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구
지난 주는 좀 우울한 시간이었다.
베트남에서 무려 10 여 년 이상 서로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던 어르신 2분이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한 것이다. 최근의 불경기로 하시는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가족 없이 외국 생활을 견디기 만만치 않은 연세도 되었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 참에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을 하신 것이다.
이제는 일부로 만남을 정하지 않는 이상 만날 기회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가슴을 허전하게 만든다. 일단 함께 공유하던 생활의 공통분모가 달라져 더 이상 우리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두 분과의 인연은 골프로 맺어졌다. 한 분은 올해 65세가 되시는 분인데, 15년 전에 베트남에 봉제 공장을 세우며 진출하여 사업을 운영하다가 이번에 정리하신 분인데 골프 커리어가 무려 30여 년이 되는 분이다. 초기 베트남에서 골프를 칠만한 사람이 흔치 않을 때부터 지금까지 15년 가까이를 함께 어울리며 수많은 개인적 스토리를 만들어 오신 분이다.
또 한 분은 올해 연세가 72세 되시는 분인데 봉제관련 부자재를 제작하는 공장을 운영하신 분이다. 나이 60세에 베트남에서 골프를 시작하여 70세에 싱글 스코어를 기록한 대단한 열정가다.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젊은 몸 상태를 유지하며 대화에서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종종 마찰을 일으킬 정도로 진짜 젊으신 분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며 많은 것을 배우던 분인데 갑자기 떠나시는 바람에 별다른 인사도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두 분과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 골프를 즐기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왔는데 무심한 세월이 그 분들과의 연을 끊은 것이다. 다시 보겠다고 맘을 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더 이상 그저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하고 주말에 골프나 함께 하자는 자연스러운 만남은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긴 최근 떠난 사람은 단지 이 두 분만은 아니다. 근래 들어 사업상의 문제나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난 사람 외에도 암이나 불의의 사건으로 아예 명을 달리한 경우도 적지 않게 일어나 더욱 가슴을 아프게 만들 곤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새삼스러워 보인다. 가끔 골프장에서 만나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던 주변사람들의 얼굴이 새롭고, 함께 있는 동안이라도 서로 웃으며 지낼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한다는 갸륵한 생각이 스민다.
이별은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든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던지 간에 단지 서로 다시 만남을 가지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모든 과거의 그늘을 지워버린다.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서로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어 만난 인연에 이별의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과의 만남이 참으로 순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표다. 사업상의 거래도 없고 학연이나 지연으로 엮인 것도 없으면서 단순히 베트남이라는 지역에서 한국인이라는 동족으로 함께 어울려 골프를 친다는 것만으로 맺어진 친구 사이이기에 헤어짐이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가 보다.
이런 관계는 청명한 관계다. 관계를 맺는데 불필요한 노력이 필요치 않다는 얘기다. 정치가들처럼 상대의 발언의 숨은 의중을 파악하기 위하여 의혹의 비늘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사업적 거래의 성사를 고심하며 상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는 솔직하고 용감하다. 할 소리, 안 할 소리를 입장을 봐가며 가리지 않고, 호 불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지내도 전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투명하고 자유로운 관계다. 사회적 정치적 관점의 차이가 발생해도 가리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런 관점이 다르다고 관계가 달라진다는 의심을 갖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서로 다름을 드러내고 또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현대인의 만남은 순수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든 관계에는 이유가 따라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이 되는 만남을 구하고 그런 인위적인 만남을 위해 막대한 노력을 경주한다. 싫어도 웃고, 못마땅해도 넘기고, 아니꼬워도 입 발린 칭찬을 해야 하는, 감성이 배제된 차가운 이성적 인연을 확보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인양 인식되고 있다. 그런 비법이 담긴 서적들이 처세라는 이름으로 서점 한 면을 가득 메우고 베스트 셀러로 행세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감성보다 차가운 이성적 사고가 앞서는 만남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데는 의문이 따른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서로 주고 받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그 주고 받는 것이 사업상의 이득이든 관심과 사랑이든 어떤 경우라도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만 관계는 지속된다. 자신의 얼굴을 봐서 오더를 주는 경영자도 없고 사랑을 주기만 하는 연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줄 것을 만들어가는 일을 의미할 줄 모른다.
