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子의 눈물.
어린 시절 울보였다. 7남매나 되는 많은 형제들 틈에서 어중간한 5 번째로 태어난 인간은 이런 저런 설음이 많았는지 걸핏하면 울음을 보여 더욱 형들에게 꾸중을 들었던 것 같다.
하긴 지금도 잘 운다. TV에서 슬픈 얘기라도 나올 때면 어김없이 눈시울이 붉어지고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선하고 티없는 웃음대신 슬픈 표정을 짓는 것만 봐도 안타까움에 감정이 복 바쳐 오른다.
사실 내가 흘리던 그리고 지금도 가끔 흘리는 눈물은 그리 의미가 없다. 그저 감성이 여린 탓이 나오는 감정 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는 달리 정말 남자가 대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기사를 읽었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에 수천 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고 그들의 급료를 담보로 3천만 달러를 빌렸다. 그때가 1964년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가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한국은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 마당에 국가 발전에 들어갈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데 부자가 쌀 99섬을 갖고 100섬을 채우기 위해 한 섬을 빌려달라고 하면 누구든지 빌려주지만, 먹고 살기 위해 쌀 한 섬을 빌려달라면 아무도 주지 않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세계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나마 호의를 보이던 독일에 필요한 인력(광부와 간호사)을 보내고 또, 그 대가로도 모자라 박 대통령이 직접 독일까지 날아가 눈물로 호소하여 고작 3천만 달러(물론 당시로는 큰 돈이다)를 빌린 것이다. 당시 독일 부흥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에르하르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자꾸 눈물을 보이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만 울라는 발언을 남기고 많은 조언을 들려주었다. (중앙일보 백영훈 인터뷰에서 참고)
한나라의 지도자가 나라를 위해 남의 나라의 수상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눈물로 돈을 호소하던 처지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이렇게 굴욕과 호의의 감정이 뒤 섞인 채 시작됐다.
과연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구상에는 아직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나라의 어느 지도자도 나라를 위해 눈물로 도움을 청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야 말로 진정한 남자의 눈물이다.
당시 그렇게 최 빈곤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 주요 국가의 모임인 G20의 의장국이 되어 남의 나라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비록 아직 분단의 국가로 아직도 남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세계 유래에 없는 발전을 이룬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하등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몇 가지가 있다면 그 중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은 남에게 받은 은혜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철없는 오파상을 시작했지만 자금부족은 물론 경험마저 일천하니 잘 될 턱이 없다. 고작 4-5개월을 공부만 하다가 문을 닫고 몇 개월을 빈둥대다 중소기업에 입사를 했다. 처음에 입사한 곳은 호주와 스페인에서 가죽을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를 하는 작은 가죽 무역상이었다. 남자 직원 3명과 여직원 1명이 전부인 소기업이었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터라 그 관련 기업에는 쉽게 입사를 할 수 있었지만 내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에 전공도 버리고 모든 것을 단시일에 다 배울 수 있는 소기업을 택했다.
고작 몇 일 가죽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장이 당시 제일 큰 가죽회사인 D 피혁 사에 어느 임원과 약속을 했으니 가서 세일즈를 하고 오란다. 아이쿠, 아는 것이라고 아무 것도 없고, 세일즈 경험도 전무한 신입사원이 국내 굴지기업의 임원을 만나 제품 소개를 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을 뛰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사장은 신입사원이 얼마나 하나 테스트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시 명동에 있는 그 회사를 찾아가는데 얼마나 마음이 졸리던지, 사무실 문을 열기 전에 화장실을 들려 심호흡을 하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뭐 필요 없는 물건을 팔러 온 상의 군인도 아니고(당시에는 상의 군인들이 사무용품 몇 가지를 들고 다니며 강매하곤 했었다) 회사 대 회사의 거래를 위해 회사 대표로 온 것이니 당당하자 하고 설레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회사 문을 노크했다. 아무도 대답이 없다. 당연하다. 기백 명이 사용하는 대형 사무실에 들어가며 노크를 하는 멍청이는 이제 막 신입사원으로 첫 세일을 나온 필자 밖에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사무실에 기가 죽어 쭈빗거리며 맨 앞의 말단사원에게 임원의 자리를 물어 드디어 맨 뒷좌석에 자리한 이사라는 사람과 마주 앉았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새파란 어린 친구를 바라보던 그 임원이 하는 말, “그래, 어떤 가죽이라고요? 말씀을 해보세요” 하고 말을 던지는데 순간 입이 얼어 붙었다. 젠장 아는 것이라고 고작 무역과 가죽 용어 몇 개를 익힌 게 전부인데 무슨 설명을 가죽 밥만 수십 년 먹은 사람에게 한단 말인가?
일단 우리 공급처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오늘 처음으로 세일을 나온 사람이다. 아는 것도 없다. 단지 우리에게 가죽원단을 공급하는 업체는 이러 이러한데 이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이 카탈로그에 나와있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한번 살펴보시고 더욱 깊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제가 당장 대답이 안되니 회사에 돌아가 확인 후 알려드리겠다. 하고 털어놨다.
