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째 글을 보내며
다른 사람도 읽게 되는 글을 쓰는 것과, 읽던 말던 아랑곳 없이 그냥 쓰는 것 하나에 만족하며 글을 쓰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이 본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글을 쓰자니 자꾸 미사여구에 집착하게 되고 타인의 저작에서 인용할 것이 없나를 찾아보게 된다. 익명 기고이기 때문에 이름값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이름값 같은 건 있지도 않는 하찮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매번 글을 보내고 나서 이번에도 신통치 않은 글을 보낸 것 같아 괜찮은지 꼭꼭 물어 본다.
하기야 글이 별로 재미가 없으면 이제 기고를 멈출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안타깝게도 내가 지금 있는 곳이 호치민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 반응을 알 수가 없다. 누군가 지나는 말 한마디로 “이 친구 이런 잡스럽고 재미도 없는 글은 왜 자꾸 잡지에 내는지 몰라” 이런 소리 한 마디라도 술자리 옆 테이블에서 훔쳐 들었다면 당장에라도 그 동안 죄송했다는 사죄문 한 번 올리고 노트북 뚜껑 닫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처음부터 하겠다는 말이나 하지 말 것을 하는 생각에 꼬박꼬박 때 되면 이메일로 원고를 날려 보낸다.
바보 같은 내 이야기
최근까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대략 3년 정도를 지냈다. 머리털 나고 첫 직장생활을 하던 크고 괜찮은 회사를 어느 날 갑자기 박차고 나와 같은 부서 과장과 회사를 하나 차리면서부터 나의 인생살이 어드벤쳐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회사를 나오지 말고 그대로 잘 다니는 것이 더 나았을 것으로 생각 되지만 내 천성으로 봐서는 어떻게든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 같다.
아이디어도 있었고, 뒤를 밀어줄 재력가도 있었고, 실무경험도 풍부해서 창업 첫 한 해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잘되어서 창업 동기생들끼리 분란이 일어 1년 만에 회사가 쪼개졌다. 그래서 회사를 한 번 더 차렸다.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간 것이다. 그런데 이때는 뒤에서 돈 대주는 재력가가 없었다. 즉, 투자자와 실무자 간의 분열로 회사가 갈라진 것이다.
그런데 총알 없이 전투에 임하려니 앞날이 안보였다. 나도 돈줄 쥐고 있는 쪽에 남고는 싶었는데 같은 회사에서 같이 나온 과장이 내 직장상사라는 동지애 하나로 고난의 앞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 나보고 전부들 바보 아니냐고 했다. 정말로 그랬다.
그 때에는 거래처가 있어서 일은 할 수가 있었는데, 모두들 평범한 셀러리맨 출신이다 보니 변변한 사무실 한 칸 얻기가 어려웠다. 거짓말이 아니라 두 번 째 창업에 첫 사무실은 인사동 커피숍이었다. 그곳에서 세 명이 차 시켜놓고 핸드폰 켜고 계산기 두들겨 가며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을 적어가며 일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내고 첫 오더를 처리하고 정산 받은 돈으로 책상 3개 놓자 손님이 3명 오면 둘은 앉고 하나는 서 있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오피스텔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나자 정말 소기업 사무실 만한, 책상이 막 남아도는 번듯한 사무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가 일하는 재미가 정말 좋았을 때였다. 열심히 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나자 이제는 번듯한 회사가 되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한 덕에 회사 대외 신인도가 높아져 거래처로부터 해외 오더까지 수주하게 되었다. 이 때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서 1년이 다 되도록 지내봤다.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버려진 땅 같은 오지에도 가야 했고, 바싹 비틀어진 삶은 양고기를 흙먼지 털어가며 주머니칼로 뜯어 먹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 사나흘을 보내기도 했다.
고생이라면 고생이고 추억이라면 추억인데 본국에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돌아와보니 내가 그곳에서 펑펑 놀다가 온 줄로만 안다. 이게 바로 2인자의 어려운 점이다. 밑에서 올라오는 시기와 질투를 극복해야 하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과장이었던 사장이 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랄 정도로 달라진 것을 그 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양반, 회사 밖에서는 사장 소리 듣고 다니고 안에서는 새로 뽑은 직원들이 손바닥 비벼대며 굽실거리는 것을 얼마나 즐겼는지, 불과 1~2년 전에 배고팠던 시절을 다 잊은 것이다. 사장이 순조롭게 끝난 해외공사로 남긴 순익으로 그 때 한창 잘나가던 수도권 신도시에 50평짜리 아파트를 샀다는 이야기를 발주처로부터 역으로 듣게 되었다.
나도 엄연한 주주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내 몫을 요구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 맞고, 몇 푼 안되던 월급 마저도 이유 없이 밀리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그 회사를 퇴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법적으로도 내가 손을 쓸 수 없게 해놓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이른바 배신이란 것을 당한 것이다.
내 청춘은 그 곳에 다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일은 내게 크나큰 타격이었고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게 되었다. 또, 지금까지 이 회사 저 회사를 옮겨 다니며 동가숙 서가식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쓰디쓴 일을 겪었어도 계속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다시 또 일을 도모해야 했다. 마주보는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을 그 후로도 계속 추진해 왔던 것이다. 아직은 성과를 보질 못했지만 언젠가는 될 것으로 믿고 또 바라는 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베트남 생활 3년이 있었다.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하는 이유
베트남에서도 일이 순조로웠던 것은 첫 1년 정도 밖에 없다.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크지 않은 자본에 맞는 일을 찾다 보니 전혀 다른 일에 뛰어들어 베트남에 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만일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였더라면 그런 무모한 짓은 안했을 것이다. 하던 일과 100% 똑같은 일은 아니라도 방계 업종에 비슷한 일이 얼마던지 많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다.
어쨌던 잘 모르는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선택한 사업 파트너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그 쪽 분야에는 뜨내기가 많아 전에 하던 일처럼 상호 신뢰를 전제로 일을 진행한다는 게 결코 수월치 않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끝끝내 일을 그르치고야 말았다. 내게 좌절을 안겨다 준 사람도 나쁘지만 아무 준비 없이 덤볐던 내가 더 잘못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을 잘못 만나리라는 법은 없다. 세상에는 남을 이용만 할 목적으로 상대가 어떻게 되던 자신에게 일방적인 이득만 취하려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성공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루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생애를 통해 목적했던 바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을 보자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결코 혼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 조력자가 있었고 누군가 밑받침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언제고 일을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무슨 일을 겪었던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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