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점점 골프가 싫어진다. 싫어지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공을 생각만큼 잘 못 치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이버거리가 급격하게 줄은 후에 도무지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니 티샷부터 속이 상하고 남들보다 50야드나 뒤에서 두 번째 샷을 롱 아이언으로 준비할 때는 왠지 서글프고 심하면 서럽기까지 하다. 웬만한 남성들보다 두 배는 두껍고 튼튼한 이만기형 다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드라이버가 50야드나 적게 나가는 원인을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나는 대로 쥐 새끼 풀방구리 드나들듯이 자주 다니고 땀을 두어 바가지나 쏟으며 연습을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 빠진 자전거처럼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수년 전만 해도 토너먼트에서 장타상을 타기도 하고 나름대로 거리에 관한 한 뒤질 것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불과 수년 만에 완전히 똠방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도 드라이버 거리가 안 나서 골프가 싫어지는 것만은 아니고 생각대로 안 되는 골프를 치며 속상해 하는 너절한 모습을 동반자들에게 보여주는 자신이 싫어져 골프를 접을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원래 마음을 감추는 표정관리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유아적 성격의 소유자라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필드에서 필자의 얼굴만 보면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뻔히 보인다. 이렇게 필드만 나가면 발가벗어야 하는 자신이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대도 누군가 라운딩을 하자는 전화만 오면 거절을 못한다. 전화하는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서 거절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라운딩의 유혹을 스스로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또 나가서 진상을 치고 다시 속이 상해 돌아와 혼자 씩씩 거리며 울분을 삼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어진다. 이럴 때는 정말 골프가 나쁜 이유가 100만 가지는 넘게 나온다.
골프 한 라운딩 하려면 거의 하루 일을 다 접어야 하고, 필드 한번 나서려면 아침부터 옷 챙겨야지, 혹시 연습하다가 채를 두고 온 것은 없는지 살펴야지, 우산은 있는지, 공은 어떤지, 장갑이나 티는 제자리에 있는지, 마치 어린아이 소풍 가듯이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드에 나가서도 동반자가 펑크는 안 내는지 늦지는 않는지, 게임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등 시작하기 전부터 고심이 많다. 진짜 골프가 싫어지는 상황은 필드에서 벌어진다. 드라이버를 치려고 티 박스에 서기만 하면 보이는 건 온통 숲이고 그나마 좁디 좁은 페어웨이 한가운데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나무와 입 딱 벌리고 공아 어서 와라 하며 기다리는 해저드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공이 제대로 갈 턱이 없다. 어쨌거나, 그런 두려움을 다 떨치고 공을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잘 보내면 동반자들, 말로야 굿샷을 외치지만 별로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첫 샷에 벌써 말과 마음이 다른 숨은 인격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만드는 것이 골프다. 어쩌다 공이 잘 맞아 파 행진을 계속하다 어느 홀에서 버디라도 잡아봐라. 전화번호를 지우겠다느니 모임에 나가는 것을 재고 해야겠다느니 험악한 공갈 협박이 스스럼 없이 나온다. 그렇다고 잘못 치는 샷이나 짧은 퍼팅을 놓치면 위로의 마음을 갖는가? 천만에 겉으로는 쯧쯧, 조금 짧았네 하며 안타까워하는 것 같지만 돌아서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 골프다. 공이 잘 안 맞아 울화가 치밀어도 웬만하면 웃어야 한다. 승질 한 번 잘 못 부렸다가는 온 골프장에 매너 더러븐 녀석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젠장, 잘해도 탈, 못해서 화풀이 한번 내 뱉으면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 된다.
