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중국, 2010년 베트남, 2023년 인도
 
 
“2001년이 한국 기업들에게 중국 진출 러시의 원년이었고, 2010년이 베트남 진출 러시의 원년이었다면, 2020년은 인도 진출 러시 원년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인도를 방문했던 수많은 우리 중소, 중견기업 관계자들이 전하던 말이었다. 이 말은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이 2023년으로 3년 이연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 경기침체 속에서도 인도 경제는 7%대의 나홀로 성장을 이어왔고, 주식시장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023년은 우리나라와 인도가 국교를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2023년은 2000년 중국, 2010년 베트남에 이어 우리기업의 대인도 진출이 러시를 이루는 해가 될 것이다.
 
●썰물 추세의 중국, 포화의 조짐이 보이는 베트남, 미국이 미는 인도 = 우리나라가 1990년대 후반에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 경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웃 중국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중국은 2000년을 전후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세계시장에 본격 데뷔하였고, 이후 8% 이상의 고성장세를 지속해 한국 경제에 배후지를 제공했다. 한때 바다 건너 산둥반도에만 5000여 한국기업이 진출했고, 한국 교역의 4분의 1이 중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반도체를 포함한 거의 전 산업 영역에 걸쳐 중국기업은 한국기업과 직접적인 경쟁 및 상호보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사드 배치로 분위기가 급반전된 이후 한중 양국의 경제, 문화교류 환경은 현재 진행형인 미중 간 무역분쟁과 4%대로 떨어진 중국의 성장률, ‘제로 코로나’ 방역 등이 겹쳐 크게 나빠졌으며, 이에 따라 우리기업의 중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덩치와 자부심이 부풀어 오른 중국 기업인과 정부를 대하기도 힘들어졌고, 우리 기업 중 대중국 투자나 교역을 늘리겠다는 기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한가를 기록한 우리기업과 유관기관의 대중국 전문가 수요는 한겨울 한파로 접어든 듯하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은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인건비 상승과 경쟁 격화 등으로 중국의 사업 환경이 악화된 가운데, 저임금과 미래 시장 가능성, 문화적 유사성, 베트남전 참전에 따른 향수 정서 등이 어우러져 2010년을 전후로 우리기업의 대 베트남 투자 러시가 시작되었다. 
 
현재 삼성전자 한 곳이 베트남 전체 수출의 20% 전후를 담당하고 있고, 남부 호치민, 북부 하노이, 그리고 최근의 중부 다낭까지 우리 기업의 투자는 베트남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한-베트남 교역은 올해 800억 달러 넘어섰고 베트남은 한국의 제3 수출대상국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현재 1만여 한국 투자기업에 20만 명이 넘는 한인사회가 구축됐다. 문화적 친근성이 더해, 인허가 등 베트남 정부와의 관계에서, 또 현지 진출 우리기업 간 협력에서 마치 한국 내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듯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베트남 역시 탈중국 다국적 기업의 베트남 유입과 기진출 한국 기업들간 과당경쟁, 중국에서 보았던 정치적 리스크의 재현, 자신감이 붙은 베트남 정부의 자국산업 육성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구자라트 주 소재 포스코 가공공장. 포스코는 이곳 인근 구자라트주 해안에 100억 달러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 직접 촬영.
●평균 연령 28세의 14억 인구와 7% 고성장세 , 모디라는 지도자 = 14억 인도는 새해에 중국을 추월,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전망이다. 
 
절대 인구수에 더해 인도가 어필하는 가장 큰 매력은 중국의 38세 대비, 10년 이상 젊은 평균 28세의 인구 구성과 무서운 성장세다. 30세 미만 인구가 약 30%에 달하는데, 이 비중이 가장 큰 인도의 종형 인구구조는 현재의 10~20대가 구매력이 가장 큰 30~50대로 이동할 때까지 향후 20년간 안정적인 구매력과 성장세를 담보하는 설명변수다. 
 
현재의 스태그 플레이션성 세계 경제 흐름 속에서도 인도는 내년까지 연간 7%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고, 인도 ‘Nifty 50’ 주가지수는12월 들어서도 18,000대 중반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지속 갱신하고 있다. 
 