그런데 그 주고 받는 것이 재화나 물질이 된다면 당연히 상반관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한정된 재화나 물질을 나눈다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갈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고차원의 내공이 요구되는 관계다. 과연 몇 사람이나 이런 무거운 관계를 짊어진 채 버틸 수 있을까?
필자는 삼십 년 가까이 사업으로호구책을 마련해 왔지만 사업상의 친구가 없다. 사업의 이익을 공유하는 목적으로 사귄 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우연히 인사를 나눈 거래처 사장과 친구의 정을 나눈 적은 있지만 친구로서 사업상의 이익을 구한 적은 없다.
아직도 필자와 함께 지내는 친구들과는 적어도 물질을 공유하거나 나누는 관계는 아니다. 내 자신 스스로 그들에게 돈이나 물질을 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능한 일체의 돈 거래를 거부하고 산다. 만약 어느 친구가 내게 돈을 빌려달라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냥 주고 잊어도 될 만큼의 금액만 준다. 쉽게 잊지 못할 금액을 언제 돌려주려나 하고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싫고, 여차하다 그걸로 인해 가까운 친구도 잃기가 싫은 탓이다. 물론 친구에게 돈을 청하지도 않는다.
“그리해도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까요?”
“글쎄요, 모든 시간을 긴장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요. 친구에게서는 자연의 냄새를 맡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재물, 명예, 권력 그리고 돈 같은 차가운 대화보다 눈물과 미소와 같은 자연적 감성을 나누는 친구를 구하고 싶은 것이죠. ”
베트남이라는 이국의 땅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 아무런 물질적 교환도 갖지 않던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주고 받았다.
관심을 주고 받고, 행복과 미소, 슬픔과 눈물 그리고 축복과 덕담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그 헤어짐이 더욱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132 | 글/한영민3 | kimswed | 1217 | 2010.02.14 |
131 | 글/한영민2 | kimswed | 1170 | 2010.02.14 |
130 | 글/한영민1 | kimswed | 1168 | 2010.02.14 |
129 | 글/이재희변호사 | kimswed | 1533 | 2010.01.09 |
128 | 신한비나은행 | kimswed | 2070 | 2009.12.01 |
127 | 호치민교민사회 | kimswed | 1255 | 2009.11.20 |
126 | 글/챠오베트남 | kimswed | 1356 | 2009.11.14 |
125 | 전략적동반자 | kimswed | 1320 | 2009.11.14 |
124 | kotra Hochiminh | kimswed | 1471 | 2009.11.10 |
123 | 외국인의주택소유권증서 | kimswed | 1392 | 2009.11.10 |
122 | 은행업무 지원 | 홍동진 | 1437 | 2009.10.27 |
121 | 챨스강 | kimswed | 1426 | 2009.10.26 |
120 | 골프엘보 | kimswed | 1505 | 2009.10.14 |
119 | 베/주식시장 | kimswed | 1539 | 2009.10.03 |
118 | 글/신짜오베트남 | kimswed | 1360 | 2009.09.23 |
117 | 묻지마베트남결혼 | kimswed | 1564 | 2009.09.15 |
116 | 베트남낙태법안 | kimswed | 1931 | 2009.08.21 |
115 | 글/한영민 | kimswed | 1536 | 2009.08.19 |
114 | 푸미흥한국인집단거주지 | kimswed | 3189 | 2009.08.06 |
113 | 카페라떼 | kimswed | 1781 | 2009.07.26 |
112 | 도박중독자 | kimswed | 1439 | 2009.07.22 |
111 | 필립핀영어 | kimswed | 1435 | 2009.07.18 |
» | 글/한영민 | kimswed | 1274 | 2009.07.15 |
109 | 파3홀에서예의 | kimswed | 1630 | 2009.07.15 |
108 | 글/챨스강 | kimswed | 1401 | 2009.07.03 |
107 | 글/한영민 | kimswed | 1269 | 2009.07.03 |
106 | 글/한영민 | kimswed | 1178 | 2009.06.27 |
105 | 베트남현대사 | kimswed | 1511 | 2009.06.21 |
104 | 베트남매춘 | kimswed | 2748 | 2009.06.14 |
103 | 글/한영민 | kimswed | 1332 | 2009.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