라운드 도중 공이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면 잘못하다가 사흘은 숲 속에서 헤매야 하고, 그나마 공이 모습을 안보이면 그 원망스러움이란 마치 자식 잃어버린 듯하다. 어쩌다 간신히 찾은 공이 나무 뿌리 위에라도 있어봐라. 순간적으로 ‘아, 1인치만 옮기면 되는데’ 하는 악마의 유혹이 밀려든다. 그걸 실행에 옮겼다가는 평생 골프장에서 사람 노릇하기 힘들어진다. 라운딩을 마치고 장갑을 벗을 때 ‘아, 오늘 하루 잘 치고 잘 놀았다’ 하는 기분이 얼마나 드는가? 아무리 잘 쳐도 아쉬움은 남고, 못 치면 잔뜩 스트레스만 쌓아간다. 그렇다고 돈이 싼가? 회원이면 그래도 낫다. 그린 피가 없으니 18불 캐디피만 내면 되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라운드 도중에 먹고 마신 음료수 값하며 라운드 후에 먹어야 할 저녁 값, 게임에서 터진 지출, 게다가 비회원이면 그린 피와 캐디 피를 합쳐서 100불 가량을 내야 한다.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런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골프를 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가끔 거래처 손님하고 치면서 오더라도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잘못하다가는 더러븐 성질 다 보여 있는 오더도 사라질 지 모른다. 고작 확실하게 얻는 것은 약 10킬로 가까운 거리를 걸으며 건지는 건강상의 잇점인데 그것도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은 우기에 비라도 잘 못 맞으면 지독한 베트남 감기 몸살에 열흘은 누워지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런 골프의 부정적인 모습만 크게 보면서도 골프장을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 다니니 참 불행한 골퍼다.
그런데 왜 골프를 목숨을 걸고 치듯이 매달리는 가? 사실 나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놀이가 골프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래도 인간의 작품 같지는 않고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정말 싫어진 골프를 당분간 멀리 하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원래 공이 안 맞을 때 라운드 요청이 많아진다. 보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지갑이기 때문이다. 어제 또 거절하기 힘든 형님 뻘 어른의 요청으로 필드를 나섰다. 그리고 또 머리가 돌아버리고 왔다.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라운딩을 즐기며 지냈는데 왜 이렇게 불행해 질까? 공이 안 맞아,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느끼는 불행이다. 참으로 가벼운 인성이다. 어떤 이를 만났다. 핸디가 18개 정도의 그저 그런 골퍼고 품도 영 시원치 않아 간신히 보기 플레이는 면한 실력인데 라운딩 내내 그에게서 나오는 분위기는 스코어와는 달리 밝은 모습이다. 라운드 내내 얼굴 한번 찡그리는 것을 못 봤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동반자들이 안보는 곳에서 인상을 쓰던가 정말 노련한 놀음꾼처럼 포카 페이스가 익숙한 분이던가. 자기 기준 밖에 모르는 불행한 골퍼인 필자가 물었다. “아주 즐겁게 공을 치십니다.” “아 예, 저는 정말 골프를 칠 때 행복합니다. 제가 이만큼 골프를 잘 친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자랑스럽고 그래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런, 고작 보기 플레이를 하는 형편에 스스로 골프를 잘 친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도저히 필자의 상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발언이다. “저희 집사람은 골프 핸디가 8인데 저를 가르치는 것은 포기했죠. 그래서 저는 제가 골프에 영 재능이 없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세요, 보기 플레이 이하를 치지 않습니까? 이만 하면 됐지 더 뭘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4-5시간을 필드에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이만한 즐거움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
에고, 에고, 마눌님보다 골프를 못 치고, 마눌님에게 골프 레슨 조차 거부 당하는 처지라면 필자는 이를 악물고 마눌님만큼은 치겠다고 덤빌 것 같은데 그 분은 자신의 수준에 스스로 만족하며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구먼, 행복을 찾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자긴 수준의 스코어에 만족하고 그 골프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 행복한 골퍼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주제를 알고 주제 넘는 희망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동반자와 파란 잔디 위에서 한 마음이 되어 자연과의 도전을 즐기는 것이 바로 행복한 골퍼가 되는 비결인가? 어휴 모르겠다, 하지만 짐짓 노력은 해보자, 혹시 그 것이 불행한 골퍼의 신세를 면하게 만들 단초가 될 지 누가 알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