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모두가 혜택이 되는 발전을 이루자” 리커창 중국 총리의 기조연설은 비장함이 느껴졌다.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중국 하이난성 중하이시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은 미중간의 무역갈등을 반영한 탓인지 활기와 긴장이 교차하는 분위기였다. 과거에 비해 미일 관계자들은 눈에 띄게 줄어 들어든 대신 한국과 중국측 고위 관계자들은 상대적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민관 차원의 협력을 모색하는 한중간의 토론과 세션이 이어졌고 보아오포럼 이사장인 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은 행사를 진두지휘하며 포럼 성공에 진력했다.
당초 행사전에 시진핑 주석이 폐막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시 주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 주석이 참여하지 않았으나 중국측의 보아오포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변함이 없었다. 삼엄한 경비인력과 행사장 곳곳에 배치된 행사요원들의 규모나 서비스에서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에 비견되는 보아오포럼의 무게와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포럼은 ‘공유된 미래, 일치된 행동, 공동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민관행사의 성격상 보호무역과 같은 국제적 현안을 정면에 내세우진 못했지만 4차산업 혁명과 이에 따른 신문명의 문제, 에너지, 기술 및 경영 혁신과 같은 사회적 변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어졌고 논의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포럼의 수혜자는 한국이었다. 포럼을 통해 사드이후 냉각기가 지속되던 한중관계에 해빙의 씨앗을 뿌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3년만에 성사된 이낙연 총리와 리커창 총리의 한중 총리회담은 결과와 무관하게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
포럼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년전에도 한중 총리 회담을 추진했지만, 중국측이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간의 중국측 행보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유의미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두 총리는 회담에서 한중간의 미세먼지 해결 등에 대해 탐색전 정도의 대화를 나눴지만 환경의 재앙을 막아내자는 포괄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적절한 수준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으로 해석된다.
산자부 장관 등 각계인사 총출동
성윤모 산업자원부 장관의 활약도 돋보였다. 성윤모 장관은 마오웨이 중국 공업신식화부장과 취임 이후 첫번째 산업장관회담을 가진데 이어 5세대 이동통신(5G),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 등 산업혁신 전략을 레이쥔 샤오미회장, 양차오빈 화웨이 5G 최고책임자 등 중국 최고의 IT기업 경영진과 논의했다.
성 장관과 샤오미 회장이 참석한 이 세션은 포럼에선 이례적으로 20~30대 젊은층이 입구에 장사진을 이루고 출입을 제한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자율차/수소차, 스마트그리드 등 한국의 산업혁신전략에 대한 중국 스마트업 등 현지 전문가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행사장 안팎에선 새로운 기술정보와 혁신전략에 갈증을 느끼며 토론장 곳곳을 찾아드는 창업자들과 IT기업인들이 넘쳐났다.그야말로 창업대국의 힘이 행사장 전반을 지배했다.
성윤모 장관은 한중 CEO포럼에 참석하는 등 행사기간 중 "한중은 2차대전 후 단기간에 산업화에 성공한 세계의 유이한 국가”라며 기업교류와 민관협력 토론 현장을 찾아 한중 양국의 공동 분모를 도출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번 포럼에 이 총리와 성 장관 외에도 최종구 금융위원장,한병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회장, 최희남 한국투자공사 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도연 포항공대 총장, 인유진 LG디스플레이 부사장,서양원 매일경제 편집이사 등 정재계는 물론이고 금융계, 학계, 언론계의 중량급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그만큼 이번 보아오포럼에 거는 기대가 컸고 결과적으로 한중 민관협력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특히 이번 포럼을 총괄 기획한 민간싱크탱크인 여시재(이사장 이헌재)의 기획역량과 네트워크도 주목됐다. 여시재는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기획인력을 동원해 포럼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설립 3년째인 여시재는 “이념과 정파에 관계 없이 나라의 미래를 고민한다”는 설립 취지에 맞게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음을 이번 포럼을 통해 증명한 셈이다.
신문명도시 주요 의제로 부각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는 '도시와 인간'에 대한 탐색이었다.4차산업 혁명과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도농간 빈익빈 부익부,에너지 복지 등 포럼의 주요 의제들이 도시 문제로 압축되는 양상이었다. 도시문제는 포럼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었다. 논의를주도한것은 반 전 총장이다.
반기문 前 총장은 개막식 기조연설등에서 "인간,자연.사회가 융합되는 조화"를 강조했고 그 대안으로 신문명도시를 주창했다. 반 전 총장은 "신문명도시가 지속불가능한 위기에 처한 인류와 지구를 구하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며 마을이 학교가 되고, 집이 병원이 되며 노동의 개념이 진화된 '은퇴 없는 사회'를 제시했다.
유엔 사무총장 퇴임 이후 줄곧 신문명을 강조해온 반 총장은 최근 미세먼지 범국가 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포럼은 신문명이란 접점을 찾아내고 이를 한중간의 공동아젠다로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전면적인 형태로 부각됐다. 산업화를 이끌어온 도시 문제의 해결이 동아시아의 핵심적인 현안으로 격상된 것이다.
포럼에서 중국 관계자들은 4차산업에 대한 자긍심을 은연중 드러냈다. 세계적인 AI 업체로 부상한 장원 중국 센스타임 창업주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의 금융위원장, 산업자원부 장관 등과 함께한 한중 CEO포럼에서 "AI분야는 앞으로 핵무기처럼 소수국가가 독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한 뒤 "중국의 경우 3~4년전 미국에 한참 뒤졌으나 최근에는 막대한 빅데이터와 우수 인재 덕에 기술력을 추월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AI수준은 중국이나 미국괴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평가하고 기술협력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심스럽지만 미세먼지 해결에 대한 민간차원의 아이디어도 나왔다.중국의 장유엔 보드그룹 회장은 CEO포럼에서 "화북지방 석탄 발전소의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에서 금융과 기술을 투여하여 화북지방의 탄소배출을 절감하면 미세먼지 해결은 물론 3년내에 수익까지 낼수 있다"며 한중공조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한국정부 속앓이와 대 중국 고립주의
한중관계는 그간 한국정부의 아킬레스와 같은 대단히 예민한 문제였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새까만 속앓이 환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중국을 균형자 외교의 한축으로 활용할 필요성은 높아졌지만 중국의 반응은 냉담하기만했다.
한중 관계 변화의 필요성은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일 동맹은 미국의 노골적인 일본 경제편들기를 넘어서 전방위적으로 확산 중이다. 세계 패권국가 미국의 대 중국 고립 움직임은 미중 무역 갈등 이후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중국의 다급함과 초조함은 이미 프랑스 항공기 대량 구매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다. 그만큼 한중관계는 북미 핵협상 등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경직된 구조에 다소간의 균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아직은 미약하지만 냉각된 한중관계를 서서히 선회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한국정부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감지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장 현 철
을지대 초빙교수
서남해안기업도시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