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의 장대한 서사시
베트남 역사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전쟁의 역사다. 이들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베트남 전 당시 50불도 안되는 약소국이 세계최강 미국을 물리친 이들의 저력이 단지 한 순간에 발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베트남인의 백절불굴의 단합심은 초기 선사시대에서 중세와 근세사에 이르는 장구한 역경의 파노라마 속에서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온 것이다. 이같은 취지에서 본지는 새해를 맞이하여 베트남 민족의 긍지이자 자부심의 원천인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하나씩 조명해보고자 한다.
베트남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의 표상인 베트남의 전쟁역사는 중국등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외세에 맞서 싸우는 도전과 응전의 산 현장이자 눈물과 애환의 파노라마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왜 유독 이 처럼 많은 전댕에 시달려야 했을까? 이에 대해 현지인 사가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파라다이스 베트남은 비옥한 홍강 델타지방에서부터 3,26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남부 메콩델타 지역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각종 천연자원이 넘쳐나는 데다, 동남아 일대를 사방팔방으로 연결해주는 지리상의 요충지라는 이유로 고대에서 중세, 근세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탐욕에 눈이 먼 세계열강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베트남을 침공해 들어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베트남인들의 핏속에 잠재되어 있던 단결심과 희생정신, 불굴의 의지가 유감없이 발현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수천여년에 걸쳐 이들 열강들과의 실전경험을 통해 오늘날의 베트남군이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백전백승, 자유, 독립보다 고귀한 가치는 없다
실제로 고대 방랑(Văn Lang)국을 다스리던 역대 훙브응(Hùng Vương: 雄王)들 역시 만(Man), 씻띠(Xích tỷ), 탓(Thạch), 등 셀 수 없이 많은 외세와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푸동팅붕(Phù Đổng Thiên Vương: 푸동천왕)과 같은 전설상의 영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같은 저항은 안증브응(An Dương Vương)시대로 넘어갈 무렵 극에 달했는데, 당시 세계최초의 통일 왕조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진나라 시황제가 50만의 대군을 몰고 남부정벌의 명분을 내세워 베트남을 침공하지만 베트남인의 불굴의 의지 앞에서 침공 10년만에 군대는 퇴각하고 만다.
이처럼 호Hồ 왕조 시절 명나라와의 전쟁이나 윙 (Nguyễn)가와 프랑스와의 전투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고대 진나라부터 근,현세 프랑스, 미국, 중국에 이르는 세계열강과의 거의 모든 전쟁은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사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세계인류 역사상 이토록 많은 외세의 공격을 물리친 유례가 없다. 이같은 불굴의 정신은 호찌민 주석이 1945년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인은 자유와 독립을 향유할 권리가 있으며,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획득했다. 이제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총력을 다하자” 고 외쳤을 때 절정을 이룬다. 시대별로 베트남의 대표적인 전쟁들을 시기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떵(Tần;진나라) 왕조의 남하정책으로 진시황제의 군대는 베트남 북부의 밧비엣(Bách Việt;백월족) 영토를 침입한다. (기원전 3세기 말) 초기에는 진나라가 승기를 잡음으로써, 멍비엣(Mân Việt), 동비엣(Đông Việt), 남비엣(Nam Việt) 등 세 민족이 정복당하고 이 곳에 진나라의 행정단위인 군이 설치된다. 하지만 이후 더욱 깊숙히 남하하다 결국 어우비엣(Âu Việt) 족에게 참패를 당하고야 만다.
진시황의 북진책
전국시대 산동지역 6개국을 차례로 정복하고 진나라(221~206년)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앉은 떵투이호앙 (Tần Thủy Hoàng:진시황제)은 북부와 남부로 본격적인 영토확장을 꾀한다. (기원전 223년) 그는 먼저 군사령관 몽딤(Mông Điềm)에게 군사 30만을 주어 훙노(Hung Nô: 흉노족)을 몰아내고 그 곳에 44개현과 만리장성, 즉 방리쯩탄(Vạn Lý Trường Thành)을 쌓는다.
