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범죄

kimswed 2009.03.14 08:40 조회 수 : 1476 추천:395



호치민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는 별들이 분명 한국의 별들과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시간은 어느 듯 자정을 훌쩍 넘어서 있다. 아마, 지금쯤은 우리 국적기가 호송 경찰관과 수배자들을 실은 채 활주로를 달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불현듯 오랜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맥이 풀린다. 안도감보다는 허탈함이 앞선다.

지난해 11월, 교민 한 분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교민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던 중 소소한 의견차이가 나중에는 심각한 불신과 갈등으로까지 확산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까지 들었다면서 언제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집 대신 호텔을 전전할 정도로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순수한 채권채무와 같은 민사부분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협박․공갈 등 형사부분은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안심시켜 귀가시킨 후 관련자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결과 의외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자들이 각각 5~6개씩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가 있었고 그 숫자만큼 수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래전에 여권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을 개연성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들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알려진 몇몇 분들을 접촉했으나 진술 자체를 한사코 거부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교민사회가 이들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는 것을 간접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향후 사건처리를 위해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범법자이기는 하지만 교민을 검거해서 강제송환 한다는 것이 교민 보호가 주요 업무인 영사라는 직책과 상충되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과 규정을 위반한 사람들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교민들이 당하는 피해를 묵과하는 것이 오히려 영사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범법자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건전한 교민사회 형성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잡고 강제송환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장장 3개월에 걸친 쫓고 쫓기는 대장정이 시작되었으나 곧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혔다. 이들 중 일부가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공관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선량한 기업인을 핍박한다고 교민사회에 왜곡된 여론을 퍼뜨리거나 정부 요로에 민원을 제기하는가 하면 대담하게도 두고 보자는 식의 협박전화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들의 죄질만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었다. 또 정당한 법 집행이 협박 따위에 굴복할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중 일부는 법의 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혀 오기도 하였다. 주모자 격인 사람들도 자수를 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하여 검거 활동을 일시 중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10년 가깝게 이곳에서 쌓은 인맥 등을 통해 거꾸로 공관을 압박하거나 수차례자진출국 약속을 하고도 이를 시간벌기용으로 악용하는 등 끝까지 공관을 기만함으로써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당초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연이은 배신(?)에 마음의 상처가 커져갈 무렵 뜻밖에도 공안부로부터 이들을 검거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간의 사정을 알고 있는 분들로부터 ‘온갖 억울한 소리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추적하던 범법자를 체포해서 후련 하겠다’는 격려를 받았지만 홀가분한 기분 보다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더 진하게 와 닿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 복잡한 후속조치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또 며칠이 훌쩍 지나버렸다. 자국민의 보호가 영사의 기본 임무라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 선량한 교민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까지 보호의 객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교민 안전과 건전한 교민사회 육성을 위한 공관의 노력에 대해 교민 여러분의 보다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기대하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 하는 의문도 가져 본다.

이탈리아의 범죄 사회학자 엔리코 페리의 주장 가운데 ‘범죄 포화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요약하자면‘사회에는 일정 수준의 범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인데 호치민 교민사회 만큼은 이 법칙의 예외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밝아 오는 아침 켜켜이 쌓인 어둠을 뚫고 솟아 오른 태양이 온 누리에 찬란한 빛을 뿌리듯 우리 교민사회 역시 오랜 갈등과 불신을 이겨내고 더욱 성숙되고 안정된 커뮤니티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종철 호치민 총영사관 사건사고 담당 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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