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통적인 커피를 한잔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의 순수한 맛이 그대로 표현되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입니다. 그러나 에스프레소는 커피 종류 중 가장 맛이 진합니다.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원두를 짜내는 커피 기계를 통해 추출하는데 일종의 커피엑기스 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작은 잔에 반을 채우지 않는 고작 30밀리 정도의 적은 량이지만 가장 커피의 순수한 맛을 표현한다고 해서 유럽인들이 가장 즐기는 커피입니다. 사실 우리 입맛에는 골이 울릴 정도로 독하고 씁니다. 에스프레소는 만들어낸 후 바로 마셔야 합니다. 커피가 추출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공기와 접촉하여 산화 작용을 합니다. 그러면 에스프레소의 맛을 좌우하는 크레마(커피 거품)가 사라지면서 쓴 맛과 기계를 통해 커피를 태울 때 배어난 탄 맛이 강해져 커피 본연의 맛이 조금씩 변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는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며 조금씩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즉시 바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 식사 후 디저트의 하나로 마시곤 합니다.
커피의 농도에 따른 종류를 언급하면 카페모카 -> 카페라테 -> 카프치노 -> 아메리카노 -> 에스프레소로 볼 수 있는데 좀 달콤한 맛이 가미된 변형커피에서 커피 본래의 쓴 맛이 드러나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하나 좀 색다른 이름이 있죠? 아메리카노, 왜 아메리칸 커피라고 하지 않고 아메리카노라고 부를 까요?
용어 자체를 보면 이 커피의 역사가 보입니다. 이태리에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미국인들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곤 하는데 이를 보고 지은 이름입니다.
원래 커피 문화가 가장 성한 곳이 바로 프랑스와 이태리 등 유럽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커피 소비가 많은 곳은 미국이 될 것입니다. 마치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골프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를 끌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실 것입니다. 그 커피를 마실 만한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브리티시 오픈에서 올 9월에 만 60세가 되는 탐 왓슨이라는 노병이 4일 내내 1위로 달리다가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2.5미터짜리 파 퍼팅을 놓치는 것이 빌미가 되어 그만 2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미국인인 그의 위대한 도전을 음미하듯이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잔 들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탐 왓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기 전에 골프 역사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하던 골프 영웅들의 계보를 한번 짚어 봅니다.
시대 순으로 꼽는다면 28세에 아마추어로 은퇴하며 마스터스 대회를 여는 곳으로 유명한 어거스트 내셔날 골프장을 세운 바비 존스과, 그와 동 시대로 활약하면서 프로 골퍼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월터 하겐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 시대에는 골프 역사상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벤 호건, 11연승이라는 전대 미문의 대기록을 세운 바이런 넬슨, 통산 PGA 81 승이라는 최 다승 기록과 최고의 스윙어로 알려진 샘 스니드가 등장될 것입니다. 특히 호건과 넬슨 그리고 스니드는 1912년에 같은 해에 태어난 세계 최고의 골퍼 3인으로 꼽힙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을 통해 골프를 대중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후 그 대중화된 무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은 미국 체육 역사상 가장 큰 대중적 인기 몰이를 한 아놀드 파머입니다. 그는 강한 하드 히터였습니다. 공이 제멋대로 다녔죠. 그러나 그의 트러블 샷과 넘치는 카르스마는 대중의 사랑을 부르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사랑을 앗아가 오히려 대중의 질시를 받으며 등장한, 그러나 골프 역사상 최고의 마인드 콘트롤 골퍼로 인식되는 잭 니클라스를 다음 세대의 골프 영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물론 잘 아시다시피 여러 인종이 뒤 섞인 다문화 세계가 만들어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등장합니다. 그럼 탐 왓슨은 어디에 속하는 골퍼인가요? 불행하게도 그는 잭 니클라스라는 거대한 영웅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죄로 절대적 일인자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일정 기간 동안은 잭을 능가하는 활약을 펼친 유일한 골퍼입니다. 탐 왓슨은 기록으로는 골프 영웅들의 계보에 한자리를 차지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의 투쟁 정신은 그 누구에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승을 축하하네, 싱크" , 제138회브리티시오픈 우승자 싱크에 축하 인사하는 준 우승자 탐 왓슨
탐은 니클라스 보다 9년 후인 1949년에 미조리 주 캔사스 시티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좋게 말해서 대기 만성형의 골퍼입니다. 스탠포드 대학 골프팀에 속한 그는 아마추어 시절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합니다. 아주 작은 대회에서 한번 우승한 기록이 아마추어 케리어로 내세울 수 있는 기록의 전부입니다. 그는 1971년 22살의 나이로 프로로 전향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우승을 위해 삼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첫 메이저 우승은 그 다음해 이루어지는데, 지난 주 그가 다 잡았다가 놓친 브리티시 오픈에서 시작됩니다. 1975년 디 오픈(The Open)으로 불리는 브리티시 오픈에서 잭 뉴톤이라는 선수와 플레이 오프를 거쳐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며 대중의 눈길을 모읍니다. 그의 골프 인생에 본격적인 성공가도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그의 브리티시 오픈 우승은 자신이 자란 미조리 주의 날씨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항상 습하고 안개가 짙은 미조리 주의 날씨가 영국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그는 그 후에도 브리티시 오픈을 5회나 우승을 하며 골프 역사의 영웅으로 자리합니다.
그가 프로로 전향하며 첫 우승을 기록한 1974년부터 5번째 브리티시 오픈 우승컵을 치켜든 83년까지 10년간의 그의 전성기 기록은 같은 기간 동안 잭 니클라스가 세운 기록을 능가합니다. 탐 왓슨은 그 기간 동안 메이저 우승 8회를 포함하여 28회의 우승을 기록한 데 비해 잭 니클라스는 메이저 6회를 포함한 우승 18회를 거두었을 뿐입니다. 적어도 그의 전성기에는 위대한 골퍼 잭 니클라스도 그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84년 이후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의 몰락은 퍼트가 불러왔습니다. 항상 공격적인 퍼트를 즐기던 그는 아슬아슬하게 홀을 스치며 3-4피트 지나간 공을 다시 홀에 넣는 리턴 퍼트를 번번히 실패하며 내리막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짧은 퍼트를 앞두고 과민한 긴장으로 손이 움직이지 않아 짧은 거리의 퍼트를 실패하는 ‘입스’라는 병이 이때 세상에 등장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샷은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숏 퍼트는 더욱 나빠집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워갑니다. 1996년 드디어 그는 9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치켜 듭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다시 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메모리얼 터너먼트는 잭 니클라스가 디자인한 코스에서 열렸습니다. 애증의 상대였던 잭의 코스에서 그는 길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환갑을 2개월 앞둔 지난주, 다시 전 세계인에게 또 다른 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저 그런 골퍼에서 시대의 영웅 잭 니클라스를 능가하는 도전을 성공시키고, 예기치 않은 입스라는 장애로 9년 간의 긴 암흑의 터널을 각고의 의지로 이겨낸 그는 황혼의 나이에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도전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위대했습니다. 비록 우승컵을 치켜 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다시 영웅으로 돌아왔습니다.
골프라는 운동은 나이를 겁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월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세인에게 각별한 희망을 안겨 줍니다. 지난 해 19세의 나이로 여자 US 오픈을 우승한 한국의 박인비라는 골퍼가 있는 가하면 53세의 나이에 PGA 우승컵을 치켜든 샘 스니드도 존재합니다.
골프는 모든 이를 다 포용하는 운동입니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골프를 친다는 것 하나 만으로 친구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을 받습니다.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인 하비 페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골프를 한다면 당신은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