진시황의 남진책
진시황제는 이후 지체없이 남진책을 본격화한다. 그는 총사령관 도트 (Đồ Thư)와 베트남 출신으로 그 곳 지리에 밝은 서록(Sử Lộc) 장군을 앞세워 50만 대군과 함께 호남(Hồ Nam), 광따이(Quảng Tây) 동북부, 핑응웅(Phiên Ngung), 남야(Nam Dã)등 지역을 침공, 따이어우(Tây Âu), 어우비엣(Âu Việt), 동비엣 (Đông Việt), 멍비엣
(Mân Việt)족 등 밧비엣 (Bách Việt)족의 일부를 정복(기원전 218~217년)하고, 꼬이께(Cối Kê) ,멍(Mân), 쭝(Trung) 등의 군을 설치한다.
비엣족의 항쟁
하지만 진나라 군대가 남진을 계속하여 누우 린(Ngũ Lĩnh) 지역으로 들어서자 3년간의 혹독한 시련기(기원전 218~215년)를 맞는다. 사서에 의하면 “당시 진나라 군대는 한편으로는 운하를 파 길을 내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저항하는 어우비엣(Âu Việt족)의 격렬한 공격탓에 한 시도 긴장을 풀고 갑옷을 벗을수 없었다”(không cởi giáp dãn nỏ)고 묘사한다. 하지만 진나라 군대는 우여곡절 끝에 궤(Quế)강을 건너 따이양(Tây Giang)지역으로 들어가 이곳의 핵심 저항세력인 따이어우(Tây Âu)족의 수령 짓후똥(Dịch Hu Tống)을 살해한다. 하지만 비엣족은 여전히 항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수령을 뽑아 항전을 계속한다
툭판의 맹활약
바로 이때 따이어우(Tây Âu) 지역의 수령이 된 툭판 (Thục Phán)은 진나라 군대의 총공세가 펼쳐지는 가운데서도 물러나지 않고 더욱 강력하게 저항한다.
그가 조련한 군사들은 산악지대를 이용한 유격전에 능했고, 장궁(활)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진나라 군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자 진나라 군대의 전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졌다. 아무리 총력전을 펼쳐도 별 효과가 없자 진 나라 군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희생자는 속출했다.
당시 사서 호아이남(Hoài Nam)에서 이때의 상황에 대해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기록하고 있듯 월족의 항쟁의 열기는 압제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강해져갔다.
진나라 군대의 퇴각
결국 전쟁중 떵투이호앙(Tần Thủy Hoàng: 진시황)은 죽고 그 아들 떵니테(Tần Nhị Thế: 진 이세황제)가 권좌에 오르지만 그는 산동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결국 이 지역을 포기하고 서둘러 퇴각을 명한다. 바로 이때 툭판은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어우비엣(Âu Việt)과 따이어우(Tây Âu)족과 합세해 진나라 총사령관에게 치명상
을 입히고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 사가들은 이 전쟁이야말로 월족이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세계 최강의 진나라를 물리친 기념비적인 전쟁으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결국 이 전투는 전쟁의 승리가 개개인의 탁월한 능력이 아닌, 불굴의 희생정신을 바탕으로한 운명공동체의 단결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비엣-떵 (Vieät Taàn) 전쟁 이후
결국 이 전쟁으로 군사력을 소진한 진나라 황제는 이후에 연이어 발생하는 반란을 진압할 여력이 없어 멸망하고, 기원전 202년 르우방(Lưu Bang;유방)이 한나라를 세운다.
전쟁 후 베트남에 큰 변화
월-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민족의 영웅 툭판(Thục Phán)이 그동안 훙브응(Hùng Vương)왕이 다스리던 방랑 (Văn Lang)국을 정복하여 오늘날의 하노이 부근에 어 우락(Âu Lạc: 257~207, 수도 꼬로아)국을 세우는데, 그가 바로 고대 베트남 민족의 건국영웅 안증붕(An Dương Vương) 왕이다.
하지만 어우락국은 당시 북쪽의 남해군, 계림군 등을 다스리다 진나라에서 독립한 찌우다(Triệu Đà/ 趙佗)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비엣(Nam Việt, 203~111, 5대 93년)으로 대체된다. 찌우다는 한족 출신(진나라의 군사령관)으로, 한족과 밧비엣(Bách Việt)족 등 남월국 내부의 각 민족 간 융화를 추진하였으며, 한나라 문화와 한자를 들여와 이후 베트남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현재의 광둥성 및 광시 장족 자치구의 대부분과 푸젠성, 후난 성, 구이저우 성, 윈난 성 일부, 베트남 북부를 다스리는 대제국으로 기원전 112년, 제 5대 국왕인 찌우낑득(Triệu Kiến Đức/ 趙建德)때 한 무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