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가 이방인이다
잡지에 글 쓰기
기고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잡지에 글씩이나 쓰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사람은 그 누구던 무엇을 하건 흔적이란 것을 남긴다. 더욱이 처음 부여 받은 글에서의 사명이 베트남에서의 생활수기다. 매일 술만 처먹는 놈이 무슨 생활 속에 기록으로 남길만한 게 있을까 싶지만 살다 보면 별에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고 이런 저런 일도 겪게 된다. 그 탓에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내가 글을 내기 시작하자 마자 한두 회도 지나지 않아 글에서의 내 정체를 알아채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딱 잡아떼고 “나 아니다” 이랬으면 좋았을 터인데 나는 그런 게 잘 안 된다. 그 탓에 사람들 가운데에는 날 다시 보게 되었다는 둥, 너 그럴 수 있냐는 둥, 나도 글 한 번 써보자는 둥, 각양각색의 반응을 모두 접해보았는데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후회는 않는 편이다.
가끔씩은 일기장에나 적어야 할 난잡스런 글을 보내놓고 나서 마치 벌거벗고 길바닥에서 춤이라도 춘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그런 짓을 무려 48회에 이르도록 해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무렇지도 않다. 베트남에는 10만 명이나 되는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라고 하니까 나만 입다물고 가만있으면 아무도 모른다. 푸하하하!!!
이방인?
대체로 처음 만난 인연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편이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만 삼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코지를 일삼는 사람들과는 단호하게 인연을 끊는 편이다. 그런데 그 인연, 인간관계란 것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아, 젠장 이런 놈은 좀 안보면서 살고 싶은데…’ 했어도 무언가 계속 일이 빚어지며 얼굴을 맞대어야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첫 인상부터 호감 100%라서 오래도록 좋은 관계로 남고 싶었는데도 허망하게시리 만남이 곧 헤어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 글 고정란 제목이 ‘이방인의 푸념’이 된 것이 그다지 못마땅하지가 않다.
한동안 다른 곳에 있다가 다시 들어와 보니 나는 푸념하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푸념 같은 거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결코 달가운 제목이 아니긴 하지만 실제로 가 봤던 곳, 겪어봤던 사람들, 그들에게는 나는 이방인이 맞다. 문명세계라면 거의 전세계 사람을 모두 만나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갖 국적의 사람들을 다 만나봤고, 그들과 부대끼며 지내보니 세상은 그렇게 넓지가 않은데 사람만큼은 참말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국적에 상관 없이 정말 생각을 확 뒤집어 놓는 그런 사람을 접할 때마다 나는 내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푸념하기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쓴 수필집에 ‘연어와 여행하기’라는 책이 있다. 대체로 박학다식하고 대체로 신선하고 대체로 불평불만 투성인 그 책은 내가 책 이름을 다시 짓는다면 ‘유명인의 푸념’이 될 것이다.
먹음직스런 연어 한 마리를 생물로 통째로 사와 고급호텔에 투숙했는데, 흔히들 미니바라고 부르는 객실 냉장고가 너무 작아 내용물을 모두 꺼내놓고 연어가 상하지 않도록 대신 그 안에 넣어뒀는데, 날이 바뀌어 외출하고 돌아오면 방 정리가 깨끗하게 되어, 있고 미니바도 원상복구 되어 있고, 연어는 그냥 밖에 나와 있더란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내용물을 꺼내 연어와 바꿔 넣고…, 이러기를 몇 일을 했더니만 호텔에서 나갈 때, 체크아웃하면서 나온 계산서가 방값은 따로에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것으로 되어 있는 와인이며 위스키며 온갖 종류의 술값으로 수천 달라가 청구되더라는 이야기다. 물론 생선은 생선대로 상해서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다나? 직접 읽어보면 기발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모두 자신의 탓이 아닌 남 탓이다. 그 외에 다른 에피소드들 역시 내용만 다를 뿐 온통 세상 속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조소와 비아냥으로 그득하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정답이라는 듯이 저명하기 짝이 없는 소설가 양반이 아주 잘 알려준다.
여행하기
여행이라면 업무출장 밖에 모르는 나도 하던 일 덕에 우리 나라 좋은 곳은 다 가봤다. 90년대 초반에 신입사원이 자기 차를 끌고 다녔다면 그 당시만큼은 약간 좀 감이 이른 편이었는데, 나는 내 차가 있었던 덕에 출장비 받아 기름값으로 충당해서 기차가 2~3일에 한 번 꼴로 선다는 강원도 두메산골 간이역에도 가봤고, 그런 곳을 가자면 구비구비 넘어야 하는 산길 고갯길도 여러 번 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감회는 정말 우리의 산하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내 차 트렁크 안에는 항상 낚시가방을 넣어두고 다녔으므로 바닷가라도 지나게 되면 넥타이 풀어 차 안에 던져 넣고 와이셔츠 소매 걷어 올리고 갯바위에 올라 찬바람을 쌩쌩 맞고 있노라면 그 때 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하늘은 마냥 푸르기만 하고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혀와 닿는 파도소리는 오랫동안 귀에 익은 듯이 정겹기만 했다. 갈 길이 멀어 서둘러야 했음에도 그러고 잠깐, 아주 잠깐 흘려 보내는 시간은 아깝지가 않다. 물론 고기를 낚았다는 기억은 없다. 뭔가 잡아 소득이 생기는 일이라면 그렇게 수월할 턱이 없다. 최근에 가봤던 인상 깊었던 곳이라면 사우디 아라비아 남서부에 ‘앗시르’라고 불리는 고원지방에 족히 1000미터는 더 될 것 같은 아찔한 높이의 절벽에 길을 내어 운전 보다는 주변 경관에 더 신경 쓰게 만들던 ‘모하일 로드’라고 불리던 길을 차를 몰아 직접 가봤던 적이 있다. 관광은 내게 있어 업무상 주어지는 보너스 같은 거라고나 할까….?
베트남에서 살기
바닷가라면 싫어할 사람이 없겠지만 유달리 물가를 좋아하는 탓에, 강이나 호수도 좋지만 특히 바다가 좋다. 서해가 동해 보다 가깝지만 그래도 바다 구경이라면 동해가 서해 보다는 낫다. 서해안은 때를 잘못 맞추면 바다 구경은 나중이고 새카만 갯가나 내다 보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기 일쑤이지만 동해는 언제 가도 계절에 상관 없이 하얀 포말을 내며 깨어지는 푸른 파도와 빨랫줄 보다 더 팽팽한 수평선을 볼 수 있다. 낡은 건물에 허름한 횟집이어도 그곳 아무데나 걸터앉아 수평선 바라보며 아무렇게나 잡아 올린 막회 한 접시면 술안주와 눈요기로 이 보다 좋은 게 없다. 단, 창 밖으로 구름을 내려다 보면서 맥주캔 비워가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게 더 나은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후자만큼은 주선酒仙이라던 이태백도 모르는 술 맛일 테니까. 베트남이 좋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다 이런 부류의 핑계거리를 가지고 있다. 아닌 말로 관광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생업 유지해가면서 살아가기에는 만만한 곳이 아니란 이야기다.
친구들과 속초에 놀러 갔을 때, 미리미리 PC 통신으로 얼굴도 모르고 사귀어 놓은 친구가 달려 나와 반갑게 맞아주고 하루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다가 휴가가 끝나 발걸음을 돌릴 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으면 했는데, 살 수 없었던 이유는 어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지내기 좋은 곳이 사람으로 붐벼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음에도 그 때 그 교훈을 홀라당 까처먹어 버리고 베트남에서 와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자니 그게 그냥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란 것이다.
이 인 yiin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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