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1000년행사

kimswed 2010.10.11 08:33 조회 수 : 3381 추천:705



18 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노이바이(Noi Bai)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마치 시골의 한 조그마한 기차역 같은 느낌을 주었다. 노이바이에서 털털거리는 소련제 자동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흙먼지를 날리면서 하노이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무척 낯설었다. 앞으로 내가 공부하며 살아가야 할 이 낯선 땅의 풍경을 살피기 위해 뿌연 흙먼지를 투사하며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도시가 회색의 시멘트 덩어리 같아서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과 같은 고층빌딩이 안보여서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내 시야를 가로막는 산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서울에 살아온 나의 시각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 서울의 지리에 익숙해 있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전쟁이 더 많았던 나라인데 어떻게 수도가 이렇게 무방비 상태의 지리적 조건 속에서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내내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베트남은 기원 후, 938년에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독립의 중심인물인 응오꾸엔(Ngo Quyen, 吳權)은 최초의 독립왕조를 설립한 후, 그는 독립왕조의 수도를 탕롱-하노이와 그리 멀지 않은 꼬로아(Co Loa, 古螺)로 확정했다. 그리고 다음 왕조인 딩(Dinh-정)왕조가 전쟁에 유리한 지형을 찾아 산이 있는 화르-닝빙으로 옮겼다.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 이후, 두 왕조(딩 & 띠엔레)는 각각 단명했다.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70년 후인 1010년, 리왕조(Ly Vuong Trieu, 李王朝)에 이르러 산이 전혀 없는 완전한 평야지대의 탕롱-하노이로 천도를 결행하였던 것이다.

 

 

 

 

 

 

 

 

 

 

 

 

 

 

 

하노이, 용과 호랑이 걸터앉은 지세

당시 리타이또(Ly Thai To, 李王朝, 이태조)는 자신의 천도(遷都)의지를 백성들에게 알리기(詔) 위해 천도조(遷都詔)를 발표했는데 그가 쓴 천도조에 보면 이태조가 왜 천도를 해야 하는 이유들을 밝혔다. 그 중의 하나가 탕롱-하노이란 곳이 용반호거(龍盤虎踞)의 지세를 가지고 있어서 적을 물리치는데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하노이를 용반호거라고 한 것은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바처럼 실제 하노이는 용반호거의 지세가 아니다. 용반호거란 용(龍)이 웅크리고(盤), 호랑이(虎)가 걸터앉은(踞) 듯 한 웅장한 산세를 뜻하는 것으로써 지세가 매우 험준하여 적을 막아내기 용이한 지형을 말한다. 탕롱-하노이는 오히려 그 정반대인 사방이 확 트여 있고 산이 없다. 용반호거라 하면 차라리 천도하기 전의 수도였던 화르-닝빙이 오히려 더 어울린다. 화르-닝빙은 하노이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곳이라 필자도 여러 번 가보았는데 가서보니 실제로 지세(地勢)가 매우 험한 곳이었다. 화르(Hao Lu)는 좁은 계곡지대여서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에는 더 없이 좋은 천연요새인지라 이전의 두 왕조(Dinh-Tien Le)가 천도를 매우 꺼려했을 것이라는 점이 납득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조가 과감하게 천도를 감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산이 없는 탕롱-하노이에서 적을 맞아 싸울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자신감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자신감은 이태조 개인의 무모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1천 년간 중국의 복속시기 동안(BC 111-AD 938)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형성된 민족적 자존자긍의식의 발로였던 것이다. 바로 이 자존자긍의식이 탕롱-하노이를 1천년 동안 지탱시킬 수 있었던 정신적인 힘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정말 리왕조(李왕조) 이후로 외세에 대한 베트남인의 자주/자존/자긍의식은 그대로 차질 없이 계승되어졌다. 이를테면 리왕조 때에는 송군을, 쩐왕조(陳왕조) 때에는 원군을, 레왕조(黎왕조) 때에는 명군을, 꽝쭝(光中) 때에는 청군을, 근현대에 와서는 프랑스와 미국군대를 각각 차례대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베트남이 중국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 중국이 힘이 약했을 때가 아닌가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런 의심은 기우일 뿐이다. 물론 최초의 독립왕조를 세운 응오꾸엔(吳權)이 상대한 중국은 통일중국이 아닌 분열의 오대십국시대의 하나인 남한(南漢)이었다. 그래도 남한의 군사력은 결코 약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베트남이 중국과의 싸움에서 모두 이긴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후한(後漢) 초기 광무제 때, 쯩짝, 쯩니 두 자매가 최초로 대규모 궐기를 일으켰다(AD40~43). 이에 마원(馬援)이라는 유명한 장수가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베트남에 진군하여 3년 전쟁 끝에 궐기를 평정할 수 있었다. 비록 베트남의 궐기는 실패했지만 마원은 3년간의 고전 끝에 겨우 궐기를 평정했을 정도이다.

 

 

 

탄화(Thanh Hoa) 후에(Hue) 거쳐 하노이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대부분 베트남이 상대한 중국은 무기와 군사면에서 베트남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시대였지 결코 힘이 약했을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오랜 북방중국과의 전쟁에서 그리고 베트남 자신의 남북대립의 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탕롱-하노이는 수차례 질곡(桎梏)의 세월을 보내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탕롱(하노이)의 이름 자체가 여러 다른 이름으로 변천을 거듭해야 했다. 동도(1400), 동꽌(1406), 동낑(1430), 쭝도(1466), 그리고 마지막이 지금의 하노이(1830~)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수도 하노이가 불타 국가존립의 위기까지 처한 적도 있었고, 때로는 수도가 탄화(Thanh Hoa)로 옮겨지고, 후에(Hue)로 옮겨지고, 프랑스로부터 점령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미국과의 전쟁으로 심한 폭격을 맞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강력한 세력도 탕롱-하노이의 천년 정도 역사의 정기를 끊지 못했다.

올해 2010년은 이태조가 화르-닝빙에서 탕롱-하노이로 정도한지 꼭 천 년이 되는 해이다. 이 천 년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베트남은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 하이라이트가 오는 10월 1일부터 시작해서 10월 10일인 하노이 해방일까지이다. 천년 정도의 역사적 의미가 너무 큰지 지금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필자도 덩달아 흥분된다. 천년을 살아 숨 쉬고 있는 수도 탕롱-하노이의 한 가운데 내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가슴 벅차게 한다.

/심상준 (문화인류학박사 ․ 한베문화교류센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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