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통일은 베트남 현대사에서 최고의 가치다. 한국인은 베트남적 가치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 한국인의 베트남 인식이 부정적일까?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력한 식민사관(植民史觀)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역사 인식에 식민사관의 잔재가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식민사관이 한국인의 베트남적 가치, 베트남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민사관의 3가지 핵심은 1) 한국인의 사대주의 2) 한국인의 분열주의 3) 한국인의 남아시아 멸시 사상이다.
한국인은 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분명히 일본인의 독특한 인식이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을 통해 한국인에게 주입된 인식이다. 한국인의 직접적인 인식이라기보다는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동남 아시아인을 은근히 무시하며 군림하려는 저급한 우월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의 베트남적 가치 인식에 심각한 한계점으로 와 닿고 있다.
1962년 일본인 Masanobu Tsuji(M. E. Lake 옮김)이 쓴 ‘Singapore, the Japanese version'(일본의 시각으로 본 싱가포르)이란 책이 London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의 306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야를 침공하던 일본 군대에 배부된 책자에는 다름과 같은 구절이 나타난다.
‘최근 일본에서는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진학도 할 수가 없으며, 일류 호텔이나 기차나 증기선에서는 영어가 널리 쓰여서, 우리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유럽 사람들을 우월하다고 여겼으며, 중국이나 남방 사람들을 경멸하기에 이르렀다.’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저명한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이자 고려문화연구원 이사장이었던 김병모 교수는 고려사이버 대학교 ‘한국인의 형성과정과 다문화 시대의 정책’ 동영상 강의에서 한국인의 남아시아 멸시 사상이 일본강점기 시대에 일본에 의해 형성된 인식이라고 한다.
베트남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베트남 인식에 대한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잘못된 베트남 인식이 베트남 현대사에서 베트남 민족의 지고한 최대 가치가 된 통일을 폄하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남아시아 멸시 사상 위에 미국에 의해 형성된 공산주의자 호찌민, 비겁하고 악랄한 베트콩, 무력 통일, 공산화 통일과 같은 단어는 한국인의 통일 베트남 인식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우리가 통일 베트남에 대해 논의하면서 한반도 통일에 주는 혜안을 얻으려면 편향되었던 통일 베트남 인식에 대해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더 나아가 베트남 전쟁의 발발 원인과 통일 과정에 대한 객관적 관점이 필요하다. 무력통일이었다는 것만으로 베트남 통일의 가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베트남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협된 인식으로 인해 지금까지 분단국 사례 연구와 통일 논의는 주로 독일에 관한 것이었다. 베트남 통일에 대한 연구는 아주 미약했다. 통일 논의에서 왜 베트남이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을까? 보다 더 자세한 직접적인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가 베트남 통일의 반대 세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통일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 통일을 북쪽이 주도하게 될 것을 예측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베트남 분단화를 추구했다. 결과론적으로 한국은 베트남의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의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통일이 아니라 월남 패망이라는 인식을 유지했기 때문에 베트남 통일 연구가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우리는 베트남 통일세력에 대한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가해자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가르쳐 왔고 배워왔다. 베트남 통일 세력에 대한 가해자가 어떻게 베트남 통일을 배우기 위해 연구할 수 있겠는가?
셋째, ‘공산화 통일’이라고 베트남 통일을 폄하한 선입견 때문이다. 베트남 민족에게 통일은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인식에는 월남이 패망한 부정적 사건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월남이 패망함으로 인해 베트남이 공산화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넷째, 무력으로 통일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베트남 통일은 무력 통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은 평화 통일을 원하기에 무력으로 통일을 이룬 베트남 통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우선순위에서도 밀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통일 과정 연구를 통해 왜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원하지 않았던 무력통일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한다면 베트남 통일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 베트남 통일을 좀 더 유연성 있게 논하기 위해서는 공산화 통일과 무력 통일에 대한 인식의 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베트남 통일을 보다 더 객관적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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