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곳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
황토빛 강물 위로 빨간 해가 떠오르기 전 오늘도 메콩강 어디선가 닭울음 소리가 들리고 부지런한 강마을 사람들은 조각배를 저어 으슴프레한 강물로 나아 가 그물을 드리운다. 변화의 바람속에서도 수백년 전통의 모습을 잃지 않는 메콩 강 사람들을 만나본다.
글/사진 최승언 (여행작가)
베트남 최남단 인도 차이나 꼬리 부분에 위치하는 메콩강 삼각주는 풍요의 땅이 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너른 들에 푸른 벼가 익어가고 바다같이 넓은 강을 끼고 원시림이 우거진 수림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황톳빛 강물에 보석처럼 떨어 지는 햇살이 눈부시고 강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그물을 드리운다. 크고 작은 보트 들은 무언가를 싣고 분주히 강물을 오간다. 메콩 델타는 조용한 듯하지만 끊임없 이 움직인다. 마치 시장 경제에 눈을 뜬 베트남의 활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메 콩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중에 하나. 티벳고원에서 발원하여 중국땅과 미얀 마를 종단한다. 라오스와 태국,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선을 만들며 흐르다가 남 지나해로 빠져들어 그 생명을 다하기까지 장장 4천5백킬로를 흐른다.
베트남의 빵 바구니 메콩델타
메콩강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2갈래로 갈라진다. 한갈래는 바삭 강이라 불리는 데 챠우독, 롱슈엔, 칸토를 거쳐 바다로 향하고 다른 한줄기는 베트남 텐장주로 흐르다가 빈롱 지역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다. 강 줄기의 나뉨이 마치 9개의 용이 구비치는 것 같다 해서 구룡이라 불리는 메콩델타. 이곳의 강줄기를 모두 연장하면 5천킬로 미터가 넘는다. 강물이 실어온 퇴적물로 델타 지역은 농사짓기 에 좋은 비옥한 땅이 된다. 이 퇴적물로 메콩강 델타의 해안선은 매년 평균 79 미터를 넓혀 왔다.
메콩 델타는 반 이상의 땅이 경작지다. 베트남의 빵바구니 또는 곡창으로 불릴 만큼 베트남의 쌀 생산량의 60 % 이상을 생산해 내는 지역이 이곳이다. 메콩델타 에서 나는 쌀은 베트남 국민을 먹여 살리고도 남아 수출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1975년 베트남 정부가 이곳을 협동 농장화 했을 때 이 지역의 쌀 생산성 이 급격히 떨어졌고 사이공에서는 쌀 부족 사태가 났다. 이때도 농부들은 자신들 이 충분히 먹고 남을 만큼 쌀을 생산해 냈다. 사이공에서는 쌀을 사기 위해 메콩 델타 지역으로 몰려 들었다. 베트남 정부는 검문소를 마련해서 그들이 10킬로 이 상 쌀을 사지 못하도록 했다.
원시성 간직한 풍요의 물줄기
86년이 되면서 베트남 정부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곳의 쌀 생산량은 다시 늘기 시작했고 지금 베트남은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으 로 성장했다. 델타지역의 산물은 쌀 뿐이 아니다. 코코넛, 사탕수수, 열대 과일, 어류 등이 생산되는 곳이다. 원초적으로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는 땅이지만 베트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증거 일 것이다.
메콩델타는 한때 크메르 왕국의 땅이었으나 18세기 후반에 베트남에 병합되어 베트남 사람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크메르 뒤를 이은 캄보디아는 아직도 텔타 지 역을 '저지 캄보디아'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로 이땅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메콩 델타의 대부분 주민들은 대부분 베트남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중국인 크메르 인 참족의 숫자도 상당하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군은 이곳을 야습해 주민들 을 학살한 적도 있다. 이에 대응해 배트남군이 캄보디아에 침입해 크메르 루즈 군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것이 79년의 일이다.
