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고 신랑을 데려오는 결혼식 풍경… 유교 전통에도 여자 따르는 생활방식 유지
남성과 여성의 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다면….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남녀의 처지를 바꿔놓았다. 굳이 소설이 아니어도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는 항상 존재했다. 아시아의 일부 소수민족은 아직도 딸을 통해 혈연과 재산을 이어가는 모계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가계와 가옥, 토지 등을 딸에게 상속시키며, 집안의 대소사도 어머니 중심으로 결정한다. 여성 차별을 근간으로 삼은 호주제가 엄존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모계사회는 여성들에게 ‘꿈의 신세계’인지도 모른다. <한겨레21>은 사진가 백지순씨가 10여년 동안 렌즈에 담아온 아시아의 모계사회를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
사진/ 신부의 집으로 결혼식을 치르러 가는 신랑 · 신부와 친척들.
모계사회의 결혼식은 집단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집안의 성(姓)과 재산이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큰딸로 이어지는 관습이 오롯이 드러나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모계 풍습을 그대로 간직한 에데족의 결혼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에게 결혼식은 한마디로 신부가 여자 친척들과 함께 신랑을 데려와 잔치를 베푸는 축제였다.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남편을 사오는 잔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에데족 여성이 남편을 사오는 날은 어떤 모습일까.
에데족들은 아밍옌 마을에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정부에서 소수민족을 정착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결혼식을 치르는 집을 금세 찾을 수 있다. 시끌벅적한 잔칫집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치르는 신부의 아버지 마응옌(43)은 연신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결혼은 신부 꼬 야오 허옌(19)의 청혼으로부터 시작된다. 허옌이 한 동네에 사는 남자 쮸레 이끄로(22)를 신랑으로 맞으려 부모님께 이를 알리고 결혼 승락을 받았다.
사진/ 베트남 남중부 산악지대의 에데족 마을.
사위 데려오려고 ‘시댁’에 지참금 지불
젊은 남녀의 결혼식은 곧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허옌은 결혼 승락이 떨어진 뒤 6개월 동안 이끄로의 집에서 지냈다. 허옌의 집에서는 사위를 데려오려고 ‘밧응모’라는 일종의 지참금을 신랑 집에 지불했다. 이날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허옌의 부모는 쇠고기 50kg과 황소 두 마리를 밧응모로 내놨다. 그리고 결혼식 비용으로 400만동(40만원가량)을 썼다고 한다. 물론 신랑쪽도 답례를 했다.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황소 네 마리 값에 해당하는 옷감 두필을 허옌의 집에 보냈다.
허옌의 집에서 결혼식 시각이 다가올 즈음, 신랑은 자신의 집에서 신부쪽 식구들이 자신을 데려가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은 결혼 예복을 차려입고서 대나무로 만든 긴 대롱으로 큰 항아리에 담긴 곡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척들에게도 곡주를 권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윽고 신부가 신랑집으로 다가왔다. 신부는 맨 앞에 있고 여자 친척들이 뒤를 따르는 행렬이었다. 신부는 신랑 부모님께 인사를 한 뒤 선물을 받았다. 잠시 기념촬영을 한 뒤 신부와 신랑은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될 신부의 집으로 향했다.
사진/ 잔칫날 남자들이 뒷뜰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위). 신부와 신부의 여자 친척들이 열을 지어 신랑을 데리러 가고 있다(아래).
결혼식 행렬이 신부집에 도착했을 때 모계사회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부는 신랑의 손을 잡아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우리나라 결혼식에서는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이끌어 신랑에게 넘기는 식이다. 바로 어려서 아버지를 따랐듯이 이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하는 ‘삼종지도’의 상징적인 행위인 셈이다. 하지만 에데족은 분명히 달랐다. 남편은 아내를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들어간 신부는 신랑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본가에 가지 못해 슬퍼하는 남편들
마을 사람들은 여자는 여자들끼리, 남자는 남자들끼리, 아이는 애들끼리 모여 앉아 결혼식을 지켜본다. 몇몇 남자들이 모여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사정인즉 이랬다. 신랑쪽 친척들이 오는 걸 보면서 자신의 ‘친정집’이 생각났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인이 허락하질 않아서 가지 못한다고 했고, 돈이 없거나 너무 멀어서 못 가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집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서 자신의 집에 못 가는 사라도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겪은 시집살이의 고통이 바로 남자들의 몫이었다. 에데족 남자들의 시집살이는 여전히 계속된다.
사진/ 에데족의 결혼 기념사진(왼쪽). 흐닷아윤 할머니의 생신잔치. 여자 손님들이 안쪽 상석에 앉아 밥을 먹는다(오른쪽).
사진/ 여대생 흐니아룰이 남자친구에게 “내가 너를 돈 주고 사니까 내가 더 힘이 세다”고 하자, 남자 친구는 “나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몸값이 비싸다”고 말한다(왼쪽). 흐니아룰의 가족들(오른쪽 위). 백년간의 프랑스 식민시절은 바게트를 전통음식의 일부로 바꾸어놓았다(오른쪽 아래).
사진/ 신랑을 신부집에 데려온 뒤 전통의상으로 갈아입고 피로연에 갈 준비를 한다(왼쪽). 신랑의 집에서 들러리와 신부, 신랑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오른쪽 위). 손님들에게 신부가 먼저 담배를 권하고 뒤따르던 신랑이 술을 대접한다(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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