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성내기골프

kimswed 2010.09.11 08:15 조회 수 : 1183 추천:315



오랫동안 도박중독자인 선배가 있다. 그 선배의 도박 지론은 독특한데 돈을 다 잃거나 따거나 해야 판을 접는다는 것이다.
“모두 올인 되지 않고 지갑에 돈이 남으면 그냥 집에 못 가. 하다못해 묵찌빠라도 해서 모두 잃고 가야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거든.” 필자 본인의 사고로는 도저히 그 선배가 가진 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도박으로 모두 잃고 차비 받은 돈마저 잃고 가야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잘 나갈 때는 도박중독으로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한 후로는 정말 먹고 살기 위해 내기 골프를 하며 인생을 보냈다. 그는 사기도박이 아닌 진검 승부엔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다. 그의 강한 내공을 증명하는 일화가 있다.
하우스에서 선배는 바둑이란 게임으로 거액을 땄고 판이 끝나기 얼마 전에 갑자기 과일이 들어오고 커피가 나왔다고 한다. 선배는 직감적으로 다음 판에 탄이 들어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판이 끝나기 얼마 전엔 과일이나 커피가 들어오지 않는다.
다음 판에 선배는 바둑이에서 가장 높은 두 번째 패를 잡았다. 하룻밤에 한번 잡을까 말까 한 높은 패였는데 그러나 선배는 그냥 카드를 덮었다. 범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절정고수의 플레이다. 게임이 끝나고 하우스를 만든 사람이 악수를 청하며 “선수끼리 다시 만나지 맙시다.“ 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초 절정의 내공도 2백만원이면 구하는 콘택트렌즈와 사기 카드에 속절없이 스러졌다. 도박이든 인생이든 나름대로 정도를 걷고 싶어 하던 선배는 빠르게 변하는 사기도박에 적응하지 못했고 모든 것을 잃고만 것이다
그 후 그 선배는 먹고 살기 위해 도박성 내기 골퍼가 되었다. 깨끗하고 멋진 스윙, 갈색폭격기의 우아함을 버리고 모든 골프를 바꿨다. 도박으로 망한 자 도박으로 흥한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서 선배는 드라이버를 버리고 언제나 스푼으로 티 샷을 했다. 왜 드라이버를 사용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엔 “드라이버를 잡으면 오비가 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이언을 치면 엉거주춤한 자세로 피니쉬를 했고 모든 샷은 덕 훅이나 드로우 구질로 바뀌었다.골프 초보자가 봐도 한심한 하수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클럽도 고수가 사용하지 않는 싸구려로 바꿨고 공도 3피스가 아닌 2피스 볼로 바꿨다. 라운드 하면 우산을 써서 하얀 얼굴을 유지해 상대에게 선수란 의심을 받지도 않았다. 도박으로 평생을 살아 온 선배에게 그 정도의 변신은 식은 죽 먹듯 쉬운 거였다. 하지만 선배의 핸디캡은 아무리 높게 봐줘도 2를 넘지 않았다.
레귤러 티 기준으로 어금니만 살짝 깨물고 치면 쉽게 언더파를 치는 실력인 것이다. 많은 골퍼들이 엽기적인 폼과 어정쩡한 구질을 보고 달려들었다가 패가망신을 하곤 했다. 자신이 이기면 운이 좋아서, 동반자가 견제를 잘해줘서, 롱 퍼팅이 이상하게 떨어져서 이겼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나 딴 돈의 1/3 이상을 돌려줬다.
그 선배는 내기 골프만으로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세 판 중에 두 판을 져줬고 한판에 몰아서 이겼으며 상대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게 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카드는 내기골프보다 더 손쉽게 그에게 승리를 안겨 줬다.
골프엔 핸디가 있지만 카드는 핸디가 없는 스크라치 게임이라서 실력의 차이는 곧바로 승률로 직결된다. 골프에서 잃어주고 카드로 복구하거나 두 개 모두를 잃어주고 바둑으로 복구하는 치밀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 선배는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평생을 큰 도박으로 일관 했지만, 작은 내기 바둑을 두며 손을 덜덜 떨며 한 수를 놓는 모습은 예술의 경지다. 한편으로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할 땐 한심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언젠가 선배에게 “형, 정말 강적이에요”라고 했더니 그 선배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평생을 여유롭게 살던 선배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그를 좋아하는 우리는 잠시 숙연했지만 이내 숙연함은 처연함으로 바뀌었다. 작은 미혹은 습성을 바꾸지만 큰 미혹은 인생 자체를 바꿔 버린다.
“한번은 와이프가 집에 생활비가 떨어졌다고 하더군. 주변에서 돈을 빌려 타 당 십만 원짜리를 치는데 나는 모든 샷을 개 훅으로 만들면서 69타를 쳤어. 몇 개의 버디는 일부러 넣지 않으면서 내기 전에 신경안정제와 청심환을 먹었다. 아무리 먼 퍼팅이라도‘이것이 안 들어가면 죽는다’라는 각오로 치니까 대부분 들어가더군. 나도 내 자신이 한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있냐. 이게 내 삶이고 운명인데.”
그 선배는 아직도 자신은 도박으로 망했기 때문에 도박으로 흥하리라 굳게 믿고 있다. 진짜 고수라면 스윙과 실력을 숨기고 스코어를 줄이고 늘이는 것이 언제든 가능하다. 배판에서 쉽게 버디를 할 수 있고 전혀 표내지 않고 트리플 보기를 하는 것이다. 롱 아이언을 잘 다뤘지만 7번 우드를 가지고 다녔고 어눌한 말로 캐디에게 약간의 무시를 당하는 방법까지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사회엔 여러 가지 악이 있지만 가장 치명적이고 주변사람까지 참혹하게 만드는 것은 도박 중독일 것이다. 골퍼라면 누구나 알듯 골프는 예의와 매너의 스포츠, 또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스포츠이지 결코 도박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골퍼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도박으로 입신양명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하게 도박으로 성공한 두 명은 주윤발과 주성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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