붉어진 얼굴로 설명 아닌 해명을 하는 어린 친구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임원이 나를 자기 옆으로 바짝 다가오게 하더니 백지를 꺼내 가죽에 대한 설명을 한다. 가죽 원단의 종류부터 가죽을 가공하는 과정을 약 1시간에 걸쳐 설명하더니 이런 공정에 관한 모든 지식을 공부하라고 조언을 한다. 그가 설명하면 적어준 종이를 보물처럼 들고 그 회사 문을 나오는데 콧등이 시근해지며 눈이 붉어지는 건 이 무슨 조화인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의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로는 어떤 회사를 들려도 맘이 편했고 점진적으로 제법 괜찮은 세일즈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만약 그 당시 그 임원이 아무것도 모르고 온 나를 귀찮다고 적당히 돌려보내고 말았다면 아무도 나는 두 번 다시 세일즈에 나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세일즈는 내 생활의 근간이 되었다. 적어도 세일즈에 관한 한 최고였다. 가죽으로 시작하여 모터, 섬유기계, 자수기, 봉제기계, 특수 사 등 닥치는 대로 팔았다. 그 후 근무한 몇 개의 직장에서 탁월한 실적을 올리며 개인주가를 한 컷 올렸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차려 단시일에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성공가도를 달렸다. 지금이야 베트남에서 무역 일은 다 접고 잡지를 만들고 글을 쓰면 밥을 얻어먹고 살고 있지만 아무튼 무역 세일즈맨으로의 삶에 용기를 넣어준 것은 바로 대 기업의 임원이었다. 참, 사람 인생은 어찌 변할 지 알 수가 없다.
어째든, 독일이 한국에 돈을 빌려 준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용기를 준 것이다. 그 돈은 국가 발전의 종자돈 역할을 하여 고속도로도 만들고 포항제철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독일의 압력으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고 또 유무상 차관을 받아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일이 우리에게 국가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 은인인 셈이다.
약관의 초보 세일즈맨에게 베푼 대 기업 임원의 친절이 그 청년의 생에 용기를 불어 넣었듯이 독일은 우리에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6.25 전쟁에서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켜줬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은혜를 외국에서 받았다. 아마도 이렇게 많은 우방에게 신세를 진 나라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차례가 된 것 같다. 받은 만큼 전부는 아니라도 얼마만큼은 돌려줘야 할 것 같다.
꼭 그들에게는 아니라도 그들이 그랬듯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나 이웃을 위해 마음을 쓰는 것 자체가 은혜를 갚는 행위라고 믿는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수학문제는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세는 일이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162 | 호치민부동산가격 | kimswed | 838 | 2011.08.17 |
161 | 글/이국헌 | kimswed | 801 | 2011.06.25 |
160 | 글/이인 | kimswed | 810 | 2011.06.07 |
159 | 베트남에살면서 | kimswed | 779 | 2011.05.01 |
158 | 하노이주택가격상승 | kimswed | 987 | 2011.04.24 |
157 | 글/한재진1 | kimswed | 793 | 2011.04.15 |
156 | 글/한재진2 | kimswed | 879 | 2011.04.15 |
155 | 베/단기부동산점망 | kimswed | 932 | 2011.04.15 |
154 | 글/챠오베트남 | kimswed | 828 | 2011.01.27 |
153 | 베트남고객의료관광 | kimswed | 926 | 2011.01.18 |
» | 글/챠오베트남 | kimswed | 1038 | 2010.12.01 |
151 | 글/이인 | kimswed | 949 | 2010.12.01 |
150 | 글/챠오베트남 | kimswed | 972 | 2010.12.01 |
149 | 글/챠오베트남 | kimswed | 950 | 2010.11.02 |
148 | 도박성내기골프 | kimswed | 1183 | 2010.09.11 |
147 | 한국인은 골프를 너무 잘칩니다 | kimswed | 1261 | 2010.09.04 |
146 | 골프를치는이유 | kimswed | 2082 | 2010.09.04 |
145 | 베/고급아파트전망 | kimswed | 1149 | 2010.09.04 |
144 | 베트남신부는..... | kimswed | 1240 | 2010.07.12 |
143 | 베트남전기사정 | kimswed | 1235 | 2010.06.16 |
142 | 베트남단기부동산전망 | kimswed | 1285 | 2010.06.16 |
141 | 베트남노조파업 | kimswed | 1384 | 2010.06.05 |
140 | 글/이인 | kimswed | 1327 | 2010.06.05 |
139 | 베/법인세신고 | kimswed | 1270 | 2010.06.03 |
138 | 글/챠오베트남 | kimswed | 1409 | 2010.05.22 |
137 | 글/이인 | kimswed | 1226 | 2010.05.22 |
136 | 호치민한인회에대한,,, | kimswed | 1263 | 2010.05.09 |
135 | 우기골프 | kimswed | 1598 | 2010.05.01 |
134 | 호치민교민선거 | kimswed | 1206 | 2010.03.28 |
133 | 글/한영민4 | kimswed | 1377 | 2010.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