베트남 전쟁을 견뎌낸 인고의 강
메콩강 보트 여행은 대단한 매력이다. 바다처럼 넓은 강, 바나나와 야자수 잎사 귀가 하늘을 가린 좁은 수로를 따라 마을들을 찾아 나서면 처녀지를 탐험하는 느 낌이 든다. 베트남 전쟁때, 이곳 곡창 지대인 메콩 델타 지역은 미군과 베트콩 사이에 전 투가 치열했다. 메콩 델타 지역은 베트남의 곡창으로서 베트콩들이 게릴라 활동 을 전개하던 근거지였다. 사이공과 가깝기도 했지만 아열대 수림, 키를 넘는 풀, 망그로브 늪지 등의 자연환경이 베트콩에게는 몸을 숨기기에 최적이었기 때문이 다. 미군들은 치고 빠지는 베트콩의 게릴라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했지만 악어, 뱀, 거머리, 전갈, 독거미, 모기, 말라리아 등과도 싸워야 했다. 민간인이 많아 베트콩에게 무작위 폭격을 가하는 것도 어려웠다. 미군들은 어쩔수 없이 지상군 을 보내에 수색 작업을 펼쳐야 했다. 헬기에서 기관총을 쏘고 수상에서는 미군 초고속 스피드 정이 순찰하면서 카누로 돌아다니는 게릴라 소탕 작전에 나섰다. 이에 베트콩은 부비트랩 설치. 야습, 반동분자 암살, 지뢰 매설로 대항했다. 밤 엔 게릴라가, 낮에는 미군이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남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서로 메콩강의 젊은이를 징집함으로서 형제끼리 싸우는 경우도 발생했다.
망그로브 늪지에 뿌려진 고엽제
미군들은 좁은 수로를 찾아다니는 베트콩을 찾아내기가 여의치 않자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이름의 고엽제를 썼다. 망그로브 늪지를 청소하여 베트콩 은거지를 없애버리겠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먹을 것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 던 베트콩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고엽제를 맞은 나무잎은 말라 떨어져 늪지의 새우의 먹이를 제공했고 이 새우를 잡은 베트콩들은 먹고 나머지를 시장에 갔다 팔았던 것이다. 미군은 월남전에서 7천2백만 리터의 고엽제를 뿌렸다. 이 고엽제의 양을 휘발 유로 따지면 1만대의 차량이 3년동안 출퇴근을 하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다. 20년 이 지난 지금도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음식이나 모유에서도 발견되고 있을 정도 로 피해가 막심하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사용한 폭탄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의 4백 50배에 달하는 1천 3백만 톤에 달한다. 미국이 쓴 전쟁 비용을 인도차이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일인당 2천 달러다. 미국이 전쟁 비용을 폭탄 대신에 그곳 사람들의 복리 후생에 사용했더라면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분명 이겼을 것이 고 베트남은 미국을 찬양하는 노래로 가득한 나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장면같은 매콩강의 수상시장
메콩 델타에서 가장 매력있는 곳으로 꼽을 만한 곳이 수상 시장이다. 메콩 델타 의 수상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메콩강 삼각주의 교통 줌심 지에는 미토, 가베, 칸토, 빈롱 등의 도시들이 있고 이들 도시에는 예외 없이 큰 수상 시장이 형성 된다. 수상 시장은 메콩강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가장 극명하 게 드러내는 곳이다. 메콩강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생산한 온갖 산물이 이 곳 수 상 시장에 모여 든다. 작은 배에서 거대한 삼판에 이르기까지 수상시장은 수백척 의 배들로 장관을 이룬다. 배에는 저마다 다양한 상품들을 실려 있다. 바나나, 파인애플, 듀리안, 롱안 등 과일은 물론이고 쌀, 채소 등의 농산물, 메기, 숭어 같은 수산물, 오리, 닭, 돼지 등의 가축들이 있는가하면 대 바구니 같은 수공예 품까지 다양하다. 강변은 물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지은 수상 가옥들 이 늘어서 있고 이 가옥 주변으로도 물건을 팔고 산다. 강 위에는 큰 배들은 정 박하여 있고 작은 배들은 분주히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교환한다. 메콩 델타 구 석구석에서 온 사람들은 가져온 물품들을 팔아 일상용품과 바꾼다. 동이 트는 새 벽 희뿌연 안개를 뚫고 분주히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들의 움직임은 영화 속의 장면 같이 여행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빨간얼굴 검은 눈동자의 보트들
메콩 델타의 배들은 독특하다. 작은 것은 거의 수면에 뱃전이 닿을 듯하고 한쪽 으로 쏠리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만 같아 서있기가 겁이 알 정도다. 그러나 이 런 배를 메콩강 사람들은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인다. 배 뒷편에 서서 두개의 노 를 교차해가며 노를 젓는다. 노의 형태는 다르지만 배를 젓는 모습이 마치 베니 스의 뱃사공같은 모습이다. 베니스와 메콩강이 다른 것이 있다면 베니스의 배들 은 관광용이 대부분이지만 메콩강의 것은 거의 생활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배라는 점일 것이다. 작은 배들은 소형 엔진으로 움직인다. 배 뒷편에는 작은 엔진이 있고 이 엔진에 연결된 쇠 막대기 끝에는 프로펠러가 달려 있다. 뱃사공은 이 쇠막대기를 상하 좌우로 움직여 배를 조정한다. 메콩강의 배는 하나같이 빨간 얼굴과 검은 눈동자 를 한 얼굴을 뱃머리에 장식하고 있다. 눈을 부라린 모습은 마치 우리 절에서 보는 금강 역사처럼 부정한 것이 근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주술로 보인다.
