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2억 불가촉천민의 영웅, 암베드카르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인도 달릿(Dalit)의 영웅 = “선생님은 저에게 조국이 있다고 하십니다만,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개·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마실 물을 얻어먹을 수도 없는 이 땅을 어떻게 저의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 나라의 종교가 어떻게 저의 종교가 될 수 있습니까? 눈곱만한 자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달릿(Dalit ; 불가촉천민)이라면 이 땅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립 전인 1933년 인도 독립운동의 대부 간디(Gandhi)가 던진 화두 ‘조국’에 대해 당시 40대에 접어든 열혈 사회운동가 암베드카르(Ambedkar)가 던진 답이다. 달릿이라는 단어를 빼면, 조선시대 백정이나 일본의 부라쿠민, 제국주의 시대 아메리카 대륙 흑인 노예가 똑같이 던졌던 외침일 것이다.
 
암베드카르는 20세기 인도의 정치사 및 사회사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현대 인도의 법, 정치, 종교의 뿌리를 심어놓은 인물이다. 
 
달릿은 수천 년 뿌리를 가진 인도 힌두의 4단위 카스트 시스템에도 들지 못하는 최하층 계급이다. 청소, 세탁, 도살 등 필수적인 서비스를 담당하면서도 힌두 원리상의 부정적 윤회의 매개물이란 족쇄로 신체적 접촉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거주와 직업에 엄격한 차별을 받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수천 년간 받아 왔다.
 
암베드카르는 1891년 인도 중부의 소도시 모우(Mhow)에서 군인 집안의 14번째 막내로 태어났다. 불가촉천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 수업도 동료들과 달리 거적을 깔고 한쪽 구석에서 들어야 했고, 부정 타는 것이 두려운 교사들은 그에게 질문하거나 공책에 손을 대는 것조차 꺼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이 모든 굴레가 사회적 저주와 압제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고 “이 끔찍한 불의와 비인간적인 차별 족쇄에서 달릿들을 해방할 수 없다면 나의 삶을 총알 한 방으로 끝내 버리겠다”고 결심한다.
 
공부만이 유일한 탈출구였고 부모의 격려, 백인 선교사의 주선과 주정부 장학금을 통해 영국 런던정경대 정치경제학 박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박사 학위와 영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정부 고위 관리, 대학교수로 인도에 복귀한 이후에도 그에 대한 카스트 차별과 터부는 지속되었다. 
 
▲2023년 4월 14일 인도 하이데라바드 의회의 새로운 사무국 건물 지붕 위에 125피트 높이의 비므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동상이 보인다. 이날은 그의 탄생 기념일이다. 불가촉천민, 즉 달릿이자 인도의 유명한 자유투사인 암베드카르는 카스트에 기반을 둔 차별을 금지하는 인도 헌법의 수석 설계자였다. 사진=AP/뉴시스
●신분제 폐지 헌법에 초석을 놓고 불교에 귀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불사르다 = 고등법원 변호사로 일하면서 1927년 1만여 명이 참여한 초다르(Chodar) 저수지에 대한 식수 쟁취 행진, 1930년 2만 명이 참여한 칼라람 사원(Kalaram Temple) 입장권리 확보 행진 등 불가촉천민 인권개혁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불가촉천민에 대해 ‘신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뜻의 하리잔(Harizan)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지만 타고난 일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간디의 온정적 힌두 통합론에 대항해 달릿만의 독립 선거구, 신분제 해방 등을 기치로 대립했고, 1936년 힌두교와의 절연도 선언한다. 
 
독립 인도 초대 법무부 장관이자 헌법 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개별 시민권리의 중요성, 종교의 자유, 불가촉천민제 폐지와 차별금지 등을 담은 초대 인도헌법 출범에 결정적으로 관여했다. 이후의 수정헌법에서도 불가촉천민에 대한 학교, 선거, 공직, 시험과 경제적 지원에서의 특별우대 정책 도입 등 그의 사상들이 헌법과 법, 정책들에 반영되었다. 해서 그는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20여 년 고민 끝에 불가촉천민에 대한 종교적 사상적 독립의 대안처로 불교를 선택, 1956년 사망 직전까지도 50만 명의 불교 개종 대회를 개최하는 등 평생을 불가촉천민의 정치, 교육, 사회, 종교개혁운동에 매진했다.
 
