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불문하고 어른들의 공통적인 불만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것이다.
5000년 전 이집트의 유적에서도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문구가 발견될 정도로 장구한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어온 것이 바로 젊은이들의 무례한 행동이다.
왜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을까? 아니 왜 버릇이 없다고 느낄까?
[버릇이 없다], 이 말을 그대로 직역을 한다면 사용되는 의미와는 전혀 상반된 해석이 된다.
버릇이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특정 행동을 의미하는 것인데 주로 불필요한 일탈적 행동을 일컫는 말로 인용된다. 다리를 떠는 버릇이라던가, 코를 후비는 버릇, 거짓말하는 버릇, 말을 더듬는 버릇 등등. 이렇듯 버릇이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 의미에서 주로 사용된다면 버릇이 없다는 말은 그런 일탈의 행동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좋은 말인데 왜 관용적으로 나쁜 의미로 쓰여지는 것일까?
버릇이 없다는 말은 이미 월인청강지곡이나 삼강행실도 등 오래된 문헌에 “버릇이 업다” 라는 표기로 이미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벌써 역설적인 의미로 쓰인 말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필자가 스스로 유추한 바로는 이때 말하는 버릇이란 요즘에 쓰이는 악벽과 같은 의미의 습관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즉 그 당시 언급한 버릇이란 배움을 통해서 형성된 예의 범절에 관한 습관적 행동으로 해석함이 옳은 것 같다.
그래서 버릇이 없다는 말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의범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넘어가자. 그래야 말이 되는 문장이니까.
버릇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찾았다면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는 말의 뜻은 바로 배움과 훈련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은 5000년 전 인류의 초기 사회가 형성된 이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사회가 형성되기 전에는 버릇이 없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말한 버릇이란 사회적 규칙에 관한 배움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사회는 개인과 가정으로 시작되어 여러 가정이 모여 집단화된 공동사회를 이루고 또한 각각의 공동사회가 서로 모여 국가라는 거대한 통합 집단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군집 단계를 거치면서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도덕적 기준이 생겨났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집단의 구성인원이 많을수록 그 기준은 더욱 엄격해진다.
가정에서는 별 문제없이 수용되는 행동이 회사에서는 불가한 일이 되고 회사나 작은 집단에서 허용되는 언행이 국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되지 않은 불법적인 일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왜 집에서는 가능한 행동이 밖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할 수 있다. 이런 어린이에게 어른들이 무작정 “그런 행동은 밖에서 하지마” 라고 요구하기 전에 사회의 행동기준이 가정과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식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다른가? 사회라는 영역에서 행하여지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주체는 개인 영역과 같이 자기 자신이나 자신을 이해하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모든 개인을 하나의 객관적 개체로 보는 사회자체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즉 사회에서 행하여지는 개인의 행동에 대한 올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 행동의 주체자와 사적인 감정이 삽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전체사회구성원이 세운 기준에 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신의 방을 안 치우고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그를 대신해 일하는 사람이나 모친이 그 일을 해줄 수 있지만 전혀 사적 유대감이 없는 개인들이 모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학교 기숙사라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스스로 처리 못하고도 아무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도덕불감증 환자 정도로 인식되어 동료들의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가족들만 있는 집안에서는 잠옷을 입고 설치든, 소파에 드러눕든 아무 상관이 없지만 지하철에서 그런 복장과 행동을 하면 정신 병자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한국인들이 베트남 생활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당황스런 경험을 하나 들라면, 시장에서 잠옷차림의 여성을 마주할 때나, 우연히 방문한 베트남 가정에서 가벼운 잠옷 하나를 걸치고 아무렇지 않게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그 집 주부를 만날 때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지 우리들의 사고로는 이해가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이런 행동이 이 사회의 성적 가치관과 유관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걸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그 후 시간을 두고 베트남을 익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원인을 대략 찾아낼 수 있었다. 즉, 혈연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성장한 베트남 사회다 보니 공동체 안의 모든 구성원을 가족과 같이 취급하던 오랜 관습이 남긴 흔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 관습이 아직도 남아, 혈연중심의 지역 사회와 현대화된 대도시의 행동 양식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모습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보면 서서히 혈연 공동체와 외부사회의 행동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익혀나가는 듯하다.
최근 타이거 우즈가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의 친구라면 아마도 그렇게 가혹한 비난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라는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골퍼로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그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사회의 질서를 허무는 중대한 잘못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입장에서 올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과 사회의 입장에서 보는 윤리적 기준은 그 정도가 사뭇 다르다.
작은 집단에서 흔히 토론되고 표현될 수 있는 정치적인 견해도 사회의 공인으로 입장이 바뀌면 결코 자유로워지지 않다는 것 역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목사 한 분이 정치인 박근혜를 닭과 개에 비유하여 얘기를 했다고 신문지상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개인들끼리는 아마도 그 보다 더한 소리를 한다 해도 넘어갈 일이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한 것이라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역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기준이 다른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수시로 장소와, 대하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왜 식당에서 마치 집안에 있는 것처럼 남의 눈을 개의치 않고 행동하는가? 어린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는 이상 자신의 행동은 엄마가 요구한 가정의 기준에 따르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있더라도 가정을 떠나는 순간 모든 행동지침은 사회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또, 자신과 함께 외부로 나온 엄마 역시 사회의 기준에 따라야 하는 사회 구성원의 하나라는 현실을 교육시켜야 한다.
부모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객관적 가르침이 무소불위(無所不爲)한 부모의 절대 신화를 깨버릴 수도 있겠지만, 자녀들에게는 엄정한 사회를 가르치고 독립심을 키워주는 진정한 교육이 되리라 믿는다. 그런 교육이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그에 따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독립할 나이가 훨씬 지나도 부모님의 그늘에서 지내는 반쪽 사회인 노릇을 하지 않는, 자립적이고 자부심강한, 버릇 있는 젊은이를 만들어 준다.
사실 이 글은 어느 식당에서 이곳 저곳 헤집고 다니는 어린아이를 꾸짖는 어른에게 오히려 눈을 치켜 뜨고 덤비는 젊은 엄마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시작한 글이다.
그러나 그 젊은 부인을 탓하고자 쓴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막연히 버릇이 없다고 나무라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개인영역과 사회영역에서 적용되는 행동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 좀더 확실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쓰는 글이다.
그리고 새해 덕담은 아니지만 경인년 벽두에 그 젊은 부인의 자녀 교육에 참고가 될 만한 말씀을 하나 들려주고 싶다. 어린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님들 한번쯤은 되새길만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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