한 전기차의 배터리 팩 조립과정에서도 수십 개의 배터리 셀을 일정한 압력으로 점착하는 등 로봇을 통해 정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공정이 다수다.
현재 기존 내연차 제조사들과 신규 제조사들의 전기차 생산 확대가 이어지면서 산업용 로봇 수요는 지속될 전망이다.
3. 수요 확대에 대응하는 투자 증가
일본로봇공업회와 재무성 통계에서 보듯 일본 산업용 로봇 업황은 호조다.
4대 글로벌 산업용 로봇 제조사로 꼽히는 파낙과 야스카와전기의 경우 매출액과 순이익이 모두 증가했으며 특히 야스카와전기는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두 기업 모두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나타내기도 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FA 기기 제조사들의 2022년 결산자료를 보면 22개 상장기업 중 매출과 수익이 모두 증가한 기업은 19곳이었다. 이 중 17개가 전년 대비 10%가 넘는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고 14개는 순익도 10% 이상 늘었다.
일본 기업들은 매출과 순익 증가에 따라 제품 고부가가치화와 해외 투자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파낙은 지난 8월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에 사용하는 알루미늄을 박판의 절단부터 조립까지 레이저 용접으로 자동화하는 3차원(3D) 레이저 스캐너 제품을 내놨다. 로봇의 정밀한 제어 동작으로 나사를 이용한 조립과정에 비해 빠르고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주요 장점이다.
또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의 효과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가전제품 등의 주요 생산거점으로 떠오르는 멕시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생산시설을 2배 이상 확대해 현지 진출 기업 수요에 맞는 생산과 납기 준수 능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야스카와전기는 기타큐슈 본사 부지에 200억 엔 규모의 공장을 2024년 착공해 2025년 완공과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야스카와전기는 반도체, 전기차 등 제조공장 중심의 산업용 로봇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을 신축해 자사 생산능력을 1.5배 이상 끌어올릴 계획이다. 새 공장이 본격 가동하면 생산능력은 월 기준 약 800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4. 중국 경제와 공급망은 리스크 요인
일본 산업용 로봇 업계에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중국의 경제 동향이다.
국제로봇연맹(IFR)의 보고서에 2021년 세계 산업용 로봇 도입 대수는 51만7000대이며 이 중 중국이 전년 대비 20% 증가한 26만 대로 압도적 1위였다.
2위 일본(4만7000대), 3위 미국(3만5000대), 4위 한국(3만1000대)의 도입 대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그만큼 크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불안은 발주 물량 감소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일본로봇공업회가 회원사별 수출동향을 확인한 결과 2022년 중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6.5% 감소한 3361억 엔을 기록했다.
일본 업체들은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 이후에도 중국 경제의 회복세가 시장의 기대 수준을 밑도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중국 수요를 예상해 공장 가동률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소 정체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용 로봇에 사용하는 부품 공급망도 문제다. 업계는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 회복되고는 있지만 ‘필요한 부품이 하나 확보되면 또 다른 부품이 부족한 두더지 잡기 같은 상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부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반도체는 어느 정도 수습되고 있지만 산업용 로봇의 핵심 부품인 베어링, 서보모터 등은 해소가 난망한 상황이다.
문제는 핵심 부품을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산업용 로봇에 쓰이는 핵심 부품은 로봇의 특성과 사용 환경에 맞춰 공정을 나누어 생산하는 경우가 많고 높은 정밀도와 기술적 난이도가 요구되다 보니 특정 국가에서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나라에서 대체품을 신속하게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에 따라 공급망을 내재화해 제조환경을 안정시키려는 일본 기업이 늘고 있다.
야스카와전기는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의존했던 부품 생산을 국내로 회귀시키고 전자기기 위탁제조서비스(EMS)에 의존하던 일부 인버터 생산도 후쿠오카현 유키하시 지역에 부품 공장을 통해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5. 우리 기업 시사점
코로나19 이후 제조업 현장의 만성적 인력 부족과 낮은 수익성, 산업계 재편이란 배경 속에서 FA와 산업용 로봇 수요는 세계적으로 확장세다.
산업용 로봇은 본체의 제조, 개발 외에도 부품, 소프트웨어(SW), 활용 연구 등 관련된 사업이 많아 일본 정부도 기술 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산업용에 국한하지 않고 도소매, 유통 등의 분야도 로봇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큰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반면 일본 산업용 로봇의 최대 시장인 중국 경제의 부진과 부품 공급망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중 산업용 로봇에 들어가는 부품은 정밀도와 정확성 등의 이슈로 인해 대체나 범용 부품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일본 로봇 기업들의 부품 부족 문제를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기보다 로봇 개발 단계에서부터 일본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로봇공업회 관계자도 “로봇산업은 부품의 중요성이 크다 보니 부품의 대체 수입처를 강조하는 비즈니스보다는 초기부터 함께 하는 관계 구축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소식을 전한 KOTRA 무역관은 “일본 산업용 로봇 시장 진출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국제 로봇 전시회 2023’(IREX 2023)과 같은 현지 전시회를 찾아 일본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적절한 협력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OTRA 도쿄 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