현재 인도에는 그이 이름을 딴 대학도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동상이 전역에 퍼져 있다. 동상 대부분에서 치켜든 오른손 검지는 하늘을 향하고 왼손으로는 헌법책을 가슴에 품고 있는데 이는 그가 지향코자 했던 삶과 그 궤적을 대변하고 있다.
 
●신분보다는 직업·돈으로 옮겨가는 인도, 카스트가 아니라 자티(Jati) = 현재 인도 법상 SC(Scheduled Caste)로 분류되는 불가촉천민 수는 전체인구 14억의 15%인 2억 명이다. 
 
SC 외 ST(Scheduled Tribe)라 해서 동북 7주 등 차별을 받아 온 소수민족이 전체인구의 8% 정도인 1억 명, 카스트 4계의 맨 아래층의 공인 계급(Sudra)인 OBC(Other Backward Caste)가 전체인구의 52%로 이들 3계 특별우대 그룹이 전체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이들 3개 차별그룹이 인도 국회의원 수에서 법적으로 채워야 하는 비중은 ST 20%, SC 14%, OBC 16%다. 도합 50%다. 
 
대학을 포함한 인도 내 모든 국공립학교 입학 인원은 물론 IAS 등 인도 고위 공무원단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 임용에서 SC는 15%, ST 7.5%, OBC 27%(도합 50%)의 할당을 받아 이들은 일반 수험생과 달리 각 카테고리 내에서 별도로 경쟁한다. 그래서 일반군 경쟁에 비해 경쟁률도 낮고 합격점수도 현저한 차이가 난다. 국가 장학금 시험에서도 등록금에서도 이들 계층은 별도 군으로 분류되고 그만큼 특혜를 받는다. 
 
이 때문에 좁아진 문에서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일반군(General Category)의 존심을 버리고 OBC로의 지위 변경을 요구하는 일족집단의 격렬한 시위가 인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반군 내에서도 경제적 지위가 어려운 층을 대상으로 하는 EWS(Economically Weak Section)란 별도 카테고리가 생기는 반작용도 생기고 있다. 
 
카스트 공학을 둘러싼 주판알 굴림과 표 계산은 종교와 함께 총리, 국회의원, 주의원, 주수상 등이 권력을 이어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각 주정부는 인구 조사를 통해 SC, ST, OBC 대상 일족군과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각 주 인구 분포에 맞추어 입학, 공무원 채용 등의 업무를 관리한다. 중앙정부에는 Ministry of Social Justice and Women Empowerment란 별도 부처에서 차별계층 지원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예산을 지원한다. 
 
정치, 관계, 학계에 대한 전통적 차별그룹의 진출과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자치전통(Panchayat)이 강한 시골, 농촌에서 서서히 그리고 돈과 직업, 지위가 전통적 카스트를 대체해 가고 있는 도시지역에서는 단순한 4계를 넘어 수많은 ‘자티(Jati ; 직업)’적 성격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인도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력이 비상하고 있고, 일반 대중의 생활 수준과 물적 기초, 그에 따른 의식개선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카스트라는 갇혀지고 고정화된 닫힌 틀 내에서 수천 년 기득권을 누렸던 계급과 이 카스트 족쇄의 틀을 깨고, 눌려 왔던 정치, 경제, 신분적 욕구를 쟁취하려는 두 가지 거대한 힘이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 현대 인도다.
 
밖에서 보면 혼란이고 신비일 수 있고 각종 파열음이 전달되지만 이러한 충돌과 재정립의 에너지는 현대 인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에너지이자 힘이 아닐까 한다. 
 
이런 면에서 자신의 온몸과 마음과 생애를 바쳐 이 거대한 벽에 부딪혔고, 균열과 지원의 초석을 놓았던 암베드카르는 20세기 세계가 낳은 거인이자 위인이다.
 
■알림=‘김문영의 인도경제, 인도상인 이야기’ 시리즈는 오늘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열독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필자인 김문영 우송대학교 교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김문영은 1998~2002년, 2018~2021년 인도에서만 8년 동안 근무한 인도 전문가다. KOTRA 서남아지역본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우송대학교 SolBridge 국제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3,000년 카르마가 낳은 인도상인 이야기(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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