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인

kimswed 2011.06.07 13:16 조회 수 : 810 추천:239



식인종 민주주의 다수결은 민주주의일까 아닐까


‘로빈슨 크루소’를 지은 ‘다니엘 디포’(1659~ 1731)는 다채로운 직업과 경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였으며, 정치인에 경제학자를 겸했으며 모두가 아는 것처럼 소설까지 썼으니 문인이기도 한 것이다. 옛 시절에는 그처럼 여러 직업을 다양하게 골고루 거쳐가며 사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나 TV, 인터넷이 없는 세상에서도 적어도 그처럼만 살 수 있다면 그런 삶은 누가 보기에도 재미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어 장담은 못하겠지만서도 말이다.
아무튼 ‘다니엘 디포’란 이름 못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로빈슨 크루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안다. 요즘은 덜한데 한 때, 내 코흘리개 시절만 해도 아이들이 오로지 무인도에 가기 위해서 가출을 시도하곤 했다. 그만큼 ‘로빈슨 크루소’라는 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결코 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물론 그 어떤 학자도 ‘로빈슨 크루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는 자라나는 청소년의 인성 형성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 이후로 나온 비슷한 이야기들로서 문학작품으로만 따져 당장에 떠오르는 것만 ‘15소년 표류기’ ‘파리 대왕’ ‘전날의 섬’ 등이 있겠고, 영화로 치자면 가장 최근에 우리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부터 ‘캐스트 어웨이’ 등등 이루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러니 무인도 생활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사항인지도 모르겠다. 당장에 나 같아도 골치 아픈 일만 잔뜩 있고 사람들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질 때 생각나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니까. 굳이 무인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 상판때기 좀 안보고 살 수 있다면 짧게는 한 두어 달, 길게는 몇 년에 이르도록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기도 할 때 낙점해 두었던 곳이 바로 ‘알래스카’이다. 미국에선 자기네 땅 ‘알래스카’에 정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집도 주고 돈도 주고 그 춥고 척박한 곳에서 살만하도록 이런 저런 지원을 다 해준다는 믿기 힘든 소문을 들은 터라서 그렇다. 만일 그게 뜬소문이 아니라면 자국민 아닌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그런 좋은 걸 좀 해주었으면 한다. 그렇다면야 당장이라도 짐 싼다. 요즘 같아서야 못 쌀 이유가 없다.

‘다니엘 디포’가 살던 시절에는 사람이 살던 살지 않던 대양에 떠 있는 자잘한 섬들은 죄다 무인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선단을 이루면 수백 명도 넘게 항해를 할 수 있는데 모두들 총포와 장검으로 무장을 했으니 금속제련 기술이 없어 돌 도끼나 돌 화살촉 따위로 무장을 했을 원시 부락민들쯤이야 상대가 안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항해로 입증했던 ‘마젤란’(1480(?)~1521)은 필리핀에서 원주민들과 전투 중에 죽었고,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 데 시조가 되었던 ‘제임스 쿡’(1728~1779)은 하와이에서 원주민의 피습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하와이는 당시 까지도 식인 습관이 있던 곳이라 하고, 필리핀은 지금도 침략자 ‘마젤란’을 물리친 제의를 거행하는 눈치다. 물론 이런 굵직한 인물들이 비명에 죽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강자가 약자를 제압하고 강탈하는 것이 인류사의 주된 흐름인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쳐들어가는 것이 예사로운 일로서 마구 벌어지고 있으니까.

힘 센 놈이 힘 없는 놈을 강탈하는 예로서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있다면 아마도 식인종의 경우일 것이다. 학교 때 배운 바로는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인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한 때 공존했는데 후에 언제부터인가  ‘크로마뇽인’만 남고 ‘네안데르탈인’들은 별 이유도 뚜렷이 없이 지상에서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을 모두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귀착된다. ‘크로마뇽인’은 현생인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란 소리다. 고로 그와 같은 가정이 언제고 사실로 입증이 된다면 우리 모두는 식인종의 후예란 소리다. 별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잔학성, 이기주의적인 성정 등을 본다면 별로 그렇게 틀린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 비극적인? 참혹한? 원시 단계를 지내왔을는지는 몰라도 문명을 발전시켜 이제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인육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또한 옛날하고는 다르게 ‘민주주의’란 것도 만들어 내어 황제나 왕 같은 독재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도 마련해 놓았고, 시시때때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단체로 돕기도 하는 대규모 자선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나 학교에서 배웠던 것으로서, 원시 사회도 공동체 사회였고 만장일치나 다수결로 의사가 결정되는 비교적 그럴싸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제도를 갖추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인 습관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아주 오랜 옛적의 태고 시절에도 다수결로 뭔가를 정하고 그랬을까? ‘네안데르탈인’을 다 잡아 먹어서 더 이상 잡아 먹을 ‘네안데르탈인’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뭔가 새로운 것을 먹어야 했는데, 그 새로운 식품으로서 이웃 마을 부락을 대상으로 하자는 찬반 투표를 했을까? 어쩌면 주변 부락 중에 가장 힘이 없어서 그 어떤 부락도 쳐들어갈 능력이 안되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최하위 마을 사람들이 배를 곯다 못해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을 대상을 고르는 투표를 해서 ‘다수가 소수를 잡아 먹자’라는 투표라도 했을까? 아마도 원시인 식인종들의 민주사회에서는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다수결이라고 해도 소수로 판가름 나면 목숨을 잃는 투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된다면 가만히 순순히 목숨을 내어주기 보다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 편을 택할 테니까. 살아날 가능성이 단 몇 퍼센트에 불과하더라도 사는 방법이 있다면 그 쪽을 택하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니까.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평생을 우리나라에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헌신한 엊그제 돌아가신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께서 하루 아침에 뚝딱하고 발명해 놓은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 헌법에 적혀 있는 민주국가 국민으로서의 기본권 등등 그 모든 훌륭한 권리 조항들은 법학자들이 헌법을 제정할 때 ‘아!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고민 끝에 창안해 놓은 것이 아니다. 유구한 세월을 통해 수 없이 많은 핍박을 견뎌낸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또 흘리고 해서 ‘내게 불리한 것은 타인에게도 불리하고, 내게 옳아야 하는 것은 모두에게도 옳아야 한다’는 범 세계적인 시민정신을 깨우치고 나서, 그리고 또한 ‘내가 존엄하면 타인도 존엄하고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속박 당하지 않고 신체적 구속을 당하지 않아 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는 것과 같은 하늘로부터 내려 받은 평등한 권리를 우리 모두가 똑 같이 나눠 가졌다’하는 기본 전제를 모두가 인정했을 때에 그 때부터 진정한 민주주의가 우리 손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제 아무리 원시 식인종들의 민주주의라고 해도 평상시 인사하며 지내던 이웃마을을 쳐들어가자는 투표 같은 것을 할 턱이 없고, 자기 형제 자매나 마찬가지인 이웃 사촌들을 잡아먹자는 투표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게 진짜 민주주의라면 말이다.

이  인 < yiin123@naver.com,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

PS. 제 이름은 ‘이인’입니다. ‘호치민 북클럽’이라는 가면은 오늘로서 벗어 던집니다 (이미 벗겨져 있었는데 몰랐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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