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씬 짜오 베트남 법률칼럼의 지면을 빌어 독자 여러분께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새해 첫 칼럼의 내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먼저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고, 저와 독자 여러분들께 짧은 정신적 휴가를 준다는 의미에서 이 번 칼럼은 잠시 법률 공부를 접어 두고 가벼운 이야기로 채워볼까 합니다.
막 고등학교 3학 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날로 기억합니다.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학입시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험으로 여겨졌고, 좀 과장하자면 전 국민이 학력고사와 대학입시만을 보고 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의 수능에 비교하면 입시 방법이 학력고사점수 하나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입시제도가 획일적이었고, 수험생에 비하여 대학교가 많지 않아 입시 경쟁률도 적잖이 높은 때였습니다.
고3이 되자 학력고사는 저에게도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학력고사는 선지원 후시험제로 사실상 기회가 한 번뿐인 약간 몰인정한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2년 간의 과오를 이 번 기회에 말끔히 씻고 새 출발을 하리라 굳게 마음 먹고 고3의 자격으로 첫 등교를 했습니다. 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후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었는데,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수학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재일이가 학생회장을 맡아 주었으면 하는데. 지원자가 없어서 말이야. 마땅히 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가 않네. 네가 해 주었으면 정말 고맙겠어.”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지금이야 학생회장이 인기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지독한 입시경쟁과 획일화의 영향인지 그다지 인기 있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수 년간 학생회장을 맡았던 선배들이 입시에 줄줄이 실패하면서 고3의 무덤이란 별명이 붙은 자리였습니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 드리고 자리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저는 맡을 수 없다는 뜻을 선생님께 전달해 드렸고, 그 후 다시 선생님께서 두 번 정도 더 찾아 오셨을 때도 같은 답변을 드렸습니다. 결국 학생회장은 다른 친구가 하게 되었고, 구령 목소리가 특이하여 종종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지만 정말 멋지고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 내었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에도 갔습니다. 선생님의 삼고초려를 꿋꿋이 물리친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의 내심에는 학생회장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 정말 하고 싶었지만 그 때는 그런 일에 정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음은 저를 위해 만든 것 같은 어느 아메리카 인디언의 성년식인데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성년을 맞이하는 한 무리의 소년들을 드넓은 옥수수 밭의 한쪽 끝에 모이게 한 다음 옥수수 밭을 통과하여 반대편 끝으로 걸어 나오게 합니다. 소년들은 옥수수 밭을 지나오면서 가장 탐스럽고 잘 익은 옥수수를 하나씩 따오는 것이 이 날 성년식의 과제입니다. 다만 소년들은 자신이 지나 온 길은 되돌아 갈수 없었습니다.
옥수수 밭을 통과한 소년들의 손에 쥐어진 옥수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독자 분들은 이미 그 답을 아실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정말 탐스럽고 잘 익은 옥수수를 가지고 나오는 소년은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괜찮은 옥수수를 발견하고도 저 너머에 더 좋은 것이 있을 것이란 최면을 걸면서 결국 옥수수 밭의 끝에까지 다다르게 되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허둥지둥 아무 것이나 따온 소년들이 더 많았다는 말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인디언 족장님의 혜안을 엿 볼 수 있는 성년식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얻고자 지금의 기회를 포기하고 때를 기다리며 참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직업상 계약 체결과정에 관여할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나오지만, 과도하게 신중한 나머지 기회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법률가답지 않은 표현일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경우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번의 기회 중 2번은 놓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까지 갖게 되었지만 재고 따지는 제 본성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지금의 기회와 행복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순전히 제 생각일 수 있지만)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셨던 김한길 님의 “눈뜨면 없어라” 중의 일부분인데, 제가 즐겨 읽는 구절입니다. 저의 백마디 말보다 값진 이 글로 두서 없는 제 칼럼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새해 늘 건강하시고 호랑이와 같은 기백으로 늘 건승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 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애니웨이, 미국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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