돌아온 보트족이 베트남을 살린다
배가 조금 더 커지면 단순한 교통 수단이기보다 메콩강 사람들의 주거 양식이 된다. 메콩강 사람들은 상당수는 배에서 자고 먹고 생활한다. 배에는 햇빛과 비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붕이 설치되어 있고 이 지붕 아래엔 그물 침대, 취사 도 구를 갖추고 있다. 수상 족들은 메콩강에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다 시장에 팔고 그것으로 식량이나 생활용품을 사서 생활한다. 큰 배들도 있다. 지붕까지 갖추어 원통형처럼 보이는 큰 배들은 메콩강 줄기를 오가며 밀 무역을 하기도 한 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남쪽을 장악하자 보트 족들은 이런 배를 끌 고 남지나해로 흩어졌다. 보트 족들은 바다에서 희생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미 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 자리를 잡았다. 외국에서 성공한 보트 족들은 지금은 베트남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그들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많은 돈을 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달러를 부치기도 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정부도 공항이나 기차 역 등에서 줄을 설 때 이들만의 줄을 따로 마련하는 등 돈 잘쓰는 해외 동포들을 특별 배려하고 있다.
항아리 많을 수록 부자집
땅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의 생활은 수상 가옥에 비해 윤택한 편이다. 그러나 집의 구조는 단순하다. 들어자 마자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다. 제단 아래에는 간단한 탁자가 놓여 있고 이 탁자 우측에는 나무로 만든 평상이 위치한다. 평상 뒤쪽으로 해먹을 건 침실이, 침실 왼편으로는 항아리와 조리를 할 수 있는 부엌 이 위치하는 곳이다. 부엌에는 또 하나의 침상이 있어 주부가 사용한다. 제단은 마당에도 있는데 이 제단은 집안의 제단과 달리 다른 잡신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 다. 조상을 모시기 위한 제단, 물을 끌어 들이는 수로, 빗물을 담아두는 항아리 는 메콩강 사람들의 가옥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 조건이다. 항아리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한다. 수로를 집 주위에 파두는 것도 물을 모아 물고기나 오리 등을 기르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가옥에서는 이 수로에 화장 실을 마련한다. 배설물이 바로 수로에 떨어지면 잉어나 오리들이 먹고 자란다. 이 수로의 물을 길러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물을 길러 항아리에 넣어두면 불순물 이 항아리 바닥에 가라앉는데 이렇게 정수된 물은 허드렛 물로 쓰이는 것이다. 메콩강 마을에서는 항아리가 많을수록 부자로 여긴다. 잘 사는 집에서는 항아리 가 10개도 넘고 메콩 델타에서는 항아리 공장이나 벽돌 공장이 지금도 성업중이다.
땅위에서 살든 배위에서 살든 메콩강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그대로 지 키며 살아간다. 현대화의 물결이 메콩강에도 밀려와 변화가 일고 있지만 메콩 델 타는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메콩강은 타임머쉰을 타고 간 과거의 나라같다. 넓은 강을 배를 타고 가면 얼핏 분주해 보이는 메콩강은 여전 히 여행자들의 가슴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어린이나 애들할 것 없이 오랜 친구 처럼 반가이 맞아주는 이곳의 인심도 어머니 젖가슴 같은 메콩강의 부드러움이 만들어 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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