인도는 인도아대륙에서 명멸했던 그 수많은 왕조, 종족, 언어, 종교를 아울렀던 관용과 조화 전통으로 뼛속까지 민주국가이다. 한국의 33배에 달하는 국토면적에 각 주별 자치 전통이 뿌리 깊다. 그래서 소비에트나 중국의 일당제 상명하달 행정시스템은 인도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인도는 적어도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정치적 리스크가 없는(Free Zone) 나라다. 
 
중국에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있었다면, 인도는 독립 후 최고의 스트롱맨(Strongman)이라 불리는 모디(Modi)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지니고 있다. 사심 없는 개혁과 인프라, 제조업, 외국인 투자, 디지털, 스타트업으로 표현되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5년 간 7%가 넘는 성장세를 주도했다.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 지수도 5년 전 120위에서 2019년 63위로 낮추는 등 기업환경이 급속한 호전 추세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14개 전략산업을 지정해 향후 5년간 이들 분야에 투자하는 인도 국내외 기업에 400억 달러의 예산으로 직접 현금 보조하는 파격적인 자국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Foxcon 등 해외기업의 참여도 폭발적으로 인도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 금액은 이미 연 800억 달러대를 넘어서고 있다.
 
100억 달러 이상의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준비 중인 Tata, 5G 시장을 준비하고 있는 Reliance 등 인도 대기업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19년 5월 모디 총리와 총선 집권당(BJP)은 자체만으로도 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을 확보, 독립 이래 유례가 없는 강력한 지지기반을 구축했다. 현 정치구도상, 또 지난 8년의 성과상, 2024년 총선도 현 모디 총리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20년의 개혁개방 추진 시간을 가졌다면, 인도 모디 총리는 지난 8년을 포함해 앞으로도 최소 8~9년 더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미국에 있어 인도는 헤게모니 전쟁 중인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체국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도지만, 인구, 국토면적, 경제덩치에서 인도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의 제1선 국가다. 월마트가 200억 달러 가까이 인도 전자상거래 분야에 이미 투자했고, 페이스북이 60억 달러를 Reliance G5 지분사에 투자하고, 애플이 중국내 아이폰 생산 공장을 급속히 인도로 이전하고 있는 이유다. 
 
●2023년 한-인도 수교 50주년 = 2023년은 한-인도가 수교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정부 및 인도 정부 차원에서도 내년을 계기로 양국간 정치, 경제, 군사, 문화협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과제들을 본격 준비 중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우리 대기업과 그 협력기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해 현재 700여 기업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이나 서구기업과 달리, 극심했던 인도 코로나 와중에도 현지를 지켜준 우리기업인에 대한 고마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인도 내 뜨거운 한류열풍, 한-인도간 방산협력 등이 겹쳐 인도 현지의 우리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평가와 기대도 매우 긍정적이고 높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대인도 투자 규모는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고, 인도의 외국인직접투자 유입 누적액 대비 한국의 비중은 0.9%에 불과하다. 앞으로 최근 큰 물줄기가 되고 있는 탈중국 흐름과 인도로의 외국기업 러시 흐름 속에서 우리기업의 대인도 투자도 2023년 중 급속한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나라 포스코가 인도 북서부에 100억 달러 이상의 일관 제철소 건립을 결정한 바 있고, 이미 세계 최대의 핸드폰 조립기지를 인도에 구축한 삼성전자도 중국내 라인을 인도로 지속 옮기고 있다. 
 
110만 대 생산체제를 인도에 구축해 놓은 현대·기아의 전기차 모델도 인도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인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의 설립도 그 시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인도 최대기업이자 성공의 보증수표인 Tata가 추진하고 있는 100억 달러 이상의 반도체 후공정 설립 프로젝트 파트너로 30년 진출 역사를 가진 우리기업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도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서 중국을 대체, 보완할 핵심 파트너가 인도라는 점을 직시하고 있다. 
 
2000년 이후 10년 주기로 우리기업의 해외투자 중심국은 이동해 왔다.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탈중국화와 G3 인도의 고성장세로 인도는 우리나라에 제2의 중국, 제2의 베트남이 되어 갈 것이고 그 전환점이 수교 50주년의 해 2023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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