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파여행기

kimswed 2006.09.29 11:48 조회 수 : 3649 추천:815



사파의 가을밤은 제법 쌀쌀하다. 동남아 국가 대부분의 중저가 숙소에서
 에어컨을 틀면서도 이불은 고작 큰 타월 한장이 다 인것에 비해 사파에서는
두툼한 솜이불이 마련되어있다. 난방이 안되어 그래도 쌀쌀하고 눅눅한 기운이 없진
않으나 그래도 두툼한 이불이 있어서 참 좋다.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공기가 쌀쌀하다.
간밤에는 비도 잠깐 내린것 같던데, 고산족 아이들은 어디서 잤는지
내내 걱정된다. 마음같아선 아이들을 불러 국수라도 사 먹이고 싶었는데
어제도 숙소안으로 부르니 계단 위까지만 올라오고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 것이
숙소에선 고산족들의 출입을 금하는 것 같다.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위해 길과 접한 테라스로 나가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사파의 중앙통이 제법 활기차다. 박하로 떠나는 사람들,
벌써부터 고산족들과 흥정을 하는 사람들, 이제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다. 







나는 쌀국수, 해인이는 반숙 계란 프라이에 바게트빵을 먹고 오토바이를 구해
따핀마을로 향했다. 따핀마을은 숙소에서 20분정도 걸린다.
드라이버는 순하게 생긴 새신랑이다. 따핀마을로 출발하는가 싶더니 
마을 끝무렵 주유소에서 외국인과 베트남인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을 태운
다른 오토바이들과 합류를 한다. 기사들이 서로 친구고 같은 방향이니
심심치 않게 함께하는 것 같다.



따핀 마을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그 산에 만들어 놓은 다랭이 논에선 벼 수확이
한참이다. 우리나라 농촌 풍경과 별다를 것이 모습이 한국에 있는 듯 마음을 편하게 한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오토바이가 모두 선다.
그곳엔 쓸어져가는 성당이 있었다. 사파의 낡았지만 번듯한 풍채를 간직하고 있는
성당과 대조적이다. 성당을 지나면 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오며 따핀마을의
입구에 다다른다. 입구 가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다.



역시나 오토바이가 들어가면서 바로 마을 주민들이 이런저런 물건들을 들고
관광객들에게 접근한다. 심지어 내내 관광객들을 쫓아다니며 기회가 될 때마다
물건들을 권한다.

따핀마을은 자오족 마을이다. 치마를 주로 입는 몽족과 달리 자오족은
치마안에 바지를 입고 있다. 처녀들은 머리를 길게 생으로 내리고 결혼한
부인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쓰는데, 그냥 얼핏 든 생각으론 '자오'가 한자어
'붉을 자'에서 나온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인네들이 붉은 수건을
쓰니 그 색을 따서 '자오'족이라 한건 아닌가 싶기도하다. 






마을은 생각보다 꽤 넓다. 길게난 길을 두고 한쪽엔 자오족 마을이
다른 한쪽엔 몽족마을이 있다고 한다. 몽족 마을은 자오족 마을보다 규모가 조금
작다.



마을입구부터 걸어서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고 그중 자오족 집도 한번 들린다.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골목에 들어가니 퀘퀘하니 별로 아름답지 않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뭔가를 구경하고 있다.

뭔가 해서 다가가보니 이제 갓잡았는지 아직도 촉촉한 물기가 남아 있는
돼지 가죽을 자로 재면서 일정하게 자르고 있다.
냄새가 너무 심해 자리를 뜨려고하니, 해인이가 어떤 애가 쥐를 들고 있다고
슬쩍 얘기하는데, 어린애가 죽은 쥐의 꼬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들고 있는 폼새가 징그러워 하지도 않는것이 장난감이거나 사냥감이거나
한것 같다.  돼지가죽과 쥐를든 아이에 잠시 경악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번엔 자오족의 집으로 들어가 본다. 집안 아궁이에선 뭔가 끓고 있고, 그 옆에선 돼지도
있다. 방은 얼기설기 엮어서 부부방, 아이들방, 곳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집안이 주거지도 되고, 우리도 되고, 곳간도 되고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입장권내고 들어오는 마을이라지만 불쑥 남의 집에 들어간것 같아
조금 미안하다.






그 집에서 나오니 입구부터 따라오던 자오족 아가씨들과 집주인 그리고
마을 여인들이 모두 모여 서양 관광객에게 물건을 판다.
왼쪽에 서 있는 젊은 남자는 베트남인인데 보트 피플이었는지 아니면 이민을
갔는지 독일어도 유창하고 매너도 좋았다. 자오족에 둘러쌓여 물건을 사고 있는
독일 여인이 그의 부인이고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단다.

작년 캄보디아 여행때 시하눅빌 바닷가에서 바로 옆 파라솔에 있던 유럽 아가씨들이
바가지를 쓰고 물건을 사길래. '너들 바가지 썼다. 더 깍을 수 있었는데 왜 안깍냐?'했더니
자기들도 바가지 쓴것 알지만 상관없다고 답했었다. 그 아가씨들은 고작 5달러 짜리
방에서 둘이 지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참견장이 내가 독일여성에게 다른곳에서 사면
더 싸게 샀을텐데 왜 샀냐고 했더니 독일여성도 같은 말을 한다.
그들 말은 조금 비싼것은 알지만 자기들은 조금 잘사는 나라에서 왔고
그들에게 바가지를 쓴 그 돈이 자신들에겐 얼마되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필요한 곳에 잘 쓰일 거라는 거다. 나야 한국에서도 물건 깍는게 습관이 되어서 심지어 백화점에서 조차 물건
값을 흥정할 정도지만 그들의 자세는  또 다른 쪽을  생각하게 하였다.







마을을 돌아보고 나면 이번엔 마을 꼭대기에 있는 동굴에 데리고 간다.
이 동굴이 탐험가들에게는 아주 신날 만한 곳인데,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라
아무런 조명시설이 없다. 동굴 입구에는 횃불을 밝혀주는 동네 아이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오면 불을 밝혀 따라들어온다.

처음엔 어둡지만 얕고 시원한 개울도 있는 것이 서늘하고 좋기도 했는데
들어갈 수록 장난이 아니다. 오르고 내리고 정말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동굴을 헤집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중간에 모두 포기하고 나가고 결국 해인이과 베트남-독일 새신랑
그리고 나 횃불돌이들 이렇게만 남게 되었다. 해인이는 겁이 많으면서도 모험심이 강해
동굴을 끝까지 돌아보고 싶어했지만 도저히 내취향은 아니다.
결국 우리도 다시 돌아 나오고 새신랑도 우리가 나온다니 맥이 풀린 채 따라나오고
말았다. 사실 새신랑은 자기 부인도 먼저 나가고 해인이와 나 때문에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따핀마을 투어는 모두 끝났다. 마을입구로 걸어가는데 아까부터 쫗아오던
새댁이 계속 쫓아오며 물건을 판다. 정말 사고싶지 않았지만 정성이 갸륵해
가방을 또 사고 말았다.

마을 입구에는 처음 들어오던 그 모습대로 마을 사람들이 가게앞에 모여 무언가
하고 있다.






드라이버와 아침에 약속한 것은 따핀과 깟깟마을 모두 돌아보는 것에 5달러를 주기로
헀으나 의외로 따핀마을에서 시간도 세력도 소모해 버려 깟깟까지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드라이버에게 깟깟은 안갈테니 대신 호수를 한바퀴 돌고 시장으로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호수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호수 주변엔 고산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파는
시간만 된다면 사나흘쯤 충분히 머물면서 그 한가함을 만끽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